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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불리는 3개의 시장은 가전, 의류, 골동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공존하는 재고품 시장이다. 사진은 황학동 만물시장의 풍경. |
황학동 만물시장은 손님 줄어… 일부 실속 구매자들만 찾아
신설동 풍물시장은 골동품에 특화… 외국인 문화체험 ‘손짓’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제개발 계획에 의해 서울은 크게 변모했다. 이 여파로 크게 번성한 곳이 있는 반면, 일부는 쇠퇴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경우도 있다. 고령자들 사이에 만물시장으로 통하는 ‘황학동 벼룩시장’은 이런 번성과 쇠퇴의 역사를 모두 겪은 상권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 호황을 이루다 지역 개발계획에 의해 상인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며 침체의 길을 걸었다.
본래 황학동 벼룩시장은 서울 중구의 ‘황학동 만물시장’ 뿐 아니라 동대문구 ‘신설동 풍물시장’, 지하철 6호선 동묘앞역 ‘동묘 벼룩시장’까지 통칭하는 말이었다.
6.25 후, 청계천변 피난민을 중심으로 미군 군수물자와 전쟁 통에 흘러들어오는 각종 골동품들을 취급하는 노점상들이 청계천변 고가도로 아래에 자리잡았다. 그러다 1960년대에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상인들은 황학동으로 터전을 옮겼다. 이렇게 황학동 벼룩시장이 탄생했고, 한동안 번성했다.
하지만 2004년 청계고가도로 철거와 함께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상인들 중 상당수가 동대문 운동장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2008년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조성 계획이 전개되며 이번엔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렇게 시장이 쪼개지니 유동인구가 줄며 매출이 급감했다.
지하철 6호선 신당역 11번 출구로 나와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 뒤쪽 골목으로 돌면 1970년대 서울 뒷골목과 같은 황학동 만물시장의 풍경이 펼쳐진다. 유명했던 고미술품과 골동품점들은 많이 사라지고, 값싼 중고가전과 주방용품을 파는 가게들만이 남았다.
지난 5월 18일 기자가 방문했을 때 황학동 만물시장은 한산했다. 60대로 보이는 손님과 외국인 몇몇 만이 좌판을 둘러볼 뿐이었다. 활기 넘치는 옆 골목의 주방거리와는 대조를 이뤘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9월 이후 서울 중구청에 의해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이 펼쳐졌다. 길을 가로막듯이 튀어나온 좌판들을 깔끔하게 정비하고, 거리를 넓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손님이 늘지 않아 상인들은 울상이다.
10년 넘게 토스트 장사를 해온 한 상인은 “예전엔 일본과 중국 등 외국인 손님도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며 “자리 임대료도 12년전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을 정도”라고 말했다.
45년간 황학동에서 가전제품을 팔아온 정상철 어르신은 “요즘엔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도 시장 거리가 한산할 정도”라며 “리모델링 후에도 고객들의 수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이곳 상인들은 실 구매 고객이 드문드문 계속 찾아온다는 점에 위안을 얻는다. 정 어르신은 “저쪽 신설동 풍물시장은 방문자 중 대부분이 ‘구경꾼’들로 실질적인 매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설동 풍물시장은 세 시장 중 가장 마지막에 자리 잡은 탓에 단골이 적은 편이다.
골동품상 서평석(58)씨는 “동대문이나 황학동에 있을 때보다 유동인구가 거의 10분의 1로 줄었다”며 “손님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동묘 벼룩시장으로 몰려가다 보니, 신설동 풍물시장의 상권이 죽어갔다”고 말했다.
이에 신설동 풍물시장 상인들이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 대상으로 삼았다. 우선 한국의 예스러움을 간직한 수많은 골동품이 모여 있음을 적극 홍보했다. 또한 무료로 한국의 다양한 전통 소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관이 자리 잡고 있는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각종 체험들은 상점들과 연계해 판매로 이어지도록 했다.
덕분에 요즘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주요 관광 코스로 꼽힌다. 1960년대 풍으로 꾸며놓은 가게들도 많아 아이들에게 부모의 세대를 알려주는 체험관으로도 각광 받는다.
여기에 젊은 고객 유치를 위한 시도도 있었다. 지난해부터 서울시의 지원으로 풍물시장 2층 한켠에 ‘청춘1번가’를 마련했다. 청년 상인들에게 사업 시작 6개월 간 공유세 무료 등 다양한 혜택을 주며 입점을 유도했다. 하지만 ‘청춘1번가’는 실패하고 말았다.
풍물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지역 특성을 고려치 않고 다른 지역 성공모델을 그대로 적용시킨 점이 문제였다”며 “이런 시도가 처음인 만큼 젊은세대 유입을 위한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동묘 벼룩시장’에선 젊은 고객들의 지갑이 수시로 열린다.
여기선 새것과 진배없는 티셔츠, 바지 등이 1000~2000원에 달한다. 의류뿐만 아니라 잡화 등도 시중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런 내용이 2년 전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 젊은층 사이에서는 동묘 벼룩시장이 ‘빈지티’(구제)의 성지로 불리고 있다. 이들은 여기서 구입한 옷을 코디해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인증 사진을 올리며 직접 홍보에 나섰다.
이에 서울시는 지하철 1호선 동묘역 남측 일대 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해 ‘동묘역 일대 활성화계획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 문구·완구거리와 원단시장 등 인근 산업특성과 지하철에 인접한 입지조건 등을 볼 때 가능성은 풍부한 곳이지만, 주변 산업과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황학동 벼룩시장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특성이 있어 독특한 문화가 있는 곳”이라며 “현황조사와 발전방안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