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사진설명 : 진해만에서 러시아 박틱함대를 기다리는 일본 연합함대. "금일 하늘은 맑고 파고는 높다.". 1905년 5월27일 새벽, 러시아함대가 대마도 해협에 모습을 나타냈 다. 발틱해를 출발한지 7개월, 지칠대로 지쳐 목적지 블라디보스톡을 향 해 북상중이었다. 초계함으로부터 '적함 발견' 전보를 입수한 도고 헤이 하찌로 일본연합함대사령관은 "즉시 출동, 격멸하겠음"이라는 전문을 황 궁으로 보냈다. '금일…'은 바로 전문의 첫 구절이다. 한국 진해만에서 남하한 일본함대는 단종진으로, 북진하는 러시아 함 대는 2열 종대로 부딪쳤다. 오후 1시55분, 도고의 함대기에 Z자 깃발이 펄럭였다. "황국의 흥망이 이 일전에 달려있으니 전원 분발해달라"는 의 미였다. 오후 2시5분 발틱함대 정면에서 대반전을 개시, 갑자기 정자형 으로 포진을 바꾸고 일제히 함포사격에 돌입했다. 승패는 싱겁게 1시간 만에 결정났다. 발틱함대 38척 가운데 19척이 침몰했고, 사령관 로제스 트벤스키를 포함해 무려 6,100명이 포로로 잡혔다. 아시아 작은 나라 일본이 유럽의 노대국 러시아를 거꾸러뜨리는 순간 이었다. 일본으로선 미국 페리제독의 '흑선' 출현에 의해 온나라가 거의 공황상태에 빠지고, 반강제 개항을 한 지 50년만에 유럽의 열강들과 어 깨를 나란히 함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일본이 우수한 도자기를 가져 왔을때 우리는 그들을 야만국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수한 총과 칼로 러시아를 격파했을때 비로소 우리는 그들을 문명국이라고 불렀다." 윈스 톤처칠의 이 말은 당시 서양에 주었던 충격이 어떠했나를 알수 있다. 일본의 승리는 러시아의 남진을 막아 열강대열에 끼지못하게 하려는 영국의 전략에 절대적으로 힘입은 것이기는 했다. 전황이 불리함을 느낀 러시아 니콜라이황제는 북해에 주둔중이던 발틱함대의 동해 파견을 위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게 해달라"고 운하 운영권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 에게 요청했다. 1902년 영-일동맹을 맺은 바 있는 영국은 당연히 이것을 거절했고, 발틱함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까지 지구 반바퀴를 돌아야했다. 이들이 대마도 근처에 접근했을 때는 7개월여에 걸친 항해 로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것이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에서 "일본사람들에게 러시아는 하루아침 밥먹기다"라고 등장인물의 말을 통해 소개되고 있 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도 러일전쟁이 얼마나 화제가 됐는지를 짐 작케해준다. 1905년 5월 27일의 해전은 20세기사의 전개를 예고하는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해전의 결과 이 해 9월 미국 포츠머스에서 강화 조약이 체 결됨으로써 한반도와 대륙 진출에 대한 일본의 발언권은 세계의 공인을 얻었다. 10년 전의 청일전쟁 승리에 이어 러시아마저 물리침으로써 동아 시아에서 일본을 거추장스럽게 하는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 나 이같은 '견제 부재의 상태'가 제국주의 국가 일본에겐 불행의 씨앗이 었다. 한국 식민지화, 만주국 건설,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1945년 미주리 함상에서의 무조건 항복으로 이어지는 광란의 역사 길로 들어서게 했던 것이다. 러시아로선 패배의 파탄 속에 혁명의 기운마저 가속화됨으로써 짜르체제 종말의 서곡이 됐다. 조선일보 2001년 1월 25일 (기자 : juno@chosun.com)
한국 풍자한 서양만화
1871년 서구인이 그린 한국에 관한 최초의 시사만화가 발견됐다. 영국인 찰스 버그만이 일본에서 발행한 영문화보집 ‘The Japan Punch’ 1871년 9월호에 실린 이 만화는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한복 차림에 부채를 든 채 거만하게 걷고 있는 한 서양인을 동료서양인들이 환호하며 반기는 장면.
사진설명 : 프랑스 언론인 비고가 1904년 그린 만화. 청일전쟁으로 청나라를 굴복시킨 일본이 조선을 짓밟으며 러시아와의 전쟁에 나서는 당시 정세를 한 눈에 보여준다.
구한말 서양인이 그린 한국관련 삽화를 수집 연구하는 명지전문대 백성현교수(명지대-LG연암문고 운영위원)는 최근 프랑스 고서점에서 이 만화를 포함해 한말 개화기 서양인들이 그린 한국 관련 미공개 시사만화 20여점을 입수, 30일 공개했다. 대한제국의 멸망을 암시하듯 저승사자 모습을 한 고종황제, 일본과 러시아가 찌른 창에 찔린 조선인, ‘코리아’라는 파이를 앞에 놓고 서로 군침을 삼키고 있는 미국 영국 등 열강들…
만화 내용들은 한국인 입장에서 봤을 땐 다소 굴욕적이기까지 하지만,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 앞에 풍전등화 같던 당시 조선의 운명을 3국인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를 준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역시 찰스 버그만의 1871년 만화. 백성현교수는 “그림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태생 영국인 보도사진가 펠리스 비토』라며 『그는 신미양요 때 미국원정대의 공식사진가로 참여한 일종의 종군사진가였다”고 밝혔다. 비토가 당시 촬영한 강화도 일대의 전투사진들은 외국인이 찍은 가장 오래된 한국관련 사진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 시사만화의 효시로 알려진 것이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이도영의 만화임을 감안하면 이보다 38년 앞서 서양인에 의해 한국문제가 시사만화로 그려진 셈이다. 백교수가 이번에 입수한 자료 중에는 조선왕실의 상징인 일월곤륜도를 배경으로 고종을 마치 도깨비처럼 그려놓은 1904년 일본작가 아다라마 카로의 그림도 포함돼 있다. 백교수는 “한반도를 우회적으로 비하시킨 만화들은 많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고종을 모독한 삽화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그림은 ‘먹이감이 된 대한제국 황제’라는 제목으로 1904년 2월 20일 프랑스 시사삽화 전문지 ‘L’Assiette au Beurre’(이권을 뜻하는 ‘버터 접시’)에 실려 있다.
이번 삽화들 중에는 2,3,4칸 등 다칸 연결만화, 일부를 세우면 전혀 다른 장면으로 바뀌는 입체 시사만화, 50매 한정본 시사만화 등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 작품들도 포함돼 있어 주목된다. 다칸연결만화는 4컷 신문 시사만화의 원조격이다. 한편 백교수가 이번에 입수한 자료 중에는 이미 1890년대 초반에 한국인의 시사만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1894년 조선을 여행하고 다음해 ‘KOREA’라는 책을 펴낸 독일인 헤셀 바르텍은 이 책에서 “나는 언제가 한 한국인이 그린 정치만화를 본 적이 있는데 고종을 기형적인 인간으로 묘사한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현재 그 실물은 없지만 우리나라 시사만화의 역사도 최소한 15년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이한우기자 : hwlee@chosun.com) 2000년 5월 30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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