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도
내 어머니(김순옥 펠리치따스)가 세상을 떠나신지 5년째 접어드는데도
그리운 마음은 좀체 줄지를 않는다.
며칠 전 어느 기자가 나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슬펐던 일 하나를 말하라고 하기에 나는 서슴없이
어머니의 죽음이라고 대답하였다.
어머니의 유품을 몇가지 갖고 있긴 하지만
어린시절에 만들어주신 고운 원피스나 저고리라도
하나 기념으로 보관 해 둘걸.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걸...등등 아쉽고 후회되는 일들도 많다.
내가 암으로 투병중인 것을 모르고 떠나신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분을 그리며 쓴 사모곡<엄마>라는 시집을 출간했으나
다시 보면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 덮어둔 지 오래다.
부족한 내가 수도생활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어머니는 늘 9일기도를 멈추지 않으셨고
매 순간 기도하며 깨어사는 분임을 평소의 삶으로 보여주셨다.
어딜 가다 길을 잃어 당황하면 어느새 예수님이 '길눈을 떠라'하며
버스 번호까지 알려주는 체험도 했다며 즐겁게 웃으시던 어머니,
예수님 안에선 안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확신을
한 번도 잃지 않으셨던 어머니.
언젠가 내가 주민등록증을 분실했다고 하니
'수녀, 무슨 걱정이야. 빨리 예수님과 안토니오 성인께 기도해'
라고 하시던 어머니(나는 말씀대로 기도했고 주민등록증도 찾았다)
어머니는 특히 프라그의 아기예수상을 좋아하시어
무덤 앞에도 놓아드렸다.
생전의 어머니는 당신이 힘든 시절
그 성상 앞에 기도하여 받은
기적적인 일화들을 자주 들려주시곤 하였다.
'이것 지니고 다니면 영적인 힘은
물론 필요한 돈도 주실꺼야'
하며 새끼 손가락만한 성상도 내게 주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엔 성모님과 같이
레지오 마리애를 했다고도 하시고
예수님이 특별강복을 주셨다며 행복해 하셨다.
많이 편찮으실 때조차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일이 없이
그저 감사만 하시어 '앞을 봐도 기쁘고 뒤를 봐도 즐겁고
옆을 봐도 마냥 행복하다'고 고백하신 어머니.
중환자실에서 한 달만 더 '놀다가고 싶다'던 어머니는
당신의 소망대로 퇴원하여 평소에 머물던 방에서
2007년 9월8일 성모성탄 축일에 눈을 감으셨다.
사경을 헤맬 적에도 성가를 틀어드리면
고요한 눈길과 찬미의 손동작으로 하늘을 향하시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직 기도만을 삶의 지표로 삼고 한 톨의 의심도 없는 신뢰와 깊은 신앙심으로
지상의 순례를 마치신 어머니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내겐 늘 위안이 된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장미와 모란꽃 향기 가득한 성모님의 계절.
나도 어머니를 닮아 맑고 어진 '단순함의 영성' 을 가꾸어 행복한 수도자가 되고 싶다.
2 내 어머니가 바치시던 기도
1)참회의 기도
주님, 당신 앞에 기도할 때마다 손이 떨립니다.
새삼스런 부끄러움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겸손 보다는 교만으로 덕행 보다는 잡스러운 욕심으로
잠깐씩 당신을 잊게됩니다.
통회하오니 성령의 빛을 내려주옵소서.
시들시들해 지는 영혼에 물을 주시고
잡념의 잡초들일랑 깨끗이 손질 해 주시옵소서.
2)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나의 모후여, 나의 어머니시여, 나는 오로지 당신의 것이옵니다.
내 가정과 모든 행동과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내 어머니 당신께 아낌없이 봉헌하옵니다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주시옵소서.
3)취침 전 기도
예수님께서는 내 머리를 붙들어주시고,
성모님께서는 내 발을 붙들어주시고
천사들께서는 네방 귀퉁이마다 옹위하여 주시며
열 두 사도들께서는 문간을 지켜주시옵소서. 아멘.
4)묵상수첩에 적힌 단상
-언제나 자비하신 하느님께 의탁하자. 참고 기다리자. 희망을 갖자.
-안전한 길을 택하자. 함정에 빠질까 두렵구나.
슬기의 진을 쳐두자. 적의 공격은 간교해서 자칫 속기가 쉽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지 말자. 내 힘은 약하고 적은 포악하다.
그래도 싸워야지. 싸우면서 믿어야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나를 믿는 것이다.
5)임종 전의 마지막 기도(산소호흡기 꽂은 상태에서)
-거룩한 십자가, 은총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가, 복된 십자가 감사합니다.
저를 죄에서 구해 주소서.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만족합니다. 넘치고 넘칩니다.
당신의 사랑 마음 깊이 잘 간직하겠습니다.
머리 속에 잘 저장해 두겠습니다.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의 고통에도 함께하여 주십시오.
-이젠 마감을 해야 해. 내가 먹을 것을 다 먹었으니까.
지금은 최고의 고비로서 더 노력해야만 해
* 이 시의 분위기가 약간 슬프긴 해도 귀여운 내용 아닌가요?
고즈넉한 동네 골목길을 지나 바다로 가는 산책길에서
어느 날 떠올려 본 저의 단상이랍니다.
* 꽃구름밭이라는 이름을 지닌 우리 글방 앞 정원에도
요즘은 일명 함박꽃이라 불리는 작약이 한창이고..
다른 곳에는 창포, 마가렛, 영란화도 많이 피어있습니다.
숲에는 아카시아 향기가 날리고 있고요.
꽃과 나비가 있고 새가 있고 하늘이 맑은 그런 날,
한 마음의 기도소리가 성당 안을 꽉 채우는 그런 순간에
문득 '천국'을 맛 보곤 합니다.
우리 수녀님들이 가꾸는 밭 이름 들어보실래요?
무럭이네, 싱싱이네, 쑥쑥이네, 당근이네, 푸름이네, 하늘이네,
이삭이네, 연두네, 비아네, 대롱이네, 깍지네, 탐나네, 모퉁이네,
신선하네, 한님텃밭, 초록이네, 알아크네,
그리고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픈 이들을 위해 '서있는 텃밭'도 있는데...
여기선 주로 상추를 키우지요.
저도 오며 가며 관심 갖고 보라고 서있는 텃밭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요.
* 5월에는 이런 저런 행사도 많고 손님들도 많이 오곤 합니다.
그동안 저는 <길>동인들과 함께 고령의 대가야박물관을 견학하였고
경주의 근화유치원 학무보들을 위한 특강을 갔을 적엔
양동마을, 옥산서원으로 문화탐방도 하였답니다.
5월7일엔 분도출판사 설립50주년을 위한 감사미사에도 다녀왔는데
기념도서전시회에 1979년에 나온 이해인의 시집 <내 혼에 불을 놓아>와
1983년에 나온 첫 산문집<두레박>도 있어서 반가웠지요.
* 지난 4월 중순 통영에 있는 용남초등학교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그곳의 선생님 학무보들 대상으로 강의 한 일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5월13일에는 2009년 이후 거의 3년 만에
44명의 우리집 예비수녀들에게 체험적인 특강을 할 것이라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 가득하답니다.
5월19일 저녁엔 서울 제기동 성당 7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미니 특강과 시의 나눔을 하고
6월5일은 목원대학교 헤르만 헤세 컨서트에서
구름에 대한 시낭송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 포콜라레 공동체가 발간하는 <그물>이란 잡지에서 청탁이 와서
제가 '어머니가 바치시던 기도'를 단편적으로 정리하여 실었는데
많은 분들이 감동 받았다고 하길래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13개의 동시낭송이 담긴 음반<엄마와 분꽃>이
분도출판사에서(음악:뮤직마운트 디자인: 연두와 파랑)
5월 말에 나오면
꼭 한 번 눈여겨 보아주시고 귀로 들어주셔요.
김미라(방송작가), 최인호(소설가), 손
석희(아나운서), 이영애(배우)등이
간단한 추천글을 적어주기도 하였답니다.
음반 그림작업도 해주신 금동원 화가의 부군이 운영하는 연두와 파랑 출판사에서
여러 종류의 그림엽서, 메모지, 명함, 책갈피 등을 만들어주시어 풍족하게 쓸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어라도 나누어 줄 게 많은 저로서는
갑자기 산타클로스를 만난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 요즘 저의 서가에는 나태주 시집<황홀극치>(지식산업사),
윤성근 시집<나 한 사람의 전쟁>(마음산책),
류시화시집<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문학의 숲),
<파페 포포 기다림>(심승현/홍익북스),
<왜 사랑하느냐고 묻거든>(김남조 고은 외/문학사상),
<수집미학>(박영택/마음산책),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장영희/예담),
<반통의 물>(나희덕/창비)
<당시,황금빛 서정>(유병례/천지인),
<그래도 길을 가라>(조셉 브루착 엮음/북스넛),
<시인의 서랍>(이정록/한겨레 출판) 등이 꽂혀 있으며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 해마다 더욱 심해지는 더위...로 여름을 어찌 견딜까하고
저는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다들 몸 건강 마음 건강 잘 챙기시고 평화로우시길 기도할게요. 안녕히!
첫댓글 찬미예수님,,,수녀님의 글에서 평화를 얻습니다,,~~!!
무척이나 기도의효험이 있으셨던 어머님의 고즈녁한 자태가 떠오릅니다..벌써 오년이나 되었나봅니다..꽃들이피고 어둠을 헹구는 새벽 산새의소리가 더욱밝은 날들인데..잘지내신다니 저도 기쁨니다..건승하십시요..
수녀님의 글, 옆에서 말씀 하시는 것 같아요~
수녀님 안녕하세요. 수녀님 소식 궁금하였는데 자세히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 봄날 수녀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그분의 신앙이 참으로 본받고 싶습니다.
수녀님, 김순옥 펠리치따스 할머님의 기도가 특히 아름답네요. 어제 (5월 13일)이 여기 미국에서는 Mother's Day였답니다. 세상 안에서 저렇게 훌륭히 하느님을 사랑하시고 가족을 사랑하시고... 존경스러워요. 수도자같은 펠리치타스 할머님과 수도자 딸 구름 수녀님을 위해 기도할게요!
여전히 고우시고, 맑은 웃음을 지니신 수녀님 .... 그 모습 뵐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건강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오랜만에 와서 수녀님글을 보고나니 내마음이 아주 잔잔하게 편온이오내요 항상건강하셔요~
수녀님의 계절 편지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얼마전에 시어머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드렸기에.. 수녀님의 '어머니의 기도' 가 가슴에 더 깊게 새겨져요. 어머니를 극진하게 사랑한 로렌조는 얼마동안 슬픔 속에 지내게 될 듯 해요..
수녀님 하얀조가비입니다 수녀님과바다새이모님이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
하느님 사랑안에서 성모님 품안에서 올 여름 잘 보내실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수녀님 넘 바쁘셔서 아픈것도 잊으신것같아요. 무리 하진 마세요. 항상 피곤함 으로 부터 질병이 침범 하더군요. 늘 건강 하시고 더 좋은글 많이 많이 뽑아내시길 바랍니다. 수녀님 보고싶어요.
어머님의 기도 마음 속에 새기며 지나가는 5월을 붙잡아 봅니다 수녀님 미소가 영원 하시기를 빕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수녀님께서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흰구름수녀님..여전히 바쁜일정 보내고 계시는 소식 잘 보았습니다...
유월의 숲을 즐기는 좋은유월이 되시길 바랍니다..
수녀님의 글을 보며 나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6월이네요 제법 더운 날씨예요 수녀님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어머니는 언제 불러도 가슴뭉클합니다. 수녀님 건강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곁에 함께 해주심, 수녀님 생각하면 고향이 떠오릅니다 제가 태어난곳은 전라도함평 수녀님 계시는곳과는 너무다르지만 이곳 서울 종로구 가회동이 수녀님 고향이시란 말씀에 저도 이웃이 된 느낌입니다 이번주에 뵐수 있다는 기쁜소식이... 고운모습 기다려 집니다
오늘 반가웠는데 시간이 짧았지요?
다음 언제 화실에도 한번 갈게요
수녀님 참말 반가웠습니다 !!!
짧았지만요 행복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여줄게 없는마음이지만 준비하며 기다렸던 그 시간까지...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그냥 저희 성당식구들과 뒷풀이하며 꽃무늬손수건에 담긴 선물로 이야기 꽃을 피었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뵈올때까지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가장 슬폈을때를 다시 떠올려보네요... 그렇게 울어본적이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건강하시길 기도드리며 언제나 좋은글 읽고 삽니다..
수녀님글을 대할때면...다시금 긴장과 재충전이 됩니다. 즐...이쁜글과 내용으로 소박한 감동을 주는 울수녀님...다위조심하세요.
수녀님 글을 읽으니 저도 엄마가 너무 그립고 보고싶어져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빌께요...
수녀님의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 합니다!수녀님 건강하시길 기원 합니다!
수녀님 ^^언제나 웃음띤 얼굴 보여주셔서 생기를 얻어 갑니다 . 건강을 기원합니다^^
단비 은비 금비...은총과 축복의 비...주님께 찬미드리며...
생명을 주시는 참 좋으신 주님께서는 우리 수녀님의 건강 보살펴 주소서!!!
구름수녀님~~^^*
건강한 모습 빨리 뵙고 싶어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