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께서 지금 평양을 방문하시어 좋은 성과 기대하면서, 동지들이어 소인이 2003년도인가 금강산으로 가는 육로가 최초로 계통될 때 정부대표 일원으로 시범육로관광을 갔다 오면서 보고 느낀 것을 법률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이니까 못 가보신 분은 한 번 읽어보시면 금강산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오, 이런 저런 일로 세번 정도 가보았는데 그래도 금강을 모르겠더구먼,,,
금강산 시범육로관광을 다녀와서…
(중략)
□ 금강산 시범육로관광 일원이 되다
이번에 현대아산에서 실시하는 금강산 시범육로관광의 일원이 되는 기회가 주어졌다.
남북관계의 이해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내․외적으로 보고 느낀 바를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시범육로관광은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남측CIQ(임시남북출입관리연락사무소)을 출발하여 남방한계선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여 북방한계선(비무장지대 신규 동해선 임시도로 구간 : 남 1.2㎞, 북 0.3㎞)을 거쳐 삼일포주차장 등 금강산 길목에 있는 구음리, 봉하리, 온정리 마을을 지나 고성항(장전항이라고도 함)에 도착하여 북측CIQ(통행검사소)에서 출입심사를 받고 금강산 특구지역에서 관광을 하고 그 길을 되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아무리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아무리 재산이 많다 하더라도 마음대로 가 볼 수 없는 곳이 그곳이라서 그런지, 2월 14일 새벽 5시 일행의 출발지인 현대 계동사옥 앞으로 나갈때는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설레이는 마음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흥분된 마음으로 현대아산에서 마련한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홍천, 인제, 속초 등을 거쳐 고성에 있는 금강산콘도에 도착하여 현대아산 직원들이 나눠주는 북한 관광에 필요한 금강산관광증과 금강산관객증 등을 받았다. (중략)
□ 휴대폰이나 망원경을 가지고 가서는 안 되다
안내원들이 휴대폰과 고성능 망원경, 쌍안경, 사진기 등은 휴대금지품목이니 몰래 가지고 갔다가는 빼앗긴다며 잔뜩 겁을 주었다.
관광인데 왜 휴대폰을 못 가져 가게 할까,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맡기고, 다시 차에 몸을 싣고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 임시남북출입관리연락사무소에 도착해 보니 오전 11시 정도 되었다.
그곳에서 국토관리청이 주최하는 육로관광기념식을 간단히 마치고, 보안검색과 신분확인 등 출경 심사를 받고 북측에 있는 현대아산이 운영하는 금강산관리사무소에서 내려온 관광버스를 타고 드디어 북쪽으로 출발하였다.
시멘트 포장도로로 한 10여 분 정도 지나자 남방한계선 3중 철책선이 동서로 쭉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헌병 초소가 나타났다. 그곳이 바로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금강 통문이라는 곳이었다.
□ 혈전(血栓)이 뚫리다
그곳에서 잠시 버스가 멈추는 듯 하더니 바로 통문을 통과하여 들어갔다. 드디어 동식물의 보고(寶庫)이자 동물이나 새들만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곳,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로 서서히 들어가는 것이었다.
관광버스에 타고 있던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 주변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버스가 그곳을 통과하기 전에 빨리 눈동자를 돌려 하나라도 더 봐야 되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엄청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숨이 막히는 듯 했다.
그곳은 남과 북의 허리를 50여 년 이상이나 단단히 조여 놓은, 피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만 여겨졌던 곳이 아닌가… 매우 이상한 감동을 느끼면서 지나가는데 안내원이 저것이 군사분계선이라고 말해 주었다. 빨간색과 흰색을 칠한 나무막대기로 아주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것이 남과 북을 가르는 분사분계선 표지인 것 이었다.
이 비무장지대가 이번에 임시로 개통된 육로관광코스인 것이다. 북방한계선에 이르자 조그만 초소가 나타났다. 이는 소위 북한 통문이라는 곳이었다. 북한 초병이 권총이나 단검이 꽂인 소총을 메고 꼼짝도 하지 않고 부동자세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과연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 민둥산과 돌산의 전시장을 보다
북한 통문을 통과하여 가다보니 도로변의 산과 들은 민둥산과 돌산의 전시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산에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가. 주민들이 땔깜이 없어 여기까지 와서 나무를 모두 베어가서 그럴까, 어떻게 저렇게 모두 민둥산일까. 나무가 없으니 돌산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직 공사를 하다 만 도로변 공사현장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고, 현대에서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현대 로고가 새겨진 중장비들이 군데 군데 세워져 있었다.
동해안으로는 푸른 바다가 보였다. 이 푸른빛의 동해와 웅장한 바위, 그리고 푸른 소나무가 어우려지면 얼마나 멋진 풍경이 될까 상상을 해 보면서 금강산 길목에 있는 구음리, 봉하리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 당신들은 왜 아직 여기까지 밖에 못 왔는가
안내원이 비무장지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자리에서 절대로 일어서지 말 것, 창문을 열지도 말고 커텐으로 가리지도 말 것, 사진촬영을 절대로 하지 말 것 등… 얼마나 겁을 주었던지 다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머리에만 그리기에 바빴다.
북한 마을을 지나면서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회색시멘트 기와집, 싸리 울타리, 울타리에 걸려 있는 시래기, 소들이 메어져 있는 집안의 모습을 일부나마 볼 수 있었다.
눈이 녹아 질척질척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땔감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 배급을 탔는지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우리의 옛날 농촌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때 그렇게 어렵게 살지는 않았었다. 우리의 현재 농촌 풍경과 비교해보았다. 그야말로 상상이 안 된다. 북한은 지금 굶어죽는 주민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왜 다른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을까, 무엇이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주민들이 게을러서 그럴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체제 때문일까, 머리가 한참 복잡하여 짐을 느낀다. 어느 계층, 조직, 집단이든 지도자를 잘 만나야 되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중략)
□ 같은 동포․민족인데 보고 싶지 않는가
먼 산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선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큰 산 큰 바위마다 붉은 글씨로ꡐ김일성ꡑ,ꡐ김정일ꡑ을 찬양하는 글귀가 아주 어지럽게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았다. 저 모든 것이 자연훼손 아닌가. 남북통일이 되면 그 깊고 깊게 새겨놓은 글귀를 어떻게 메워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마을 어귀에는 ‘군민일치’ꡐ자폭정신ꡑ등 체제 강화를 주창하는 선전 선동 일색의 각종 구호들이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다. 전혀 반응이 없었다. 관광버스가 10여 대가 지나가도 본체만체 하였다. 어떻게 저렇게 하나같이 무관심할까. 교육을 받아도 단단히 받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역시 순수했다. 창문 너머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을 귀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 피곤한 줄 몰랐다
북한 마을을 지나 금강산 특구지역에 들어가니 도로변에는 약 2미터 가량의 높이로 철조망을 처 놓아 북한 주민들과 접촉을 절대로 할 수 없게 해 놓았다. 멀리서나마 주민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오후 2시경 고성항에 도착하여 북측CIQ에서 금강산관광증 등으로 통행검사를 마치고, 오후 3시경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이어서 온정각 휴게소에서 북한측의 도착기념행사와 북한 교예공연을 관람하고 온천을 다녀온 뒤 하루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긴장의 연속이어서 그런지 피곤한 줄도 몰랐다.
그래서 그 인근에 있는 북한사람이 경영하는 횟집으로 갔다. 횟집에서 먹어보는 북한산 광어, 도다리 맛이 일품이었다. 자연산에 자연산이어서 그런지 잇 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살이 질겼다.(중략)
□ 이것이 금강산이라고 했던가
다음 날 아침 8시경 아침을 먹고 구룡연, 만물상, 삼일포 중 선택하여 한군데 다녀오게 되어 있었다.
경력있는 운전기사(운전기사들은 모두 중국 연변에 살고 있는 조선족으로서 10~20년 경력의 소지자들이라 함)에게 물어보았더니 만물상은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산행을 하기가 어려워 멀리서 보고 돌아와야 한다며 젊은 사람들은 구룡연 코스가 좋을 것이라고 귀띔을 해줘 구룡연 코스로 가게 되었다. 설레이는 가슴을 달래며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구룡연 계곡 주차장으로 한참 올라갔다. 버스길은 눈이 녹아 결빙이 되어 있거나 빙판길이 대부분이었는데도 잘도 운전해 갔다.
구룡연 계곡에는 눈을 일부 치웠다고 하나 등산길은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고, 그야말로 눈덮힌 금강산을 볼 수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금강산의 사계절을 보아야 금강산을 제대로 보았다라고 할 수 있다고, 그나마 금강산의 그 일면을 그 품안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중략)
매우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무아지경으로 한참 올라가다 보니 목이 한없이 말랐다. 금강수를 실컷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눈덮인 계곡의 물도 얼어 그 밑으로 소리 없이 흘러가는지 우리들에게는 보여주지도 않았다. 이 계곡에 흘러가는 물은 그야말로 자연수, 생명수 그 자체일텐 데 말이다. 눈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넣고 자연수를 대신하여 목을 축이고, 금강산과 나와 하나가 되어 금강산의 품에 잠시나마 안길 수 있었다.(중략)
□ 그들은 우리를 관광객으로 보지 않았다
오후 3시경 북한에서의 관광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되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 덮인 금강산도 봄이 되면 흰옷을 벗고 푸른 옷으로 갈아 입을테고, 또 가을이 되면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겠지,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 자연이 아니겠는가.
이번 여행과정에 북한 근무자들과 가벼운 대화도 해보고, 그들에게 마음의 정도 주어 보았다. 또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사는 모습도 일부나마 볼 수 있었다.
권총, 소총으로 무장한 채 보초근무를 하고 있는 초병들의 모습, 되돌아오는 길에 북한 통문(북방한계선 입구)을 지나기 전에 북한 경비단 소속 군인들이 버스에 승차하여 아주 경직된 얼굴과 말투로 인원점검을 하는 모습들(물론 그들의 임무이기는 하나)을 볼 때 그들은 우리들을 관광객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도 할 수 없지 않는가. 우리 모두가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계속 두둘겨 보아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