==================================================================
* 작 가 : RaeB (skin2327@hanmail.net)
* 창작실 : 크리스탈Ⅱ
* 제 목 : 도현이와
* 편 수 : 15
==================================================================
도현이와 - 09.
기억났다. 그 미소. 그 때의 그였다. 분명해졌다. 희재와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혀지기도 했지만, 그 때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지금은 많이 달랐다. 그가 포장마차에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역시 기억해낼 리 만무할 정도로.
그런데 어째서. 분명 살 이유를 찾은 것 같았는데, 다시 잃어버린… 아니 그 전에,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주위 사람들에게 늘 똑같다는 소리만 듣고 사는 난데.
그 병원 앞. 머릿속엔 성도현과 우희재가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그래서 대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또는 우리의 끝.
“혹시, 이 병원에 우희재라고…”
“어느 병동인가요?”
“아마 신경과나… 아니면 재활의학과던지…”
“가족이신가요?”
“친구… 친구에요.”
친구.
이미 끝이 났다고 알고 있는지도.
신경외과 2병동 615호실. 문 앞에 희재의 이름을 확인했을 뿐인데도 심장이 뛰었다.
똑똑.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에요?”
밖으로 나가려는데 침대 밑에서 꼬마아이가 나왔다.
“안녕.”
“안녕하세요.”
“존댓말을 잘 하네? 부모님이 잘 가르쳐 주셨나보다.”
“그래야 도현형처럼 되지 않는댔어요.”
흔한 이름인가. 어린 꼬마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린다.
“병원복을 입고 있네. 어디가 아파?”
“네. 엄청 많이요.”
“혹시 팔이….”
다행히 침대에 매달려서 위아래도 움직이는 아이는 겉으론 괜찮아 보였다. 희재가 이런 모습이라면 좋을 텐데….
“여기 형 만나러 왔어요?”
“응?”
“흐림이라고 하는 형 만나러 왔어요?”
설마 아직 흐림이라느니 하는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어…? 어…. 어디… 갔는지 알아?”
* * * * *
“내 자린데?”
또라이다. 맑음이라고 소리쳤던 또라이가 눈앞에 있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앉은 의자는 이 또라이가 가져다 두었던 것 같다. 별로 달갑지 않아 얼른 피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 옆 바닥에 털썩 앉는다.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맞은 상처가 대단했다. 맞아서 병원행이라니. 조폭이라도 되는 건가. 어쨌든 정신과 환자는 아닐지도.
자리에 앉아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박하사탕을 꺼낸다. 한 세 개 쯤을 순식간에 입 안에 까 넣었다. 역시 피해야했다. 맑음을 찾는 것도 모자라 박하사탕이라니. 우연치고는 끔찍했다.
“너도 먹을래?”
또라이의 환자복 주머니엔 사탕이 가득했다. 조맑음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그가 내미는 사탕을 물끄러미 보다가 무심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아. 얘는 멈췄지. 후. 사탕을 내미는 쪽과 먼 왼팔을 뻗어 받자 의심쩍게 쳐다보는 또라이 녀석.
“팔, 다쳤어?”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계속.
“신경 꺼.”
손에 쥔 사탕에 힘이 들어간다. 다음부터는 이 또라이를 마주치면 바로 피해야겠다. 이 옥상도 오지 말아야겠다.
“그거 너 같은 놈한테 주라고 있는 거 같아. 너나 나 같은….”
또라이가 맞나보다. 뭐라고 짓거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조맑음 같이.
“나는 성도현. 스물 다섯. 나랑 비슷해 보이는데? 군대는 갔다 왔냐?”
군대. 꿈틀했다. 거슬리는 것 투성이네. 이 또라이.
“신경 끄랬잖아.”
“어린 게 뭐가 그렇게 삐딱하냐? 인생 다 살아본 놈처럼.”
“다 놓쳤으니까.”
“뭐라고…?”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잡아 어깨 위까지 들었다 놓았다. 오른손은 그저 달려만 있는 마네킹 팔처럼 툭하고 떨어져 제자리로 돌아갔다. 실소가 터졌다. 벌써 몇 백 번쯤은 반복했던 일이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주문인지 명령인지 모를 말을 속으로 되 뇌이면서.
“다쳤어? 팔이 이 지경인데 다른 데는 멀쩡해?”
“….”
“다행이네…. 살아있어서.”
어지간히도 긍정적이다. 남의 일이라서 일까. 또라이라서 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염려하고 동정하고 가여워했다. 이 부분에서 또라이가 조금 좋아보였다. 그처럼 산다면 좋겠다.
나는 나를 몰랐다.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원래의 나처럼 살 수 없다는 걸 몰랐다. 어머니가 열 여덞에 돌아가신 것 말고는 인생에 고난이나 위기 같은 게 없었다. 늘 평탄하고 늘 원하는 데로였다. 스스로 늘 즐거운 듯. 그래서 쉽게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동요시키곤 했다.
그런 내게 벌어진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 그 한 가지로 모든 게 무너졌다. 아무 것도 즐겁지 않고, 귀찮고 번거로웠다. 밥 먹는 것도, 씻는 것도, 눕고 일어나는 것도, 뛰는 것도, 동료도, 친구도, 가족도 그리고 사랑까지도 그랬다. 한 순간에 다 놓아버렸다.
난 이제 아무 것도 하지 못 해.
그 말을 반복하면서 무너져 갔다. 내 어디가 긍정적이었는지, 내 어디가 즐거웠는지 알 수 없었다. 팔 하나를 잃고 이렇게 까지 무너지는 어린 아이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무엇에도 기대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도 가지고 있었다.
“오늘 하늘은 맑음이네.”
그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말 새파랗게 맑았다. 햇볕도 따사로운 맑음이었다. 만약 조맑음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면 분명 흐림이었겠지.
“맑음. 맑음. 맑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뇌었다. 버릇이 됐구나. 생각도 없이.
“네 이름은 뭐냐?”
“우흐림.”
“뻥?”
“안 뻥.”
진심이었나. 우흐림은.
“여보세요? 형? 왜 또 왔어. 응. 잠깐 바람 쐬러. 지금 갈게.”
그는 전화를 받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보자. 우흐림.”
그가 가고 바람이 잠깐 불었다. 성도현? 일단 나보다 형이니 도현형. 다음에 만날 때는 도현형으로 불러야겠다. 그리고 물어봐야지. 살아있는 게 정말 다행이냐고.
도현이와 - 10.
왜지. 왜 여기서 지금 조맑음을 마주하는 거지.
“어, 형! 도현이형! 형!”
그리고 우주는 왜 함께 옥상에 올라오고 있었던 거지.
“형도 아파요? 으아, 형 얼굴이 엉망…”
조잘거리는 우주를 데려다 옆에 세우고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리고 조금 패닉에 빠진 것 같은 꼬맹이를 쳐다보다가 문득 지금 옥상에 있는 우흐림이라는 녀석이 스쳐 지나갔다. 맑음과 흐림이라…. 설마 저 녀석한테 내가 안 되는 이유가 우흐림, 그 녀석 때문일까. 이럴 때는 왜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건데.
“도현형, 옥상에 누구 있어요? 혹시 다른 형 못 봤어요?”
우주의 질문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올려다본다. 예쁘다. 조맑음.
“있어. 이름이 흐림이라는 놈.”
“누나! 여기 있는 거 맞데-. 나는 도현형이랑 내려갈래. 형. 형은 몇 층이에요?”
아. 이렇게 갈리는 건가. 조맑음을 만나고 싶었다. 저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꾀나 간절하기 까지 했다. 그런데 나를 스쳐 지나 옥상으로 올라가는 데도 붙잡을 수 없었다. 작은 우주 손에 끌려 점차로 멀어져만 갔다.
“흐미, 우주야-. 니 우에… 같이 오노?”
병실에는 먹을거리를 잔뜩 가져온 원준형이 나와 우주를 반겼다. 우주는 3일 전 엄마에게 보내졌을 때 갑자기 온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급하게 병원에 입원 되었다고. 이 사실을 성태형은 알지 못했다. 그러니 원준형과 나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우주의 엄마라는 사람은 성태형에게서 우주를 벌써 완전히 뺏어 간 듯 했다.
“그라도 얼라 아픈 거는 알라야지. 매정도 하다. 하이고.”
“나 아픈 거 아니에요. 아픈 척 하는 거야.”
“뭐라꼬? 뭐라 했드나, 시방?”
“외국에 간데요. 형. 엄마랑 어떤 아저씨랑 같이 외국에서 산데요. 우리 아빠는 안 데리고 가고, 나는 아빠가 더 좋은데. 아빠랑….”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버지와 영영 헤어지는 길이었다는 것을.
곧 침울해져서는 울먹거린다.
“아빠, 보고 싶어. 형. 아빠 보고 싶어요. 원준 삼촌. 아빠 보러 가면 안돼요?”
“야를 우짜노, 참말로.”
“성태형 오라고 해. 나는 무엇보다 우주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성태 금마, 지는 암 생각머리가 음썼겠나? 감마는 뭐 간빠이 보냈겠나?”
“그러니까 더 부르라고! 아빠잖아! 아빠가 지금 애가 병원에 있는지, 출국을 앞둔 지도 몰라! 그래야겠어?!”
“얌마야, 애 놀란데이. 알그따. 내 전화논다. 시방.”
지금의 성태형과 나중의 내가 다를 게 없다. 내가 성태형보다 수월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주제에 사랑이니 뭐니 하는 감정을 가지고 심장을 쪼였다 놓았다할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안 된다는 사람을 붙잡아서 까지. 잘 됐다. 이대로 묻어버릴 수 있을 거다.
이제 박하사탕 같은 건 그만.
“비… 안 오나….”
* * * * *
“왜.”
“….”
“왜 네가 여기에 있어?”
첫 말부터 사납다. 햇살을 받으며 부드럽게 웃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무표정하고 냉랭한 우희재가 나를 여태껏 보인 적 없던 모습과 말투로 경계한다.
“우연히. 알게 됐어.”
“뭘…?”
그의 물음에 문득 그의 오른팔로 시선이 갔다. 정말 움직일 수… 없는 걸까. 내 시선을 알아차린 건지 희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성큼 걸어 나갔다.
“희재야…!”
“확인이라도 해야 했어? 너 그렇게 버리고 어떤 꼴인지 보고 싶었어? 그래, 안 움직여. 손가락이 잘려도 고통도 못 느껴. 완전 병신 새끼야. 됐…”
희재가 쏟아내는 말들을 더 들어줄 수가 없어서였다. 처음으로 먼저 그를 끌어안았다. 그는 등도 참 따듯했다. 늘 수동적이었던 내가 어리석었다고 후회했었다. 헤어짐을 고했던 그에게 처음 든 생각은 그런 후회였다. 다시 만나면 다시 만난다면 먼저 웃고, 질문하고,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을 얘기하길 바랐다. 결국 그 후회들이, 그 바람들이, 쌓이다 못해 반대로 그를 원망하게 되어 버렸지만.
“끝을 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왔어…. 나는… 아직 널 떨쳐내기 어려워서….”
한참을 멍하니 있던 희재는 한 손으로 끌어안은 내 손을 움켜잡았다. 그가 손을 잡아주면 좋았다. 곁에 있으면서도 맹목적으로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게 전부였던 걸지도….
“기억해? 네가 학교 앞에 방을 구하고 이사하던 날. 아침부터 청소하고 짐을 나르고 정리하다가 지쳐서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 먹고 요쿠르트도 완샷 하고.”
1년도 더 전의 일이다. 희재는 어느새 늘상 그랬던 나긋나긋한 말투로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둘 다 나른하게 뻗어서 낮잠을 좀 잤어. 너는 침대 위에, 나는 바로 그 아래에 있었어. 오래 잠들진 않았는데, 자다 깨서도 꾀 한참 몽롱했어. 그 때 네가 물었어. 살면서 늘 그렇게 행복이 가득했냐고.”
기억하고 있다. 그 때의 나는 ‘불행하다’라고 늘 나를 가여워했다. 그래서 물었다. 왜냐면….
“내가 그렇다고 하자 네가 손을 내밀었어. 그리고… 잡아달라고. 그 행복함을 잡아보고 싶다고.”
행복해지고 싶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현실을 직시할 줄 모르고 동화 속에 살고 싶어 했어.
“난 머뭇거리지 않고 잡았어. 그렇게 한참을 잡고 있었던 것 같아. 망할 그 손이 지금….”
말끝이 차차 흐려지며,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이 빠져간다.
“네가 다시 묻는다면 나는 네 손을 잡을 수도 행복하다 말할 수도 없어. 지금 나는 그 때와 많이 달라. 아니 전혀 다른 사람이야.”
결국 움켜쥔 내 손을 풀어내고 떨어져서 뒤를 돌아보는 희재는 소리 없이 줄줄 흘러내리는 내 눈물을 쓸어주며 쓸쓸하게 웃었다.
“너를 사랑했는지도 의심스러우니까.”
“그래서야? 그게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야? 다른…”
“상관없잖아. 어차피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
들어버렸다. 끝이라는 말. 우희재와 조맑음은 정말 끝이 나고 있다.
내 옆에서 다정하게 웃던 우희재. 흐림은 자기가 한다던 우희재. 늘 함께 밥 먹고 걷고 대화하고 내 3년을 함께 한 우희재가 이제 안녕이라고 한다.
“여전하구나. 어리고, 나약하고. 의존할 줄 밖에 모르는 거.”
그런…건가.
무서웠다. 그게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내가 의존하고 싶은 상대를 붙잡고 있었고, 지금껏 놓기 싫은 거였다.
“아무 것도 하지 마. 나로 인한 건 뭐든지. 그건 나를 위한 것도 너를 위한 것도 아니야.”
희재가 그렇게 뒤돌아서서 갔다. 끝이다. 분명히 그렇다. 슬펐다. 눈물은 멈춰지지 않고, 숨이 찼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있는 힘껏 펑펑 울었다. 모든 게 내 잘못 같다가도, 꿈같다가도, 잘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됐어.”
유난히 내 주변에만 산소가 모자란 듯
숨이 막히고 미칠듯 답답해요
하늘이 무너져내려 떨궈진 내 눈물이
발밑에 구름 위로 흩어지네요
나를 떠나지마요
그래요 나란 사람 참 힘들죠 고장나버렸단 걸 알아요
그래도 날 포기해 버리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고쳐질 수만 있다면 사실 난 아주 아름다울테니
그러니 부디 놓아 버리지 말아요
유난히 내 주변에만 상실의 그림자가
유독 어둡고 짙게 깔린듯해요
믿음이 무너져 내려 힘겹게 버텨오던
그 마지막 숨 조차 앗아가네요
나를 떠나지마요
그래요 나란 사람 참 힘들죠 고장나버렸단 걸 알아요
그래도 날 포기해 버리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고쳐질 수만 있다면 사실 난 아주 아름다울테니
그러니 부디 놓아버리지 말아요
나를 떠나지마요
나를 떠나지마요
나를 떠나지마요
나를 떠나지마요
나를 떠나지마요
나를 떠나지마요
나를 떠나지마요
나를 떠나지마요
도현이와 - 11.
그래요 나란 사람 참 힘들죠 고장나버렸단 걸 알아요
그래도 날 포기해 버리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고쳐질 수만 있다면 사실 난 아주 아름다울 테니
또 그 여자다. 순간 오른쪽 상단의 시계를 쳐다봤다. 다섯 시 반. 가족 모임 약속에 빠질까 꾀나 노심초사하는 모양이다. 사실 조금 전 까지는 잊고 있었지만.
“여보….”
- 응. 맑음아. 출발 했니? 모두들 너를 기다리고 있어. 늦지 않겠지?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녀의 옆에 누가 있을지 예상이 갔다.
“네.”
대답하나도 쥐어짜내야 한다. 이럴 때 희재는 옆에서 ‘더 당당히’ 라고 속삭였다. 당당히. 더 당당히.
“늦지 않아요. 여섯 시 전에 갈게요.”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당당히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에 희재를 만났을 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한다. 그게 우리의 이별에서 나를 완전히 떼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 * * * *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누군가로부터 얘기는 들을 수도 있다고 짐작했다.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병원을 몇 번 옮겼다. 그런데도 눈앞에 나타나다니. 어쩌면 조맑음은 꾀나 열심히 나를 찾아내려고 했던 걸지도. 제대로 끝을 내겠다고….
준비해두길 잘 했다. 백 번 천 번 생각해두길 잘 했다. 잘… 했다.
“우희재 환자분. 의사선생님께서 찾으시니까 진찰실로 가보시겠어요?”
“네.”
진찰실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의사가 바른 자세를 하며 자신의 책상 앞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늘 함께 계시는 여자 분이 안 계시네요?”
“친구입니다. 보호자가 필요한가요?”
“함께이시면 좋죠. 다른 것이 아니라… 수술 스케쥴이 잡혔습니다.”
첫 수술이다. 확률이 제일 높다는 첫 수술.
“말씀 드렸다 시피… 환자분 케이스의 경우는 팔의 활동성과 감각의 복귀가 확률적으로 가장 높은 수술이 될 것입니다. 다행히 환자분의 경우 조기 발견 되었다는데서 이로운 점이 많아요. 케이스가 희귀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원인을 찾지 못하거나 다른 고통이 없어서 경과를 지켜보는 상황이 많아지다 보니 수술할 타이밍을 놓치게 될 경우가 많거든요. 군 병원에서 같은 케이스를 진찰한 의사선생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셨죠.”
“수술 날짜는….”
“아, 3일 뒤 오전 9시에 시작합니다. 수술시간은 총 6시간 예상하지만 보다 더 걸릴 수 있습니다.”
3일 뒤.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걸까. 어째서 그 반대의 경우만 생각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1차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지는 2차, 3차를 견뎌낼 자신이 없다. 나는 계속 무너진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 *
“우주야…!”
“아빠!!”
성태형이 병원까지 오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식이 병원에 있다는데 이렇게 달려오지 않을 아버지가 몇 이나 될까 싶지만 성태형의 부성애는 지극히 대단하다고 늘 느끼고 있다.
형은 전처럼 우주 앞에서 눈물을 참지 않았다. 우주가 보고 싶었다느니 가기 싫다느니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말들을 쏟아낼 때마다 형의 눈에서도 그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우주도 그렇게 엉엉 울었다. 겨우 우주의 눈물이 잦아들은 건 울다 지쳐 잠든 후였다.
“후회…한 적 있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렇지. 그런 거지?”
“그런데 잊어버려.”
“뭘?”
“이 녀석 이렇게 잠든 거. 밥 먹는 거. 뛰어노는 거. 웃는 거. 그런 거 보면 다 잊어버려. 내가 어떤 놈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래서 얼마나 후회하는 지 같은 건.”
“그건 또 뭐야.”
“행복.”
행복. 행복. 행복이라. 왜 또 이렇게 그 녀석이 보고 싶어지는 거지. 주머니에서 또 박하사탕을 꺼내 문다. 쉽지 않겠다. 잊어버리는 건. 없던 일로 하는 건. 나는 아마도 행복을 맛 봤는지도….
* * * * *
雨花庭. 어머니께서 지으시고 아버지께서 직접 나무에 새긴 문패. 정갈한 맛과 한옥의 멋으로 꾀나 유명인사가 자주 오가는 한식당으로 유명했다. 그러기까지 고생하셨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식당을 닫을 생각도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꾀 활력을 찾으신 듯 즐거이 일을 해나가셨던 것. 그게 결국 그 여자를 만나서였겠지. 어쩌면 정말 나보다는 그 여자가 아버지에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내가 어린애처럼 굴었는지도.
“어서 와. 준비가 거의 되었어. 내가 솜씨를 좀 발휘했는데, 맑음이가 좋아했으면 좋겠네.”
천상이다. 이렇게 보면 돌아가신 엄마보다 다정함이 넘친다.
방으로 들어서자 좌식 의자에 아버지 그리고 내 동생이라는 여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아버지와 대화하는 모습이 어쩌면 완전한 한 가족의 모습이다. 아, 나를 제외하면.
“왔구나. 앉아라.”
“어, 언니. 안녕. 반가워. 내가 현주야.”
첫인상이 좋다. 어딘가에서 본 것만 같은 낯익음부터, 악의라고는 없는 환한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응. 안녕.”
“맑음 언니지? 앞으로 잘 부탁해. 언니.”
“나도 잘 부탁해….”
좀 더 다가가야 해. 좀 더 바로 서야해.
“우선 식사가 식으니 밥 먹고 얘기 나눌까요?”
식사를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몰랐다. 그래도 활달하고 밝은 성격의 현주 덕에 셋이서 밥을 먹을 때 보다 훨씬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언니. 우린 언니 방에 가서 볼까?”
내 방. 별로 달갑지는 않은 장소였다. 퇴원하자마자 달려가 살펴본 방에는 여전히 박하사탕이 있었다. 그건 다행이면서도, 불행이었다. 나는 그 다행과 불행을 그 날부터 끊임없이 씹어 삼켰다.
“응…. 저 쪽이야.”
한옥은 입 구 자를 닮아 한 가운데 정원을 두고 사각으로 되어 있었다. 반 바퀴를 돌아 방으로 들어섰다.
“여긴 예쁘고 신기한 것 같아. 나 있지. 사실 언니 옆방이라서, 언니 방에 들어가 본 적 있어. 미안. 허락도 없이.”
“괜찮아. 쓰지도 않는 곳인걸.”
오랜만에 들어온 방은 그동안 계속 관리가 되어온 것 같았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 박하사탕은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사실은… 나 할 말이 있었어. 언니.”
요즘 들어 놀랄 일이 많았다. 사람들은 왜 내게 이렇게 거침없이 견디기 어려운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 아이는 지금 내게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왜 내가 아는 사람이 자꾸만 떠오르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그 친구가 우희재야. 알지? 우희재.”
그러면서 벽에 걸린 희재의 그림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몸이 저려온다. 희재가 말한 다른 여자. 그 때 병원 앞에서 마주친 여자아이가 지금 내 앞에서 내 방에서 내 집에서. 한 시간 쯤 전에 동생으로 소개 받은 여자아이가.
‘다른 여자가 더 좋아.’
“어…째서.”
“희재는 나랑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나랑은 이미 일곱 살 때부터 봐 온 사인 걸. 내가 유학가고 1년 쯤? 언니를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 후로 연락이 닿으면 언니 얘기를 많이 하더라. 궁금했는데… 어느 부분부터 겹치기 시작하는 거야. 언니랑.”
‘다른 여자가 더 좋아.’
“그런데 언니. 이건 희재도 모르는 사실이야. 희재는 나랑은 그냥 친구 사이야. 절대 오해 같은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비밀로 하려던 게 아니라 그러니까… 얼굴도 보지 않은 사이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도 그랬고, 어쩐지 엄마는 언니랑 연락을 주고받는 걸 조금 꺼려하시고. 그래도 나는 언니가 생겨서 좋아. 진심이야. 언니를 만나면 꼭 이렇게 말해주려고 내내 준비하고 기다렸어.”
‘다른 여자가 더 좋아.’
“나가줄래? 아니, 내가 갈게.”
“언니?”
‘다른 여자가 더 좋아.’
화가 난다. 화가 차오른다. 순간 희재와 내가 끝난 이유가 현주 그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안 되는 것도 그래봤자 라는 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그 아이 탓을 하기에 바빴다. 우화정의 뒷문으로 나오고 나서야 뒤를 돌아봤다. 조금 전 까지는 현주가 쫓아오는 것 같았지만, 익숙하게 움직이는 나를 끝내 놓친 모양이다. 나보다 몇 살은 어린 아이에게 그것도 조금 전 동생을 삼았던 여자 아이에게 질투하고 원망하며 도망치는 꼴이라니.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 이렇게 감정적이고 철이 없었다.
언제쯤 정리가 되는 걸까.
그래요 나란 사람 참 힘들죠 고장나버렸단 걸 알아요
그래도 날 포기해 버리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여…보세요.”
도현이와 - 12.
-조막! 시내 가자!
예은이다. 예은이가 시내를 가자고 하면 무조건 가주기로 약속했던 적이 있다. 예은이가 시내에 가는 이유는 한 가지니까. 그리고 나도 예은이의 전화가 반가웠다. 도무지 복잡한 지금의 나를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싶다.
“지금 어딘데?”
시내. 언제나 그렇듯 시내버스 정류장 앞. 예은이는 퇴근길에 종종 시내를 나가자고 한다. 그러면 한가한 나는 언제나 쪼르르 나와 함께 했다.
“오늘도 스트레스가 와방이었어?”
“말도 마. 먹고 해소해야지.”
예은이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
“안녕하세요.”
“와뿐나? 오널도 스트레쓰가 와방이가? 금도 스글마니한 김과장?”
“네. 오늘은 정말 사직서 꺼냈었다니까요.”
“흐이. 그라믄 쓰나. 스페샤알?”
“네. 스페샬 토스트 2개요.”
지역 불명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토스트 가게 아저씨. 예은이는 이곳에서 스페샬 토스트를 사서 바로 옆 공원에 앉아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는 했다. 토스트에 정말 스트레스 해소 명약이 들어있어서도 아니었고, 맛있는 걸 먹고 풀리는 단순함 때문도 아니었다.
“예은아 나 물어볼 게 있어.”
“응. 뭐?”
“저 아저씨가 왜 좋아?”
“왜 그러는데?”
“응?”
“네가 이런 질문을 하니까 신기해서.”
예은이는 토스트가게 아저씨를 좋아하고 있었다. 벌써 6년 째 그랬다. 아저씨의 이름도, 나이도, 연락처도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이. 나 또한 그냥 늘 옆에 있어줄 뿐이었다.
“말도 없이 벌써 6년이잖아. 이대로도 괜찮아?”
“응. 나는 이대로도 괜찮아. 이렇게 가끔 저 아저씨가 만들어준 토스트 먹으면서 여기 앉아서 잠시 지켜보는 걸로 충분해.”
왜. 왜 일까. 진심인 건 맞을까. 나는 이렇게 엉망인데. 내 마음을 두드려 맞으며 쫓고 숨고 또 애를 쓰고 있는데.
“저 아저씨와 나이기 때문일 거야. 아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지는 않을지도 몰라. 그런데 나는 지금이 좋아. 내일되면 바뀔지도 모르지만. 사람 마음은 알 수 없잖아. 사실 이러는 나도 내가 잘 모르겠어.”
“그래….”
“자, 이제 의도를 얘기해봐. 할 말 있지?”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한참 멀었다. 당당한 조맑음은.
“나… 희재랑 끝이 났어.”
“…이제서?”
“희재를 만났어.”
“오늘?”
“응…. 희재가 좋아하는 여자까지….”
“어떻게… 너 괜찮아…?”
“사실 지금은 잘 모르겠어…. 뭐…”
“얌마야, 니 미친나?!”
멀리서 들려오는 토스트 아저씨의 말소리. 그 아저씨의 앞에 있는 사람. 이렇게 또 마주치는 구나. 성도현. 병원복 위에 가벼운 자켓을 걸치고 배실배실 웃으며 서 있다.
“저 사람… 맞지? 그 때 그…. 뭐야. 멀쩡한 가봐. 다친 것 같긴 하지만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치?”
그는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저 사람이 준 박하사탕은… 나를 병원 밖으로 나오게 했고, 엄마를 마음껏 그리워하게 해줬고, 또….
“예은아, 나 저 사람을 만나야겠어.”
“지금?”
“응….”
“나는 그럼 안 보이는 데에 떨어져 있을까?”
“아니야. 기다리지 말고 집으로 가.”
“그래도… 무서운 사람 같은데….”
“아니. 그런 사람… 아닐 거야.”
예은이가 가고 나는 한참을 멀리서 그를 지켜봤다. 기어코 화를 내는 토스트 아저씨에게 토스트를 받아서 먹으며 연신 생글거리며 웃는다. 익숙해 보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즐거운 척 하는 것이.
토스트를 다 먹고 등 떠밀려 발을 옮긴다. 병원으로 가는 걸까. 한 쪽 다리가 꾀 불편해 보인다.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말을 걸려 머뭇거리는 사이에 익숙한 곳까지 쫓아왔다.
“이모, 나 왔어.”
환자가 포장마차라니. 그 사람답다. 성도현 set가 있었던 그 포장마차. 이모가 정말 이모가 아니었던 포장마차. 집으로 가던 길에 성도현set의 역사와 이모가 혈연관계가 아니라고 어쭙잖게 설명해주던 것이 기억난다. 나도 모르게 쿡하고 살짝 웃었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결국 내 멋대로 그를 휘둘렀다. 그가 내게 따지고 들자면 백 번 나의 잘못이었다. 나는 왜. 나는 왜 그랬을까.
“아, 진짜 치사하다. 이모.”
포장마차에 들어서자 그는 혼자 않아서 이모와 앞에 놓인 우동을 번갈아보며 술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따지는 것 같았다.
“뼈 붙는 데는 소주가 최고야. 나는 그렇다니까?”
“그거 먹고 병원 가. 소주 소리만 한 번 더 해봐!”
“깡형이 시켰지?”
“이 놈이!”
그의 머리를 쥐어박고 돌아서는 이모님과 이모님에 가려 마주치지 않았던 그의 얼굴을 딱 마주쳤다.
“애인이랑 같이 왔었어? 아가씨, 환자를 데리고 여길 오면 어떻게 해. 좀 말리지.”
“걔 내 꺼 아냐.”
나는 꾸벅 이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그의 앞에 앉았다.
“이 놈이 속도 꼬였나. 아가씨, 뭐 줄까?”
“저… 성도현set 요….”
“그래, 그럼. 이 놈은 술 먹이면 안 돼.”
소주와 오이가 먼저 나오고 10분여를 마주 앉아서 아무 말 없이 그저 시간이 지났다. 분주한 부엌 소리와 주변 사람들의 소음으로 그와 나는 그 곳 안에 그냥 묻혀 있었다. 나는 소주병을 따서 잔에 따랐다. 콜콜. 소주가 차 있는 잔을 한참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자, 조금 놀란 듯 한 그는 서둘러 우동을 먹기 시작했다.
* * * * *
왜지. 왜 여기서 또 조맑음을 마주하는 거지. 어떤 망할 인간이 나를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인 건가. 아니면 이 꼬맹이가 나를 만나려고? 어째서….
앞에 앉아 있는 꼬맹이를 무시한 채 내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머리를 있는 대로 숙여 우동을 삼켜 내는 것뿐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자동으로 젓가락질이 멈춘다. 입 안에 있던 우동을 꿀꺽 삼켜 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자 테이블 가운데에 박하사탕을 한 개 올려둔다.
“기억이 안 나시는 거죠?”
“또 뭐를….”
왜 저 박하사탕을 자꾸 내미는 걸까. 그런데 지금 눈빛은 뭔가 알고 있는 듯이….
“저는 분명해졌어요. 사실 잊고 싶은 부분이어서 잊어버렸었고, 워낙 사람을 잘 기억하지도 못 하지만…. 그걸 떠나서 너무 달라서…”
“잠… 깐.”
무섭다. 지금 내 앞에 앉은 이 꼬맹이가 내 기억을 들쑤신다.
“다른 얘기 하려는 건 아니에요. 단지…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나를 배려하며 말한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전 멈춰두는 건 잘 하는데, 빨리 보내는 건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런데 지금과는 반대로 하는 게 맞다 하면… 저는 지금부터는 박하사탕을 먹지 않으려고 요. 괜히 숨 쉬는 것까지 의지하는 것 같아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하는 말. 나를 배려하듯 또 읊조리듯 하는 말. 계속 듣고 싶다.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또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기분 좋았던 일을 두서없이 꺼내 놓는다거나, 하나씩 조금씩 듣고 싶다.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다시 만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저는 이만…”
조맑음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시끄러운 틈바구니를 빠져 나갔다. 보이지 않는다. 또 볼 수 있을까. 어떻게….
또 몸이 먼저 움직인다. 움직여지는 한 가장 빠르게 따라 나가 조맑음의 손을 잡아챘다.
“잊어버렸어.”
“네…?”
“기억을 잊어버렸다고.”
“아…”
“그러니까 말해줘. 너는 누구야?”
도현이와 - 13.
- 1년 후 -
“오랜만이네.”
“응. 1년 만이야. 잘 지냈어?”
“잘 지냈어.”
“팔은 좀 어때?”
“이제는 다쳤던 팔인지도 모르겠어. 얼마 전부터 그림도 다시 시작했고.”
“그림을 시작한 줄은 몰랐네. 잘 됐다.”
공항. 1년 만에 귀국하는 태양이를 기다리고 있다. 아프리카는 연락이 닿지 않았던 곳이어서, 내내 궁금하고 걱정했더니, 1년 만에 연락해서는 마중을 나오라는 그 뻔뻔함에 어이가 없었다.
“전화 받고 놀라기도 했지만, 태양이답다고 생각했어.”
“응. 나도. 그러니까 우리 둘을 불러다 놨겠지.”
뜻하지 않게도 1년 만에 태양이보다 먼저 만나게 된 건 우희재였다. 종종 현주에게 소식은 전해 들었었다. 수술 경과나 학교 복학 같은 큰 일 몇 가지를. 희재도 마찬가지겠지.
“회사는 어떻게 하고?”
“아프다고 거짓말. 아직 연차도 없는 신입이라서-.”
희재는 1차 수술에서 신경을 살려냈고, 움직이는 기능은 반만 되살아났었다. 그리고 2차 수술에서 거의 모든 기능을 되찾았다고 들었다. 그 후로 재활을 받고, 몇 달 전 학교생활로 돌아갔다. 내가 겨우겨우 졸업한 뒤였다. 졸업과 동시에 운좋게 화장품 회사 V.M.D Part 해외부로 취직해서 나이 많고 능력 없는 꼴통소리를 듣고 있다.
“좋아 보이네.”
“응. 너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바랐던 건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날카롭게 나를 찌르던 추억, 그 추억의 모든 부분인 우희재를 이렇게 편하게 만나게 되길, 내가 더 당당해지고 그 만큼 여유 있어 보일 그 시간.
“현주는…”
“현주는…”
아. 이런 식이면 조금 곤란한데.
“얘기해.”
“응. 곧 들어온다지? 졸업이 가까워져서 방학은 했지만, 바로 들어오기 힘든 가봐.”
“어. 다음 주 쯤엔. 그런데 들어와도 일주일 정도면 돌아간다던데?”
“그러게. 부모님이 꾀 기다리셨는데.”
“여어, 잘들 있었어?!”
입국 게이트로 웬 원시인이 손을 흔들며 걸어온다. 아프리카에 다녀왔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새까맣게 탔다.
“이태양-!”
“여어~ 오랜만이야!”
그리고 태양이의 짐은 옷 몇 벌을 제외하고는 온통 아프리카를 담아온 그림들뿐이었다. 한 장 한 장이 멋지고, 감탄스러워서 곧장 전시회로 가자고 난리를 쳤다.
“놀랐냐? 넌 나 따라오려면 멀었지, 우희재?”
6월의 초여름. 태양이가 왔다.
- 태양의 나라 -
그리고 정말 태양이의 전시회가 열렸다. 태양의 나라. 전시회가 OPEN 되는 전일.
희재와 어제 귀국한 현주. 결혼 날짜를 잡은 선지와 더 이상 새우깡이 아닌 진우오빠. 여전한 토스트 가게 아저씨와 그 아저씨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그 외의 많은 것들을 알게 된 예은이. 아빠와 함께 살게 된 우주. 그리고 아직 기억을 찾지 못한 우주카센터의 정비사 성도현과 내가 모두 함께 한 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날이니, 모두 다 웃고, 떠들고, 취해주세요-.”
전시장 옆 빈 공간에 박스를 몇 장 깔아놓고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배달해 온 피자와 파스타, 샐러드 그리고 태양이가 준비한 와인들과 맥주들을 분주히 먹고 마셨다. 이렇게 모두가 모인 건 처음이었다. 희재의 말 맞다나 웃고, 떠들고, 취해갔다. 그 사이에서도 계속 그림 쪽으로 눈을 돌리던 도현이는 시끄러운 틈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림으로 향했다. 나는 조용히 도현이를 따라갔다.
“그림은 처음 봐.”
“그래? 진작 전시회를 좀 가볼 걸 그랬나?”
“자동차 바닥만 보는 놈이 무슨 그림 전시회야. 성태형이 웃을 걸.”
“그런 게 어디 있어? 개인 취향인걸.”
“네모 칸을 여러 개로 나눠서 빨강색, 파랑색 칠해놓은 알지 못할 그림보다는 훨씬 좋아. 꼭 동화책 같아.”
“아프리카 동화?”
“그러네.”
1년 전 도현이가 내 팔을 붙잡고 내가 누군지 말해달라고 했을 때 나는 대답했다.
기억해 내요.
그런데 지금은, 한 장 한 장의 그림을 보며 신기한 눈을 하는 도현이가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게 되고, 그래서 그 때의 말을 도로 주워 담고 싶어진다.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스무 살에 만났던 도현이는 삶을 포기하려고 발버둥 치던 중에 나를 만났고,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원준 아저씨는 잃어버린 것이 너무 슬프고 끔찍하다고 해서, 두려웠다. 그래서 더는 묻지 않았다. 가끔 도현이가 악몽을 꾸고 나서 새벽 같이 나를 만나러 오면 안아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나약한 주제에,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한 것이다. 기억해 내라니.
도현이는 지금도 기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을까.
“요즘도 꿈 자주 꿔?”
“아니. 어쩐지 최근 들어서는 전혀.”
“다행이네.”
“그런데…”
그런데. 앞과 뒤가 다를 때 쓰는 말 아니던가.
“응?”
“이 그림… 왜 계속 신경 쓰이지? 처음 전시장 왔을 때부터… 계속.”
[ 남 매 ]
그림의 제목은 남매였다. 아프리카 원주민인 듯 보이는 작은 키의 남자아이와 그보다는 큰 여자아이가 손을 잡고 앞이 휑한 먼 길을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나는 그림처럼 도현이의 오른쪽에 서서 도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림과는 반대로 나보다 키가 큰 도현이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하…”
쿵. 다음 순간 도현이는 내가 손을 붙잡아 당겼음에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떠오른 걸까. 그 슬프다는, 그 끔찍하다는 기억이…? 이렇게 갑자기, 어째서… 왜….
“도현아!”
내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몰려들었고, 그 가운데 원준아저씨는 벗고 있던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왔다.
“도현아, 임마야~ 와 이라노? 으잉?”
멍하게 내가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떠는 도현이는 옆에 달려와 앉은 원준아저씨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희… 누나는…?”
이내 식은땀에 젖어가는 도현이는 잡은 손만은 놓지 않았다. 원준아저씨가 ‘아이다, 아이다.’ 라고 고개를 계속 가로저으며 도현이를 달랬지만 도현이는 멍한 표정으로 계속 한 가지만 물었다.
진희 누나는 어디 있어?
그리고 결국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잠이 들 듯 쓰러졌다.
도현이와 - 14.
“누구에요?”
응급실로 실려 온 도현이는 곧 안정을 찾고 입원실로 옮겨졌다. 깨어나지는 않았지만, 악몽을 꾸는 것 같이 보이진 앉았다. 그제서 궁금해졌다. 내내 말없이 도현이를 애처롭게 쳐다보는 어쩌면 도현이보다 더 충격이 심한 것 같은 원준아저씨는 분명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궁금하제? 이 자슥이 죄 기억왔나 안즉 모르니까는 나가제.”
나는 도현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고 원준아저씨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원준아저씨는 얘기를 시작하기 전 따듯한 캔 커피를 뽑아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저씨의 얘기는 커피가 차갑게 식을 때 까지 이어졌다.
“내가 사실 저 놈 삼촌이야. 외삼촌”
첫 마디부터 충격적이었다. 외삼촌이라는 단어도 그렇지만, 아저씨는 표준어를 그것도 흉내도 아닌 정말 표준어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잠시도 들어본 적 없는 미성.
“놀랐어? 놀랐겠지. 사투리는 안 써도 그만이긴 한데, 혹시 저 놈이 알아챌까봐. 그냥 말하면 내 말투나 목소리가 사실 누나를 많이 닮아서.”
“왜… 그렇게 까지.”
“숨어버릴까도 했는데, 누나가 한 부탁도 있고… 사실 나도 책임감을 느끼기도 해. 저 놈 세상에 태어나서 버려진 게 나 때문이라면 나 때문이니까.”
살면서 여태까지 겪은 일 중에 가장 놀랄 일이었다. 이 부분까지만 들어도 충격적이고 어쩐지 두려웠다. 그 후로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이제는 내가 알아야할 때가 된 것 같으니까 라고 했지만, 그러면서도 내내 말해도 되는지 머뭇거리셨다.
* * * * *
도현 0 살.
“진수야, 일어나.”
밖은 깜깜한 새벽이었다. 새벽 5시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발치 앞 정도였다. 진희누나는 두터운 겨울 내복을 입고 두터운 겨울 이불 밑에서도 춥다며 새우처럼 움츠리고 잠들었던 나를 깨웠다. 누나는 열아홉. 그리고 자꾸만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나는 아홉 살이었다.
“누나, 어디 가게?”
겨우 겨우 잠에서 깨어난 내가 물었다. 진희누나는 이미 밖으로 나갈 옷을 차려 입고 짐을 싸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의 누나를 눈을 비비며 쳐다보다 이내 알아차리고 얼른 이불에서 나와 옷을 챙겨 입는다. 며칠 전 누나에게 일러 들은 게 있었다.
- 너는 잘 모르는 어르신들이야. 누나도 몇 년 전 아버지 장례 때 한 번 뵈었어. 어려우면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연락했더니 오라셨어. 너무 죄송하지만, 지금은 기댈 곳이 필요해. 알지?
누나는 밤마다 나갔다. 그래서 내가 학교를 가야할 시간에나 돌아왔다. 배가 고파서 배를 움켜쥐고 기다리다 보면 이내 누나가 와서 밥을 챙겨줬다. 가끔은 얼굴에 귀신 가면을 쓴 듯 짙은 화장을 하고 오기도 하고, 그 화장이 반쯤 쓸리고 지워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늘 술 냄새가 났다.
그런데 얼마 전 부터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일을 도우며 밤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업소 사람들이 누나를 끌고 가려고 실랑이하고, 집안 물건들이 나르고 구르는 몇 차례 큰 다툼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어린 나는 울며불며 누나에게 도망치자고 말했었다.
깜깜한 새벽을 가르고 나는 누나의 손을 꼭 붙잡고 살던 동네를 조용히 벗어났다. 그리고 하루에 버스가 3대. 그것도 동네 어귀에서도 한 참 아랫길에 정류장이 있는 그런 시골로 향했다. 진희누나는 내내 한 손으로 배를 꽉 쥐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누나는 아이를 가졌었다.
“어서, 오너라. 춥지? 건넛방에 불을 데워 놨어.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슬하에 아이가 없던 부부였기에 우리 남매가 더 측은했는지도 모른다.
“그 때, 바로 연락을 주지 그랬니. 우리야 이런 시골이라서 학교 다니고 하려면 그런 도시가 나을지도 몰라 강요하지 못한 것뿐인데. 그렇게 힘들게….”
아주머니는 밭일을 하며 거칠어진 손으로 상처가 터진 진희의 손을 붙잡고 쓸며 기어이 눈물을 보이셨다. 아저씨는 이제 모두 한 가족이며, 부모라 생각하고 잘 지내보자고 하셨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육촌 동생이셨다. 어쩐지 아버지의 얼굴이 조금 보이기도 하여, 나는 금세 아버지라고 불렀다.
“낳았어? 그래, 아들이래, 딸이래?”
- 아들. 아들이래요!
그곳에 간지 여덟 달 뒤에 누나는 아이를 낳았다.
“이름은 혹시 지었니?”
“네.”
“뭐라고 지었어?”
“도현. 도현이라고 부를 거예요.”
도현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호적에 올라갔다. 아직 어린 누나를 생각해서도, 자식이 없는 두 분에게도 좋은 결정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도현아. 아가야.”
도현 9살.
시간이 금세 흘러서 도현이도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때었다. 누나와 나는 누나 방에서 곱게 잠든 도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집에서 약 1시간 거리의 도시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고3을 보낼 때였다. 수능도 끝난 시점이라서 오랜 만에 시골에 온 나는 종일 도현이와 뛰어놀며 오랜 만에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여전히 누나 방에서 자는 구나?”
“응.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나만 이렇게 따르는 걸.”
“도현이가 벌써 아홉 살이네.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내 나이야. 시간이 진짜 빠르지. 누나?”
“응? 응. 그러게.”
나는 그 때의 진희누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조금 먹먹해졌다.
“…미안해. 누나.”
“……응…?”
“나… 열아홉이잖아. 누나가 이런 어린 나이에 지금 도현이 만한 나를 돌보고, 돈을 벌고, 또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하니까 누나가 참….”
갑자기 눈물까지 차올랐다.
“근데도 여태껏 계속… 고생만 하잖아. 누나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좋은 사람도 만나고….”
“…저… 진수야.”
“응?”
“…아니…아니야.”
그 날. 나는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 말에 진희누나가 어떤 결심을 굳혔는지, 그에 따라 나중에 모두가 어떤 날들을 견뎌야 하는지… 알았더라면.
“진희 누나, 진희 누나 어디 갔어?”
진희누나는 이웃 동네에 살던 두 살 많은 남자와 서울로 떠났다. 겨울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리고 한 동안 살았다거나 죽었다는 소식도 없었다. 수개월이 지나서야 편지가 한 통 왔고, 그 안에는 적지 않은 돈이 신문지에 쌓여져 들어 있었다. 그렇게 이따금씩 누나는 짧은 편지와 함께 돈을 부쳐 왔다. 아저씨는 아주머니와 함께 편지가 전해지는 누나의 집에도 다녀오고, 나 또한 대학에 진학해서 종종 누나를 만났지만, 도현이는 누나의 부탁으로 목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3년을 지냈다.
도현 12살.
“형! 진수형!”
오랜만에 내려간 시골에서 열두 살이 된 도현이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그리고 버릇처럼 또 물었다.
“진희 누나는? 진희 누나는 어디 있어?”
나는 매번 집을 다녀 갈 때마다 도현에게 진희누나를 찾으러 간다고 했다. 어린 아이를 달래는 못된 거짓말은 때때로 나와 도현의 부모님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조금도 나아지질 않더라. 여전히 진희만 찾는 게…. 안쓰러운 것도 하루 이틀이지….”
진희누나는 결혼을 했다고 했다. 결혼식은 없었지만, 함께 서울로 떠난 남자와 살면서 제 작년 혼인 신고를 했다고. 그렇기에 누나는 도현이의 떼를 더는 받아줄 수 없었다.
“우리가 더 잘, 아끼면 되죠. 도현이한테는 부모님이 있으시잖아요. 네?”
물론 도현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도현이를 끔찍하게 아꼈고, 또한 잃고 싶지 않아 하셨다. 어렵게 얻은 자식이며, 나날이 예쁘게 자라는 도현이가 늘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며칠 전에 또 돈을 보내 왔더구나. 다음에 만나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꼭 일러둬. 우리도 최선을 다해 도현이를 키울 테니까. 도현이는 내 아들이야.”
조용조용히 나눈 대화였다. 열두 살 난 도현이가 밖에서 듣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또한 몰래 부모님 방을 뒤져 진희의 편지를 찾아내고는 편지와 함께 사라질 줄도 몰랐다. 그동안에 용돈을 한 푼 한 푼 모아둔 것이 이럴 때를 위함이라는 건 오직 도현이만 알고 있었다.
도현이는 봉투와 서울에 갈 편도 버스비만을 가지고 정류장으로 향했다.
“도현이, 도현이가 없어졌어!”
도현이와 - 15.
도현 19살.
“나 진수형이야. 나 기억해, 도현아?”
도현이는 그대로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한참동안 멍하게 있었다. 도현이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한참 교복을 입고 공부를 할 나이였다. 그런데 노랗게 탈색된 머리카락하며, 근처 나이트 종업원들이 입는 옷을 입고서 껄렁껄렁 나타나서는 진수가 파는 토스트를 사 먹으러 왔다.
나는 대학을 휴학하고 서울 모든 곳을 찾아다녔다. 그래도 안 돼서 지방 곳곳도 뒤졌다. 비슷한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보호소나 입양기관도 찾아 뒤졌다. 그렇게 떠돈 게 7년. 여기저기서 용역 일을 하다가 최근 트럭을 한 대 사서 토스트를 팔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도현이를 만났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찾아다닌 우연이었다.
“열두 살 때 집을 나가서 어떻게 됐는데?”
“진희 누나… 찾아갔지.”
“그 집에는 너 안 왔다고…”
“갔었어. 갔었는데….”
도현이는 집을 나선 그날 밤 진희 누나가 사는 집을 찾아갔었다. 그리고 누나를 반갑게 부르기도 전 충격적인 얘기들을 듣게 되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 새끼가 니 새끼지?”
“아니야.”
“아닌데, 그 새끼가 왜 널 찾으러 집을 나가? 그리고 너는 그 새끼 없어졌다고 매일 술을 쳐 마셔?”
“그런 거 아니야!”
“애 아빠는 누구냐? 성. 도. 현. 그 성은 농장 집 아저씨 성일 거고. 어느 놈이랑 놀아났어? 가만 계산 해봐도 너 스무 살도 안 쳐 먹고 낳았겠다? 미친 년. 더러운 년.”
“오빠!”
“누가 니 오빠야, 이 년아! 여기서 평생 니 새끼나 기다려. 난 더러워서 너랑 못 산다. 인생 더럽게 꼬였네. 망할 도시에 올라오는 게 아니었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가끔 누나가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어리광 부리던 아이였다. 막상 그 상황이, 무서워졌고, 할 수 있는 건 꼭꼭 숨는 것 뿐이었다고 했다. 길거리를 헤매다 경찰서로 가게 되었을 때 도현이는 부모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근처의 고아원에 맡겨져 길러졌고, 그 후로 모든 것을 잊은 듯이 살았다.
“너 걱정할 우리 생각은 안 했어? 시골에 계신 부모님도, 진희누나도, 나도 계속 너 하나만 찾아다녔어. 지금까지 몇 년을!”
“나… 진희 누…"
"…?"
"… 아들… 맞지?”
할 말이 없었다. 도현이는 그 날 이후 또 종적을 감췄다. 일하던 나이트도 그만두고, 그 근처에서 도현이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뜻하지 않게 연락이 온 곳은 서울의 한 병원이었다.
“정진희씨 보호자 되시죠? 그리고 혹시 성도현씨와는….”
“네. 네. 가족입니다. 제 조카예요….”
“응급실에 두 환자가 함께 실려 왔지만, 정진희씨는 이미 숨진 후였습니다. 그리고 성도현 환자는… 깨어나자마자 굉장히 폭력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워낙 폭력성이 깊은 사람인가요?”
“아… 아니… 그렇지는….”
“그렇다면, 쇼크 상태에 따른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을 수도 있지만, 일단 응급실에서도 링거를 깨서 손목을 그어내는 등의 행동으로 계속 자살을 시도 했습니다. 경찰 측 소견을 참조해도 교통사고 자체 또한 자살 기도로 보여 지고 요. 보호자를 찾지 못한 상황해서 그런 환자를 죄송하지만 격리 시킬 공간이 필요했고, 병원 내의 정신과에 입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안정을 찾지 못한 상황이며, 환자 상태에 따라서 최소 한 달부터 최대 몇 년간 입원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 됩니다.”
사고 전 날 밤 도현이는 진희누나를 찾아갔었다.
“밤늦게 얼마나 큰 소리가 나던지. 다 부수고 사람도 막 때리는 것 같더라고. 신고한 경찰이 왔을 때는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거야. 그래서 집 주변을 찾아보더니… 아휴, 끔찍해서 말도 못 하겠네.”
집 아래 큰 도로가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 조사했던 경찰의 말에 따르면 덩치가 있는 남자가 도현이를 도로가에서 폭행하는데, 그를 말리던 누나가 떠밀려 차에 치었다는 게 첫 사고자의 증언이었다고 한다. 덩치 큰 남자는 도망쳤고, 사고 운전자가 엠뷸런스를 부르고 사고를 수습하는 사이 도현이 스스로가 차로에 급작스럽게 뛰어들었다고 했다. 덩치 큰 남자를 보았다는 사고자는 그 자의 큰 외형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 못 했다.
“모르지. 남편이었는지, 술집 손님인지. 제대로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
진희누나의 남편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곧 풀려나버렸다. 증인인 도현이가 필요했는데, 도현이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그 사고와 그 날 있었던 일에 관해서는 일체의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피폐한 도현이에게 얻는 답 또한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도현이는 병원에서 스무 살이 되었다.
도현 20살.
“형. 나 퇴원할래. 의사가 보호자와 면담해야 된데. 들었지? 언제 와?”
이상할 정도로 밝았다. 도현이는 병원에서 상담할 때마다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으니 죽고 싶었다고 늘 대답했다고 했다. 그래서 의사는 도현이에게 살고 싶은 이유가 생기면 퇴원할 수 있겠다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이유를 찾은 걸까. 나는 내심 기대했다.
“그럼 퇴원 수속을 하죠.”
의사와 나는 도현이의 달라진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어떤 희망 같은 것이 도현이에게 생긴 것 같았다. 누구보다 무엇보다 기뻤다.
* * * * *
긴 이야기는 거기서 잠시 멈췄다. 원준이 아닌 진수 아저씨는 다시 그 전처를 밟아 올라오는 고통에 결국 눈물을 쏟았다. 나 또한 그랬다. 듣고 있기만 해도 괴로운 얘기뿐이었다. 스무 살이 되기까지 도현이는 너무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다. 이제야 내가 정말 불쌍한 척하며 살았다는 것에 공감했다. 나는 퍽 아니 꾀 많이 행복하게 살아왔다.
“저, 만났어요. 병원에서.”
진수 아저씨에게 도현이의 일을 묻지 않았듯 도현이와 내가 만났었단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솔직히 숨기고 싶었던 얘기기도 했다. 그런데 차근차근 눈물을 삼키며 오래 전 힘든 얘기를, 그것도 혼자서 감당하고 참았던 얘기를 꺼내놓는 진수 아저씨에게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었다.
“도현이가 퇴원하기 전, 한 한 달쯤 전에요. 저도 그 병원에 입원했었어요. 아저씨.”
“왜 말을… 아니, 하긴 그게 당연하겠다. 보통 병원도 아니니. 그런데 어쩌다가….”
“도현이 얘기 듣고 하려니 사실, 말하기도 부끄러워요. 누구 말 맞다나 저는 좀 불쌍한 척, 불행한 척을 했었는지도…. 그 때는 여러 가지로 좀 힘들었어요.”
“그래…. 괜찮다. 다들 그렇게 방황하고 또 무너지는 때가 있는 거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때 만났던 도현이한테는 사실 큰 관심도 그리고 친해질 시간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저를 많이 감싸줬어요. 이런 저런 얘기부터 박하사탕….”
궁금해졌다. 도현이의 박하사탕은 언제부터였는지, 그것도 잊고 있는지. 나중에 만나면 운명. 그러면 그 때 얘기를 해준다고 했었는데.
“저는 한 달 안 채우고 퇴원을 했어요. 병이 아니었으니까…. 그걸 알아챈 건지 도현이도 보자마자 제가 곧 퇴원할 사람이라고 얘기해줬었는데…. 저 퇴원하던 날, 도현이가 자기도 일주일 후에 퇴원한다고 했어요.”
그 뒤의 일은 아저씨가 설명했다. 다리 위에 올려둔 주먹을 꽉 쥐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도현이 놈. 퇴원하고 진희누나 산소를 혼자 다녀왔어. 근데 오기로 한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더니만… 또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 병원 나온 지 꼬박 이틀만이다. 내가 저 놈 쫓아다니면서 오장육부가 다 녹아내렸어. 세상은 마치 태어난 게 잘못인 것 마냥 계속 저 놈을 괴롭히는 것 같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신부터 죽어서도 저 놈 보살펴주지 못하는 불쌍한 누나까지 원망했다. 그리고 가장 죄스러운 게 나였어.”
“아저씨, 아저씨 잘못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본인을 괴롭히지 마세요.”
부들부들 떨리는 그 주먹을 꼭 잡아주었다. 내 눈물도 삼켜내지 못했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은 아저씨에게, 그리고 도현이에게 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저 놈 보면서 다시 태어나라고 했다. 차라리 죽고 다시 태어나라고. 근데 그 망할 신이 정말 내 말을 들었는지, 저 놈 다시 태어났어. 아무 것도, 처음엔 자기 이름도 기억 못하는 거야. 날 못 알아봤을 때는 서운하기도 했지만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 1년? 저 놈 말대로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도 같았어. 그래도 그 입에서 진희누나 이름은 안 나오더라고. 내가 거짓말을 많이 해놔서 그럴까. 지금 생각하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저 놈 호적 올린 어르신들은 아직도 시골에서 속앓이를 하고 계시는데…. 살아있다고 해놓고 한 번 데려가지도 않았어. 혹시… 설마… 그 험한 기억이 되살아날까 싶어서. 내 욕심 같아서는 평생, 안 되면 조금만 더, 조금이라도 더, 잊고 살고 잊은 듯 살았으면 했어.”
도현이의 이야기는 그 부분에서 끝이 났다. 진수아저씨는 마른 눈물 자국을 비벼 닦은 뒤 바로 도현이의 병실로 돌아갔다.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작은 공간에 앉아 정말 넋 놓고 울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서럽게 울어본 건 처음이었다. 병원에 입원해야했던 그 날보다 훨씬 더 서럽고 괴로웠다.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힘든 기억들이 되살아난 건. 결국 나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현이는 이틀을 자고 사흘 만에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손을 붙잡고 괜찮은지를 묻고 또 물었다.
“괜…찮아. 맑음이야.”
긴 꿈을 꾼 것 같다고 했다. 같다고 했고, 꿈 얘기는 하지 않았다. 진희누나를 찾지도 않았고, 진수아저씨를 원준형으로 부르는 것도 여전했다. 진수아저씨는 나와 잠깐 눈을 맞춘 뒤 으레 사투리를 섞어가며 원준아저씨로 돌아갔다. 모든 건 달라지지 않았다고 믿었다.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더 묻지도 말해주지도 않고, 또 그렇게 가만히 덮어두었다.
“님마가 이리 쳐 맞고, 저리 쳐 맞드니마는 제 마 때굴 쏙이 빼앵빼앵 도는 갑다. 단디 하그라.”
“응. 조심할게.”
진수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래도 도현이에게 가족을 돌려주는 게 낫지 않겠냐고. 삼촌도 있고, 아직도 애타게 기다리시는 양부모님도 있고.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되더라도 그가 외롭지 않을.
진수 아저씨는 대답했다. 우린 도현이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지 못 했다고. 그래서 도현이가 내내 병원에 있었던 거라고. 그렇다면 그를 다시 살게 한 이유는 뭐였을까. 설마 두 번째 사고가 나던 때에 또 사라진 걸까.
“Jambo!”
늦은 오후, 깨어났다는 소식에 태양이와 희재가 병문안을 왔다. 식사를 하지 못한 나를 데리고 태양이가 나간 사이 희재는 도현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며, 병원을 지켰다. 식사를 하고 돌아와 간단히 과일을 함께 먹고 두 사람이 돌아간 후 도현이에게 물었다. 희재가 무엇을 물었냐고. 도현이는 오랜만에 그 하얀 미소를 띠었다.
“형, 살아있는 게 정말 다행이에요? 이렇게 물어보려고 했데. 다시 만나면. 그런데 묻지 않아도 되겠데.”
“왜?”
“자신도 그리고 나도 살아있는 게 다행이라고.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랬어?”
“살아있는 건 정말 다행이야. 나는 살아야할 이유가 있거든.”
“이유…?”
있었구나. 살아야 할 이유가. 기억을 잃었어도… 아니… 기억이 돌아온 거야…?
“다녀올 곳이 있어.”
보내지 말 걸 그랬다. 아니 함께 갈 걸 그랬다. 적어도 어디를, 왜 가는지는 물어볼 걸 그랬다. 그랬어야 했다.
“응…. 잘…다녀와….”
그 대답이 또 많은 시간을 건너게 할 줄 알았다면.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안쓰러웠으며, 또 보고 싶고, 그래서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말해줄 걸 그랬다.
살아가면서 늘 반복하는 선택과 후회는, 그 때처럼 가혹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박하사탕.”
“응?”
“중학교 때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아주머니를 만났어. 짐이 무거워 보이셔서 버스에 타실 때 들어드렸거든.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나한테 박하사탕을 몇 개 쥐어주더라. 그 아주머니한테는 고등학교 다니는 딸이 있는데, 이름이 맑음이랬어. 맑음이라고 했어.”
“뭐…?”
“맑음이가 사탕을 참 좋아한데. 그 때 처음 먹었어. 박하사탕.”
“설마…”
“그 분, 자신에게는 시간이 많이 부족해서… 가족을 더는 보살펴줄 수가 없어서… 너무 괴롭고… 슬프지만… 맑음이가 잘 이겨내 주길 바란다고. 지금처럼 씩씩하게…. 그래서 사탕을 많이… 샀데. 그렇게라도 위로가 되 주고 싶다고…. 맑음이라는 이름처럼 맑게만 살 수 있도록….”
이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꾼 꿈이야. 아주 오래 된 사실이기도 하고…. 잠이 깨었을 때 꼭 말해주려고 했어.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울고 있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키스를 했다. 가만히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데고 꾸욱. 오랫동안 그렇게 시간을 멈춰놓고 있었다.
“나는 이제 남은 모든 내 시간을 조맑음이 맑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할 거야. 박하사탕보다 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났다. 우린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에 기쁘고, 슬펐다. 많은 기억들은 되돌아오기도, 또 잊혀지기도 했다.
“함께 하고 싶었어.”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