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기나팔꽃
2022년 9월 9일(금), 세곡 근린공원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다. 특근이다. 8시 시업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했다. 애기나팔꽃과 유홍초, 나팔꽃
을 보기 위해서다. 이 꽃들은 오전에 금방 지고 만다.
이른 아침 이 꽃들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라고 한 윌리엄 블레이크는 들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唐詩 읽기』(원제, 『新唐詩選』, 요시까와 코오지로오 ․ 미요시 타쯔지 지음, 심경호 옮김)(창작과비평사, 1998)
에서 미요시 타쯔지(三好達治, 1900~1964)가 지은 후편의 맨 처음에 나오는 유정지(劉廷芝, 652~680)의 「흰머
리를 슬퍼하는 늙은이를 대신하여(代悲白頭翁)」를 소개한다.
일찍이 소년기에 내가 암송하던 당시 두 편이 있다. 하나는 유정지의 「흰머리를 슬퍼하는 늙은이를 대신하여
(代悲白頭翁)」, 다른 하나는 한창려(韓昌黎, 韓愈)의 「좌천되어 남관에 이르러 질손 한상에게 보이다(左遷至藍
關示姪孫湘)」. 후자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유정지의 시는 지금 읽어도 자못 가슴 벅찬 매끈하고 달콤한 작품인데, 그때 어휘의 아름다움에 감동되어 그저
망연하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시어가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라, 글자들이 거의 모두 낙화처럼 눈앞에 분분하게
들어왔다. 그 환각이 그립다. 이 시는 구조도 극히 묘한데, 그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뜻이 얕아서 이해하기 쉬
웠던 점이 그때의 나에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1장은 다음과 같다.
代悲白頭翁 흰머리를 슬퍼하는 늙은이를 대신하여
洛陽城東桃李花 낙양성 동쪽의 도리꽃
飛來飛去落誰家 날아오고 날아가 누구 집에 떨어지나
洛陽女兒惜顔色 낙양의 아가씨는 얼굴빛을 서글퍼하여
行逢落花長歎息 낙화를 만나선 길게 탄식하누나
今年落花顔色改 금년 꽃이 지면 얼굴빛 시들고
明年花開復誰在 명년 꽃 피면 또 누가 있으랴
已見松栢摧爲薪 보았다오 송백이 꺾여선 땔감된 것을
更聞桑田變成海 들었다오 뽕밭 변해 바다 되었단 말
古人無復洛城東 옛 사람은 낙성 동쪽에 다시 없고
今人還對落花風 지금 사람은 낙화의 바람을 대한다
年年歲歲花相似 연년세세 꽃은 같아도
歲歲年年人不同 세세연년 사람은 같지 않아라
寄言全盛紅顔子 여보소 한창 홍안인 사람
應憐半死白頭翁 동정해주오 반 죽은 백발 늙은이를
此翁白頭眞可憐 이 늙은이 흰머리는 정녕코 불쌍타오
10. 유홍초
伊昔紅顔美少年 지난날 홍안 미소년일 때는
公子王孫芳樹下 꽃나무 아래 공자 왕손을 모시어
淸歌妙舞落花前 맑은 노래 묘한 춤을 낙화 앞에 피로했고
光祿池臺開錦繡 광록 연못 누대에선 비단 소매 펼치고
將軍樓閣畵神仙 장군 누각에는 신선을 그려두었더니
一朝臥病無相識 하루아침 몸져 누워 아는 이 없구려
三春行樂在誰邊 삼춘의 행락은 어디에서 열리나
宛轉蛾眉能幾時 아리따운 눈썹도 얼마나 가리
須臾鶴髮亂如絲 잠깐 새 흰머리는 실처럼 흩어질 것을
但看古來歌舞地 예부터 가무하던 곳에는
惟有黃昏鳥雀悲 황혼녘 까치소리 서글프기만
같은 당시라고는 해도 초기 작품은 이른바 심송체(沈宋體, 심전기 沈佺期와 송지문 宋之問으로 대표되는 풍격)
라 하여, 화사하고 미려함을 존중하는 시풍이어서 표현어휘는 정정(井整)하지만 어딘가 실감이 결여된 듯한 느
낌이 있다. 이 시를 읽은 뒤에 께름칙한 느낌이 남는 것도 전체 테마인 인생무상과 세월의 신속함에 대한 탄식
이 어딘가 통렬한 절실함이 결여되어, 실은 테마가 조금 힘이 없다는 점에 원인이 있으리라. 그렇더라도 어휘의
대비 및 연관은 정말 훌륭하여 정경(情景)의 추이가 유려함의 극치를 다하였다. 세 번 창하여 싫증낼 줄을 모르
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맨 처음 두 행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다음 두 행은 옷을 잘 차려입은 여인들이 거기에 등장한다. 얼굴빛을
서글피 여기는 것은 사라져가는 청춘을 서러워해서다. 동시에 그녀들은 은근히 용모를 자만하는 심경이기도
하리라. 길게 탄식하는 것은 지는 꽃을 두고 그러는 것이지만, 스스로의 용모가 시듦을 애석해하는 기분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다음 두 행이 환기된다. 작은 비약, 여기에 힘을 얻어 그 다음 두 행은 더욱 크게 비약하여 어쩐
지 격언풍으로 된다. 송백(松柏)이다 상전(桑田)이다. 이 연은 대단히 관념적이어서 정경을 상실한다.
20. 나팔꽃
거기서 한숨 돌리고, 시는 다시 한번 낙성(洛城)의 동쪽으로 되돌아간다. 단 앞서의 미인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시는 마침내 본제(本題)로 옮겨가려 한다. 고인(古人)과 금인(今人)은 성동(城東)의 실제 경치이지만 다
음 두 행은 그것을 번복하여 다시 한번 말을 고쳤다. “연년세세화상사(年年歲歲花相似), 세세연년인부동(歲歲年
年人不同)”.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이 시의 명구이다. 유정지가 우연히 이 연을 얻고서 뒷날 그 취지를
부연하여 이 시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과연 어떨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22. 나팔꽃
23. 설악초
(……) ‘기언(奇言)’과 ‘응련(應憐)’은 국면을 바꾸어 드디어 주제를 노래해 들어간다. “한창 홍안인 사람(全盛紅顔
子)”을 빌려와서 “이 사람이 지난날 홍안 미소년일 때(伊昔紅顔美少年)”라고 호응시킨 것도 작자의 교묘한 궁리
다. 진신(縉紳) 자제들, 즉 공자나 왕손들이 꽃나무 아래서 맑은 노래 부르고 멋진 춤을 추며 낙화 앞에서 즐기
고 있는 광경을 말함으로써 백두옹도 일찍이 그들과 뒤섞여 놀았던 일을 회상한다. 그리고 진신 자제를 빌려온
것을 이어받아 “광록지대개금수(光祿池臺開錦繡), 장군누각화신선(將軍樓閣畵神仙)”이라 하여 호화 건축물까지
연상해낸다.
24. 풍선덩굴
26. 좀작살나무
‘광록지대(光祿池臺)’는 한나라 원제(元帝)의 외척으로서 궁중 호위직인 광록훈(光祿勳)의 지위에 있던 왕근(王
根)이 정원을 설치하고 연못 속에 누대를 일으켰던 옛일을 빌려온 것이다. ‘개금수(開錦繡)’는 비단 소매를 펼쳐
운운하는 뜻이리라. 다음 구는 후한의 대장군 양기(梁冀)가 저택을 짓고서 네 벽에 신선상을 그려둔 그 굉장한
광경을 빌려온 것이다. 낙양 당시의 일은 아니다. 옛일을 끌어들여 환상을 보조하는 수법이다. 한시를 읽을 때
가장 성가신 점은 이렇게 고사들을 빌려오는 일(이 경우에는 이 한 곳뿐이지만)이 번번해서, 우선 대부분의 독
자가 질리고 말 것이다.
27. 때죽나무
28. 수까치깨꽃
(……) 시는 거기서 한 번 꺾여, “일조 몸져 누워(一朝臥病)”라고 급작스레 현재의 신상이야기로 돌아간다. ‘완전
(宛轉)’과 ‘수유(須臾)’는 그 맺음말이다. 전체의 테마는 여기서 반복되는데 이번 것이 강도가 더 있다. 그런데
마지막 두 행은 앞의 두 행과 중첩되었으니, 앞의 고사 원용에서 환상적이던 것이 여기서 함께 해소되는 듯하
다. 즉 두 행이 시 전체를 뭉뚱그리는 맺음말이다.
29. 수까치깨꽃
1장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대체로 이상과 같다. 맨 처음에 등장한 활기차게 걸어가는 낙양 여자와 하루아침에
병석에 누워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후반의 백두옹, 이 둘의 대비가 겹쳐 한편의 효과를 약동케 한다. 다만 “세
세연년 사람은 같지 않다”라든가, “고운 아미 얼마나 가랴(宛轉蛾眉能幾時)”라는 취지의 테마가 통절해야 할 것
인데, 이 시를 읽고 난 뒷맛은 어쩐지 절실하지 않고 어딘가 공허하다. 유복한 가정의 영감님이 푸념이라도 줄
곧 내뱉으면서 그것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당시 낙양의 어떤 계층의 생활 분위기가 그러했던 사실을 반영하는
지도 모른다. 이 글을 적으면서 나는 문득 그러한 느낌이 들었다.
연소자가 시를 애호하려면 이렇게 매끈한 작품부터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나는 내 과거를 회고하
면서 그렇게 믿는다. 특별히 유정지에 한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31. 주름잎
32. 새박
첫댓글 애기나팔꽃이 귀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