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냄새
조 흥 제
카메라 사진이 들어 있는 종이 상자를 꺼내 보았다. 가족사진이 들은 사진첩 밑에 비닐 봉투에 넣은 조그만 사진이 한 가득 들어 있다. 산에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나는 70~90년대에 산에 많이 다녔고, 따라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사진 뒤에 날짜와 장소를 기록했다. 그래서 그 사진들을 볼 때마다 산행 할 때가 떠오른다. 코펠 뚜껑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라면을 먹는 청설모 사진에 눈길이 머물렀다. 사진 뒤를 보니 ‘87년 6월17일 비선대에서 라면 먹는 청설모’라고 써져 있다.
그때 여름휴가를 맞아 설악산 옆 점봉산, 설악산 너머 가리봉 능선을 타고 주걱봉으로 내려 와 설악산 대승령, 12선녀탕, 마등령을 넘어 비선대로 내려오는 3박4일 일정의 산행계획을 세웠다. 가리봉은 좀처럼 여럿이 가게 되지 않아 휴가를 맞아 혼자 가기로 한 것이다.
6시에 상봉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양양행 버스를 탔다. 10시경에 설악산 오색약수터에서 내려 설악산 반대쪽인 점봉산으로 붙었다. 점봉산도 1400m가 넘는 큰 산인데 입구에 폭포가 많아 산악회에서 한번 가 봤지만 제대로 못 봐 혼자 찬찬히 감상하고자 했다. 하지만 3박4일 일정이면 짐이 많아 산악회에서 당일치기로 갈 때와는 달랐다. 정상에 올라서니 3시였다. 거기서는 설악산 대청봉을 보는 것이 일품인데 날이 흐려 보이지 않았다. 내려오는데 비가 왔다. 오색에서 민박하고 이튿날 버스 타고 8시에 한계령 휴게소에 내려 휴게소에 짐을 맡겨 놓고 가벼운 차림으로 설악산 반대쪽인 가리봉 능선으로 붙었다. 가리봉은 설악산 같이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이 뚜렷하지가 않았다. 거기다 지난밤에 온 비로 길 양쪽에 있는 나무들에 옷이 젖어 걸음이 느렸다. 그러자 안내서에 있는 능선 끝에 주걱봉을 넘기가 힘들다고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삐끗하여 미끄러지면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어 도저히 계획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가리봉 산행은 계획에서 지웠다. 산을 내려가 한계령 휴게소로 가서 짐을 찾아 8㎞ 밑에 있는 대승령 휴게소로 걸어갔다. 커브가 심한 좁은 길로 차체가 길은 차들은 나를 밀쳐낼 듯이 꺾으면서 달려 차타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랐다. 점심을 해 먹으려고 계곡으로 내려서니 넓은 내가 나왔다. 사람이 왔다 간 흔적이 없어 깨끗했다. 라면을 앉혀 놓고 느긋한 마음으로 원근의 경치를 본다. 설악산의 기기묘묘한 바위, 가리봉 연봉의 우뚝한 봉우리들, 그 사이 넓은 자양천에는 물속에 고기들이 오글오글하다. 다람쥐들이 가까이 와서 눈을 마주치고 먹을 것을 달랜다. 비스켓을 던져 주었더니 먹는다. 언제 산에 와서 이렇게 주위를 살펴 볼 여유가 있었나. 언제나 산에 오면 시간에 쫓겨 앞 사람 뒤꿈치만 보고 걸었는데 오늘은 그런 제약을 받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장수대 휴게소에서 자고 이튿날 대승령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대승폭포가 있다. 40분쯤 올라가니 물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니 건너편에 하얀 무명을 걸어 놓은 것 같은 기다란 물줄기가 걸려 있다. 88m의 대승폭포로 직폭이다. 헌데 물의 양이 많지 않아 밑에는 물이 흩어져 비말이 된다.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폭포는 금강산의 비봉폭포로 139m지만 배불뚝이 폭포여서 위가 안 보인다. 대승령을 넘으니 12선녀탕 계곡이다. 우리나라 계곡 중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다. 중간에 폭포들이 여러 개 있고 복숭아탕이 백미인데 폭포 뒤에 굴이 있다. 굴속엔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상상을 하면서 내려오니 추모비가 있다. 68년도에 가톨릭대학생들이 왔다 소나기에 갑자기 불은 물을 건너다 9명이 떼죽음을 당해서 비석을 해 세운 것이다. 8㎞를 7시간이나 걸린 험한 계곡이다.
큰 길에 나와 버스 타고 백담사 입구에서 내려 백담산장에 가서 잤다. 이튿날 오세암을 거쳐 마등령에 오르는데 오세암은 동자와 주지스님에 얽힌 전설이 있어 유심히 살펴보았다. 담 안에 유도화 꽃송이가 유난히 컸다. 시간이 없어 안에 들어가 보진 못했다. 마등령에 오니 대청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야호’하고 두 손을 벌리고 포효하였다. 계획된 산행을 무사히 마친 뿌듯함이 포효가 되어 나왔나 보다. 산을 내려 가 비선대(飛仙臺)에서 점심을 해 먹으려고 배낭을 풀었다.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넓은 계곡물로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였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한적한 곳에 점심을 앉혀놓고 주위를 살펴봤다. 내려 온 옆 석벽 중간에 굴이 있는데 금강굴이다.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석굴로 폐쇄됐다가 고려대학교 산악팀에 의해서 60년대에 발견되었다고 금강굴에서 장사하던 청소년이 얘기해 주었다.
내 주위로 청설모가 돈다. 청설모는 토끼만한 산 짐승으로 꼬리가 총채같이 길어 나무 위를 날아 다녀 날다람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먼발치에서만 보았는데 가까이 와서 내 주위를 도는 것이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먹던 라면을 코펠 뚜껑에 덜어 3m 앞에 놓아 주었다. 놈은 주저주저 하더니 달려들어 쪼그리고 앉아 앞발로 라면 발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사진을 찍고 싶었다. 다행히 일어나지 않고 카메라를 집을 수 있었다. 숨을 죽이고 소리 나지 않게 카메라 셔터를 살짝 눌렀다. ‘라면 먹는 청설모’ 쉽지 않은 사진을 얻은 것이다. 산 사진을 많이 보았지만 라면 먹는 청설모 사진은 아직 못 봤다. 사진작가들은 희귀한 사진을 얻으려고 모험을 한다. 시베리아 호랑이를 찍으러 러시아에 가서 10일 만에 찍은 사진작가도 있고, 한강에서 떨어져 죽으려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대고 빨리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보았다. 사람이야 죽건 말건 사진만 찍으면 된다는 비정한 마음이다. 나도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산에 많이 다니다보니 좋은 사진을 찍고 싶었다. 경치 좋은 곳이나 희귀한 사진을 찍으려고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
점심을 먹고 놈이 다 먹기를 기다리는데 빠른 동작과는 달리 먹는 것은 되게 느렸다. 빨리 먹어야 코펠 뚜껑을 회수하여 짐을 꾸리는데 놈이 시간을 빼앗으니 어쩌나. 일어나니 놈도 일어나 눈동자를 심하게 굴린다. 사람은 무섭고 라면은 먹어야겠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판단이 안 서는 모양이었다. 좀 더 기다리자. 놈은 왜 먹을 것이 천지인 여름철 산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나에게 와서 라면을 달라고 했을까? 단순히 라면 냄새가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시계를 보니 4시가 넘었다. 5시까진 속초에 가서 서울 행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 그래야 12시 안에 집에 갈 수 있다. 일어나 기지개를 켰더니 놈은 옆에 있는 나무로 올라가서 나를 바라본다. 먹다 남은 라면은 깨끗한 바위에 쏟아 놓고 짐을 챙겨 배낭을 지고 올려다보니 놈은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쏘아 보는 것 같다. ‘미안하다. 청설모야 서울 갈 막차 시간이 임박하니 어떡하니.’라고 말하고 바쁜 걸음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