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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숲터 들살이 일지_이민애
1일차
숲터 들살이 첫 날, 오늘 아침까지는 들살이라는 단어에 현실감이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긴 했지만, 들살이를 위한 것이라곤 실감나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목포에 도착해서 밥을 먹는데 그 때가 돼서야 '나 들살이 왔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들살이가 이토록 현실감이 없었던 건, 내가 진짜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들살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나서는 '내가 진짜 이걸 한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을 안고 비금도로 가는 배를 탔다. 배를 타고 갈 때 친구들이랑 2층 갑판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는데, 그때 느꼈던 행복감이 생생하다. 이 때 배 뒤를 따라오는 듯한 갈매기를 만났다.
비금도에 도착해서는 광대 저수지에 갔다. 사실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이 저수지 가장자리여서 소금쟁이를 가장 많이 봤다. 저수지 주변을 돌면서 망원경으로 주변을 계속 둘러보았는데, 그러던 중 저수지 주변 하수도 같은 곳에 신기하게 생긴 게가 있었다. 처음 보는 색과 무늬의 게였는데, 엄청 많이 있어서 놀랍고 반가웠다. 너무 신기해서 한동안 감탄만 했던 것 같다. 정신 차리고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때에는 이미 많은 게들이 안쪽으로 도망가고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게가 붉은 발 말똥게라는 친구였다. 그 친구의 은빛 눈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생각해보니 좀 미안했다. 들살이 시작 전 나의 다짐은 ‘생태계 동물들의 영역을 크게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탐구하자’였지만 하루 만에 와장창이 되었다. 신기한건, 하수도에 검은 고무파이프 같은 게 있었는데, 그 옆에 있던 게 한 마리가 나랑 눈이 마주치더니 그 고무파이프 뒤로 몸을 숨겼다. 이 친구들은 약간의 지능이 있는 듯 했다.
그러고 나서 나름 날아가는 백로도 보고, 산새와 손톱만한 물고기도 만났다. 모둠 안에서 나의 역할은 생물을 본 모둠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건데, 나의 임무를 지키기 위해 옆에 있던 친구들에게 작은 물고기의 명칭을 정해보자고 부추기기도 했다(무슨 말이라도 해봐 얘들아)
저수지 활동을 살짝 아쉽게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은 매우 길었던 것 같다. 모두가 지친 상태에서 길잡이를 맡게 되었는데, 속도를 올려서 얼른 쉬게 해줘야 할지, 천천히 가면서 체력을 아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마을 주민 분들이 말을 많이 걸어주셨다. 어떤 분은 차로 식당까지 태워다 주시겠다고 하시기도 했다. 시골마을 주민 분들의 투박하지만 따듯한 관심에 감사했고, 힘이 나는 것도 같았다.
또 하나, 그 동네에는 개와 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길에 떠도는 아이들이던, 묶여서 길러지는 아이들이던 다양한 모습으로 많은 친구들을 지나쳤다. 안쓰러운 모습의 아이들도, 행복해보여 부러운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밥까지 먹고 숙소로 가는 길은 여러 기분이 들게 했다. 오늘 하루 내가 잘 해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기에 ‘앞으로의 들살이를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2학년 연우언니와 원재오빠가 아무래도 고학년이라 부담이 클 것 같아서 10학년에게 신경 쓸 일을 덜고 싶었으나 나도 모르게 의지하려고 했던 것 같아서 미안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다 같이 돌아보고 일정 재정비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섬에서 버스를 타보고 나서 일정에 변수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 버스가 없을 경우 도보만으로 이동시에 부담이 없을 만한 계획을 다시 짰다.
우리에게는 섬에 대해 주어진 지식과 정보가 많지 않았기에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긴급회의를 했다. 덕분에 결과는 경우의 수를 고려한 두 방향으로 결정되었고, 자칫하면 흔들리기 쉬울 내일의 일정에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내일은 오늘을 발판삼아서 더 성과 있는 활동을 이뤄내고 싶다.
2일차
오늘은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어제 비금도 동물들에 대한 사전조사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 갯벌과 신안에서 자주 보인다는 동물들을 조사해 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게 외워놓고 출발했다. 버스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아서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 기사님께 여쭤봐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탔다.
첫 번째 행선지는 이미 해변이었다. 이미 해변은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날아가는 왜가리 한 마리를 만났고, 그 후로는 갯강구와 달랑게들을 많이 봤다. 그러다 저 멀리에 하얀 새가 보이기에 자세히 관찰했더니 아침에 외웠던 종중 하나인 왜가리였다. 연우언니랑 보다가 “어? 쟤 왜가리 아니야?”라는 말에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확신하는데 그 때 외웠던 보람을 느꼈다.
그 다음으로는 하트해변으로 갔는데, 하트해변에는 달랑게가 진짜 많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새롭게 보이는 동물들이 없어서 신발을 벗고 해변을 잠시 걸었다. 나름대로 일탈이라 생각했는데 친구들은 일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트해변은 생물이 진짜 게밖에 없어서 게라도 열심히 보자! 라는 생각으로 동물친구들이랑 게를 많이 봤다. 우리가 멀리 있으면 슬금슬금 나와서 햇볕을 쬐다가 우리가 조금씩 다가가면 금방 들어가 버렸다. 각자 자기 굴이 있는지 궁금해서 계속 관찰했는데 자기 집이 있긴 하되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가기 곤란할 때에는 남의 집에도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른 게의 집에 들어가면 굴의 깊이가 깊지 않아 다 숨어지지 않는 게 귀여웠다.
게가 자기 집에 반쯤 걸쳐서 바깥 상황을 파악하는 순간이 있는데, 우리가 한 굴을 잡고 관찰할 때 다른 굴에 있는 게들이 반쯤 나와서 우리 방향을 보고 구경하는 것 같아서 귀엽고 웃겼다.
우리가 있으면 게가 안 나와서 굴 앞에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멀리 나와서 망원경으로 살폈다. 처음에는 그 굴에 두 마리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상을 보니 세 마리가 들어가 있었다. 알고 보니 대가족인 걸지도.
하트해변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장을 보기 전에 하나로 마트에 경유해야 하는 경로였다. 지름길처럼 보이던 산을 올랐는데 나와 규는 쉽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려 도로로 돌아갔다. 가는 길의 풍경은 예뻤는데 순간적인 체력이 너무 딸려서 주변을 둘러 볼 정신이 없었던 게 아쉬웠다.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저녁을 먹었다. 백반 집이었는데 그 날 텀블러에 물이 부족해서 식당 물을 엄청 마셨더니 밥을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또 한 시간 반을 걸어서 숙소로 갔다. 이때는 해가 슬슬 져서 덥지는 않았는데 하루 종일 걸은 나의 하체는 괜찮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걸어야 무릎이 아프지 않을지, 여러 걸음걸이를 시도해보았는데 결국 그냥 걷는 게 가장 무난했던 것 같다. 어차피 아플 거 걷는 거라도 멀쩡하게 걷자는 생각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하늘이 정말 예뻤다. 걸으면서 조금씩 바뀌는 색과 구름이 좋았다. 열심히 걸어서 숙소에 도착한 후는 또 다시 긴급회의였다. 하루하루 계획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보내는 들살이 나름 매력적인 것 같다. 당장은 힘들지만 왜인지 이 기억은 조만간 미화되어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3일차
오늘도 어제의 긴급회의 에서 결정 된 일정으로 움직였다. 어제 밤에 감사하게도 택시기사님이 와주신다고 하셔서 도초도 여객선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기사님 성격이 너무 좋으셔서 가는 동안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았다. 멀미가 날 때에 대처 꿀팁도 알려주시고 우리 앞에 가던 승용차에 누가 타있는지도 말해주셨다. 비금도와 도초도에는 비밀이 없다고 하셨다.
기분 좋게 일정을 시작하고 홍도로 가는 여객선터미널에 올라탔다. 예매할 때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는데, 나는 이름이 잘 나왔는데 성준이는 주성준, 민서는 암민서, 하림이는 김희정 이라는 이름으로 표가 끊겨서 한참동안 웃었다.
배를 타고 홍도로 들어가서 동백 숲으로 향했다. 섬이 작고 산이 대부분이다 보니 마을이 다 오르막길이어서 좀 힘들었다. 그래도 허벅지에 들어가는 힘을 느끼면서 운동한다고 생각하고 걸었다.
동백 숲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첫 번째로 풍경이 보였다. 새들이 사람소리를 듣고 멀리 날아가서 새들이 많이 보이진 않았다. 한 시간 정도 활동을 했는데 망원경으로 발견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보면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조사한 새들이 있어서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동백 숲에서 활동을 마치고 광주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횟집에서 백반도 판매한다기에 미리 예약을 걸어두고 이동했다. 백반은 비금도보다 조금 더 비쌌다. 나는 원래 생선구이를 잘 안 먹는데 거기서 먹은 생선구이는 진짜 맛있었다. 사장님께서 직접 잡으신 것 같았는데 생선 굽기에 요령이 궁금했다. 다른 반찬들도 고기 없이 해산물 반찬이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그러고 깃대봉 쪽으로 가는 등산로를 올랐는데 거의 다 계단이었다. 어제 잠깐 올랐던 산보다는 잘 되어있어서 비교적 편했지만 내려올 때가 걱정이었다. 산에 사람들이 없어서 눈치 보지 않고 등산로를 벗어나 숲속을 뚫고 잠복할 장소를 잡아 30분정도 조용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눈으로 본건지, 우리가 있는 동안 새는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우리가 자리를 뜨고 나서 큰 새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역시 우리가 있어서 새가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인터넷으로 봤을 때는 홍도에 동물이 많다고 했는데 홍도보다 비금도 논에 동물이 더 많았다. 그래도 두어 마리 봤다는 사실을 위안삼아 산을 내려갔다. 내려갈 때에 내 다리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열심히 내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내려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비금도를 나와서 남원으로 가는 날이다. 내일부터 개인들살이 시작이라 긴장되고 한 편으로는 개인들살이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처음 하는 개인들살이를 잘 진행하고픈 마음도 있다.
난 원래 어디에 가면 영역표시처럼 하나씩 잃어버리고 오는데 모둠들살이 동안은 잃어버린 것 없이 잘 챙긴 것 같아서 나 자신이 대견하다. 물론 챙기는 것 말고는 서툴러서 모둠에 해가 된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3일이지만, 그만큼 열심히 했다고 생각이 든다.
4일차
오늘은 버스를 타고 여객선터미널까지 갔는데 배가 예상과 달리 오후 2시에 출항한다고 해서터미널 근처에서 활동을 했다. 내 활동은 버스킹을 하면서 길가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는 거였는데 자리 잡기 전까지 지나다니던 분들이 내가 활동을 시작하니까 다 사라졌다.
나는 자화상 그리기를 위주로 했고, 앞으로 초상화를 어떻게 그려드릴지 여러 방법으로 그려봤다.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는 내가 무슨 자신감인지 그냥 손이 가는대로 여러 번 그렸다. 이성적으로 보면 ‘이게 뭐지’싶은 그림들이었지만 나름대로 나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규에게 보여드릴 때에는 조금 민망했다. 여전히 내가 만들어낸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건 어렵다.
자화상을 그리다가 사람이 안 지나다녀서 대합실 의자에 포스터를 걸어놓고 기다렸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땐 사람들이 많이 없었는데 정리하고 앉아있으니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대합실에 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한테 말을 걸까 고민했는데 결국 말을 걸진 못했다. 조금 무서웠던 것 같다. 어딘가에 문의의 목적으로 말을 거는 건 이제 좀 잘하는 편인데 명확한 이유와 상대의 답변을 예측하기 힘든 상태에서 말을 거는 건 아직 많이 망설여진다. 내일 활동을 하면서 주저하는 마음을 거스르는 연습이 많이 될 거라는 기대가 약간 있다.
배 시간이 늦어져서 본격적인 활동 전에 연습처럼 경험을 한 것 같긴 하지만, 배 시간을 확실히 알지 못했던 건 큰 실수였던 것 같다. 처음 다 같이 알아볼 때 내가 가산으로 가는 배 시간을 블로그로 알아봤는데, 날짜가 최근이라는 사실만 믿고 홈페이지나 사이트를 더 찾아보지 않았던 건 큰 실수였던 것 같다. 처음 알아봤으면 그걸 정확히 확인하고 공유하는 게 맞았는데 정보를 알아보는 대에 어려움이 있었던 그 땐 시간표라는 것만으로 신빙성이 생겼던 것 같다.
다들 따로 예매했는데 결국 다 같은 차를 타서 남원에 도착해서야 헤어졌다. 나는 희동이네김밥에 갈 예정이었으나 이미 마감을 한 상태여서 버스정류장 옆의 다른 김밥집에 갔다. 김밥집에 나 말고 내 또래 여자애 두 명이 더 있었는데 둘 중 한 명의 가방에 세월호 리본이 달려있어서 눈길이 갔다. 최근에는 세월호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들살이 활동 중에 보여서 신기했다.
내일은 본격적인 인터뷰와 개인 활동을 시작해야 하는데 많이 떨리고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잘 해내야겠다는 다짐도 생겼다. 실수가 없을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실수는 하고 싶지 않다. 밥도 잘 먹고, 인터뷰도 열심히 하면서 기분 좋은 마음으로 돌아보기를 할 수 있길 바란다.
5일차
오늘은 본격적인 개인들살이 1일차다. 원래는 공원에서 자화상 버스킹을 하는 일정이 있는데, 어제 일정 피드백 시간에 공원에서 말을 걸어오기를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다가오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다는 피드백이 있어서 자화상은 그리지 않고 공원에 앉아있는 분들께 다가가서 인터뷰요청을 했다.
다행이 거절을 받은 적은 없다. 공원에서 총 3분의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첫 번째 분과 두 번째 분은 보통 건강과 인생을 많이 이야기 해주셨고 세 번째 분은 정말 그 분의 생각과 철학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해주셨다.
첫 번째 분은 먼 과거를 회상하면서 잠잠하게 이야기하며 조금씩 천천히 질문에 대답을 해주셨고, 두 번째 분은 대화할 때 뭔가 투박하지만 따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분은 한 시간을 넘게 진행했는데, 왜인지 오랫동안 대화하는 시간이 없다가 오랜만에 말문이 트인 것처럼 엄청 반짝반짝 거리며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본격적인 인터뷰가 끝나고도 인터뷰이분의 이야기를 더 들었는데, 우리 학교의 이야기, 그 분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 그리고 그분이 굳게 믿고 있는 신념에 대해 이야기 했다.
세 분 모두의 공통점이 있다면, 처음 보는 사람이 걸어온 대화에도 진심으로 대답해주시고 나의 인터뷰 활동을 응원해주셨다. 마지막 분은 나의 청춘을 지키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조카가 좋아하는 래퍼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래퍼는 고등과정 때 책가방을 던지고 자기를 표출해낼 수 있는 음악으로 세상에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었다고, 할아버지도 그 어린 래퍼에게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고 하셨다. 그러니 나도 세상이 억누르는 짐에 위축되지 말고, 나의 청춘을 펼치면서 살아가라고 해주셨다.
그 다음에는 살롱 드마고 서점에 가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독립서점이자 문화공간이었는데, 세 분이서 운영하는 공간이라고 하셨다.(오늘은 한 분만 근무하셔서 다른 분들은 뵙지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오겠다고 약속? 했다.) 처음 온라인으로 인터뷰 요청을 할 때 말투가 조금 딱딱하고 근엄한 느낌이어서 긴장을 잔뜩 하고 갔는데 너무 밝고 따스한 분이셨다. 인터뷰를 하면서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놀랐다. 물론 그분은 어른이시고 많은 길을 걸어왔으니 나보다 멋지고 더 많은 경험으로 쌓이는 안정감이 있으셨지만, 한 사람의 기질로 보았을 때 대화에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생각이 비슷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점심을 먹는데 살짝 어질어질하더니 다음 활동을 위해 시장에 가니까 시야가 좁아지고 걷기 어려워져서 시장 앞에서 쉬다가 규를 만났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몸이 나아지지 않아서 활동을 못하고 바로 숙소로 들어왔다.
바로 씻고 쓰러져 잠들었는데, 깨고 나니 몸은 한결 나아졌다.
인터뷰 활동 중 나의 마음을 돌아보자면, 인터뷰활동에 감정과 체력소모가 정말 크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말 거는 걸 잘 못하는 나이긴 했지만, 하루에 한 명을 만나는 것도 어려웠던 내가 처음 보는 사람 여럿에게 말을 걸고, 눈을 맞추고, 들으며 공감하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들살이를 계기로 어려운 일을 해낸 건 뿌듯하고 대견하지만, 감정소모가 큰 건 힘들었다. 앞으로 익숙해지는 과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내일은 내 상태를 조금 더 살피면서 활동하는 게 좋을 듯하다. 아침에 긴장했던 몸에 소모가 심해져서 몸이 갑자기 아파진 것 같기도 해서, 내가 나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6일차
오늘은 지리산의 노고단 앞에 있는 노고마주 게스트하우스 인터뷰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노고마주 게스트하우스가 구례에 있어서 버스를 타러 가는데, 10시 10분차가 있다고 해서 8시 반에 출발하고 버스가 오기 전까지 근처를 돌며 인터뷰활동을 다녔다.
처음에는 가게들이 있는 골목에서 문구점에 들어갔는데, 바쁘시다고 거절당했다. 그 다음에 쭉 걷다보니 넓은 산책로가 있어서, 산책하시고 쉬시는 분들에게 인터뷰 신청을 했는데 모두 거절당했다. 처음 거절당했을 때는 조금 섭섭하고 기가 죽었는데 자꾸 거절당하다 보니까 애초에 수락 해주실 거라는 기대를 버리고 인터뷰신청을 하게 되어서 갈수록 타격이 적었다. 하지만 나의 반응과는 별개로 처음 말을 거는 건 여전히 어려웠던 것 같다.
내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 두려워하는 건 상대의 반응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 때에 깨달았다.
그렇게 산책로 두 바퀴들 돌며 거절을 당하고 버스를 타러 갔다. 10시 10분차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혹시나 아닐까봐 버스회사에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출근시간이 다를까봐 10분 간격으로 해봤지만 결국 받지 않으셨다. 그래서 다른 곳에 전화를 해봤는데 받았지만 다른 곳에 물어보라고 하셔서 또 다른 곳에 전화를 했다. 어쨌든 결국에 버스가 오는 건 맞아서 버스를 타고 죽정마을로 갔다. 죽정마을 근처 자연드림공원에 가서 인터뷰활동을 했는데 또 거절을 받았다. 한의원, 식당, 카페, 앉아서 쉬는 아저씨까지 모두 골고루 거절당했다.
그러다보니 점심시간이 와서 도시락을 딱 ! 꺼냈는데 수저통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손으로 먹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점심을 포기하려고 하던 순간 인터뷰요청을 위해 샀던 카페 음료가 보였다. 잠깐 생각을 하다가 자연드림 종이빨대를 꺼내들었다. 빨대가 하나이다보니 먹는다보다는 마는 것에 가까웠다. 깻잎을 먹는 건 그럭저럭 할만 했는데 오징어채와 잔멸치는 정말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눅눅해지는 종이빨대를 붙잡고 어렵게 먹고 있는 게 나 혼자만으로도 웃음이 났는데 하필 점심시간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쟨 뭐지?” 라는 느낌으로 한 번씩 지나가는데 조금 많이 민망했다.
그렇게 노고마주 게스트하우스로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산길이라 조금 경사가 있었다. 모둠 들살이의 경험을 발판삼아 열심히 올랐다. 경치도 좋았고, 오를만 했던 것 같다. 처음 전화할 때 목소리가 굵고 덤덤해서 겁을 살짝 먹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했던 인터뷰 중에 가장 좋았다. 인터뷰 내용을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대화하면서 ‘우리학교 선생님으로 오시면 좋을 수도 있겠다. 란 생각을 할 정도로 그분이 경험했던 순간들을 짧게만 들어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분은 지금 그곳에서 교사 일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 장소도 야외에 있는 정자였는데, 그 장소가 노고단을 볼 수 있는 장소여서 좋았다.
그리고 알 사람들은 다 알만한 이야기인데, 나는 초록색을 정말정말 좋아한다. 그냥 초록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초록이 있는 편인데, 인터뷰 마지막 질문이 ‘오늘의 인터뷰를 색으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이었는데, 그 분도 초록색을 좋아하고, 오늘의 인터뷰도 초록빛이었다. 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겉으로 표현은 못했지만 너무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오늘 입고 간 옷도 초록빛의 체크조끼였고, 모자도 초록빛이라 어필하고 싶었지만 긴장과 망설임으로 어필은 하지 못했다.
심지어 큰 개를 키우셨는데, 그 개들도 너무 편안해보이고 좋았다. 나한테는 관심이 없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인터뷰하는 동안 나도 모른 새에 우리가 인터뷰하는 정자 뒤편에서 자고 있었다. 정말 여러모로 좋은 장소와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짧지만 만족스러웠다.
이제 내려와서 버스를 타야했다. 생각보다 일찍 내려가서 걱정했는데, 내려가는 길에 더위를 먹을랑 말랑 어제와 비슷한 증상이 찾아오려는 것 같기에 얼른 내려가서 정류장에 앉아서 쉬었다. 그 상태로 인터뷰를 더 요청했으면 몸도 마음도 힘들어졌을 것 같았다. 아침에 숙소에 물이 없어서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안 챙겼는데 정말 많이 후회했다. 갈증과 더위, 습도가 합해지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 구나를 느꼈다.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가만히 있기가 좀 힘들어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결과물로 인터뷰로 느꼈던 나의 느낌을 추상화로 표현해낸 걸 하나하나 그리려고 했어서, 노고마주와 살롱 드마고의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학생이 걱정이 된 건지 궁금했던 건지 내 앞을 지나치는 차들이 모두 내 앞에서 잠깐 속도를 늦춰 쳐다보고 갔다. 조금 민망했지만 그럴 정신은 없어서 내 할 일을 했다.
그림을 두 개 그리고 생각나는 노래가 많아서 흥얼거리기도 했고, 뜬금없이 흐르는 코피를 떨구며 멍을 때리기도 했다(휴지가 없었다.) 그렇게 버스시간이 다가와 버스를 타야하는 땡볕으로 가서 섰는데 10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또다시 버스회사에 전화를…ㅎ 했다. 내가 자꾸 전화해서 알아 보신건지, 아니면 어린 목소리라 그러신 건지 “5분에서 10분만 기다려~” 라고 하시고 끊으셨다. 뭔가 아빠 혹은 삼촌 같은 친근한 말투셨는데, 처음엔 좀 섭섭하다가 생각할수록 웃겨서 혼자 실실댔다.
(이 사이에 많은 일화가 있었지만 오늘의 분량을 위해 참도록 하겠다.)
그렇게 다음 장소인 시장에 갔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죽정마을부터 없더니 오락가락해서 미리 규께 말씀을 드려놓고 3%의 핸드폰을 가지고 저녁을 먹은 후, 시장 인터뷰를 진행했다. 분명 사람이 많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모두들 마감을 하고 계셔서 조금 당황했다.
최대한 상인 분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흰자로 탐색하며 한 바퀴를 돌고, 목적지를 정해 사각지대에서 심호흡을 한 후 인터뷰를 진행했다. 처음에 커다란 강냉이를 한 아름 사서 할머님과 인터뷰를 했는데 너무 따스하셔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힘을 받아서 다른 곳도 탐색을 열심히 하고 딱 들어갔는데 그 분은 인터뷰를 수락해주시긴 하셨지만 바빠 보이셔서 3개의 질문만 간단히 하고 급하게 나왔다.
그러고 시장을 나와서, 길거리 인터뷰를 많이 못했다는 생각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크게 잡아서 인터뷰를 더 하려고 돌아갔는데, 핸드폰이 꺼진 상태로 길을 잃어서 인터뷰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숙소로 돌아왔다. 그때는 겁을 먹어서 인지를 못했는데 뒤로는 배낭을 크게 메고 앞으로는 강냉이를 한아름 안고 길을 물어보는 학생은(나는) 내가 봐도 좀 웃기다. 길을 알려주신 아주머니께서는 경기도에서 왔다는 거에 놀라고, 혼자서 여행을 하는데 강냉이를 이따만치 들고 들어가는 거에 또 놀라셨다.
일지에 다 쓰지 못할 만큼 나에게 큰 일화가 많았지만, 그만큼 오늘 제일 흥미로웠다. 인터뷰를 진행한 횟수보다 거절을 당한 횟수가 많았고, 이동에도 큰 시간을 쓰고 몸도 지쳤지만 돌아보면서는 웃음이 실실 난다.
나의 길거리 인터뷰 질문 중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잊지 않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이라는 질문이 있는데, 이번 들살이에서 개인들살이 3일차가 나에겐 그런 하루였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기억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혼자 기억을 꺼내보면서 지금처럼 실실 웃는, 그럴 수 있는 순간이 오래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7일차
오늘은 다 같이 일찍 일어나서 체크아웃준비를 했다. 짐은 전날에 다 싸놓아서 편했지만, 도시락이 누룽지라 샐까봐 걱정했다. 최대한 물을 덜고 담았지만, 그래도 걱정은 되었다.
각자 아침으로 누룽지를 먹고 도시락을 싼 후, 청소를 하고 단체사진을 찍고 다 같이 출발했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 인터넷 사이트들은 버스 시간이 안 맞는다고 떠서 40분을 걸어갈 예정이었는데, 가다가 보니까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기에 지도만 보고 뛰었는데, 주민분이 반대쪽에서 타면 간다고 하셔서 또 반대쪽으로 뛰었다. 결국에는 나와 하림, 민서, 그리고 규와 새가 버스를 타고 남원역까지 이동했다.
남원역에서 조금 오래 기다리다가 기차를 탔다. 나는 계룡 역에 내려서 활동을 마저 하고 들어갔는데, 원래 역에 사람이 많기를 기대하고 전에 준비만 해놓고 거의 하지 못했던 버스킹을 하려고 했지만 역에 내리고 나니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장태산 자연휴양림에 갈 때 거쳐 가는 정류장에 내려서 시장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버스킹할 장소를 찾았다. 생각보다 장소가 마땅치 않았는데, 걷다보니 어린이공원이 있고, 바로 앞에 경로당이 있는 공간이 있기에 거기에 포스터를 걸어놓고 활동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어린이공원이라 초등학생 친구들이 많다. 그만큼 호기심도 많아서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는 어린이들은 몇 명 있었는데, 인터뷰할거냐고 물어보니 다들 인터뷰는 안 할 거라고 했다. 역시 인터뷰장벽은 어린 친구들에게도 높은 것 같았다.
그래도 말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는 것에 뿌듯해하면서 활동을 마쳤다. 그 후 시간표대로 버스를 타고 장태산 자연휴양림으로 갔다.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서 노선표를 보고 있는데 옆에 있는 여자 분이 너무 친절하게 “장태산 가는구나~? 그 버스 가는 거 맞아~” 라고 해주셔서 감사했다. 인터뷰하면서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고 대화하는 게 조오금은 편해져서 버스를 탈 때 그분께도 인사를 했다. 기분이 좋았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에는 일찍 도착했는데 내가 제일 일찍 도착해서 같이 도착한 하림이랑 같이 먼저 숙소를 확인하러 가봤는데 아무리 오르막길을 올라도 숙소가 보이지 않았다. 산만 엄청 타고 다시 내려와서 체크인시간까지 개인들살이 작업을 조금 하다가 다시 체크인을 하고 숙소로 올라갔다.
개인작업 끝내고 하림이랑 잠깐 앉아서 간식도 먹었다. 나의 강냉이와 하림이의 김을 먹으며 시간을 때웠다.
우리 숙소가 계속 안 보였던 이유가, 우리가 묵는 숙소가 거기에 있는 숙소 중에 가장 꼭대기에 있는 숙소였던 것이다. 심지어 산이 가팔라서 가방 두 개와 강냉이 큰 봉지를 가지고 낑낑대며 올라갔다. 이번 들살이의 부제는 ‘산’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숙소에 돌아와서는 축 늘어져 있다가 단체놀이를 공허하지만 웃기게 하고 즐겁게 보내다가 저녁을 먹고 다 같이 들살이 돌아보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둠별로 먼저 돌아볼 때에는 우리 모둠 안에서 한 명씩 고마웠던 걸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는데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돌아보기가 끝나고 바깥에 별을 보러 다 같이 나갔다가, 10학년끼리 진실평상 타임을 가지고 마지막 날까지 하루를 마무리 했당.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서 준비한 들살이인 만큼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아직까지 ‘잘 했다’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봐야 내 첫 숲터 들살이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둠들살이와 개인들살이를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들살이에서 해낸 것들이 평소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법한 일들이었는데, ‘들살이니까 일단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과감해졌던 것 같다. 물론 할 때마다 심장을 부여잡고 바들바들 떨렸지만, 이렇게 용기를 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내가 나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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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터뷰를 진행한 횟수보다 거절을 당한 횟수가 많았고, 이동에도 큰 시간을 쓰고 몸도 지쳤지만 돌아보면서는 웃음이 실실 난다는 말이 참 오래 마음에 남아요. 할 때마다 심장을 부여잡고 바들바들 떨었을 마음과 앞으로의 자신에게 더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의 말을 들으며 들살이의 힘이 느껴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