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조 원고
김영애
●약력
2007 《시조문학》 가을호 등단,2006《한맥문학》수필등단,
안동교육대학 졸업. 동양대학교 교육행정학과 졸업
한국문협영주지부 회장역임· 한국시조협회부이사장역임.영주시조회장역임
현)한국여성시조문학회이사
제34회 한국시조문학상 · 제3회 포은시조문학상대상 · 달가람시조문학상 외
시조집 『별이 되는 꽃』 『쪽빛 하늘 한 조각』 『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
수필집 『초승달에 걸린 반지』
●시작 노트
도저히 서늘해질 것 같지 않든 찌는 더위가 물러서자 거짓말같이
산책길에 도토리가 구르기 시작한다.
청설모 한 마리가 굴참나무를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걸 본다.
가슴에는 도토리 한 알을 한 아름 안고 입에는 파란 하늘 한 조각을
물고 있는 게 아닌가. 고 예쁜 놈은 입에 물린 하늘 조각이
떨어질까 봐 친구도 가족도 부르지 못해 애가 타서 두 눈이 머루알
처럼 까맣게 되고 말았다.
참 희한하게도 이 모습을 보고 더워서 밀쳐놓았던 연필을 다시 깎는다.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면서 단 한 가지 흉내 내는 것! 시조 빚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흉내조차 재주라면 그 재주에 감사한다.
세상은 넓지만 늘 가까운 곳에 내가 찾는 것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있으며, 소소하고 작은 것이 시심을 샘솟게 하며 만족을 가져다
준다는 평범을 확인하는 가을이다.
깊고 진중한 울림을 만들기 위해 나는 여전히 작은 것을 찾고,
가까운 곳을 기웃거리며 소소한 것에 오래 머무르려 한다.
내성천 풍경
노을로 메어놓은 빈 둥지 나룻배에
저물자 뱃머리로 달이 고이 찾아드네
저 혼자 지던 들꽃이 힘줄 다시 세우네.
소백산의 봄
빗장 걸린 산문을 두드린 이 누구일까
꽃물 든 간들바람 밤낮없이 드나들어
활 활 활 철쭉이 탄다. 또 한세월 열린다.
이별
네 손을 잡아야지 벼르기만 하다가
산빛이 푸르른 날 두 손을 영 놓치고
빈 뜰에 흐르는 찬송가 나만 홀로 듣는다.
애기똥풀
일손 없어 눈 감아 둔 묵정밭을 찾았더니
내 사정 빤히 알고 겁도 없이 들앉아서
한 하늘 떠받고 있네, 차마 낫질 못하네.
선운사 꽃무릇
간발의 차이로 임 또 놓친 허한 마음
말로는 다 못하지 글자로는 더더욱
얼마나 가슴 쓰리면 글쎄, 절 마당에 불을 놓나.
냉이
언 땅을 걸으면서 줄줄이 꿰인 사연
고 여린 손바닥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날 보고 읽어보라네. 땀에 절은 제 노래.
파도
안길 듯이 달려와서
손 내미니 사라지네
허공에 세운 집이
물결 따라 사라져도
곱던 날
연둣빛 언어
몽돌 틈에 반짝이네.
양면 세상
이 자리 저 자리를
곁눈질로 더듬으며
더 높은 꿈을 위해
몸피 자꾸 늘이는데
모래는
먼지 되려고
바람 속에 몸 쪼갠다.
정류소에서
-건망
산골행 막차 버스 휑하니 떠난 뒤에
의자에 홀로 남은 주인 잃은 장 꾸러미
삐죽이 행색을 내민 얼굴 야윈 북어포
큰 세상 넘보잖고 작은 꿈을 다져가며
아담한 탑 한 채 겨우 지은 일생 끝에
가을 해 스러지듯이 빠져나간 정신줄
푸른 날을 깎으면서 등 굽도록 산다는 게
알고 보면 하나씩 잃고 잊는 길이라며
북어포 붉은 눈시울 저녁별에 고한다.
맹세
까칠하게 여윈 몰골 살거라 생각 안 해
버릴까 망설이다 밀쳐 뒀던 선인장이
세상에 간밤을 건너며 둥근 해를 안았네
남몰래 눌러쓰는 가슴 속 노래 구절
듣는 이 없는 세상 아프고 아팠는지
보란 듯 확 내민 꽃으로 이 아침을 흔드네
찔레꽃 발치 아래 떨며 사는 풀포기도
살 섞어 키우는 꿈 하나쯤 왜 없으랴
다시는 어두운 눈으로 무게 달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