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검색 / 도월화
내가 고향을 되찾는 데는 한 오년 쯤 걸렸다. 삼, 사 십년 만에 고향땅을 밟아 본 것은 오, 육 년 전이었다. 일부러 찾아 간 것이 아니라, 가족여행 중에 지나가던 길이었다. 일정이 빠듯해서 운전하는 남편에게 잠시만 어귀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라고 했다. 미혼일 때는 학업으로, 결혼 후에는 아이 키우랴 가사 돌보랴 올 생각을 못했는데, 실로 오래간만에 동네 한 바퀴 돌아보았다. 워낙 오랜 세월이 지나 어디가 어딘지 가물가물 거렸다. 그나마 어둡기 전에 가야 할 길이 멀어, 미처 회상에 잠길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서둘러 떠나왔었다.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더듬어 봐도 여기가 저긴가 싶기만 하고 답답할 뿐이었다. 그 후 가끔 생각은 했지만 살다보니 또 차츰 잊혀져갔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무심코 고향마을이 어렴풋하게 그려졌다. 해가 바뀌면서 더욱 확실해지다가 다시 몇 년이 지나니 생생하게 생각났다. 지나가다 들린 이후로 고향에 다시 가본 적이 없는 데도 무심중에 점점 옛 기억이 또렷해지는 것이 컴퓨터로 서서히 검색해내는 것 같았다. 소우주라고 하는 인간의 두뇌에 어떤 자극을 주면, 전산망의 버튼을 누르는 것과 똑같은 원리의 작용이 일어나나보다.
신기해서 며칠 전 인터넷에 그 고장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몇 장의 사진이 떴다. ‘뒷메’라고 부르던 뒷산이 보인다. 그 아래 시골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내 첫 단짝 친구, 순이와 놀다 헤어질 때의 기억이 났다. 매일 같이 놀면서도 떨어지기 싫어 서로서로 몇 번이고 집에 바래다주느라, 방언으로 ‘비렁’이라 하던, 벼랑의 비탈길을 오르내렸었다. 동구 밖에는 푸른 들이 펼쳐지고 시냇물이 흐른다. 왼쪽으로 할아버지 지으시던 사과밭이 있다. 사과 꽃이 하얗게 피어난 4월의 들판,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가을풍경, 내 고향 산하가 아른거린다.
오른쪽으로 반시간 쯤 걸어가면 읍에 이른다. 읍내의 초등학교에 2년 다닌 후 대구시로 전학 갔다. 2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은 서울에서 온 성이라는 사내아이였다. 성이는 제 짝꿍, 식이가 부반장이 되길 바랐는데 잘못되어 내가 뽑혔다고 화를 냈다. 생경한 서울내기 말투로 ‘너 죽어.’라며 큰 눈을 부라렸다. 나는 조용히 피해 다니느라 내심 불안했다. 더욱이 경상도 사투리만 쓰는 시골에서 듣는 그 서울 말씨는 한동안 어린 마음에 여간 겁을 주는 게 아니었다. 나의 최초의 어두운 기억이 지금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어느 보름 즈음에 동네 농악대가 우리 마당에 들어왔다. 둥둥, 북소리 장고소리에 방문을 열던 나는 깜작 놀라 얼른 도로 문을 닫았다. 구경꾼 중에 성이가 보였던 것이다. 쟤가 이곳까지 웬일일까. 드디어 나를 때리러 왔나보다, 하고 나오지도 못하고 방안에서 떨고 있었다. 농악대가 이웃집으로 휘젓고 간 후 살며시 내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또래보다 한 살 먼저 입학했던 가뜩이나 어리숙한 나는 그 애가 어디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성이가 왜 읍내에서 5 리나 떨어진 거기까지 왔을까 궁금한 생각이 든다. 까맣게 잊었던 성이의 이름도 얼굴도 이제야 떠오른다. 고향 산천도 다 선명하게 눈앞에 보인다.
다시 고향에 가면 오년 전 지나다가 들렀던 때보다 훨씬 좋을 것 같다. 길이 훤하게 그려지니 유년의 추억에 푹 빠져들 수 있지 않겠는가.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과수원 길을 걸어가면 세상은 평화로 가득했다. 한마을 친척 아주머니들의 주름살까지 사랑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 한없이 푸근한 느낌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고향은 그리움의 원천이자 마음의 회귀처이다. 큰고모와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보면 사위에 아늑함이 흘러넘쳤다. 송사리 떼 지어 노니는 시냇물과 푸른 산, 메뚜기 잡던 황금빛 들판, 그리고 내가 다닌 학교 교정에도 다시 가보고 싶다.
우리의 두뇌는 심장처럼 무의식중에도 작동을 한다고 밝혀져 있다. 그간 나는 무심결에 고향이라는 검색어를 머리에 새겨 넣었었나보다. 내가 잊고 지낼 동안에도 나의 뇌는 계속 고향 검색 작업을 암암리에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검색에는 기원이 깃든다. 컴퓨터에서 검색을 할 때는 필요한 자료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람이 있다. 또한 내용이 길고 복잡할수록 검색창이 뜨는데 시간이 걸려서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두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긍정적인 검색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면 희망적인 인생, 반대로 계속 부정적인 말을 넣으며 살면 결국 비관적인 삶이 입출력(input-output)될 것이니, 영화나 인터넷의 어지러운 언어들을 볼 때는 안타깝다. 좋은 말, 좋은 인생이 아니겠는가.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 복사단 지도 수녀님 말씀이 생각난다. 새벽미사 복사 시간표가 배정되면 모두들 일찍 못 일어날까봐 걱정했다. 수녀님은 새벽미사에 늦지 않게 해달라는 저녁기도를 하고 자면, 틀림없이 다음날 아침에 ‘수녀, 수녀, 일어나라.’는 주님 목소리가 깨워준다고 하셨다. 창조주는 우리가 깊이 잠든 밤에도 뇌가 계속 검색 작업을 하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희미하게 사라져가던 고향땅이 눈에 보이는 것은 다행이지만, 잃어버린 보이지 않는 고향의 정서를 되찾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뇌야, 내가 무의식중에 검색해줘, 라고 부탁하며 시간을 주면, 언젠가 상기해낼 것이라 믿어야겠다. 뇌는 주인이 믿어 줄 때 최대한 잠재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기도는 희망이고 감사는 긍정적이고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기 쉽다. 아침에 눈 뜬 순간부터 찬찬히 머릿속 검색창에 기도와 감사를 새기며 살아가야겠다. 나는 무언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기원이 담긴 말을 매번 검색어로 사용하겠다고 마음먹어본다.
2012. 8 http://ssopia7.kll.co.kr// (월간문학 2013. 8월호 수록)
도월화 수필가 약력
수필집 『 여월여화 (如月如花)』 『 달처럼 꽃처럼』 출간.
창작수필 등단. 2014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선수필 편집위원.
너섬 시니어아카데미 수필강사. 수필넷에세이아카데미아 sysop.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졸업. (前)중등 교사.
한국문협회원, 창수회원, 사계회원, 한국수필가협회회원.
http://blog.naver.com/ssopia7
http://ssopia7.kll.co.kr
첫댓글 잘 계시지요? 가을 입니다. 늘 건강하세요
가을의 정취 가득한
나날 보내세요~🎶
🍀건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