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루돌프 _ DAS MUSICAL
한실 이소희 (헌경)
햇살이 맑은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나에게 신랑이 생일 선물로 뭘 해줄까 묻는다. 옷을 사 줄까, 구두, 핸드백, 신랑이 나열하는 일상품목이 내 귀에 들어오지 않고, 갑자기 뮤지컬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마침 가까운 문화회관에서 임태경이 출연하는 “황태자 루돌프” 뮤지컬을 한다고 한다.
기회다 싶어 신랑에게 그 뮤지컬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번 생일 선물은 뮤지컬 관람으로 결정되었다.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마음이 내내 설레었다. 사실은 임태경이라는 가수의 펜이었던 나는 직접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 어떤 생일보다 기쁘게 보냈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는 1980년 발표된 작가 프레드릭 모튼(Frederic Morton) 의 소설
<A Nervous Splendor>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엘리자벳 황후의 아들. 황태자 루돌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사랑했던 연인 마리 베체라와 함께 생을 마감한 드라마틱한 그의 이야기는 2009년 한국에서도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란 제목의 소설로 번역된 바 있다. 그들의 사랑과 죽음은 영화‘마이얼링(Mayerling)', '마이얼링에서 사라예보까지(De Mayerling a Sarajevo)' 오드리햅번 주연의 드라마 ;마이얼링(Mayerling)', 드라마 시리즈 ’크라운 프린스(Crown Prince)' 등은 물론 소설, 발레, 오페라 등 다양한 콘텐츠로 회자되고 있다.
2006년에는 헝가리에서 뮤지컬로 재탄생 되었고, 2012년 한국 무대에 서막을 올렸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의 감성적인 드라마를 위해 ‘몬테크리스토’ , ‘지킬 앤 하이드’, ‘천국의 눈물’로 뛰어난 음악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 작곡을 맡았다. 그가 유럽의 가장 큰 제작사로 손꼽히는 비엔나극장협회와 함께 작업한 첫 번째 유럽 진출작이며 가장 높은 작품성을 인정 받은 공연이기에 국내 초연에도 더욱 큰 관심이 모여졌었다. 개인적으로는 “레 미제라블” 뮤지컬을 본 이후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터라 더욱 그러하였다.
사랑에 운명을 건 비운의 황태자와 그의 연인, 그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1888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수많은 귀족들이 모인 최신식 극장에서 화려한 사교계 파티가 열리고 있다. 황태자 류돌프는 자신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운 정략 결혼, 측근들의 끊임 없는 감시와 계약,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아버지와 늘 곁을 떠나 여행을 하는 어머니에 지쳐 세상 모든 것에 자포자기한 상태이다. 한창 파티가 진행되는 도중, 한 소녀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처음 마주치게 된 황태자 루돌프와 마리 베체라, 황태자는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마리의 당돌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얼마 후, 타페 수상의 계략으로 초토화 된 신문사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그 곳에서 마리는 자신이 동경하던 ‘줄리어스 팰릭스’가 황태자 루돌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결국 황태자 루돌프는 마리와의 결혼을 위해 교황청에 탄원서를 내고, 점점 감시망을 좁혀 오는 타페 수상에 의해 황제에 반하는 세력 뒤에 황태자가 있음이 드러나게 되면서 황실에서 설 자리를 잃어간다. 여기에 타페의 계략으로 그의 연인 마리 마저 위험에 빠질 위기에 놓이는데...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탕” “탕” 두 번의 총성소리 뿐이었다.
황태자 루돌프는 성대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몰락해가는 시기, 황실의 변화를 주장하지만,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와 갈등를 겪는다. 정치적인 이념도, 사랑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비운의 황태자, ‘줄리어스 팰릭스’라는 가명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그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는 한 여인 마리 베체라를 만나 진정한 자신의 사랑을 찾는다. 하지만 그도 잠시, 운명은 그를 순항으로 놓아 두지 않았다. 지독한 사랑의 속앓이를 해야만 하는 황태자는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했음이라.
그는 정치적인 노선이 다른 아버지와 대립했으며, 모후는 그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않게되어 성격이 병들어갔고, 결국 사냥용 별장인 마이얼링에서 남작의 딸인 마리아 폰 베체라와 동반자살하였다. 모후는 일 년 중 대부분 여행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부모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조모로부터 군인으로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친프랑스적인 개혁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로 자라났기 때문에 친독일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부황과 정치적으로 대립하였다. 황제는 그런 아들의 사상을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정치적으로 전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고, 루돌프는 황태자의 위치를 정치적으로 사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대신 율리우스펠릭스 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진보 신문에 부황의 정치와 제국주의 및 황실을 비난하는 글을 여러 번 기고하기도 하였다. 그는 귀족과 성직자들이 민중을 억압한다고 보았고 근본적으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외쳤으며 부황의 정치체계를 날카롭게 비판할 줄 알았다. 부황은 군주제를 고수하였으나 그는 오스트리아의 속국들이 공화제로 기울어감에 따라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루돌프는 그런 정략에 의해 벨기에의 공주 스테파니와 결혼하였다. 이는 벨기에와 오스트리아 간의 정치적인 협정을 위한 결혼이었다. 둘의 사이에서 엘리자베트 마리란 딸이 한 명 있었다. 이후 스테파니는 병에 걸려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고 전해졌지만 그러한 결혼에 무슨 애정이 있었겠는가 싶다. 사실은 스테파니도 희생자이지 않은가,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루돌프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으니 불운의 여인이었음이라.
한편, 마리 베체라는 자신에게 반해있는 브라간자 대공과의 결혼으로 집안의 재정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신문 속에서 자유를 외치는 기고가 ‘줄리어스 팰릭스’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을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강요 당하지만, 정작 자신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동경하던 혁명적 사상의 저널리스트 줄리어스가 황태자라는 사실은 알게 되면서 그와 사랑에 빠진다. 항상 루돌프의 편이 되어주며,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루돌프와 마지막을 함께한다.
오스트리아로부터 헝가리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진보개혁파는 황태자 루돌프 (가명 :‘줄리어스 팰릭스’)를 헝가리의 초대국왕으로 추대하고자 한다. 그것은 명백한 반역이자 아버지 요제프황제의 등에 칼을 꽂는 것, 왜 이리도 가혹한 운명의 갈림길에 놓였는가, 루돌프는 진보동지들과 아버지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하게 된다. 그런 루돌프에게 마리는 용기를 북돋워준다. 진정한 정의를 위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음을, 루돌프는 아픈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디딛는다. 마리는 루돌프에게 이제 황태자 흉내는 그만 내고 진짜 황태자가 되라고 한다. 싸울 가치가 있는 것에는 그 만한 위험도 따르는 법이라며 자신보다 더 강한 의지를 보이는 마리를 보며 드디어 루돌프는 결심을 굳힌다, 정의를 위해 싸워보리라고.
하지만 몹쓸 운명은 루돌프의 정의를 외면해버렸다. 타페 수상의 끈질긴 추적으로 루돌프의 계획은 무산되어 버렸으니,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 루돌프는 마리만은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리는 루돌프와 운명을 함께하기로 한다. 정치란 무엇일까? 이토록 사랑을 아프게 하고도 꿋꿋한 이 정치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수천 년 인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왕조가 바뀌었고 나라가 일어섰다가 쓰러지기도 했다. 민족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세력이 성장하고 쇠퇴했다. 그 과정은 계급투쟁이자 정치투쟁이었고 또 권력투쟁이기도 했다. 그 투쟁은 숱한 모순과 잘잘못이 뒤섞여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역사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특정한 사회적 모순이 생겨났고, 그 모순은 우리들에게 해결책을 생각하고 탐색하도록 다그쳤다. 바로 그 때 정락가들은 남다른 정치적 감각과 지혜, 초인적인 재능으로 역사발전의 앞자리에 버티고 서서 먼 곳을 내다보며 당시 조건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제기하거나 취했었다. 가족도 사랑도 정치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자와 맹자의 인의(仁義)정치론, 노자와 장자의 억지로 하지 않고 다스린다는 ‘무위이치(無爲而治)’의 사상, 한비자의 법(法), 술(術), 세(勢)를 겸비하라는 이론 등은 시대는 달라도 모두 정략가의 정신적 무기가 되었다. 정치란 무엇일까, 어떤 이해의 충돌 속에서도 그것들을 극복하여 사물을 현실의 것으로 한다는 현실적인 정의이다. 정치란 희소가치의 배분이라고도 한다. 권력, 부, 건강, 존경, 명예 등의 가치는 모두 타인과의 경쟁 없이는 좀처럼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들을 사회의 구성원이 만족하도록 배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또한 정치란,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하도록 작용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즉, 정치란 자신의 기호에 불과할 뿐이라면 할 리가 없는 것을 정치적인 힘을 사용하여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쩌면 외계인처럼 초능력이라도 지닌 게 아닐까?
정치의 중심은 무엇일까? 정치는 오래 전부터 사상과 역사를 2대 지주로 하였다. 사상이라고 하지만 최근까지는 고대의 점술적인 것이나 중세의 신학적인 것도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전 우주의 역학을 해명하고자 하는 야심적인 것에서 형식 논리학적인 것, 더 나아가 종교적인 신념체계를 전제로 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역사라고 하지만 전인류사의 전개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 역사는 이렇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 개별적인 인물의 견해나 사건의 전개를 상세하게 기술하고자 하는 것 등 모두를 포함한다. 사상을 정치학의 지주라고 한 것은 정치 주체의 견해나 정념을 이해하는 것이 정치를 움직이는 힘을 이해하는데 한 걸음 다가서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역사를 정치학의 지주라고 한 것은 인간이 실행하는 상호작용에서 정치가 성립하고 있는 이상 지금까지 어떠한 상호작용이 있었는가,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가 등등 강한 관심이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사상과 역사를 제외한 정치는 그다지 강력한 매력이 없을 것이다.
루돌프와 마리는 실패한 정치의 한탄을 영원한 사랑으로 확인하고, 겹쳐진 가슴은 영원을 약속하며 노래한다.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느니, 차라리 한 번에 모든 걸 끝내기로 결심한 아픈 사랑, “두려워 마, 사랑이야”를 노래하며 하얀 설원의 별장에서 아름다운 사랑은 그렇게 떠나 가버렸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하나 둘 꺼지는 촛불, 그리고 어둠을 찢는 두 발의 총성, 그렇게 뮤지컬은 막을 내린다. 가장 안타까운 순간에 사랑을 끝맺음 함으로써, 영원한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이 뮤지컬을 보는 동안 예전에 즐겨 읽었던 세익스피어의 4대비극이 생각났다. 그 때도 그러했듯이 이 비극들의 공통점에는 늘 욕망과 정략과 투쟁이 있었다. 그러한 비극 속에서 “사랑”은 늘 희생자였다. 그 사랑이 비극 속에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진실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리라.
5월의 햇살이 물오른 부름켜를 감싸 안는 연두빛 계절에, 잊은 줄 알았던 바람의 기억이 찬란한 슬픔의 봄을 맞이한 것일까.....2013년의 봄날은 참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