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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 ‘청일하향주’ |
우리나라에 복분자(覆盆子:산딸기)를 주원료로 한 술들이 의외로 많다. ‘병약하던 아이가 스님의 권유로 산딸기를 장복한 후 소변을 보니 요강이 뒤엎어질 정도로 건강해 졌다’는 민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복분자는 퍽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타 왔다. “양기를 북돋우고 피를 맑게 해준대…. 머리털을 희지 않게 하는 미용 효과도 있다고 하는데 좋겠지 뭐.” 민담뿐 아니라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을 통해 복분자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다 보니 이를 이용한 술도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그러나 복분자에 여러가지 한약재를 첨가해 만든 민속주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강원 횡성군 (주)원앤원·하향주가에서 생산중인 ‘청일하향주(晴日荷香酒)’는 복분자를 주원료로 새로운 맛을 찾아낸 알코올 도수 18%의 술이어서 애주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청일하향주는 누룩에 국화꽃, 약쑥, 인동초 등을 섞어 전통적인 방법으로 빚어내는 대구 달성의 하향주(荷香酒)와 이름이 비슷하나 생산 공정 및 맛이 전혀 색다른 술이다.
#아름다운 빛깔과 7가지 맛 어우러져
새색시의 볼처럼 발그스름한 빛깔의 이 술은 (주)원앤원 대표인 이형익씨(55)가 전통비법을 바탕으로 3년여간 연구 끝에 제조에 성공, 1999년 첫선을 보인 술로 복분자를 비롯, 16가지 한약재가 첨가돼 있다.
남성호르몬 분비촉진과 양기, 음기 모두를 북돋워준다는 ‘사상자’, 조루나 유정에 좋은 ‘토사자’, 강장에 좋다는 ‘오미자’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여러가지 약재를 첨가하다 보니 쓴맛 단맛 신맛 등 7가지 맛이 공존하는 듯한 오묘한 맛을 낸다. 그 중 포도당, 과당, 펙틴과 레몬산, 살리실산, 카프론산 등 유기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복분자의 특성으로 인해 단맛이 돋보이고 와인과 같이 부드러워 여성들의 취향에도 맞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전통의 맛을 살리기 위해 주로 횡성지역에서 재배하는 토종 복분자 사용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복분자 사용량만 연간 4t에 달한다.
청일하향주는 95%의 주정에 물을 부어 희석한 다음 복분자와 한약재를 첨가해 6개월간 숙성시켜 침출한 원액에 각종 감미재를 첨가해 만들어진다.
이형석 대표는 “절묘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가미·여과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쓴맛을 줄이고 향을 높이기 위해 연간 5t가량의 배를 구입, 즙을 낸 후 숙성시켜 사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그는 청일하향주의 맛을 결정하는 몇가지 중요 비법은 절대 공개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특히 까다로운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3년 전부터 굴지의 주류회사 연구실에서 25년간 일해온 주조사를 상무로 영입, 뒷맛이 깨끗하고 마시고 난 후 숙취감이 없는 현재의 ‘청일하향주’를 만들어 냈다.
#와인처럼 부드러워 여성들도 좋아해
이대표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자랑은 술맛을 배가시키는 청정한 물이다.
(주)원앤원·하향주가의 자동화 생산 시설이 들어서 있는 곳은 횡성군 청일면 갑천리 태기산 자락이다.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군에 대응했다는 태기산(해발 1,261m) 주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은 최고의 물맛을 자랑한다. 게다가 청일면 일대는 횡성댐 건설로 대부분이 상수원 규제를 받고 있어 오염원이 원천 차단돼 양질의 물을 계속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곳이다.청일하향주를 접해본 애주가들은 “가족이 함께 모여 회 등을 즐기며 부담없이 마시기에 적당한 술”이라고 입을 모은다. 330㎖(4,500원), 500㎖(8,300원) 두가지 종류로 구성돼 있으며 전국에 13개 지사와 60여개 대리점이 있다. (033)342-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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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와송(瓦松)주 |
우리나라에는 삼한시대 이래로 가문마다 전통적인 비법으로 만든 술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그 수가 수백여종에 달했다고 한다. 이런 술들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에 멋과 여유를 더해 주었다. 경기 양평 (주)와송제의 ‘와송주’. 진시황제도 몰랐다는 신비의 불로초 와송(瓦松)으로 빚은 이 술은 깊고 순한 듯하면서도 은근하게 올라오는 알싸한 취기로 인해 흥취가 있으면서도 숙취없이 빨리 깬다.
#와송을 천연 그대로 발효 숙성
와송제의 와송주는 흔히 스스로 누운 생소나무의 둥치를 말구유 모양으로 파내고 그 속에 술을 빚어 넣어 진흙으로 봉하여 익혔다는 와송주와는 다르다. 신비의 약초 와송을 넣어 발효시켜 빚은 기능성 약주인 것이다.
와송은 옛날 궁전이나 사찰 등 오래된 기와지붕 위에서 자라는 다년생 약초다. 또 바위에서도 자라기 때문에 석송(石松)이라고도 불린다. 길이는 30㎝ 정도 된다. 한방고서인 ‘본초강목’에는 ‘와송은 항암 효과가 있는 본초(本草)로 해열, 지열, 간염, 습진, 화상 등에 특효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현대 의학에서도 현재까지 알려진 토종 항암약초 40여종 가운데 와송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992년 와송의 축출물인 ‘아플라톡신 B1’ 등이 발암물질의 발암성을 줄이고 암세포를 파괴하는 강한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후 와송주는 항암효과에 탁월한 전통 민속주로 주목받고 있다.
와송주는 와송을 천연 그대로 발효, 숙성해 만든 약주로 특허출원한 제품이다. 375㎖짜리 1병당 와송 함유량은 3.7%다. 가격도 3,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맛과 향이 살아 숨쉬는 건강주
와송주는 (주)와송제 이상식 사장(54)의 증조 할아버지가 손님 접대용으로 술을 담그기 시작한 것이 효시다. 100년 넘게 가문 대대로 전해진 비법을 간직한 이사장 어머니 정경사씨(85)의 67년 된 양조 솜씨는 2000년 안양과학대학과의 산학공동개발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여기에 현대식 공장 설비와 함께 국내 유일하게 농업환경 21 ISO인증을 받으면서 최고의 건강 기능성 전통주로 거듭났다. 다른 전통주와 달리 판매망이 비교적 탄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기도가 우수관광상품으로 육성하고 있는 가운데 군납과 함께 일본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청정 지역 양평 세월리 맑은 물로 빚은 와송주. 감미롭게 혀끝을 돌며 부드럽게 목을 타고 내리는 그 느낌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전해 준다. ‘맛과 향이 살아있는 문화를 담은 술’을 표방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와송주는 13도로 다른 약주와 마찬가지로 차게 해 마시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좋은 안주감은 생선회다. 여기에 물 맑은 양평의 자랑거리인 담백한 붕어찜이나 민물고기매운탕도 찰떡 궁합이다. |
김제 백화주 |
꽃을 센다. 산하 지천에 널려 있는 꽃이다. 모란 등꽃 절굿대꽃 때죽나무꽃 고들빼기 쥐똥나무꽃 삐삐 싸랑부리꽃 구절초 감국 코스모스…. 오십을 헤아리기도 전에 힘이 팽긴다. 그런데도 100가지의 꽃을 고집한다. 초봄 산수유와 매화로부터 시작된 꽃걷이는 늦가을 국화류인 감국에 이르기까지 연중 셈하듯 치러진다. 오직 백화주라는 술 한동이를 담가내기 위한 고행이다.
#상투 튼 훈장 사서삼경 읊는 아이들
백화주를 만나러 가는 날 ‘혼치레’를 했다. 분명 전북 김제시에서 10여분 거리라고 알던 터여서 찾는 길을 만만하게 생각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두어차례 헤맨 끝에 “저 길로 가다보면 큼지막한 기와집이 보일껴”라는 촌로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윽고 나타난 학성강당. 조선 성리학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개인서당이다. 지척에 문명이 법석을 떨고 있지만 이 곳은 여지껏 조선시대 선비들이 학문을 닦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주심포 팔작지붕의 한옥이 미려하게 펼쳐진다. 훈장은 상투 틀고 치포관을 쓴 채 모시한복을 입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하얀옷을 챙겨입은 아이들의 입에서는 옥구슬 같은 논어 구절이 재잘재잘 기와담장을 넘어 황금벌판으로 퍼져나갔다. 방학 때면 100여명의 아이들이 찾고 요즘은 20명 정도 상주하며 사서를 배운다. 학비는 없다. 훈장은 화석 김수연옹(80). 기호학파의 맥을 잇고 있는 그는 조선 성리학의 뿌리를 고독하게 지켜내고 있다. 유학을 전파하는 일은 화석옹이 하고 서당살림은 막내아들 김종회씨(42)가 맡는다. 40대 도인 종회씨는 백화주를 담글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술
종회씨는 백화주를 술 중의 술이요, 그중의 극치라고 평했다. 술은 술이로되 들이는 공력과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때문인가. 백화주는 이 지구상에 오직 학성강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술이다. 판매되지도 않을 뿐더러 자주 빚지도 않는다. 순전히 제사용과 접빈용으로 쓰일 뿐이다. 학성강당을 찾은 날 역시 백화주는 한모금도 구경할 수 없었다. 1년에 쌀 한가마 분량만 술을 빚기 때문이다. 그 양은 60병 정도에 그친다.
학성강당에서 250년 전부터 가양주로 전수된 술은 크게 3가지다. 100가지 꽃을 넣는 백화주와 100가지 약초를 재료로 한 백초주, 백화주와 백초주를 섞은 백초화주다. 그 중에 백화주는 백미라 할 수 있다. 백화주를 완성하려면 최소한 80일이 필요하다. 술을 빚을 때 쓰는 물은 백가지 약초를 바짝 말린 뒤 이를 가마솥에 넣고 청정수를 부어 10시간 달인 것이다. 한방에서 극독약으로 취급되는 초오, 부자, 상륙, 대황 같은 약재들도 한움큼씩 들어간다. 백화주가 극독약을 피하지 않는 것은 상생상극의 조화를 이루도록 음양오행과 사유(보양 보음 보혈 보기)를 조화시키면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하 3대명주 중 으뜸
백화주 탄생은 비닐봉지에 일일이 담긴 백가지 마른 꽃잎들이 백초와 함께 세번 발효를 마친 술에 한줌씩 들어가면서부터다. 백초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백화를 구하는 것은 더 힘들다. 약초는 살 수 있지만 꽃은 계절따라 활짝 핀 적기에 품을 팔아 따야 한다. 꽃은 건조시키는데 말리면 아주 작아지므로 많이 채취해야 한다. 백가지 꽃은 열거하기도 어렵다. 자생지를 찾아 산과 들을 쏘다녀야 하고 한두송이 꺾어서는 안되며 가장 보기 좋을 때 따야하니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다. 1년내내 약초와 꽃을 모으고 공정까지 합쳐 4차 겹술을 하는 술은 백화주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종회씨는 “백화주는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송화대력주와 불로주와 함께 천하 3대 명주 중 첫번째로 꼽힌다”고 말했다. |
감자로 빚은 평창 서주 |
‘러시아에 보드카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평창 서주(薯酒)가 있다!’
감자를 주 원료로 만든 세계 명주는 의외로 많다. 보드카뿐 아니라 스웨덴의 스납스, 핀란드의 코스텐코르바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감자술이 체계적으로 생산되는 곳은 평창지역밖에 없다.
‘감자바우’로 불릴 정도로 감자가 많이 나는 동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180여년 전인 조선 순조 때 국내에 처음 들어온 감자는 짧은 시간내 서민들의 식탁을 점령해 나갔다. 생육기간이 짧고 수확량이 많을 뿐 아니라 영양분 또한 풍부했기 때문이다.
척박한 산중에서 밭을 일궈 생계를 이어가던 화전민에게 감자는 없어서는 안 될 구황작물이었다. 특히 강원 산간지역의 경우 타 지역처럼 다른 곡물이 많이 생산되지 않는 터라 술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감자를 원료로 빚어왔다.
문헌상 기록이 없어 서주(감자술)의 전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감자가 국내에 들어온 초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양주 형태로 전해져오던 서주는 지금의 막걸리와 같은 탁주였다.
그나마 일제 때 밀주단속으로 명맥이 끊겨 한때 평창지역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후 주민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가던 서주는 민속주 제조에 뛰어든 오대서주양조 홍성일씨(65·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의 노력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지역 노인을 찾아다니며 제조법을 복원해낸 홍씨는 6년여간의 연구 끝에 1990년 비로소 서주를 맑은 청주 형태의 약주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서주는 감자와 쌀을 7대 3의 비율로 혼합해 빚는다. 누룩은 이 둘을 합한 것의 20%가량을 넣게 된다.
찐감자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다음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 담근 밑술을 부어 약 보름간 숙성시키면 감자술이 만들어진다.
다시 여과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쌀로 만든 청주보다 약간 짙은 녹황색의 서주가 완성된다.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온도를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에 따라 술맛이 달라진다.
감자술은 약간 쌉쓰름하면서도 뒷맛이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은은하게 취하고 마신 후 뒤끝도 깨끗해 와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알코올 도수는 13도로 40도를 넘나드는 다른 민속주에 비해 낮은 편이다. 서주 제조자인 홍씨는 “서주는 비타민C뿐 아니라 칼륨·인산 등이 풍부한 ‘땅속의 사과’로 만든 와인으로 보면 된다”고 말한다.
술맛을 배가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청정한 물이다. 평창군 진부면은 예로부터 삼신산(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국내 제일의 명산으로 꼽히는 오대산 자락에 인접해 있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한강의 발원지로 제일 좋은 물로 손꼽은, 오대산 우통수에서 흘러내린 물(오대천)이 산간계곡을 따라 굽이치는 곳이다.
또 이 지역엔 북한의 삼방약수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제일 간다는 방아다리약수가 있어 최고의 물맛을 자랑한다. 결국 고랭지에서 재배돼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 감자와 맑은 물이 만나 오묘한 술맛을 내는 것이다.
평창지역 주민들은 “감자술은 알칼리성 발효주여서 산성체질화 되어 있는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술”이라고 귀띔한다.
메밀부침이나 감자전, 산채 등을 안주 삼아 즐기기에 적당한 술이다. 375㎖ 한병의 공장도가격은 1,600원 선이나 음식점 등에서는 4,000~5,000원에 팔고 있다. (033)335-7609 |
경남 함양 지리산 국화주 |
‘술에 취하고 향기에 취한다.’
야생 들국화와 한약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남 함양의 지리산 국화주. 전통 명주답게 술잔을 들자마자 국화향기와 함께 달짝지근한 맛이 혀끝을 감아온다. 지리산을 끼고 있는 함양은 예로부터 산 좋고 물 맑은 청정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이면 지리산 자락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야생국화는 이곳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자란 이 국화가 전통주 원료로도 한몫을 하고 있다.
지리산 국화주는 늦가을 서리를 듬뿍 맞은 야생 들국화만을 고집한다. 들국화는 다년초로서 그 종류는 많지만 그 중 식용과 약용으로 쓰는 감국(甘菊)을 으뜸으로 친다. 감국은 줄기가 붉은색을 띠며 맛이 달고 향기가 높기 때문이다.
국화주는 매년 11월 꽃송이가 손톱만한 산국이나 감국을 채취, 생지황과 구기자, 찹쌀 등을 섞어 빚는다. 국화주는 자양강장제, 두통치료제 등으로 옛날에는 가정에서 상비약처럼 즐겨 담던 술이다.
경남 함양은 전통적인 약주를 빚는 방법에 가양주(家釀酒)로 국화주를 제조해 왔다. 그러나 일제시대 우리 문화 말살정책으로 명맥이 거의 끊길 뻔하다가 최근에 복원되어 양산체계를 갖추게 됐다.
국화주는 지리산 자락의 맑고 깨끗한 물, 서리맞은 야생국화, 구기자, 생지황, 찹쌀, 누룩 등이 주원료로 4단계의 양조공정을 거쳐 제조된다.
우선 찹쌀을 깨끗이 씻어 시루에 찐 다음 식힌다. ▲누룩을 섞어 1차발효를 시켜 밑술을 만들고 3~5일쯤 지나 다시 찹쌀과 누룩을 섞는다. ▲국화와 구기자, 생지황 등 한약재를 달인 물을 넣어 2차 발효시킨다. ▲7~8일 뒤에 술을 여과해 세차례에 걸쳐 살균처리한다. 순수 우리농산물을 원료로 쓰고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술을 빚는 데 걸리는 기간은 날씨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10~15일 정도. 장인의 손을 거쳐 나온 국화주는 담황색을 띠고 그윽한 향이 코 끝에 스며든다. 알코올농도는 16%로 부드러우면서 달짝지근한 맛을 내 여성들이 즐겨 찾는다.
국화는 예로부터 상서로운 영초로 인식되어 왔다. 이로 인해 국화주는 세시음식으로 인기가 높았고 중국에서도 일찍이 명주로 꼽아왔다. 중국에서는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에 국화주를 즐겨 마셨다. 이날 술을 마시면 재앙을 쫓고 무병장수한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국화주는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신하들에게 즐겨 하사한 술로 알려져 있으며 TV 드라마 ‘용의 눈물’ 등에서 수차례 방영되기도 했다. 옛 문헌에서도 1,500년간 전수되어 온 국화주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 등에는 국화가 청혈해독 약리작용이 있으며 고혈압 방지뿐만 아니라 근육과 뼈를 강화해주고 눈을 밝게 해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국화주를 연명주 또는 불로장생주라고 부르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소주, 맥주와 달리 안주도 기름진 육류보다는 담백한 안주가 어울린다. 광어, 우럭 등 횟감과 참치구이 등 생선구이와 궁합이 잘 맞는다. 명절선물로 인기를 끌면서 요즘은 추석을 앞두고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완성된 국화주는 고유상표가 새겨진 도자기와 병 등에 담겨져 다양한 형태와 규격으로 판매된다. |
충북 보은 구병마을 송로주 |
속리산 천황봉의 정남쪽에 위치한 구병리는 산세가 수려하고 물과 공기가 깨끗해 장수마을로도 유명하다. 송로주에 취해 한때 농사일도 접고 송로주 전수에 젊음을 다 바친 임경순씨(50). 그의 직책은 ‘보은 송로’ 사장에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3호 송로주 전수자’다.
#솔 향 진하게 밴 전통주
송로주는 말 그대로 소나무를 원료로 만든 술이다. 소나무는 원래 불로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렇다보니 양조에 있어서도 다른 식물보다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송로주는 알코올 도수 48%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술 가운데 가장 독하다. 소나무 관솔의 특유의 향이 혀를 감싸는 맛이 알싸하다. 이런 알싸한 맛은 목구멍을 타고 가슴까지 전해진다.
예부터 송로주를 마시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고 음식법에 이르길 관절, 신경통에 좋고 허약한 다리가 낫는다는 기록이 있다. 독주라 금방 취하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언제 깼는지 모를 정도로 뒤끝이 상쾌하다. 임씨는 1999년 연간 30㎘ 규모의 제조시설을 갖추고 본격 생산에 나섰지만 여느 전통주와 마찬가지로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데 한계를 절감한다. 하지만 임씨는 “우리의 전통주는 저급한 술이 아니다. 적게 팔더라도 제대로 된 맛과 향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뒤늦게 빛 발한 송로주
송로주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신형철 할머니(98년 작고)에 의해 발굴된 민속주다. 신씨는 충남 서천군 출신이다. 송로주 빚는 방법은 신씨 외조모인 정금이씨가 지었다는 고조리서(古調理書)인 ‘음식법’에 기록되어 있다. 한글 필사본으로 제작연대는 1880년대라고 한다. 술 15가지, 병과 2가지, 음료 1가지, 반찬 15가지의 음식조리법이 소개돼 있다.
이 책은 “쌀 한말 하려면 솔옹이를 생률처럼 쳐 고이 다듬어 놓고 섬누룩 넉되 넣고 물 서말 부어 빚었다가 멀거커든 소주를 여러물 갈지말고 장작때어 고으면 맛이 좋고 백소주를 받아 먹어야지 절통도 즉시 낫느니라”고 송로주에 대해 적고 있다.
이처럼 묻혀 있던 송로주는 신씨가 1993년 송로주 빚을 곳으로 구병리를 찾으면서 맥을 잇게 된다. 임씨는 이때 신씨를 만나 제조법을 전수받는다. 그러나 신씨가 갑자기 타계하면서 하루아침에 스승도, 동업자도 잃어버린 그는 낙심에 빠진다. 하지만 임씨에겐 행운이 따랐다. 신씨가 타계하기 2개월전 기능전수자로 지정돼 전통을 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송로주는 고서 속의 술이 아닌 실물로 존재하게 됐다.
#송로주 글자 하나에 2백만원?
송로주를 제조하려면 우선 누룩과 멥쌀가루를 1대1로 섞고 섭씨 30도에서 사흘동안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그런 다음 구병산에서 나오는 솔옹이를 얇게 썰고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茯令)을 알밤만하게 깎아 엿기름과 함께 섞는다. 쌀 한가마에 솔옹이는 2㎏ 정도 들어간다. 2주 정도 발효된 술을 송절주라 하며 이것을 배주머니에 넣고 짜서 은근한 장작불로 내리면 송로주가 된다.
송로주란 이름은 1994년 두산백화에서 이미 상표등록해 놓는 바람에 탄생 자체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보은군의 지원과 협조, 두산백화측의 양보로 생각보다 쉽게 전통술의 이름을 되찾았다. 하지만 소송제기에 6백여만원이 들어가 송로주 글자 하나가 2백만원짜리가 된 셈이다.
술 값은 다소 비싼 편. 400㎖짜리가 2만3천원, 700㎖ 3만5천원, 400㎖×400㎖는 4만5천원, 400㎖×700㎖는 5만6천원이다. (043)542-0774 |
해남 ‘녹향주’ |
나락이 여물어 가는 푸른 들판과 그 가운데를 가르는 황톳길이 어울려 한폭의 그림같다. 녹향주가 탄생하는 전남 해남군 삼산면 녹산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 곳이 술도가구나’하는 예감이 드는 집이 있었다. 코 끝을 스쳐가는 술 내음을 따라 자동차도 ‘술익는 그 집’ 마당으로 그대로 드라이브인.
한평생 녹향주를 빚어온 조현화씨(72)가 차문을 열어주면서 “저 들판 곡식들도 우리 집 술냄새를 맡고 크니까 훨씬 더 잘 자란다”고 술자랑부터 한다.
#남쪽에서 맛보는 ‘북한 전통주’
녹향주는 6·25때 북한에서 내려온 술이다. 함안조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황해도 장연군 신한면 군산리가 원산지. 그런 녹향주가 한 피란민 일가 덕분에 해남에서 54년째 애주가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조씨 집안은 1·4후퇴 때 젖먹이를 포함, 모두 100여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철수하는 미군 군함을 타고 목포로 내려왔다. 정부에서 진도 등에 난민촌을 만들어 집단수용하던 때였지만, ‘술 만들 수 있는 곳을 달라’고 하소연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조씨의 할아버지·아버지·삼촌들이 수백리를 걸어다니면서 고른 터가 바로 이 마을. 재료인 쌀이 ‘황토 농사’로 실하게 지어지고, 물맛도 근방에서 가장 좋은 곳임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녹향주라는 이름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민속주가 양성화하면서 붙었다. 마을 이름에서 ‘녹(鹿)’을, 자나깨나 그리운 고향에서 ‘향(鄕)’을 땄다. 그동안엔 문중 대대로 내려온 가양주지만 어엿한 이름없이 그저 ‘집안술’로 불렸다. 하지만 밀주 단속이 살벌하게 이뤄지던 시절에 녹향주는 ‘바깥술’로 위세를 얻어갔다.
#탄압 속에 제맛 복원
남쪽에 내려와 3대째 술을 빚으면서 조씨는 예전의 술맛이 아니라는 게 늘 맘에 걸렸다. 혀끝을 휘감게 하는 알싸한 맛이 우러나긴 했지만 강도가 약했다. 물 다르고 볕 다른 곳이라 당연했다. 더군다나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단속은 원래의 술맛을 찾아가는 장인의 사기를 꺾어놓기 일쑤였다. 술독을 들고 들로 달리고, 뒤란에 지하실을 파놓고 숨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만들어 놓은 술을 뺏기고 나면 하늘이 무너졌으니까.”
그래서 단속나온 세무서 직원·경찰과 맞짱뜨기로 마음먹었다. 조씨는 젊은 날 대부분을 그들과 드잡이하면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경찰서 유치장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몰래 몰래 팔아 모아둔 돈은 세무서에 벌금으로 모두 내놔야 할 정도였다. ‘고향의 술맛’을 찾겠다는 조씨 가문의 집념에 슬쩍 눈을 감아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씨는 발효시간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으로 해남 녹향주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 고향맛을 재현했다. 물론 ‘비방’이어서 털어놓을 수 없다고 했다.
#녹향주 ‘3년간 숙성’
녹향주는 45도의 독주다. 향을 얻기 위해 요즘은 당귀를 넣긴 하지만 그래도 옹달샘 물처럼 맑다. 우선 햅쌀로 지은 고두밥에 발효제로 누룩 대신 백곡을 넣어 섞은 뒤 오동나무 궤짝에 하룻밤을 재운다. 노랗게 변한 고두밥을 큰 술통에 넣고 3일간 발효시키면 밑술이 된다. 덧술은 고두밥을 한차례 더 쪄 당귀를 넣고 버무려 만든다. 밑술과 덧술을 섞어 3일간 더 발효시키면 곡주가 된다. 이것을 고리에 넣고 내리면 소주가 된다. 이때 도수는 80도. 그냥 마실 수 없어 숙성해야 하는데 무려 3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하다.
그래야 녹향주의 진짜 깊은 맛을 얻을 수 있다. 처음 입안에 털어넣을 때의 싸한 맛은 잠시, 목을 타고 넘어갈 때는 독주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다. 당귀의 달짝지근한 맛 이외에는 다른 잡스러운 맛이 끼지 않아 혀로 감지되는 맛은 그저 깨끗할 뿐이다. 숙취도 전혀 없다. 안주로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로 만든 요리나 마른 안주도 좋다. 400㎖짜리 두병을 세트로 묶어 3만2천원에 판다. (061)532-9069 |
여산 송씨 가양주…양주 송엽주 |
예부터 솔잎은 장기간 생식하면 늙지 않고 몸이 가벼워지며 기가 통하고 흰머리가 검어진다고 해 신선식품으로 불렸다.
동의보감은 솔잎에 대해 고혈압, 말초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팔다리 저림, 불면증, 중풍, 신경쇠약 등에 효험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도 솔잎의 주요 성분인 엽록소와 비타민A, 비타민C가 혈액을 정화하고 괴혈병을 예방한다고 보고 있다.
경기 양주시 은현면에 400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여산 송씨가’에서 전해져오는 양주 송엽주(松葉酒). 양주 송엽주는 바로 그같은 효능이 인정된 소나무의 새순을 이용해 술을 만든다.
시중에 판매되는 술이 아니라 명절이나 제사 때만 이 집안에서 소량으로 빚는 일종의 가양주(家釀酒)이지만 옛 문헌에는 자주 등장하는 민족 고유의 전통주다.
송엽주는 조선시대 ‘요록’ ‘양주방’ ‘역주방’ ‘오주연문장전산고’ ‘음식법’ ‘조선고유색 사전’ 등 여러 문헌에 술빚는 방법과 그 효능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맑고 투명한 노란 빛깔의 송엽주는 음식처럼 적당량을 마시면 동맥경화와 고혈압, 뇌졸중 등 순환기계통의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적고 있다. 입안에서 오랫동안 감도는 솔향과 새콤한 맛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송엽주의 맥은 여산 송씨 종가댁의 둘째며느리인 이영순씨(52)가 지켜오고 있다. 이씨는 1989년 작고한 시아버지 송수근씨로부터 제조법을 전수했다.
송엽주의 주요 재료는 멥쌀과 찹쌀, 솔잎, 누룩, 종국 등이다. 쌀을 하루 정도 물에 불린 뒤 시루에 불린 쌀과 씻은 솔잎을 켜켜로 깔고 찐다.
김이 한번 오르면 20~30분간 뜸을 들이고, 찐밥을 섭씨 25~30도로 식혀 종국을 잘 버무린 뒤 12시간 후에 다시 한번 뒤섞어준다. 이때쯤이면 고두밥에서 열이 나는데 섭씨 35도 이하가 되도록 뒤적여준 다음 2일 정도 띄운다.
이어 잘 띄워진 고두밥과 누룩, 솔잎을 잘게 썰어 망자루에 넣고 항아리에서 쌀과 동량의 물을 부어 발효시킨다.
항아리에 담요를 잘 싸고 두껑을 베보자기로 덮어 1주일 정도 발효시킨 뒤 자루망을 꼭 짜서 건져내고 항아리를 싼 담요를 풀어 실외 서늘한 곳에서 7~8일 정도 숙성시키면 투명한 송엽주가 가득 차게 된다. 송엽주의 알코올 도수는 막걸리보다는 약간 높은 12도 정도다.
송엽주의 제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온도다. 온도가 잘못되면 맛과 향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은 물론 새콤달콤한 맛이 쉽게 변하기도 한다.
또 솔잎은 사시사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지만 새순이 돋아나는 4~5월쯤에 마련하는 것이 좋다. 송엽주는 입맛을 돋게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어 여산 송씨 집안에서는 반주로도 애용된다. |
전북 완주 ‘송화백일주’ |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1호 벽암스님. 그가 빚어내는 ‘천년신비의 사찰법주’. 송화백일주에 대한 설명은 이 한마디로 집약될 수 있다. 벽암스님은 전북 완주군 모악산 수왕사 주지스님이다. 스님이 술을 빚는다는 경외로움을 음미하기 위해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산병 없애려 마신 스님들 곡차
이 술은 애초 스님들이 마시던 곡차였다. 수왕사는 산중턱에 위치해 스님들을 고산병에 시달리게 했다.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했다. 모악산 해발 800m 수왕사에서 참선을 하던 수도승들은 지천에 널린 소나무 꽃을 이용해 차를 마시며 기압차이에 의한 고산병에 대처했다고 한다.
이는 불교사화집에 신라 진덕여왕이 부설거사 도반승인 영희, 정조와 함께 수도 정진하다 헤어지면서 그리운 회포를 달래기 위해 송화곡차를 마셨다는 기록에서 입증된다. 그때부터 수왕사에서 전승되기 시작한 송화곡차는 12대 전승기능보유자인 벽암스님에 이르러 전통사찰법주로 태어난다. 수왕사 인근에 송화양조를 설립한 벽암은 천년신비의 전통사찰법주를 재현해 냈다. 고산병을 막기 위해 즐겨 마셨던 사찰법주를 사지(寺誌)나 문헌을 찾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되살려 낸 것이다.
#솔향 담은 오곡주와 백일주
이곳에서 빚어지는 술은 두가지다. 우선 송죽오곡주는 이름이 말해주듯 솔잎과 댓잎, 산수유·구기자·오미자·국화 등 각종 한약재, 찹쌀·곡자·오곡 등이 원료다. 여기에 모악산 약수가 혼합된다. 모악산의 약수는 수왕사라는 암자의 이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모악산 7부 능선에 커다란 암벽을 등지고 자리한 수왕사(水王寺)는 말 그대로 물의 왕. 암벽의 아랫도리에서 사시사철 흘러나오는 물로 빚은 술이니 더할나위 없다.
밀봉한 뒤 섭씨 20도의 온돌방에서 1주일간 재웠다가 8일째되는 날, 땅에 묻어 발효 숙성시킨다. 일반 술과 달리 각종 재료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향을 내는 이 술은 부드러우면서도 뒤끝이 깨끗하다. 송죽오곡주는 특히 1998년 민속주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당당히 명주 반열에 올라 주가를 한껏 높이고 있다. 송홧가루와 솔잎·산수유·구기자·오미자·찹쌀·백미·곡자·꿀을 원료로 제조된 송화백일주는 100일동안 저온에서 장기 재숙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소나무 순액을 침출하여 고산병을 예방할 수 있고 장기보관할수록 더욱 깊은 맛이 우러난다.
#모악산 7부능선서 채취되는 송홧가루
송화백일주에 반드시 들어가는 송홧가루는 국내산 소나무에서만 추출된다. 완주군청으로부터 송화 채취허가를 받아 모악산 7부 능선에서 모아진다. 보관 중에 물이 섞이면 뿌옇게 변할 정도로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 술이 부드러우면서 독특한 향을 내는 것은 엄선된 송홧가루에 그 비법이 있다. 진열만 해 놓아도 예술적 가치가 충분한 백일주는 10여 종류의 다양한 모델로 출시 중이나 친척끼리 가내수공업에 의존하고 있다. 좋은 술이라도 기업화되면 명주 전통이 끊어진다는 벽암스님의 철학 때문이다.
백일주에 어울리는 안줏감으로는 과일이나 횟감이 적격이다. 육지의 꽃과 바다의 횟감이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식사때 한두잔씩 정기적으로 마시면 위암과 직장암 등 각종 암에 치료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문의 (063)221-7047 |
공주의 명주 ‘계룡백일주’ |
명산 ‘계룡산’이 있는 공주에 명주 ‘계룡백일주’가 있다.
백일주는 ‘백일 동안 익힌 술’이다. 우리의 전통 민속주 중에는 해가 저물 녘에 빚기 시작해 새벽 닭이 울 때쯤 완성하는 술이 있는가 하면, 3년에 걸쳐 완성되는 술도 있다. 백일주는 술을 빚는데 석달 열흘 걸리는 술이다.
#400년을 이어온 궁중술의 전통
백일주의 원조는 ‘궁중술’이다. 1623년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일등공신 중 한 명인 이귀(李貴·연안 이씨)에게 선물을 하사했다. 그 선물은 왕실 대대로 전해온 궁중술의 양조비법이었다.
이귀는 이 술의 비법을 부인인 인동 장씨를 통해 이어가도록 했다. 이때부터 이 술은 연안 이씨 가문의 며느리를 통해 오늘까지 이어졌다. 때문에 술을 빚는 방법은 문헌 등에 나와있지 않다. 며느리에서 며느리를 통해 ‘가문의 술’로 전수됐기 때문이다. 지금 역시 연안 이씨 며느리인 지복남씨(80)에 의해 술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 술이 바로 ‘계룡백일주’다. 계룡백일주는 빚기가 워낙 까다롭다 보니 늘 귀했다. 연안 이씨 가문은 술을 대량 생산하지 않았다. 조금씩 만들어 제사상에나 올렸다. 연안 이씨 종가가 있는 공주에서도 이 술의 맛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귀했다.
그러나 그 맛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몇 잔 마셔본 사람들의 입에서 늘 ‘최고의 술’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16도 약주는 ‘신선주’, 40도 소주는 ‘백일소주’
백일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16도짜리 ‘약주’다. 찹쌀·누룩·재래종 국화꽃· 오미자·홍화·진달래·솔잎 등을 재료로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숙성시켜 만든 것이 바로 약주로서의 계룡백일주다. 향긋한 향취와 마실 때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뒤끝이 깨끗한 것도 이 술의 자랑중 하나다. 냉장보관해서 차게 마시면 더욱 맛이 좋다. 이 약주에는 그래서 ‘신선이 마시는 술’ 또는 ‘마시면 신선 같은 기분이 드는 술’을 뜻하는 ‘신선주’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른 하나는 40도짜리 소주다. 약주를 증류시킨 뒤 벌꿀을 넣어 만든다. 이 소주를 옛날에는 ‘백일소주’라고 불렀다. 독한 편이지만 솔잎과 국화꽃 등의 은은한 향이 있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담백한 맛이 일품이고 많이 마셔도 숙취가 적은 것이 장점이다. 40도짜리 백일주는 오래 될수록 맛과 향이 더욱 좋아지는 매력이 있다. 요즘에는 도수를 조금 낮춘 30도짜리 소주도 나온다.
#공주의 자연, 계룡산의 자연을 그대로 담아
계룡백일주는 주변의 자연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계룡산 주변 등 공주 일원의 솔잎·진달래꽃·국화꽃 등이 술에 녹아있다. 이 술을 빚기 위해서는 봄이 되면 진달래꽃을 따다 말리고, 가을이 되면 국화꽃을 따다 말려야 한다. 1년 내내 쓸 수 있는 분량을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 하는 것이다. 솔잎이나 국화꽃 등은 백일주의 맛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재료다. 은은하고 담백한 맛은 모두 이런 재료를 통해 나온다. 다른 술에 비해 숙취가 적은 것도 이런 자연재료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백일주에 쓰는 누룩은 찹쌀가루를 사용해 만든다. 통밀과 찹쌀을 똑같은 분량으로 섞어 거칠게 빻아낸 뒤 물과 섞어 반죽을 한다. 누룩 틀에 담아 띄우는 기간은 여름철 2개월, 겨울철 3개월. 2~3일에 한번씩 뒤집어 주어야 누룩이 제대로 뜬다.
계룡백일주는 밑술이 발효되는 데 30일, 본술을 빚은 날부터 술이 다 익을 때까지 또 70일 걸린다. 본술을 빚을 때 백일주의 맛과 향을 좌우하게 되는 국화꽃·진달래꽃·솔잎·오미자 등의 온갖 재료가 들어간다.
백일주의 최종 완성은 창호지를 이용한 걸러내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100일 동안의 세월이 녹아 있는 술은 언뜻 보면 맑고 깨끗한 것 같지만 조금 놔두면 앙금이나 찌꺼기가 가라앉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해 창호지를 받쳐 걸러준다.
#백일주 마실땐 참죽나무 순과 곶감말이가 최고
연안 이씨 문중 사람은 물론 공주 사람이 백일주를 마실 때 먹는 특별한 안주가 몇가지 있다. 봄에 딴 참죽나무 순에 찹쌀 고추장과 참깨 양념을 버무려 말린 뒤 다시 찹쌀 풀을 입혀 말리면 최고의 백일주 안주가 된다. 매콤하면서도 바삭바삭한 맛이 백일주에 딱 맞는다는 것이 애주가들의 설명이다.
호두를 곶감에 싼 뒤 자른 ‘곶감말이’를 계룡백일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로 꼽는 사람도 많다. |
담양 추성주 |
산세 깊고 물 좋은 전남 담양 추월산 계곡에 ‘술익는 마을’ 하나가 있다. ‘남도의 젖줄’ 영산강의 시원(始原)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널따란 벼논, 산비탈 군데군데 밀밭이 보이는 용면 두장마을. 천년의 역사를 가진 추성주(秋成酒)를 빚는 양조장 ‘추성고을’(대표 양대수·50)이 자리한 곳이다.
#1,000년의 역사 ‘추성주’
추성주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성종 때까지 250여년간 추성군으로 불린 담양의 지명에서 따온 술 이름이다. 이 술의 역사는 추월산 자락의 천년고찰 연동사에서 시작됐다. 고려초 창건된 연동사는 지금도 건재한데 이곳 스님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빚어 마시던 곡차가 사하촌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어찌나 맛이 좋던지 마시면 신선이 된다 해서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로 불리기도 했다. 1756년 담양부사 이석희가 이곳 풍물에 대해 쓴 ‘추성지’에는 ‘스님들이 절 주변에서 자라는 갈근·두충·오미자 등 갖가지 약초와 보리·쌀을 원료로 술을 빚어 곡차로 마시더라’라는 고려 문종 때 참지정사를 지낸 이영간(담양이씨 시조)의 증언을 담아놓고 있다.
또 이곳 출신으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로 꼽히던 면앙정 송순이 과거급제 60주년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참석한 손님에게 추성주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등 조선 말까지 그 명성이 서울 장안에 남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당연히 진상품이 됐고 고관대작에게 보내는 상납주로도 각광을 받았다.
#4대째 대물림
모든 전통주가 그렇듯이 추성주도 일제시대에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지만 담양의 남원 양씨 가문에서 비법을 고이 간직해온 덕분에 ‘전통 명주’의 반열에 올라 있다.
추성고을 대표 양씨는 20대 초반부터 공무원이던 아버지로부터 추성주 빚는 법을 배웠다. 농협에 다닌 양씨는 업무로 늘 바빴지만 증조부(1870~1957) 때부터 내려온 양조술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동갑내기 부인 전경희씨와 함께 부친이 들려주는 ‘가문의 비법’을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198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대(代)를 이어야 하고 확실하게 대물림을 하라”는 유언까지 남기자 본격적으로 인근 대학과 연구기관을 찾아다니며 이론화 작업에 매달렸다. 90년부터 소량생산을 하면서 비방을 다듬은 끝에 2000년말 국내 22번째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두 세기에 걸친 양씨 가문의 ‘술실력’이 드디어 햇빛을 보기에 이른 것이다.
#‘양주보다 뒤끝 좋은 토속주’
추성주의 강점은 무엇보다 뒤끝이 좋다는 것이다. 깔끔한 맛과 향이 양주와 비슷하다. 발효·숙성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전통주 가운데 가장 많은 13가지 약초가 들어가는 약술이기도 하다. 알코올 도수는 25도. 한약재 성분 때문에 실제 체감도수는 30~40도로 느껴진다.
제조과정은 다른 술보다 세심한 손길이 더해진다.
순곡과 약초를 숙성시켜 1차로 약주(발효주)를 만든 후 2번 더 증류를 거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재료도 모두 담양에서 난 것만을 쓴다. 우선 깨끗한 찹쌀과 멥쌀을 씻고 졸졸 흐르는 물에 12시간 담가뒀다가 물을 빼고 수증기로 고두밥을 짓는다.
차게 식힌 고두밥에다 엿기름 가루와 술빚는 용수를 넣고 섭씨 55~65도가 되도록 불을 넣어 당화액(糖化液)을 만들어 놓는다. 이것을 25도로 식힌 다음 누룩과 두충·계수나무 껍질·우슬(쇠무릎)·연꽃열매·산약·강활·율무·멧두릅 뿌리 등을 넣고 보름 정도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 알코올 성분 15도의 약주가 된다.
다시 이를 소주고리에 넣고 데우면 알코올 40도짜리 증류주가 나온다. 이 증류주에 홍화·구기자·음양곽·갈근·오미자·상심자 등을 함께 달인 약물을 넣고 30일 숙성시킨 후 걸러내기를 한 후에 섭씨 20도에서 한달 더 숙성시킨 다음 대나무숯으로 여과시키면 25도짜리 미황색의 추성주가 탄생한다.
추성주는 순곡으로 빚고 2번이나 증류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발효주와는 달리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차게 보관하면 맛이 더욱 좋아진다. 각종 한약재를 넣은 까닭에 혈액순환과 강장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열·진정·구충·소염·당뇨·신경통에도 좋고 정기적으로 마시면 노화를 막고 피부에도 좋다는 고문헌 기록도 남아 있다. 안주로는 생선회나 생고기가 제일이고 과일이나 죽순회도 좋다. 담양의 대표음식인 떡갈비에 곁들이면 술맛이 더해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