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허먼 멜빌 (1819~1891)
「181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유복한 가정에서 지냈지만 아버지 사업 실패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가세가 기울었다. 생계를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은행 급사, 점원, 농장 일꾼, 학교 임시 교사등을 전전했다. 20세에 상선 급사로 취직한 후, 22세에는 포경 선원, 24세에는 해군이 되어 남태평양을 항해했다. 이를 바탕으로 몇 편의 해양 소설을 써서 주목을 받고 너새니얼 호손과 교류하며 창작에 도움을 받았다. 그 후 1891년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모비 딕은 1851년 출간 작품으로 처음에는 대중으로부터 호옹을 얻지 못했으나 그의 사후에 재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1장. 어렴풋이 드러나는 것들
나를 이수메일이라 불러다오, 몇 년 전(정확히 언제인지 묻지 말라) 지갑에는 돈이 다 떨어져가고 육지에는 딱히 흥미로운 일도 없어, 나는 배를 타고 나가서 세상의 바다를 둘러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당신이 시골, 이를테면 호수가 여럿 잇는 어느 고지대에 있다고 하자. 내키는 대로 어느 길을 따라가든 십중팔구 당신은 계속으로 내려가 개울가 웅덩이에 이를 것이다. 물에는 마력이 있다. 얼빠진 사람을 몽상에 푹 잠기게 한 다음 일으켜 세워서 발 닿는 대로 가게 해보라. 그러면 그는 틀림없이 그 지역의 물가로 갈 것이다. ~~~명상과 물은 서로 원원토록 맺어진 관계다.
6월에 대초원을 찾아가보라, 무릎까지 올라오는 참나리가 수십 킬로미터 펼쳐져 있어도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한 가지 매력은 무엇일까? 바로 물이다.
테네시주의 가난한 시인이 갑자기 은화 두 줌이 생겼을 때, 그것을 몹시 필요한 외투를 사는 데 쓸지 아니면 로커웨이 해안으로 가는 도보 여행의 자금으로 쓸지 깊이 고민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늠름하고 건강한 신체에 늠름하고 건강한 정신이 깃든 청년이라면 대부분 언젠가 바다에 가게 되기를 열망하는 것은 왜일까?
2장. 여행 가방
셔츠 한두 장을 쑤셔 넣은 낡은 여행 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혼곶과 태평양을 향해 출발했다. 정든 맨해튼을 떠나 제시간에 뉴베드퍼드에 도착했다.
나는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황량한 길거리 한복판에 서서 북쪽과 남쪽의 어둠을 비교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이슈메일. 어디로 가든지, 분별력 있게 어디에 숙소를 정하든지 간에 반드시 가격부터 알아보고 너무 까다롭게 굴지는 말자.
내부의 풍경은 도벳에서 열린 악마들의 회합 같았다. 100명은 족히 되는 검은 얼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 너머에는 검은 죽음의 사자가 설교단에서 책을 두드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선 곳은 흑인 교회였다. 목사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들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빠져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하, 이슈메일. 함정이라는 간판 치고는 형편없는 대접이군.”
나는 계속 걷다가 마침내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불빛 하나를 보았다. 공중에서 쓸쓸히 삐걱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문 위에 간판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간판에는 길게 쭉 뻗은 안개 같은 물보라가 하얀색으로 희미하게 그려져 있고. 그 밑에 ‘물보라 여관: 피터 코핀“이라고 쓰여 있었다.
정말 괴상하게 생긴 집이었다. 박공지붕을 얹은 이 낡은 집은 한쪽이 마비라도 된 것처럼 애처롭게 기울어져 있었다. 이 집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거리 모퉁이에 있었는데, 광풍 유로클리돈이 아주 오래전에 가련한 사도 바울의 배를 뒤흔들 때보다 더 세차게 울부짖고 있었다.
3장. 물보라 여관
아치 모양으로 세운 고래 턱뼈가 어찌나 큰지 마차도 그 밑을 지나갈 수 잇을 정도였다. 주점 안의 추레한 선반에는 오래된 포도주변, 유리병, 휴대용 술병 등이 즐비했다. 죽음을 부르는 고래 입속 같이 생긴 주점에는 그 옛날의 저주받은 요나처럼 또 다른 요나가 있었다. 이 작고 말라빠진 노인은 바쁘게 움직이면서 선원들에게 돈을 받고 광기와 죽음을 팔고 있었다. 노인이 독을 따라주는 잔은 아주 밉살맞게 생겼다. 바깥쪽은 원통형이지만 안쪽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져 작정하고 양을 속이는 악랄하기 이를 데 없는 초록색 잔이다. 날강도 같은 잔에는 자오선 같은 평행선이 조잡하게 새겨져 이 선까지 채우면 1페니, 다음 선까지 채우면 1페니 추가, 하는 식이었다. 잔은 가득 채우는 것은 혼곶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마시려면 1실링이 들었다.
여관 입구에서 덜거덕거리는 부츠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활짝 열리며 거칠게 생긴 선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털이 거친 방한 외투로 몸을 감싸고 넝마같은 털목도리로 머리를 싸맺는데도 수염에 고드름이 달린 채로 뻣뻣한 그들의 모습은 캐나다 래브라도 지역의 곰들이 들이닥친 것 같았다.
키는 180센티미터가 넘고 어깨는 떡 벌어졌으며 가슴은 방파제처럼 넓었다. 그렇게 근육이 많은 사람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린 짙은 갈색이었는데 그 때문에 하얀 이가 더욱 하얗게 보여 눈이 부실 정도였다. 눈에 드리운 깊은 그림자에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추억이 희미하게 떠돌았다.
동료 선원들의 흥청망청한 술판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주점을 빠져나갔고, 이후로 바다에서 동료로 다시 만날 때까지 나는 그를 보지 못했다.
주인장! 생각이 바뀌었어요. 작살 잡이 그자와 함께 못 자겠어요. 그냥 여기 벤치에서 잘게요. ~~~벤치 길이를 재어보니 내 키보다 30센티미터는 짧았다. 하지만 의자를 하나 갖다 대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알지도 못하는 작살잡이에게 부당한 편견을 갖고 잇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밤에는 물건을 팔러 나갔는데 왜 늦는지 모르겠군. 머리가 안 팔리는 모양이야. 머리가 안 팔린다고요? 대체 무슨 정신 나간 소리에요? ~~~내가 말한 작살잡이는 남태평양에서 얼마 전에 돌아왔는데, 거기서 향유를 바른 뉴질랜드 원주민 두개골을 잔뜩 사왔더군. 알다시피 그게 꽤 값나가는 골동품이거든. 다 팔고 딱 하나 남았는데 오늘밤에 떨이를 하려는 거여.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조개처럼 차가운 그 방에는 작살잡이 넷이 나란히 누워서 잘 수 있을 만큼 정말 거대한 침대가 놓여 있었다. ~~~마침내 설핏 w마들어 꿈의 세계로 들어서려는 순간, 복도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리고 방문 틈 아래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주님, 제발 살려주세요. 저건 분명 작살잡이, 극악무도한 두개골 장사꾼이 틀림없어, 나는 꼼짝하지 않고 드러누워 그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넌 누구냐?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말 안하면 나 너 죽인다. 그는 어둠 속에서 불붙은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순간 여관 주인이 촛불을 들고 방안에 들어왔고, 나는 침대에서 뛰쳐나와 그에게 달려갔다.
4장. 이불
5장. 아침식사
6장. 거리
뉴베드퍼드에서는 아버지가 딸에게 지참금으로 고래를 주고, 조카딸에게는 돌고래를 몇 마리씩 나눠준다고 한다.
7장. 예배당
여기 뉴베드퍼드에는 고래잡이 예배당이라는 곳이 있다. 인도양이나 태평양으로 출항할 날이 다가와 울적해진 선원들 가운데 일요일에 이곳을 찾지 않는 이가 거의 없다. 나 역시 거기를 찾아간 사람 중 하나였다. ~~~얼어붙은 모자와 재킷에서 진눈개비를 털어내고 출입문 가까이에 앉아 옆을 돌아본 순간 퀴케그가 근처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8장. 설교단
이 멋진 노인은 틀림없이 목사일 것이다. 그렇다, 그래, 저 사람이 고래잡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그 유명한 매플 목사로구나. 그도 젊었을 때는 선원이자 작살잡이였지만 오래전에 은퇴하고 성직에 몸담았다.
9장. 설교
10장. 절친한 친구
예배당에서 물보라 여관으로 돌아오니 퀴케그가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야만인이고 얼굴은 다소 흉측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의 표정에는 결코 불쾌하다고 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섬뜩한 문신에도 불구하고 소박하고 정직한 마음의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그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도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그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도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자 그는 이마를 내 이마에 대고 내 허리를 끌어안더니 이제부터 우리는 결혼한 사이라고 말햇다. 그의 고향에서 그 말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필요하다면 나를 위해 기꺼이 죽겠다는 뜻이었다.
저녁을 먹고 또 한 차례 사교적인 대화를 나눈 뒤 우리는 함께 방으로 갔다. 그는 방부처리한 두개골을 내게 선물했고, 커다란 담배 주머니를 꺼내더니 담배 아래를 뒤지다가 30달러쯤 되는 은화를 꺼냈다. 그런 다음 탁자에 늘어놓고 기계적으로 이등분하여 한쪽으로 밀면서 내 몫이라고 말했다. 나는 무슨 소리냐며 거절하려 했지만, 그는 은화를 내 바지 주머니에 쏟아 부으며 아무 말도 못하게 했다. 나는 은화들을 호주머니 안에 그대로 두었다.
11장. 잠옷
우리는 정말 마음이 통했고 자유롭고 편안했다.
12장. 살아온 날들
퀴케그는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코코보코라는 섬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도 퀘케그의 야심찬 영혼은 가끔 지나다니는 포경선을 한두 척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기독교 세계를 더 많이 둘러보고 싶다는 욕망을 강하게 품었다. 그의 아버지는 대족장, 즉 왕이고, 삼촌은 제사장이었다. 외가 쪽으로는 이모들이 무적의 전사들과 결혼했다고 그는 자랑했다. 그의 몸속에는 고귀한 피, 곧 왕족의 피가 흘렀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바람에 습득한 식인 습관 때문에 그 피가 오염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새그항에서 온 배 한 척이 아버지가 다스리는 영토에 들렀을 때, 퀴케그는 자신을 기독교 세계로 데려가 달라고 선장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그 배는 선원이 이미 충원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요청은 거절당했다.
그는 홀로 카누를 타고 먼 해엽 까지 노를 저어 갔다. ~~~그는 카누를 물 위 덤불숲 사이에 숨기고 뱃머리를 바다 쪽으로 고정시킨 다음 고물에 앉아 노를 낮게 잡고 기다렸다. 배가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나타나자 그는 번개처럼 돌진해 뱃전을 잡고는 한 발로 카누를 밀어내듯이 찼다. 카누는 뒤집혀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 쇠사슬을 잡고 배에 올라간 그는 갑판 위에 대자로 누운 채 거기에 박힌 고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온몸이 갈가리 찢기더라도 고리를 절대 놓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그는 선우너들 사이에서 지냈고 결국 고래잡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아! 그는 고래잡이로 일하면서 기독교인들도 비열하고 사악할 수 있다고, 아버지의 신하인 이교도들보다 훨씬 더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13장. 외바퀴 손수레
다음날 아침, 나는 방부 처리한 두개골을 어느 이발소에 가발 받침대로 팔고 그 돈으로 나와 동료의 숙박비를 계산했다.
우리는 외바퀴 손수레를 빌려 내 허름한 여행 가방과 퀴케그의 범포 자루, 그물 침대 등을 싣고 부두에 정박 중인 소형 정기선 모스호로 향했다. ~~~배는 돛을 올리고 애커시넷강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14장. 낸터킷
순항 끝에 우리는 무사히 낸터킷에 도착했다. 낸터킷! 지도를 꺼내서 한번 보라. 그 섬이 세상에서 어느 구석에 있는지 보라. 낸터킷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난바다에 에디스톤 등대 보다 더 외롭게 버티고 서 있다.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거기는 잡초도 저절로 자라지 않아 일부러 심어야 한 대. 캐나다산 엉겅퀴를 수입한다지, 기름통 마개를 하나 구하려면 바다를 건너야 하니 낸터킷에서는 나뭇조각 하나도 로마의 진짜 십자가 조각 같은 대접을 받는다더군. 그곳 사람들은 여름에 그늘을 만들려고 집 앞에 독버섯을 심는다지. 풀잎이 하나만 있어도 오아시스라고 하고 종일 걸어서 풀잎 세 개를 발견하면 대초원이라 한다더군. 라플란드 사람들이 눈 신발을 신는 r서처럼 거기서는 모래에 안 빠지려고 모래 신발을 신는대.
15장. 차우더
작은 모스호가 평온하게 닻을 내릴 때는 꽤 늦은 밤이었다.
16장. 배
침대에 누워 우리는 다음날의 계획을 짰다. 그런데 놀랍고도 걱정스럽게 큐ㅣ케그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요조(그의 작은 흑인 우상)와 열심히 의논했는데 요조가 두세 차례 응답하기를, 우리 둘이 항구에서 협력해 승선할 배를 골라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는 것이다. 대신에 도와줄 테니 배를 선택하는 일을 전적으로 자신에게 맡기라고 진지하게 지시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퀘케그와 요조를 작은 방에 남겨두고 혼자 밖으로 나왔다. 퀴케그와 함께 나오지 않은 것은 그날이 그에게 사순절이나 라마단처럼 금식하며 회개하고 기도하는 날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항해 신청을 위해 뱃고물 갑판을 둘러보며 책임자를 찾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주돛대 조금 뒤에 쳐놓은 기묘한 천막이, 아니 천막이라기보다는 인디언의 오두막집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나는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기이한 천막 뒤에 절반쯤 가려져 있었다. ~~~내 눈에 비친 노인의 외모는 딱히 특별한 점이 없었다.
피쿼드호의 선장입니까? 나는 천막 입구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렇다 치고 용건이 뭔가? 그가 물었다. 배에 탔으면 해서요. 배에 타고 싶다고? 보아하니 낸터킷 사람은 아니로군. 구멍 난 보트는 타본적 있고? 이나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그럼ㅁ 고래잡이 일은 하나도 모르는 거로군. 맞나? 네, 하지만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상선을 타고 항해해본 경험이 여러 번 있으니 제 생각에는... 상선 같은 소리는 집어치워. 나한테 그딴 말을 하지 말라고. 안 그러면 자네 그 다리 말이야. 내가 자네 엉덩이에서 뽑아버릴 테니. 참나, 상선이라니! 자네 상선 좀 탔다고 꽤나 자랑하고 다니는 것 같은데 그러면 뭐 하러 고래잡이를 하려고 하나, 응? 이거 수상한데, 안 그래? 설마 해적이었던 건 아니지? 지난번에 탔던 배에서 선장의 물건을 훔친 건 아니고? 바다에 나가 항해사들을 죽일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많은 낸터킷 사람이 그러하듯 빌대드도 펠레그 처럼 퀘이커교도였다.~~~~퀘이커교도 중 일부는 모든 선원과 고래잡이 중에서도 가장 피비린내를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은 싸움을 즐기고 복수심에 불타는 퀘이커교도이기도 하다.
빌대드. 펠레그 선장이 소리쳤다. 또 읽는 거야, 응? 내가 알기로 자네는 지난 30년 동안 성경을 연구해왔지. ~~~빌대드, 이 친구가 우리 배 선원이 되고 싶대.
펠레그는 서랍장을 열고 계약서를 꺼낸 다음 펜과 잉크를 앞에 가져다놓고 작은 탁자에 앉았다. ~~~포경업에서 급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대신에 선장을 포함한 모든 선원이 전체 수익에서 일정한 몫, 즉 배당이라는 것을 받아 가는데 이 배당은 각자가 배에서 맡은 일의 중요도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고래잡이 경험이 없으니 배당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봐, 빌대드 선장. 펠레그가 끼어들며 말했다. 자네 생각은 어때. 이 젊은이에게 배당을 얼마나 줘야겟어? 자네가 가장 잘 알지. 빌대드가 음산하게 대답했다. 777번이면 그리 많은 건 아니겠지?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쌓아두지 말라고? 겨우 777변을 주고서? 그래, 빌대드 영감. 내게도 이 땅에 많은 배당을 쌓아두지 말라는 말이군.
난 이 친구한테 300번을 줄 거야. 펠레그가 말했다. 빌대드, 듣고 있나! 300번. ~~~777번일세, 펠레그 선장. ~~~여기 아래에 서명하게, 이슈메일, 배당은 300번이야.
펠레그 선장님 나는 말했다. 제 친구도 배를 타고 싶어 하는데 내일 데려와도 될까요? 물론이지 펠레그가 대답했다. 데려오게 만나볼 테니. ~~~나는 서류에 서명한 다음 그곳에서 나왔다. ~~~나는 다시 배로 돌아가 펠레그 선장에게 에이해브 선장을 어디서 만날 수 있냐고 물었다.
17장. 라마단
퀴케그! 퀴케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다. 뇌졸중! 완력을 써서라도 문을 열려 했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처음 마주친 객실 담당 하녀에게 재빨리 내 의구심을 말했다. 어머! 하녀는 소리쳤다. 저도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침 식사가 끝나고 침대를 정리하러 갔는데 문이 잠겨 있더라고요. 쥐죽은듯이 조용했어요. 그 후로도 쭉 아무런 소리도 없었고요.
허시 부인이 곧 나타났다. 한 손에는 겨자 그릇을, 다른 손에는 식초병을 들고 잇었다. 양념 통을 정리하면서 흑인 소년을 나무라다 말고 나온 것 같았다. ~~~자살한 거야! 그녀는 소리쳤다. 불쌍한 스티그스 같은 놈이 또 생겼네. 이불을 또 버려야 하다니. 그놈의 엄마만 딱하게 됐지! 이러다 우리 집 망하게 생겼어.
여주인이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아아! 하지만 퀴케그가 안에서 보조 빗장을 채운 탓에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럴 수가! 방 한가운데에 퀴케그가 아주 침착하고 태연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은 그는 요조를 정수리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주위에서 난리가 나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는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조각상 같았다.
나는 결국 잠이 들었고 동틀 때까지 세상모르게 잤다. 깨어나 침대 옆을 보니 퀴케그가 바닥에 나사로 고정되기라도 한 것처럼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침 햇살이 창문에 비치자 그는 몸을 일으켰다.
18장. 그의 표시
19장. 예언자
20장. 출항 준비
21장. 배에 타다
우리가 부두 근처에 도착한 것은 새벽 여섯 시였지만 잿빛 안개가 자욱해 날이 완전히 밝지는 않았다.
22장. 메리 크리스마스
상선에서는 그런 식으로 닻을 감아올리나? 그가 고함쳤다. 당장 움직여. 이 멍청한 놈아. 움직이라고, 등뼈가 부서지도록! 이놈들아, 왜 움직이지 않아? ~~~마침내 닻을 올리고 돛을 펼친 배는 미끄러지듯 항구를 빠져나갔다. 해가 짧고 추운 크리스마스였다.
23장. 바람이 불어가는 쪽 해안
24장. 변호
나와 퀴케그는 이제 포경업에 정당하게 들어섰다.
25장. 덧붙이는 말
26장. 기사와 종자 1
피쿼드호의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낸터킷 토박이이자 조상 대대로 퀘이커교도 집안이었다.
27장. 기사와 종자 2
스터브는 이등항해사였다. 그는 코드곶 태생이어서 현지 관습에 따라 코드곶 사람이라고 불렀다. 태평스러운 그는 비겁하지는 않지만 용맹하지도 않았다. ~~~그 짧고 검은 작은 파이프는 코와 마찬가지로 그의 얼굴 일부나 다름없었다. 그가 침상에서 나오는데 파이프를 물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코를 빠트리고 나오는 것과 같았다. 그는 손이 닿는 선반에 속을 꽉 채운 파이프들을 나란히 걸어두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파이프들을 연달아 피웠다.
삼등항해사 플래스코는 비니어드섬의 티스버리 태생이었다. 키가 작지만 다부지고 혈색이 좋은 이 젊은이는 고래에 대해 무척 홎너적이었다. 무슨이유에서인지 그는 거대한 고래가 자신에게 그리고 선조들에게 모욕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래를 만날 때마다 죽이는 것은 그에게 명예가 달린 문제였다.
이들 세 항해사 스타벅, 스터브, 플래스크는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보편적 규정에 따라 피쿼드호의 포경 보트 세 척을 지휘했다.
28장. 에이해브
낸티킷에서 떠난 뒤 며칠이 지나도 에이해브 선장은 갑판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작살잡이들과 선원들 대부분은 내가 예전에 겪어본 상선의 온순한 선원들보다 훨씬 야만적이고 이교도적이며 잡다한 무리였지만, 스칸디나비아에서 발원한 이 거친 작업, 내가 자원해서 발을 들인 포경업만의 험악한 특성 탓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타당한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날씨는 덜 궂었지만 그래도 아침은 여전히 흐리고 음울했다. 순풍을 받은 배는 그동안 느렸던 속도를 벌충하려는 듯 펄쩍 뛰어올랐다가 침울한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그때 나는 오전 당직을 서려고 갑판에 올라갔는데, 시선을 고물 난간으로 옮기자마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며 온몸이 떨려왔다. 예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물 갑판에 에이해브 선장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래, 그는 일본 앞바다에서 다리를 잃었어. 언젠가 늙은 게이헤드 인디언이 말했다. 하지만 돛대 부러진 배가 그러하듯이 그도 귀향하지 않고 다른 다리를 달았지. 그는 지금도 그런 다리들을 보관해 놓은 화살 통을 가지고 있어.
선장이 서 있는 독특한 자세도 잊을 수 없었다. 피쿼드호의 고물 갑판 양쪽, 즉 뒷돛대 밧줄 근처의 널빤지에는 송곳으로 뚫어놓은 1.5센티미터 너비의 구멍이 있었는데, 그는 고래 뼈로 만든 다리를 그 구멍에 끼우고 한쪽 팔을 들어 밧줄을 붙잡고 꼿꼿이 선 채 위아래로 끊임없이 요동치는 뱃머리 너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출항 후 처음으로 바람을 쐬러 갑판에 나온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선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날 아침 이후로 매일 선원들의 눈에 띄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휴일다운 기분 좋은 날씨가 찾아왔다. 따뜻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듯한 날씨에 선장의 우울함도 조금씩 걷히는 듯했다. 발그레한 볼을 하고 춤추는 소녀 같은 4월과 5월이 사람을 꺼리는 추운 숲을 찾아오면, 아무리 헐벗고 거칠고 억세며 벼락을 맞아 쪼개진 늙은 참나무라 할지라도 그 쾌활한 손님을 반기기 위해 초록빛 싹을 몇 개는 틔울 것이다.
29장. 에이해브 등장, 뒤이어 스터브 등장
며칠이 흘렀다. 이제 피쿼드호는 얼음과 빙산을 모두 뒤로 하고 언제나 8월인 열대지방의 문턱을 넘어 그곳을 영원히 지배하고 있는 키토의 화창한 봄 날씨를 즐기며 나아갔다. 따뜻하면서도 시원하고, 맑고, 청아하고, 향기롭고, 넘치도록 풍성한 낮은, 마치 장미 향수를 뿌린 눈으로 만든 페르시아 셔벗을 수북이 담은 수정 그릇 같았다. 별이 빛나는 장엄한 밤은 보석이 달린 벨벳 드레스를 입고 자랑스럽게 홀로 집을 보살피며, 정복 전쟁을 하러 떠난 백작 남편과 황금 투구를 쓴 태양을 회상하는 도도한 귀부인 같았다.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진다. 인간은 삶의 끈을 오래 붙들고 있을수록 죽음을 닮아 있는 것들과 관계를 덜 갖게 된다. 선장들 중에 한밤중에 자주 침상에서 일어나 갑판을 찾는 사람은 수염이 허연 노인들뿐이다.
30장. 파이프
31장. 매브 여왕
다음날 아침 스터브는 플래스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봐, 왕대공. 나 정말 이상한 굼을 꿨어. 어런 꿈은 처음이야. 영감이 달고 있는 고래 뼈 다리 알지? 꿈에서 내가 그 다리에 차였지 뭐야. 그래서 나도 영감을 차려고 하는 데, 놀랍게도 내 오른쪽 다리가 쑥 빠지더라고.
32장. 고래학
33장. 작살잡이장
간부 선원과 일반 선원의 가장 큰 차이는 간부 선원은 뱃고물 쪽에, 일반 선원은 뱃머리 쪽에 숙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포경선에서든 상선에서든 항해사들은 선장과 같이 배 뒤쪽에 선실이 있다.
남태평양 고래잡이 항해는 여태껏 인간이 실행한 가장 긴 거리의 항해이고, 그런 장기 항해에는 특별한 위험이 따른다.
34장. 선실 식탁
선장과 항해사들의 식탁에는 참을 수 없는 억압과 눈에 보이지 않고 형언하기 힘든 횡포가 존재하지만, 그보다 직급이 낮은 작살잡이의 식탁에는 태평스러운 자유와 여유, 그리고 광란에 가까운 평등함이 있어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35장. 돛대 꼭대기
선원들이 교대로 돛대 꼭대기에 올라가 망을 보았는데, 처음으로 내 차례가 온것은 날씨가 비교적 화창한 날이었다.
포경선에서는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세 개의 돛대 꼭대기에 망꾼이 계속 배치된다. 선원들은 교대로 키를 잡듯이 늘 교대로 망을 보며 두 시간마다 업무를 교대한다. 열대지방의 고요한 날씨에 돛대 꼭대기에 오르면 기분이 무척 좋다.
조용한 갑판에서 30미터나 올라간 곳에 서서 돛대가 거대한 죽마라도 되는 r서처럼 다리를 벌리고 서면 두 다리 사이 아래로 거대한 바다 괴물이 헤엄을 친다.
배는 무아지경에 빠진 듯 서서히 흘러가고 나른한 무역풍이 불어온다. ~~~남태평양 포경선은 길게 3년 혹은 4년을 항해하기에 돛대 꼭대기의 근무 시간을 전부 합치면 몇 달이나 된다.
36장. 뒷갑판
플레스크 선장 보았나? 스터브가 소근거렸다. 선장 안에 잇는 병아리가 껍질을 쪼고 있군. 곧 나오겠어. 몇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에이해브는 선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더니 다시 갑판으로 나와 좀 전과 똑같이 강작에 사로잡힌 얼굴로 갑판 위를 걸어다녔다. 저녁 무렵이 다 되었다. 에이해브는 갑자기 뱃전 옆에 멈춰 서더니 거기에 나 잇는 송곳구멍에 고래 뼈 다리를 집어넣고 한 손으로 돛대 밧줄을 잡고는 스타벅에게 선원을 모두 고물로 집합시키라고 지시했다. 선장님! 스타벅이 놀라서 외쳤다. 비상사태가 아니면 이런 지시는 배에서 좀처럼, 아니 아예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물로 전원 집합시켜. 에이해브가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거기 돛대 꼭대기! 이리 내려와.
고래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발견했다고 소리칩니다! 스무 명 정도가 일제히 대답했다. 좋아! 에이해브는 불쑥 던진 질문에 선원들이 자석 달라붙듯이 바로 대답하는 것을 보고 흡족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보트를 내리고 고래를 쫓습니다. 어떤 자세로 노를 저어야 하나? 고래를 죽이거나, 아니면 보트에 구멍이 나거나! 선원들이 소리쳐 대답할 때마다 노인의 표정은 점점 더 기이하고 격렬한 기쁨과 만족감을 드러냈다.
돛대 꼭대기 망꾼들은 흰 고래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지시를 들어 잘 알 것이다. 자 봐라! 이 스페인 금화가 보이나? ~~~이건 16달러짜리 금화다. 다들 잘 보이나? 스타벅, 저쪽에 있는 쇠망치를 가져다주게. ~~~자네들 중 누구든 이마가 주름지고 아가리가 구부러진 대가리 하양 고래를 보고하면 오른쪽 꼬리에 구멍이 세 개 뜷린 하얀 대가리 고래를 보고하면, 자, 이 금화는 바로 그 사람의 것이다!
에이해브 선장님. 타슈테고가 말했다. 그 흰 고래는 틀림없이 모비 딕이라는 놈일 겁니다. 모비 딕? 에이해브가 소리쳤다. 타슈, 자네 그 흰 고래를 알고 잇다는 건가? 그 고래는 물에 들어가기 전에 꼬리를 부채처럼 좀 이상하게 흔들지 않습니까? 게이해드 인디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퀴케그, 그놈에게 박힌 작살은 모두 뒤틀려 잇다. 그래, 다구, 놈이 내뿜는 물기둥은 밀 다발처럼 아주 크고, 매년 양털 수확 행사 후 쌓아놓은 낸터킷의 양털처럼 아주 하얗지. 그래, 타슈테고, 놈은 돌풍에 찢어진 삼각돛처럼 꼬리를 흔든다. 망할! 자네들이 본 게 바로 모비 딕이야, 모비 딕, 모비 딕이라고! ~~~선장님의 다리를 앗아간 게 모비 딕입니까? ~~~그래 제군들, 내 돛대를 꺾어 버린 놈이 바로 모비 딕이다.
37장. 해질녘(선실, 뱃고물 창가, 에이해브 홀로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아아, 나도 떠오르는 해로부터 고귀한 격려를 받고, 지는 해로부터 위안을 받을 때가 있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 사랑스러운 빛, 이 빛은 나를 비추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예언을 하나 하겠다. 나는 내 다리를 자른 놈의 몸을 잘라버릴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예언자이자 실행자가 된다.
38장. 황혼(주돛대 옆, 스타벅이 기대어 서 있다)
나는 반항하면서도 복종한다. 더 나쁘게는 그를 증오하면서도 동정한다! 그의 눈에서 지독한 비애를 보았다. 내 속에 그런 슬픔이 있었더라면 나는 힘없이 시들어버렸을 것이다.
39장. 첫 번째 야간 당직(앞돛대 망루, 스터브가 혼자 아딧줄을 수선하고 있다)
40장. 한밤중, 앞갑판
-작살잡이들과 선원들(앞돛대 돛이 올라가고 당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있는 자, 어슬렁거리는 자, 기대고 있는 자, 누워 있는 자 등 자세가 다양하다. 다 함께 합창을 한다)
잘 있어요, 안녕, 스페인 아가씨들!
잘 있어요, 안녕, 스페인 아가씨들!
선장님의 명령이 떨어졌어요.
낸터킷 선원 1
자, 다들 감상에 빠지지 말게, 소화가다 안 되잖아. 기운 나는 노래를 부르세, 나를 따라해! (그가 노래를 부르자 모두가 따라 부른다)
우리 선장님 갑판 위에 서서
망원경 하나 손에 들고
바다 곳곳에서 물을 내뿜는
웅장한 고래들을 바라보네.....
41장. 모비 딕
온갖 해괴한 소문이 과장되어 돌아다녔고, 치명적인 만남에 관한 실화는 사람들을 더욱 소름끼치게 했다. 죽은 나무에서 버섯이 자라듯 이런 엄청난 소문들은 놀랍고 끔찍한 사건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태평양의 최북단에서 잡힌 몇몇 고래의 몸에서 그린란드 바다에서 박힌 작살의 날이 발견된 것은 이미 미국과 영국의 포경선들에 잘 알려진 사실이고, 예전에 박물학자 스코스비가 남긴 권위 있는 문서에도 언급된 적이 있다.
어떤 선장은 주변의 보트 세 척이 박살나고 노와 사람이 소용돌이에 한데 휘말려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단검을 움켜쥐고 부서진 뱃머리에서 마치 아칸소의 결투사가 상대에게 달려들 듯 고래의 아가리에 달려들었다. 불과 한 뼘 남짓한 칼날을 휘두르며 저 깊숙한 곳에 있는 고래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마구잡이로 달려든 것이다. 그가 바로 에이해브 선장이었다. 바로 그 순간 낫처럼 생긴 모비딕의 아래턱이 갑자기 밑으로 휙 지나가 듯 하더니 예초기가 풀을 베듯 에이해브의 다리를 싹둑 베어버렸다. ~~~거의 죽을 뻔했던 그 대결 이후로 에이해브는 당연히 그 고래에게 격렬한 복수심을 품게 되었다.
42장. 고래의 흰색
에이해브에게 흰 고래가 어떤 존재인지는 이미 언급했지만, 그 고래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모비 딕에게는 때때로 인간의 영혼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두드러진 특징 외에도 다소 모호하고 형언하기 어려운 공포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나머지 모든 특징을 압도해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무척 불가사의하고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여서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무엇보다 나를 오싹하게 만든 것은 그 고래가 흰색이라는 사실이었다. ~~~흰색은 자신의 특별한 장점을 대상에게 부여해 그 아름다움을 한층 더 높여준다.
43장. 잘 들어봐!
쉿! 저 소리 들리나, 카바코? 야간 당직 때였다. 달빛이 환한 밤, 선원들은 갑판 중앙에 있는 담수 통에서 뱃고물 난간 근처의 음료수 통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늘어서서 차례로 양동이를 넘기며 음료수 통에 물을 채웠다.
44장. 해도
에이해브가 자신의 목적을 밝히고 흥분한 선원들이 복종을 맹세한 그날 밤에 돌풍이 불었다. 이후 선실로 내려간 선장을 따라갔다면, 그가 선미판 사물함에서 둘둘 말린 채 보관된 누그스름하고 구겨진 대형 해도를 꺼내 나사로 고정 시킨 탁자 위에 펼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이따금 옆에 쌓아둔 옛 항해일지들을 뒤적이기도 했는데, 그 일지에는 여러 배가 항해하다가 향유고래를 잡거나 목격한 계절과 장소가 기록되어 있었다.
고래의 습성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지구의 끝없는 대양에서 홀로 다니는 거대한 짐승을 찾는다는 것이 터무니없이 무망한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이해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조수와 해류를 훤히 꿰뚫고 있었고, 덕분에 향유고래의 먹이가 다니는 길도 추정할 수 있었다. 또한 특정 위도에서 모비 딕을 사냥하기 적합한 것으로 확인된 시기를 떠올리면서, 사냥감을 만나려면 이런저런 해역에 언제 도착해야 하는지 거의 확실할 정도로 합리적인 추론을 해냈다. 실재로 향유고래는 주기적으로 특정 해역에 나타난다.
향유고래는 먹이를 찾아 해역을 이동할 때 확실한 본능, 아니 신에게 받은 신비한 지성에 이끌려 이른바 맥(脈)을 따라 헤엄친다. 그들은 헤매는 법 없이 정확하게 특정한 바닷길을 계속해서 따라가는데, 세상의 어떤 배가 어떤 해도를 따라 항해한다고 해도 그 경이로운 정확성에는 10분의 1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경우 고래가 선택한 방향은 측량기사가 그은 평행선처럼 곧고, 따라서 고래가 나아가며 남긴 흔적도 직선 항로 범위 내로 국한된다. 그러나 고래가 따라가는 그 임의적인 맥은 폭이 보통 수 킬로미터에 이른다(맥의 폭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 폭은 이 마법의 수로를 따라 신중하게 항해하는 포경선의 돛대 꼭대기에서 살필 수 있는 시야의 범위를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요약하면 특정 시기에 그 해역 안에서 직선 항로로 이동하면 이동 중인 향유고래들을 거의 확실히 발견할 수 있다.
무리지어 다니는 향유고래는 특정한 먹이 터를 정기적으로 찾기는 하지만, 올해 어떤 위도나 경도에 나타난 고래 무리라고 해서 작년에 그곳에서 발견된 무리와 같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경우가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로 드러난 특수한 경우도 잇다. 이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성숙하고 나이든 향유고래들 중에서 혼자 지내는 은둔형 고래에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모비 딕이 지난해에 인도양의 세이셀이나 일본 연해의 분화만에서 목격되었다고 해서, 피쿼드호가 이듬해 그 두 곳을 들른다고 한들 반드시 모비 딕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비 딕이 때때로 나타났던 다른 먹이 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장소는 고래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잠시 체류하는 바다의 여관인 것이다. 여태까지 에이해브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기회란 우연과 선례를 따르고 요행을 바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때로는 탈진할 정도로 생생한 꿈을 꾸다가 그물 침대에서 뛰쳐나오는 일도 있었다. 낮에 품었던 강렬한 생각이 계속되어 꿈에도 나타나는 것이었다. 꿈속에서 그 생각들은 미친 듯이 충돌하는 가운데 불타오르는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며 휘몰아치고, 심장이 너무 세게 고동쳐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때로는 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그의 존재가 바닥에서 붕 떠오르면, 그 밑으로 여러 갈래의 불꽃과 번갯불이 솟구치는 심연이 열리며 저주받은 악마들이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45장. 진술서
향유고래는 경우에 따라 고의로 큰 배에 구멍을 내거나 박살내고 침몰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영악함, 신중함, 적개심을 가지고 있고, 실재로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1820년 폴러드 선장이 지휘하는 낸터킷의 에식스호가 태평양을 순항하고 잇었다. 어느날 고래가 내뿜는 물줄기를 보고 에식스호는 보트를 내려 향유고래 무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래 몇 마리가 상처를 입었다. 그때 보트를 피해 달아나던 아주 커다란 고래가 무리에서 벗어나더니; 곧장 본선으로 달려들었다. 놈이 이마로 선체를 들이받자 배는 구멍이 뚫렸고 10분도 안 되어 옆으로 기울어지며 침몰하고 말았다. 그후 널빤지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몇몇 선원들은 보트를 타고 그 자리를 벗어났으나 혹독한 환경 속에서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간신히 육지에 도찰할 수 있었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폴러드 선장은 다른 배의 지휘를 맡아 또다시 태평양으로 나갔지만, 신의 뜻인지 몰라도 미지의 암초와 파도로 다시 난파하고 말았다. 두 번째 항해에서도 배를 잃은 그는 바다와 인연을 끊겠다고 맹세하고는 다시는 배를 타지 않았다.
향유고래가 자신을 공격했다가 본선으로 돌아가는 보트를 추격했을 뿐 아니라 갑판에서 온갖 창이 날아오는 와중에도 본선 자체를 공격한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다. ~~~또한 공격당한 향유고래에게 기력을 회복할 시간을 주면, 놈이 맹목적인 분노로 날뛰는 대신에 추격자들을 파멸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신중하게 움직이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46장. 추측
불같이 뜨거운 목적의식에 사로잡힌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잡겠다는 궁극의 목표를 늘 가슴속에 간직했고. 그 하나의 열정을 위해 세상의 모든 관심사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에이해브가 스타벅의 두뇌에 자석을 대고 있는 한 스타벅의 육체와 강요된 의지는 그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 일등항해사는 마음속 깊이 선장의 목적을 싫어했고, 되도록 벗어나고 싶어 했을 뿐 아니라 좌절시키고 싶다는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흰 고래를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 긴 시간 동안 스타벅에게 일상적이고 신중하며 상황에 맞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는 선장의 지휘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에이해브는 피조물인 인간이 영원히 처해 있는 상태는 비열함이라고 생각했다. 흰 고래가 야만적인 선원들의 마음을 자극해 그들의 야만성 가운데 너그러운 기사도 정신을 일으킨다 해도, 그 때문에 모비 딕을 추격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좀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식욕을 채워줄 음식이 필요하다.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선원들에게서 빼앗으면 안 되겠다고 에이해브는 생각했다. ~~~돈을 벌 가망이 보이지 않으면 잠잠하던 돈이 갑자기 그들의 마음속에서 반란을 일으켜 에이해브를 쫓아내고 말 것이다.
47장. 거적 짜기
흐리고 무더운 오후였다. 선원들은 빈둥거리며 갑판 위를 거닐거나 납빛의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퀴케그와 나는 보트 밧줄로 사용할 밧줄 거적을 짜고 있었다. 바다는 매끈한 유리처럼 잔잔해 마치 잠자는 듯했다. 그러나 왠지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것이 떠돌고 있어 말없는 선원들은 제각기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자아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열심히 거적을 짜고 있을 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길게 끄는 듯한, 너무나 거칠고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자유의지의 실 꾸러미를 툭하고 떨어뜨렸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그 소리가 날개처럼 떨어져 내린 구름 쪽을 올려다보았다. 돛대 꼭대기의 활대에 게이헤드 출신의 미치광이 타슈테고가 서 잇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손도 막대기처럼 쭉 뻗은 채 짧은 간격으로 연신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바다 위에 떠 있는 다른 수백 척의 포경선 돛대 꼭대기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익숙한 외핌은 인디언 타슈테고만큼 기막힌 소리로 뽑아낼 수 있는 허파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머리 위에서 공중에 반쯤 매달린 채 미친 듯이 수평선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가 운명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것이 다가오고 있음을 그처럼 격렬하게 외는 선지자나 예언자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저기 고래가 물을 뿜는다! 저기! 저기! 저기! 고래가 물을 뿜는다! 고래가 물을 뿜는다!
향유고래는 시계가 뚝딱이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어김없이 물을 내뿜는다. 그것을 보고 고래잡이들은 향유고래를 다른 고래종과 구별한다. 저기 꼬리가 가라앉는다! 타슈테고가 또다시 외쳤고, 고래 무리는 조용히 사라졌다. 서둘러, 급사! 에이해브가 소리쳤다. 시간! 시간!
향유고래라는 놈은 가끔 특이한 속임수를 쓸 때가 있다. 어느 한 방향으로 잠수한 줄 알았는데 깊은 물속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정ㅂ나대 쪽에서 솟구치는 것이다.
48장. 최초의 보트 출격
에이해브가 그들의 맨 앞에 서 있던 흰 터번 쓴 노인에게 소리쳤다. 다 준비되었나, 페달라? 준비되었습니다. 노인은 반쯤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보트를 내려. 내 말 들리나? 에이해브가 갑판 저쪽에서 소리쳤다. 보트를 내리라고.
에이해브는 고물에 우뚝 서서 스타벅과 스터브, 플래스크에게 보트의 간격을 크게 벌려서 각자 담당할 해역을 넓히라고 큰 소리로 지시했다. ~~~빨리 흩어져. 에이해브가 소리쳤다. 네 척 모두 힘껏 노를 저어라. 이봐 플래스크, 바람 부는 쪽으로 더 나가.
저기 또 흰 물보라가 일어난다! 바싹 붙어. 노를 저어! ~~~외침이 들리자마자 스타벅은 번개처럼 빠르게 속삭였다. 일어서! 그러자 작살을 들고 있던 퀴케그가 벌떡 일어났다. ~~~저기 고래 혹이 있다. 저기다 저기. 작살 한 방 먹여! 스타벅이 속삭였다. 보트에서 무언가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퀴케그가 던진 작살이었다. 그 순간 천지가 뒤엉키는 혼란 속에서 고물 쪽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떠밀리며 배가 암초에 부딪치는 것 같았다. 돛은 주저앉고 찢어졌다. 보트 근처에서 뜨거운 증기가 솟구쳤다. 보트 아래에서 지진이 난 것처럼 무언가가 출렁이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모든 선원은 스콜로 인해 하양 크림이 엉겨 붙은 듯 한 바다에 마구잡이로 내동댕이쳐져 숨조차 거의 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스콜, 고래, 작살이 모두 한 테 뒤엉켰다. 그리고 고래는 작살에 찰과상만 입은 채로 도망갔다.
보트는 완전히 물에 잠겼지만 부서진 곳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보트 주위를 헤엄치며 물 위에 떠다니는 노를 건져 뱃전에 단단히 묶은 다음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본선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어서 보트의 물을 퍼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윽고 새벽이 희붐하게 밝아오자 우리는 고개를 들고 앞을 보았다. 바다에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었다. ~~~그때 갑자기 퀴케그가 벌떡 일어서더니 귀에 손을 갖다 댔다. 희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우리에게도 들려왔다. 지금까지 폭풍 때문에 들리지 않던 밧줄과 활대 소리였다.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희미하지만 거대한 물체가 짙은 안개를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본선이 그 선체의 길이 정도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49장. 하이에나
50장. 에이해브의 보트와 선원들, 페달라
51장. 유령의 물줄기
몇 날 몇 주가 지나갔다. 상앗빛 피쿼드호는 돛을 활짝 펴고 바람을 맞으며 네 개의 해역을 유유히 통과했다. ~~~배가 마지막 해역을 지나는 어느 고요한 달밤, 잔잔한 파도가 은빛 두루마리처럼 펼쳐지고 부드럽게 물결치는 소리에 바다가 고독의 들판이 아니라 은빛 침묵의 초원처럼 보이는 조용한 밤, 뱃머리의 하양 물거품 앞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은빛 물줄기 하나가 솟아올랐다. 달빛에 비친 그 물줄기는 천상의 것이고 반짝이는 깃털을 꽂은 신이 바다에서 일어서는 모습 같았다. 처음 그 물줄기를 발견한 것은 페달라였다. ~~~저기 고래가 물을 뿜는다!
에이해브는 갑판 위를 날듯이 걸으며 윗돛대의 상부 가로돛은 물론이고 보조돛을 모두 펴라고 지시했다. ~~그의 성한 다리는 갑판 위에서 활기찬 울림을 만들어냈으나, 의족은 갑판을 디딜 때마다 관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날 밤 은빛 물줄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 한밤중의 물줄기가 기억에서 거의 사라질 무렵, 그때와 똑같이 고요한 시간에 물줄기가 보인다는 외침이 또 들려왔다. 이번에도 다들 물줄기를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물줄기를 따라잡기 위해 돛을 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줄기는 사라져버렸다. ~~~때로는 청명한 달빛이나 별빛 아래서 신비롭게 물을 뿜기도 하고, 때로는 온종일 또는 이틀이나 사흘 동안 전혀 보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배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한 외로운 물줄기는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배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자 희망봉 일대의 바람이 불어 닥쳤고, 우리는 그 길고 험난한 바다에서 파도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상앗빛 피쿼드호가 돌풍에 고개를 숙이며 화난 것처럼 뱃머리의 뿔로 파도를 들이박자 은 부스러기가 쏟아지듯 물보라가 뱃전 너머로 날아들었다. 생명체를 모두 비워버린 듯한 적막함은 사라지고 전보다 더욱 음산한 광경이 펼쳐졌다. 뱃머리 가까운 곳 물속에서 기이한 형체들이 우리 앞으로 이리저리 날쌔게 움직이고, 뱃고물 쪽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다까마귀들이 줄지어 앉았는데 아무리 소리를 지르며 쫓아내려 해도 한참이나 버티며 날아가지 않았다.
선장은 고래뼈 다리를 늘 끼우던 구멍에 끼워 넣고 한 손으로는 돛대 밧줄을 단단히 붙든 채, 몇 시간 동안이나 꼼짝하지 않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52장. 앨버트로스호
희망봉의 남동쪽, 참고래 포획 어장으로 유명한 크로제제도 근처에 이르렀을 때, 저 앞에서 앨버트로스라는 이름의 배 한 척이 나타났다. ~~~어이, 거기 가는 배! 흰 고래를 보았나?
53장. 포경선들의 만남, 갬
54장. 타운호호 이야기
앨버트로스호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또 다른 포경선 타운호호와 마주쳤다. 그 배의 선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폴리네시아 사람들이었다. 잠깐이지만 그 배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모비 딕에 고나한 아주 확실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따금 사람들에게 들이닥치는 신의 심판이 고래에 의해 기이하면서도 전도된 방식으로 수행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신의 심판에 대한 부분은 그에 수반되는 독특한 세부 사항이 앞으로 내가 이야기할 비극의 은밀한 핵심을 이루는데, 그 이야기는 에이해브 선장이나 항해사들의 귀에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타운호호의 백인 선원 세 명끼리만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가톨릭교회식으로 비밀 엄수 맹세를 받고 나서 타슈테고에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타슈테고가 잠꼬대를 하면서 비밀의 상당 부분을 발설하고 말았고, 자고 일어나서는 나머지 이야기도 다 털어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그 이야기를 들은 피쿼드호의 선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이상한 미신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피쿼드호의 주돛대 뒤쪽으로는 이야기가 절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비밀을 굳게 지켰다. 이제 나는 갑판에서 아는 선원들끼리만 주고받은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적절히 어두운 실을 섞어 넣어 이 기이한 사건의 전모를 영구히 기록해두고자 한다.
나는 어느 성인의 축일 전야에 두꺼운 황금빛 타일이 깔린 황금 여관의 베란다에서 빙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던 스페인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봐, 친구들. 지금 이야기하려는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쯤이었어. ~~~어느날 아침, 일과에 따라 펌프질을 하던 선원들이 선창에 평소보다 물이 더 많이 고여 있는 것을 발견했지. 다들 청새치가 배에 구멍을 뚫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어. ~~~~며칠이 지나도록 물새는 구멍은 찾지 못했지만 물이 상당히 불어나 있었지. 그 지경이 되자 경각심을 갖게 된 선장은 돛을 모두 올리고 가장 가까운 섬의 항구로 가기로 결정했어. 그곳에서 선체를 끌어올려 수리하려고 말이야.
항구가 있는 섬을 향해 뱃머리를 돌린 지 하루나 이틀 정도 되었을 때, 타운호호의 침수는 점점 심해졌지만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펌프질을 하면 되는 정도였어.
해가 뜨자 선장은 모든 선원을 집합시켜놓고 반란에 가담했던 자들과 가담하지 않았던 자들을 갈라놓았어.
다음날 동틀 무렵 선원들이 갑판 청소를 하고 잇을 때, 주돛대 사슬에서 물을 퍼내던 어떤 멍청한 테네리페섬 출신의 선원이 갑자기 소리쳤어. 저기 고래가 간다! 저기 고래가 간다! 맙소사, 엄청난 고래였어! 바로 모비 딕이었지.
55장. 말도 안 되는 고래 그림들
56장. 오류가 적은 고래 그림과 사실적인 고래잡이 그림
57장. 그림, 이빨, 나무, 철판, 돌, 산악, 별자리 등에 나타난 고래에 관해
58장. 요각류
크로제제도에서 북동쪽으로 항ㄹ해하던 우리 배는 요각류가 가득한 바다 목장으로 들어섰다. 작고 누런 그 생명체는 참고래가 즐겨먹는 먹이다. 요각류가 몇 킬로미터에 걸쳐 넘실거려 우리는 마치 황금빛으로 무르익은 밀밭을 헤치고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바다는 자신과 이질적인 사람에게 적수가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도 악마 같은 짓을 하며, 자신이 초대한 손님을 살해한 페르시아 연회 주인처럼 자기가 낳은 생명체마저 봐주지 않는다. 자기 새끼를 밀림에 던져놓고 깔아뭉개는 야생의 암호랑이처럼, 바다는 아주 힘센 고래마저 암벽에 부딪혀 죽게 만들고 나서는 난파선의 잔해와 나란히 눕게 한다.
59장. 오징어
피쿼드호는 요각류 목장을 천천히 빠져나가면서 자바섬을 향해 여전히 북동항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배의 용골을 앞으로 밀어주고, 주위는 조용한 가운데, 높이 솟은 세 돛대는 마치 평원에 서 있는 세 그루의 야자나무처럼 나른한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리고 은빛으로 빛나는 밤이면 아주 가끔 사람을 유혹하는 외로운 물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어느 청명한 아침, 정체된 연못 같은 느낌은 전혀 아니지만 초자연적인 고요함이 바다 위에 널리 깔려 있었다. 한줄기 햇살이 마치 비밀 유지를 당부하는 황금의 손가락처럼 바다 위에 길게 드리워지고, 파도마저 푹신한 덧신을 신은 듯이 조심스레 달리며 소리를 낮추어 속삭일 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깊은 정적 속에 잠긴 그 아침에, 주돛대 꼭대기에 있던 다구의 눈에 기이한 유령 같은 것이 보였다.
저 멀리서 커다란 흰덩어리가 느릿느릿 머리를 내밀더니 점점 더 높이 올라오면서 푸른 바닷물이 갈라지고, 마침내 우리 뱃머리 앞에 반짝이는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이제 막 산에서 산사태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잠시 반짝이던 그것은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솟아올라 아무 소리 없이 반짝거렸다. 고래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것이 모비 딕일지 모른다고 다구는 생각했다. 유령이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가 또다시 나타나자, 흑인 다구는 송곳처럼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졸고 있던 선원들을 모두 깨웠다. 저기! 저기 다시 나타났다! 저기 고래가 물 위로 솟구친다! 바로 앞이다! 흰 고래다, 흰 고래!
곧 보트 네 척이 바다에 내려졌다. 에이해브의 보트를 선두로 목표물을 향해 신ㅅ고히 접근했다. 녀석은 곧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그동안 우리는 노 젓기를 멈추고 녀석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 녀석은 좀 전에 가라앉은 바로 그 자리에서 또 한 번 서서히 올라왔다. 길이와 폭이 200미터에 달하고 반짝이는 크림색의 거대하고 흐물흐물한 덩어리가 물 위에 떠오른 것이다.
살아 있는 거대한 오징어야. 사람들 말로는 녀석을 보고 항구로 돌아가 그 이야기를 들려준 포경선은 거의 없다더군.
60장. 포경 밧줄
61장. 스터브가 고래를 죽이다
괴물 오징어의 출현이 스타벅에게 하나의 불길한 조짐이었다면, 퀴케그에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오징어 보면, 곧 향유고래 본다는 뜻이다. 야만인은 본선으로 끌어올린 보트의 뱃머리에서 작살을 갈며 말했다.
다음 날은 아주 조용하고 무더웠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피쿼드호의 선원들은 바다가 이렇게 한가할 때 찾아드는 낮잠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어려웠다.
내가 앞 돛대 당직을 설 차례였다. 나는 느슨하게 돛대 꼭대기 밧줄에 두 어깨를 기대고 서서 매혹적인 바다 공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갑자기 감긴 두 눈 아래에서 물방울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손으로 돛대 밧줄을 바이스처럼 꽉 움켜쥐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보라! 바람 불어가는 쪽, 40패덤(70미터)쯤 떨어진 곳에 거대한 향유고래가 뒤집힌 군함의 선체처럼 물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보트를 내려라! 뱃머리를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돌려라! 에이해브가 소리쳤다. ~~~우리가 이렇게 추격에 나서자 그 괴물은 꼬리를 공중으로 10미터 이상 수직으로 들어 올리더니 탑이 물속으로 가라앉듯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바로 그때 저기 꼬리가 보인다!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 소리가 있고 나서 한참 후 물속 깊이 잠수했던 고래가 다시 솟구쳐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스터브의 보트 앞쪽에 나타났다. ~~~이제 고래가 추격자들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침내 기다리던 고함이 들려왔다. 타슈테고, 일어서라! 저놈에게 한 방 먹여! 곧바로 작살이 날아갔다. ~~~적은 그 칼을 빼내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마침내 고래가 속도를 약간 늦췄다. 밧줄을 감아, 감아 들여! ~~작살을 맞은 괴물의 몸뚱이에서 붉은 피가 언덕 아래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놈이 죽었어요. 항해사님. 타슈테고가 말했다.
62장. 작살 던지기
63. 작살받이
64장. 스터브의 저녁 식사
65장. 고래 고기 요리
66장. 상어 대학살
67장. 고래 해체 작업
고래의 지방은 귤껍질이 속살을 감싸고 있듯이 고래의 속살을 감싸고 잇기 때문에 고래는 물속에서 계속 빙글빙글 돌고, 고래 지방은 스타벅과 스터브가 좌우에서 삽으로 동시에 내는 스카프라는 절단선을 따라 한 조각으로 균일하게 벗겨진다. 고래 지방이 빨리 벗겨지는대로 양묘기가 도르래를 들어 올리고, 벗겨진 고래 지방은 점점 더 들어 올려지다가 마침내 주돛대 꼭대기의 망루를 스치게 된다. 그러면 거대한 담요같이 생긴 기름 덩어리가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거린다.
작살잡이 중 하나가 길고 날카로운 수납용 칼을 들고 앞으로 나와 기회를 엿보다가 흔들거리는 거대한 덩어리 밑 부분에 상당한 크기의 구멍을 손씨 좋게 뚫는다. 이 구멍에 두 번째 갈고리를 끼워 넣어 고래 지방을 단단히 고정시키면 후속 작업이 진행된다. ~~~다시 한 번 기름 덩어리에 달려들어 몇 차례에 걸쳐 옆으로 비스듬이 칼을 내질러 덩어리를 완전히 두 동강낸다.
68장. 담요
고래 지방층은 단단하고 밀도 높은 쇠고기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질기고 탄력이 있으며 두께는 20센티미터부터 40센티미터에 이른다.
고래 지방층이 고래의 가죽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 가죽은 대형 향유고래의 경우 100통이나 짜낼 수 있는 기름을 안에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양이나 무게를 따져보았을 때, 기름은 가죽 전체가 아니라 4분의 3 정도에서만 짜낸 것이다. 겉가죽의 일부에만 이렇게 엄청난 양의 기름이 나오는 것을 생각해보면 향유고래가 얼마나 거대한 동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기름 10통을 1톤으로 환산하면 고래 가죽의 4분의 3 정도가 무려 10톤이나 나가는 것이다.
69장. 장례식
하늘의 독수리들이 모두 경건하게 애도하고, 바다의 상어들이 모두 격식을 갖추어 검은 옷이나 검은 무늬 옷을 차려입었다.
70장. 스핑크스
고래에는 목이라고 부를 만한 신체 부위가 사실상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고래의 머리와 몸통이 연결되는 지점은 오히려 고래의 몸 중에서도 가장 두껍다.
71장. 제로보암호 이야기
제로보암호는 고향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포경선을 만나 선원들에게서 모비; 딕의 존재와 그 고래가 일으킨 참상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72장. 원숭이 밧줄
73장. 스터브와 플래스크가 참고래를 죽이고 그 자에 관해 대화하다
지난밤부터 다음 날 오전 사이에 피쿼드호는 노란 요각류 떼가 가끔씩 떠다니는 바다로 서서히 접어들었다. 근처에 참고래가 있다는 특별한 표시였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바람이 불어가는 쪽에서 커다란 물기둥이 보였다. 이내 고래를 추격하기 위해 스터브와 플래스크가 이끄는 보트 두 척이 내려졌다. 두 보트는 계속해서 멀리 나아갔고, 마침내 돛대 꼭대기에서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저 멀리에서 거대한 흰 물결이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두 보트 중 한 척이 고래 등에 작살을 꽃은 것 같다는 소식이 망대에서 전해졌다. 잠시 후 고래에 끌려 본선 쪽으로 곧장 다가오는 보트 두 척이 시야에 또렷이 들어왔다. 괴물이 선체에 너무 가까이 다가와 처음에는 배를 들이박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래는 뱃전에서 15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치 용골 밑으로 잠수한 듯이 보였다.
밧줄을 끊어라. 끊어! 두 보트 모두가 본선을 강하게 들이박을 것처럼 보이는 순간, 본선에서 보트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밧줄통에 밧줄이 충분히 남아 있었고, 고래가 아주 급하게 잠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트는 밧줄을 충분히 풀어주는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어 본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몇 분 동안 보트와 고래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보트의 선원들이 팽팽해진 밧줄을 늦추는 동시에 노를 맹렬히 젓자 서로 상반되는 힘으로 인해 배가 전복될 위험마저 있었다. ~~~마침내 목적을 이루려는 순간, 빠른 진동이 용골을 번개처럼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팽팽한 밧줄이 배 밑바닥을 살짝 스치더니 탁 소리와 함께 부르르 떨면서 뱃머리 앞에서 솟구쳐 올랐다. 밧줄에서 물방울이 튀면서 유리 조각처럼 바다 위에 와르르 쏟아졌다. 고래는 저 멀리서 다시 솟아올라 시야에 들어왔고, 보트들은 다시 자유롭게 추격할 수 있었다. 지친 고래는 속도를 늦추더니 무작정 방향을 바꾸어 두 척의 보트를 매단 채 본선의 뱃머리를 돌았다. 보트 두 척과 고래가 완전히 한 바퀴 돈 셈이었다. ~~~마침내 고래가 뿜어내는 물줄기가 걸쭉해졌고, 고래는 사납게 뒤척이며 토하더니 배를 드러내 보이며 죽고 말았다.
74장. 향유고래 머리 - 비교 검토
거대한 바다 괴물의 당당한 족보 중에서 향유고래와 참고래가 가장 주목할 만하다. 인간이 정식으로 사냥하는 고래는 이 두 종류뿐이다.
고래는 전방의 시야가 좌우로 30도 정도이고, 뒤로도 그 정도밖에 보지 못한다. 만약 어떤 적수가 환한 대낯에 단검을 높이 쳐들고 정면에서 똑바로 걸어온다면, 적수가 뒤에서 바싹 쫓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고래는 그를 전혀 보지 못한다.
75장. 참고래의 머리 - 비교 검토
76장. 공성퇴
나는 지방층이 고래 몸을 귤껍질처럼 깜싸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고래 머리도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머리를 감싸고 잇는 외피는 그리 두껍지 않고 뼈도 없지만 직접 만져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단단하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작살이나 창을 던져도 힘없이 튕겨 나올 정도다. 향유고래의 이마는 말발굽으로 다져진 것처럼 단단하다.
77장. 커다란 하이델베르크 술통
이제 고래의 기름통에서 기름을 퍼낼 때가 되었다. ~~~향유고래의 머리를 단단한 타원형으로 보고 그 경사면을 옆에서 옆에서 비스듬이 잘라 두 개의 코인으로 나누어 보자. 아래쪽 코인은 두개골과 턱을 이루는 골격이고, 위쪽 코인은 뼈가 전혀 없는 기름 덩어리다. 위쪽 코인의 앞부분은 널찍한 수직 형태의 이마를 이룬다. 위쪽 코인을 이마 중간쯤에서 수평으로 자르면 거의 동일한 크기의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사실 두 부분은 두꺼운 힘줄 같은 물질의 내벽으로 자연스럽게 나뉘어 있다.
수평으로 다시 분할한 것 중 아랫부분을 지방조직이라고 부르는데, 기름으로 가득한 하나의 거대한 벌집 모양을 하고 있다. 수만 개의 세포로 촘촘하게 이루어진 조직으로 질기고 탄력 잇는 하양 섬유질이 그 위를 얼기설기 채우고 있다. 기름통이라고 부르는 윗부분은 향유고래의 몸속에 있는 커다란 하이델베르크 술통과 같다. 그 유명한 술통 앞면에 신비로운 그림이 조각되어 있듯이 고래의 주름진 이마에도 이 경이로운 기름통은 상징적으로 장ㄴ식하기 위한 기이한 무늬가 무수히 새겨져 있다. ~~~향유 고래의 기름통에도 가장 귀하고 값비싼 기름, 즉 뇌경유가 더없이 순수하고 투명하며 향기로운 상태로 저장되어 있다. 이 귀한 기름은 고래의 다른 부위에서는 순수한 형태로 발견되지 않는다. 고래가 살아 잇을 때는 몸속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지만, 고래가 죽은 뒤에는 공기에 노출되면서 금새 굳어버리는데 막 얼기 시작한 얇고 깨지기 쉬운 얼음처럼 아름다운 결정을 만들어 뻣어가기 시작한다.
큰 고래의 기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약 2,000리터의 경뇌유가 나온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기는 하지만 기름을 일정한 장소에 확보하는 까다로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상당한 양의 경뇌유가 쏟아지거나 새거나 흘러서 손실이 발생한다.
78장. 기름통과 들통
우물의 두레박과 비슷하게 생긴, 쇠를 댄 단단한 들통을 고패의 밧줄 한쪽 끝에 매단다. 밧줄의 다른 한쪽 끝은 갑판을 가로질러 가서 저편의 민첩한 두세 명의 선원이 붙들고 있다. ~~~들통이 고래의 기름통에 완전히 잠길 때까지 내리 누른다. 그런 다음 고패 쪽에 있는 선원들에게 소리를 질러 알리면, 들통은 젓짜는 여자가 갓 짜낸 우유통처럼 부글거리는 거품과 함께 다시 올라온다. ~~커다란 보관통에 고래 기름을 쏟아 붓는다.
79장. 대평원
80장. 고래의 뇌
다 자란 고래의 두개골 길이는 적어도 6미터나 된다. ~~~그곳에 주먹 하나 크기밖에 되지 않는 이 괴물의 뇌가 들어있다. 이 뇌는 살아 있는 향유고래의 겉으로 드러난 이마에서 약 6미터 아래에 위치한다.
81장. 피쿼드호, 융프라우호를 만나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우리는 데릭 데 데어 선장이 지휘하는 브레멘 선적의 융프라우 호를 만났다. ~~~저자가 손에 들고 흔드는 것을 가리키며 스타벅이 소리쳤다. 아니, 저게 뭐야! 기름 급유기잖아. ~~~그가 갑판에 오르자 에이해브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 불쑥 질문부터 했다. 하지만 독일인은 엉터리 영어로 흰 고래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화제를 얼른 급유기와 기름통으로 돌렸다. ~~~데릭은 필요한 기름을 받고 떠났다. 그런데 그가 자기 배에 가까이 다가간 순간, 양쪽 배의 돛대 꼭대기에서 고래를 발견했다는 함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고래는 여덟마리로 이루어진 보통의 규모였다. 고래들은 위험을 감지하고는 마차를 끄는 여덟마리의 말처럼 나란히 늘어서서 서로 옆구리를 바싹 붙인 채 비벼대며 순풍을 타고 빠른 속도로 헤엄쳐 갔다. ~~~고래 무리보다 몇 길이나 떨어진 곳에서 혹이 달린 거대한 늙은 고래 한 마리가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다.
넨터킷 작살들은 독일 작살잡이의 머리 위로 날아가 고래의 몸에 정확히 박혔다. 물거품과 운무 같은 하양 물살이 눈앞을 가릴 정도로 솟구쳤다! 격분한 고래가 무작정 달려드는 바람에 세 척의 보트는 독일인 보트의 측면을 세게 들이박았고, 그로 인해 데릭 선장과 당황한 작살잡이가 바다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위를 내터킷의 보트 세 척이 날듯이 지나갔다. ~~~탁 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끊어지며 배는 바로 섰고, 고래의 사체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82장. 포경업의 명예와 영광
83장. 역사적으로 고찰해본 요나
84장. 창 던지기
85장 . 분수
86장. 꼬리
87. 무적함대
88장. 학교와 교장
89장. 잡힌 고래와 놓친 고래
영국에서 횡령당한 고래를 찾겠다는 기이한 소송이 벌어졌다. 원고측은 자신들이 북해에서 고래를 힘들게 추격한 끝에 작살을 던지는 데는 성공했지만, 목숨이 오가는 위험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밧줄 뿐 만 아니라 보트까지 포기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피고 측(다른 포경선의 선원)이 달아난 고래를 따라가 다시 작살을 쏴서 죽이고 원고 측이 보는 앞에서 고래를 가로챘다. 원고측이 항의 하자 피고 측 선장은 원고측 면전에 손가락을 튕기며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고, 포획 당시 고래에 부착 되어 있던 원고 측의 작살과 밧줄, 보트 등도 모두 잡은 자의 것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그래서 원고 측은 고래와 밧줄, 작살, 보트 등의 소유권 반환을 위해 소송을 걸었다. 피고측 변호인은 어스킨 씨였고, 재판장은 엘런버러 경이었다. 재치가 넘치는 어스킨 씨는 변호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론하기 위해 최근에 일어난 간통 사건을 언급했다. 어떤 남자가 아내의 부정을 막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자 결국 아내를 세상이라는 바다에 버렸는데, 몇 년 후 그렇게 한 일을 후회하며 아내에 대한 소유권을 회복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어스킨 씨는 상대편 변호사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피고 측을 변호했다. 비록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누구보다 먼저 작살을 던져 여자를 붙들어두었지만, 계속 부정을 저지르는 여자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포기했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남자가 여자를 포기했으니 여자는 놓친 고래가 된 셈이다. 따라서 다음에 나타난 남자가 그녀에게 다시 작살을 쏘았을 때, 여자는 자신의 몸에 박혀 있었을지도 모르는 예전의 작살과 함께 다음 남자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이런 변론과 함께 반대 측 변론을 모두 들은 박식한 재판관은 아주 명확한 판결을 내렸다. 즉 보트는 원고 측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이므로 원고 측에 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의 고래와 작살과 밧줄은 피고 측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래는 최종적으로 잡힐 당시에 놓친 고래였으며, 작살과 밧줄은 고래가 그것을 매달고 달아났을 때 고래의 소유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후에 고래를 잡은 자는 고래뿐만 아니라 고래가 달고 있는 물건에 대한 소유권도 주장할 수 있다
90장. 머리냐 꼬리냐
91장. 피쿼드호, 로즈버드호를 만나다
우리는 안개가 끼어 나른한 한낯의 바다를 천천히 항해하고 있었다. ~~~뭔가 나타날 것 같아. 이 근처 어딘가에 우리가 지난번에 당김나무를 걸어둔 고래들이 있는 게 분명해. 봐봐, 논들이 곧 나타날테지.
부릉 드 로즈 친구. 자네 혹시 흰 고래를 보았나? 무슨 고래? 흰 고래. 향유 고래인데 이름이 모비 딕이야. 본 적 있나?
92장. 용연향
용연향이란 참으로 기이한 물질이고 상품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1791년에 낸터킷 출신의 코핀 산장이라는 사람은 이 문제로 영국 하원에서 심문을 받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용연향의 정확한 기원은 호박과 마찬가지로 학자들에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용연향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회색 호박이라는 뜻이지만, 그 둘은 완전히 별개의 물질이다. 호박은 해안에서 때때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주로 깊은 내륙의 땅 속에서 발견되는 것인 반면에, 용연향은 오로지 바다에서만 발견된다. 호박은 단단하고 투명하며 깨지기 쉬운 무취의 물질로 담배 파이프의 물부리나 목걸이 장신구 등에 사용된다. 반면에 용연향은 부드럽고 물렁물렁하며 향기가 아주 좋아 대체로 향수나 방취제, 고급 양초, 머리 분이나 머리 기름 등에 사용한다. 터키 사람들은 용연향을 요리에도 사용하고 메카로 순례할 때도 가져간다.
그나저나 멋쟁이 신사숙녀들이 병든 고래의 부패한 창자에서 꺼낸 물질로 자신을 치장한다는 사실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고래가 소화불량에 걸리는 원인이 용연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용연향이 소화불량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용연향 속에서 단단하고 둥글 납작한 뼈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 처음에 스터브는 그것이 선원들의 바지에서 떨어져 나온 단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용연향 속에 갇혀 방부 처리된 작은 오징어의 뼛조각으로 밝혀졌다.
93장. 버림받은 자
‘94장. 손으로 쥐어짜기
95장. 사제복
96장. 기름 짜는 솥
97장. 등잔
98장. 채우기와 치우기
99장. 스페인 금화
100장. 다리와 팔 -낸터킷의 피쿼드호, 런던의 새뮤얼엔더비호를 만나다
어이! 흰 고래를 보았소? 에이해브는 영국 깃발을 달고 고물을 스켜가는 배를 향해 또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흰 고래는 저기 적도에서 보았소. 영국 배 선장은 고래 뼈 팔로 동쪽을 가리키며 그 팔이 망원경이라도 되는 양 그쪽으로 아쉬운 시선을 보냈다. 지난번 고래잡이 철이 보았소. 근모이 팔을 Ep 간 거요? 이이해브가 양묘기에서 내려와 영국 배 선장의 어깨에 기대면서 물었다. 그렇소. 적어도 그놈이 원인이었소. 그 다리도 그런 거요? 이야기 좀 들려주시오. 에이해브가 말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때 나는 난생처음 적도를 항해하고 있었소. 영국인이 말했다. 당시에는 흰 고래에 대해 알지도 못했소. 어느날 우리는 네댓 마리의 고래를 추격하려고 보트를 내렸고 내 보트에서 날린 작살이 그중 한 마리에게 박혔소. 그런데 놈이 곡마단의 말처럼 정신없이 주위를 빙빙 돌지 뭐요. 보트의 선원들이 고물 바깥쪽 뱃전에 모여서 앉고서야 겨우 균형을 잡을 수 있었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 밑에서 거대한 고래가 물 위로 불쑥 솟구쳤소. 머리와 혹이 우유처럼 하얗고 머리 전체가 온통 주름투성이인 고래였소.
그놈이요, 그놈! 에이해브는 참고 잇던 숨을 갑자기 토해내며 소리쳤다. 그리고 오른쪽 지느러미 근처에 작살이 여러 개 박혀 있었소. 그렇지 그래! 그것은 내가 던진 것이오. 내 작살이라고. 에이해브가 신나서 소리쳤다. 계속 예기해보시오.
101장. 술병
102장. 아르사시드군도의 나무 그늘
103. 고래 뼈대 측량
내가 세심하게 계산한 크기와 스코스비 선장의 일부 추산을 종합해보면 몸 길이가 18미터인 초대형 그린란드 거ㅗ래의 무게는 70톤 정도 된다. 또한 나의 세심한 계산에 따르면 몸 길이가 25~27미터 정도 되고 몸통 둘레가 12미터 가까이 되는 초대형 향유고래의 무게는 최소한 90톤은 나간다.
트랑크 섬에 있는 향유 고래의 전체 길이는 22미터엿다. 살아 있을 때 살이 붙어 있고 몸을 쭉 뻗은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크기는 27미터는 되었을 것이다. 고래의 뼈대는 살아 있는 몸뚱이와 비교해서 길이가 약 5분의 1 정도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갈비뼈는 양쪽에 각각 10개씩 있다. 목 부분에서 시작되는 첫 번째 갈비뼈는 길이가 거의 1.8미터였다. ~~~다섯 번째에 이르러서는 2.5미터가 조금 넘었다. 열 번째 갈비뼈는 1.5미터 정도다.
104장. 화석 고래
105장. 고래의 크기는 줄어들고 있는가? 고래는 멸종할 것인가?
오늘날의 고래가 제3기층에서 화석으로 발견되는 고래보다 덩치가 클 뿐만 아니라, 같은 3기층일지라도 후기의 지층에 속한 고래가 전기의 지층에 속한 고래보다 더 컷다.
106장. 에이해브의 다리
107장. 목수
108장. 에이해브와 목수
109장. 선장실의 에이해브와 스타벅
이제 피쿼드호는 남서쪽에서 대만과 바시제도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스타벅이 선장실에 들어갔을 때 에이해브는 동양의 여러 군도가 그려진 일반 해도와 일본 열도의 기다란 동해안이 그려진 별도의 해도를 펼쳐놓고 있었다.
선창의 기름이 새고 있어요. 도르래로 기름통을 꺼내야 합니다. ~~~야, 스타벅! 나는 도르래로 기름통을 올릴 생각이 없네. ~~~빌어먹을 네 놈이 감히 나를 비난하려는 거냐? 나가! ~~에이해브는 그물 선반에서 장전된 머스킷총을 낚아채어 스타벅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이고, 피쿼드호의 주인도 선장 한 명뿐이다. 갑판으로 올라가.
잠시후 이마의 깊은 주름살을 펴고는 총을 선반에 다시 올려놓은 다음 갑판으로 올라갔다. 스타벅, 자네는 정말 좋은 친구야. 그는 항해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110장. 관에 누운 퀴케그
선창에 마지막으로 넣은 기름통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므로 더 안쪽에 있는 기름통이 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 무렵 나의 불쌍한 이교도 동료이자 소중한 친구인 퀴케그가 열병에 걸려 임종이 가까이 온 것 같았다.
그의 고향에서는 전사가 죽으면 향료로 방부처리를 한 다음, 그가 평소에 타던 카누에 눕혀서 별처럼 많은 섬이 반짝이는 바다로 띄워보냈다.
퀴케그는 그물 침대에서 몸을 내밀고 한참 동안 관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그런 다음 작살을 가져오게 하여 나무 자루는 빼버리고 칼날만 건네며 보트에서 쓰던 노와 함께 관속에 넣어달라고 했다. 또 그의 요구에 따라 건빵을 관 내부의 사방에 늘어놓았고, 신선한 물 한 병을 머리맡에 놓았으며, 선창에서 긁어모은 나뭇조각이 섞인 흙을 작은 자루에 담아 발치에 놓았다. 그리고 돛의 조각보 하나를 말아 베개로 만들었다. ~~~자신을 관에 눕혀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몇 분 동안 꼼짝하지 않고 관속에 누워 있다가 자신의 자루에서 작은 신 요조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다음 요조를 가슴에 올려놓고 양팔로 감싸더니 관 뚜껑을 덮어달라고 했다. 머리 부분에 달린 가죽 경첩을 열자 평온한 얼굴로 관 속에 누워 있는 퀴케그가 보였다. “라르마이”(이 정도면 됐어, 편안하다) 그는 마침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을 다시 그물 침대에 옮겨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퀴케그를 그물 침대로 옮기기 전에 그동안 근처에서 내내 서성이던 핍이 그가 누워있는 자리에 다가갔다. 핍은 낮게 흐느끼며 한 손으로 퀴케그의 손을 잡았다. 다른 손에는 탬버린이 들려 있었다.
불쌍한 방랑자여! 그대는 이 피곤한 방랑을 영원히 끝내지 않으려는 건가요? 이제 당신은 어디로 가려는 건가요? 만약 해류가 당신을 연꽃 가득한 해변이 아름다운 저 안틸레스제도로 데려가줄 거라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그곳에서 실종된지 오래된 핍이라는 아이를 찾아주세요. 나는 그 아이가 머나먼 안틸레스제도에 잇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찾거든 아이를 위로해주세요. 아이는 무척 슬퍼하고 잇을 테니까요. 보세요! 이렇게 탬버린을 놓고 갔잖아요. 내가 발견했어요. 리가 딕, 딕, 딕! 자, 퀴케그, 이제 죽어요, 그러면 당신의 장례 행진에 맞추어 탬버린을 쳐 줄께요.
그런데 죽을 준비를 모두 마치고 자신이 들어갈 관도 편안하게 잘 만들어진 것을 확인하면서 퀴케그는 갑자기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퀴케그는 야만인다운 별난 생각으로 이제 그 관을 사물함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그동안 범포 자루에 넣어두었던 옷들을 그 안에 모조리 집어넣고 가지런히 정돈했다.
111장. 태평양
바시제도 옆을 스치듯 지나 마침내 드놃은 남태평양으로 나왔을 때.
112장. 대장장이
113장. 용광로
114장. 황금빛 바다
일본 어장의 심장부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면서 피쿼드호는 곧 대대적으로 고래잡이에 나섰다.
받다가 육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다를 꽃이 만발한 대지로 보는 것이다. 저 멀리 있어 돛대 꼭대기만 보이는 배도 높게 일렁이는 파도가 아니라 대초원에서 일렁이는 풀밭을 헤치며 나아가는 듯이 보인다. 서부로 이동하는 이주민의 말들이 우거진 풀밭을 헤치며 지날 때, 몸통은 보이지 않고 무성한 신록 사이로 쫑긋 솟은 두 귀만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115장. 피쿼드호, 배철러호를 만나다
에이해브의 작살이 제작되고 나서 몇 주 후, 유쾌한 광경과 소리가 순풍을 타고 피쿼드호 앞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낸터킷 배인 배철러(총각)호였다. ~~~배철러호는 아주 놀라운 실적을 거두었다. 같은 바다에서 조업을 했어도 다른 배들은 여러 달이 지나도록 고래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므로 그 배가 거둔 성공은 더욱 놀라웠다.
흰 고래를 보았소? 에이해브가 대답 대신 이를 악물며 물었다. 아니, 보지 못했소.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소.
116장. 죽어가는 고래
유쾌한 배철러호를 만난 그 다음날, 고래를 네 마리나 발견하고 다 잡았다. 그중 한 마리는 에이해브가 직접 잡았다.
오후도 다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창이 빗발치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막을 내리자 태양과 고래는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에 떠서 함께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때 어떤 기도 소리 같은 것이 소용돌이치며 장밋빛 하늘로 올라갔는데, 얼마나 감미롭고 구슬픈지 머나먼 마닐라제도의 깊고 푸른 골짜기 수도원에서 시작된 스페인풍의 육지 바람이 웬일인지 선원으로 변신하여 이 저녁에 찬송가를 부르며 바다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17장. 고래 불침번
그날 저녁에 잡은 네 마리의 고래는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었다. 하나는 멀리 바람불어오는 쪽에, 하나는 그보다는 덜 바람 불어가는 쪽에, 하나는 뱃머리에, 마지막 하나는 고물 쪽에 있었다. 그래서 고래를 잡은 보트가 그 옆에서 밤새 보초를 섰는데, 보트는 에이해브의 것이었다.
118장. 사분의
119장. 양초
여길봐. 스타벅이 스터브의 어깨를 잡고 손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뱃머리쪽을 가리켰다. 돌풍이 동쪽에서 불어오고 있어. 에이해브가 보비딕을 쫓아가고 있는 바로 그 방향이야. 오늘 정오에 에이해브가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지.
피뢰침! 피뢰침! 스타벅이 에이해브의 앞길을 비추는 번갯불을 보고 갑자기 경각심이 들었는지 선원들에게 소리쳤다. ~~~멈춰! 에이해브가 소리쳤다. 우리가 비록 약체이기는 해도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피뢰침을 그대로 둬라!
120장. 첫 번째 야간 당직이 끝날 무렵의 갑판
121. 한밤중 - 앞갑판의 뱃전
122. 한밤중의 돛대 꼭대기 -천둥과 번개
음, 음, 음. 천둥아 그만 좀 쳐라!
123. 머스킷총
자정이 지나고 몇 시간 후, 태풍은 상당히 잦아들었다.
124. 나침반의 바늘
다음날 아침, 아직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바다는 마치 거인의 손바닥처럼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천천히 다가와, 애쓰며 나아가는 피쿼드호를 밀어주었다.
125장. 측정기와 측정줄
126장. 구명부표
이제 피쿼드호는 에이해브가 만든 수평 자석에 의지해 남동쪽으로 진로를 잡고, 오로지 선장의 측정기와 측정줄에 따라 판단하며 꾸준히 적도를 향해 나아갔다.
마침내 배가 적도 어장의 외곽 가까이에 이르러 날이 밝기 전의 깊은 어둠 속에서 한 무리의 작은 바위섬들을 지날 때였다. 당시 플레스크가 이끄는 팀에서 당직을 서고 있었는데, 몹시 거칠고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울음소리가 들려와 깜짝놀랐다. ~~~해뜰 무렵 그 선원은 그물 침대에서 일어나 앞 돛대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가 망루에 올라간 지 얼마 안 되어 비명소리와 함께 쉬익 하는 바람소리가 났다. 선원들이 위를 올려다보니 공중에서 유령 같은 것이 추락하고 있었고, 곧이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푸른 바다에서 흰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흰 고래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돛대에 오른 피쿼드호의 한 선원이 흰 고래의 해역에서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 것이다.
127장. 갑판
노래요, 선장님? 제가 노래를 부른다고요? 저는 그런 취미가 없습니다. 선장님, 산역꾼이 노래를 부르는 건 무덤 파는 삽에 음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뱃밥 밀어 넣는 나무망치에는 음악이 가득합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128장. 피쿼드호, 레이철호를 만나다
다음 날 레이철이라는 이름의 대형 선박이 피쿼드호를 향해 곧장 달려오는 것이 목격되었다. ~~~건체는 타격을 받은 듯 생기가 전혀 없었다. 나쁜 소식이야, 저 배는 나쁜 소식을 가져오고 있어. ~~~에이해브의 목소리가 먼저 울렸다. 흰 고래를 보았소? 보았소. 바로 어제. 혹시 표류하는 포경 보트를 보았소? ~~~그 고래는 어디 있었소? 안 죽였지, 안 죽였어! 에이해브가 다가가며 소리쳤다. 그놈의 상태는 어떠했소?
그 전날 오후 늦게 낯선 배의 포경 보트 세 척이 한 무리의 고래 떼를 추격하면서 본선에서 6~8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간 모양이었다. 보트들이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맹렬히 고래를 쫓던 그때, 모비 딕의 흰 머리와 흰 혹이 바람 불어가는 쪽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푸른 수면 위로 불쑥 올라왔다. 그래서 예비보트인 네 번째 보트가 즉시 바다에 내려지고 추격에 합류했다. 가장 날쌘 이 보트는 순풍을 받으며 힘껏 달려가 모비 딕의 등에 작살을 꽃는데 성공한 듯했다. 적어도 주돛대 꼭대기에서 망꾼이 본 바로는 그랬다. ~~~작살을 맞은 고래가 보트를 무한정 끌어당기며 멀리 도망쳤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느새 어둠이 내렸기 때문에 본선은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간 세 척의 보트부터 들어 올려야 했다. ~~~실종된 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내 아들, 내 자식이 그 보트에 탔소. 제발 부탁합니다. 제발. 낯선 배의 선장은 그의 사연을 냉담하게 듣고 있던 에이해브에게 읍소했다. 48시간만 배를 빌려주시오. 그 비용은 기꺼이 지불하겠소.
곧 밝혀진 사실이지만, 레이철호의 사건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정황이 있었다. 실종된 보트에만 선장의 아들이 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고래를 추격하다가 본선에서 멀어진 또 다른 보트에도 선장의 또 다른 아들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열두 살의 소년이었다. 성실하면서도 엄격한 낸터킷의 고래잡이다운 부성애를 가진 아버지는 까마득히 오래전부터 집안의 운명인 포경업의 위험과 경이로움을 아들에게 일찍부터 알려주려 했던 것이다. ~~~낫선 배의 선장은 계속해서 애원했지만, 에이해브는 어떤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모루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두 배는 곧 항로가 갈라졌다.
129. 선실
130장. 모자
그는 이전에 큰 부상을 입었던 사고 현장에 아주 가까이 왔다. 바로 전 날에는 실제로 모비 딕과 맞부딪힌 포경선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여섯 달 동안 계속되는 북극의 밤하늘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북극성이 꿰뚫는 듯이 강렬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복수의 일념에 불타는 에이해브도 한밤중처럼 어두운 선원들의 얼굴을 꿰뚫듯 노려보았다.
새벽이 희붐하게 밝아오자 선장의 무쇠 같은 목소리가 고물 쪽에서 들려왔다. 주돛대 꼭대기에 선원을 배치하라! ~~~뭐가 보이나? 잘 살펴라! 눈을 부릅뜨고!
레이철호를 만나고 사나흘이 지나도록 고래의 물줄기는 보이지 않았다.
131장. 피쿼드호, 달라이트호를 만나다
피쿼드호는 긴장 상태로 계속 항해했다. 굽이치는 파도와 함께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그때 배 이름과는 달리 몰골이 비참하기 짝이 없는 또 다른 배가 나타났다. 그 배의 이름은 기쁨을 뜻하는 달라트호였다. ~~~낯선 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가로 들보 위에 한때 포경 보트의 일부였던 것으로 짐작되는 부서진 허연 늑재와 널빤지 조각들이 보였다. ~~~희 고래를 보았소? 보시오! 양 볼이 움푹 꺼진 선장이 고물 난간에서 나팔로 부서진 모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놈을 죽였소? 그런 일을 해낼 작살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소. 낫선 배의 선장은 그렇게 말하며 갑판 위에 둥그렇게 말려 있는 그물 침대를 비통하게 바라보았다.
보시오 낸터킷 양반. 내가 그놈의 목숨을 쥐고 있소! 이 칼날은 피로 담금질하고 번개로 담금질 한 것이오. 그리고 맹세코 나는 이것을 그놈의 지느러미 뒤편의 뜨거운 곳, 저주받은 흰 고래의 숨통이 있는 곳에 찔러 세 번째 담금질한 것이오. ~~~돛 줄을 전진 방향으로! 키를 올려라! 이이해브가 부하들에게 벼락같이 소리쳤다.
132장. 교향곡
맑고 푸른 날이었다. 온통 푸르러서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오, 스타벅! 포근한 바람에 포근한 하늘, 포근한 날씨군. 이런 날씨에 난생 처음으로 고래에게 작살을 꽃았지. 그때 나는 열여덟 살 어린 작살잡이였어. 40년...40년...40년 전이군! ~~~40년을 이 무자비한 바다에서 보냈다고! 40년 동안 에이해브는 평화로운 땅을 버리고 바다의 공포에 맞서 싸움을 벌였어!
에이해브는 갑판을 가로질러 가 반대편 바다를 바라보다가 수면 위에 비친 두 개의 움직이지 않는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 페달라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같은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133장. 추격 - 첫째 날
그날 밤 야간 당직을 선 노 선장은 평소 가끔 하던 대로 기대어 서 있던 승강구에서 나와 고래 뼈 다리를 끼우는 갑판 구멍으로 걸어갔다. 그는 갑자기 맹렬한 기세로 고개를 내밀더니, 배에서 기르는 영리한 개가 야만인의 섬에 다가갈 때 그러는 것처럼 킁킁거리며 바다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가까운 곳에 고래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곧 당직 선원들 모두가 살아 있는 향유고래가 멀리서 내뿜는 독특한 냄새를 맡았다.
이런 판단과 지시가 정확했다는 것은 새벽녘 멋지게 증명되었다. 앞쪽 바다 위에 길고 날렵하게 나 있는 새로선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양옆의 잔물결 사이로 기름을 뿌린 듯이 매끈한 그 물줄기는 급류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거센 물살이 서로 부딪히면서 남기는 금속 빛깔의 흔적과 비슷했다.
고래가 물을 뿜는다! 고래가 물을 뿜는다! 흰 산 같은 혹이다! 모비 딕이다! ~~~고래가 수 킬로미터 앞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파도가 넘실거릴 때마다 반짝이는 혹을 드러내며 공중으로 주기적으로 물을 뿜어 올렸다.
보트는 잔물결을 일으키며 쏜살같이 바람 불어가는 쪽으로 나아갔다. 에이해브가 공격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잔잔하게 펼쳐진 바다는 한낮의 목초지 같기도 했다. 드디어 숨죽인 사냥꾼이 아직 수상한 낌새를 차리지 못한 것 같은 사냥감에 바싹 다가가자 눈부시게 반짝이는 녀석의 혹 전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혹은 따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바다를 미끄러지듯 다니며 미세한 양털 같이 몽글몽글한 푸른빛 물거품을 연실 만들어냈다. ~~~흰 고래의 등에는 큰 상선의 페인트 칠한 선체 위로 깃대가 솟아 있는 것처럼 얼마 전에 박힌 듯한 긴 창이 자루가 부러진 채 꽃혀 있었다.
이내 고래의 앞부분이 서서히 물 위로 떠올랐다. 하얀 대리석 같은 몸뚱이는 버지니아주의 내추럴 브릿지 처럼 높은 아치를 그리며 깃대 같은 꼬리를 경고하듯이 공중에서 흔들어댔다. ~~~반짝이는 아가리가 문이 열린 대리석 무덤처럼 보트 바로 밑에서 쩍 벌어졌다. 에이해브는 이 무시무시한 고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키잡이 노를 옆으로 크게 한 번 휘둘러 보트의 방향을 바꾸었다. ~~~모비딕은 상대방의 작전을 간파한 것처럼 교활하게도 순식간에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돌리더니 주름진 머리로 보트 밑을 들이박았다.
그 순간 보트의 모든 널빤지와 늑재가 충격을 받으며 흔들렸다. 고래는 먹이를 물어뜯는 상어처럼 비스듬히 드러누워 보트의 뱃머리를 천천히 만끽하듯이 아가리에 물었다. ~~~푸른색이 도는 진주처럼 하양 아가리 내부가 에이해브의 머리에서 한 뼘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른거렸다. 이런 자세로 모비 딕은 고양이가 잔인하게 쥐를 가지고 놀듯이 얇은 삼나무 보트를 흔들어댔다.
이처럼 버둥거리고 있는데 고래 턱이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위턱과 아래턱이 뒤로 물러나면서 거대한 가위처럼 보트를 깨물었다. 그러자 약한 뱃전이 안으로 휘고 산산히 부서지면서 배가 두 동강이 나버렸다.
잔물결을 일으키며 희생제물에서 물러난 모비 딕은 이제 약간 떨어진 곳에선 채, 새하얀 장방형 머리를 파도 속에서 아래 위로 흔들며 방추형의 몸뚱이를 천천히 회전시키고 있었다.
주위를 맴도는 흰 고래의 모습은 너무나 오싹했고, 공전하는 행성처럼 빠르게 돌며 반경을 좁혀왔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그들을 덮칠 것 같았다.
본선은 이제 활대를 용골과 직각이 되게 만들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배가 가까이 왔을 때, 물속의 에이해브는 본선을 향해 소리쳤다. 고래를 향해.... 그 순간 모비 딕이 일으킨 커다란 파도가 선장을 삼켰다. 하지만 곧 파도를 헤치고 나와 치솟은 물마루에 올라탄 선장은 다시 소리쳤다. 고래를 향해 돌진하라! 저놈을 쫓아내라!
피쿼드호는 뾰족한 뱃머리 덕분에 고래가 일으킨 마법의 소용돌이를 깨뜨리며 흰 고래와 희생자들을 효과적으로 떼어놓을 수 있었다. 시무룩해진 고래가 다른 곳으로 헤엄쳐 가자 보트들이 구조하러 달려갔다.
스터브의 보트에 끌어올려진 에이해브는 두 눈이 충혈 되어 앞을 보지 못했고, 이마의 주름살에는 흰 소금이 들러붙었으며, 오랫동안 긴장하며 체력을 소진한 탓에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코끼리 떼가 짓밟고 지나간 사람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보트 바닥에 널브러졌다. 깊은 골짜기에서 울리는 절망의 메아리처럼 형언하기 어려운 울부짖음이 그의 몸속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작살은... 에이해브가 한쪽 팔에 기대어 몸을 반쯤 천천히 일으키며 물었다. 무사한가? 예, 선장님. 던지지 않았으니까요. 여기 있습니다. 스터브가 작살을 보여주며 대답했다. 내 앞에다 놓게. 실종된 선원이 있나? ~~~노가 다섯 개 있고, 여기 있는 선원도 다섯 명입니다. 다행이군. ~~~~저기 그놈이 보인다. 저기 바람 불어가는 쪽으로 가고 있어. 아주 멋지게 물을 뿜어 올리고 있군! 내 몸에서 손을 떼라! 영원한 수액이 다시 에이해브의 뼈들 사이로 차오른다! 돛을 달아라! 노를 저어라! 키를 잡아라!
녀석은 이제 지느러미마다 세 겹의 노를 두른 듯이 빠른 속도로 헤엄쳐 갔다. ~~~피쿼드호는 보트를 뱃전에 매단 후, 돛을 높이 올리고 앨버트로스의 날개처럼 보조돛을 옆으로 활짝 펼치고 모비 딕을 쫓아 바람 불어가는 쪽으로 달려갔다.
어느덧 하루가 거의 저물고 태양의 황금빛 옷자락만 펄럭였다. 곧 어둠이 닥쳐오는데도 망루에 올라간 선원들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134장. 추격 - 둘째 날
저기 고래가 물을 뿜는다! 물을 뿜는다! 바로 앞이다! 돛대 꼭대기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망대로 끌어 올려진 에이해브는 밧줄이 갑판의 밧줄걸이에 고정되자마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본선에서 2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모비딕이 불쑥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흰 고래는 나른하고 평온한 물 뿜기, 즉 고래 머리의 신비한 샘에서 나오는 평화로운 물줄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매우 경이적인 도약을 통해 자신이 근처에 있음을 드러냈다. 깊고 깊은 바다에서 최고의 속도로 뛰어오른 향유고래는 눈부신 물보라를 산더미같이 쌓으며 청청한 대기 속에 몸뚱이 전체를 드러내어 주위 10킬로미터가 넘는 지점까지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그래 모비 딕! 마지막으로 태양을 향해 솟구쳐라! 에이해브가 소리쳤다. 네놈의 최후와 작살이 바로 네 앞에 있다! 다들 내려오라. 앞돛대에 한사람만 남고 모두 내려오라, 보트 대기하라!
이번에는 먼저 공격 준비를 한 모비 딕이 급격히 공포를 안겨주려는 듯이 몸을 돌려 세 척의 보트를 향해 돌진해왔다. 에이해브의 보트는 가운데 있었다. 그는 선원들을 격려하면서 자신이 고래를 박치기로 상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고래의 이마를 향해 곧장 돌격하겠다는 뜻인데, 그리 비상한 방법은 아니었다. 고래는 눈이 옆에 달려 있어 보트가 지근거리 내에서 이런 식으로 다가가면 녀석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처럼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보트 세 척이 본선의 세 돛대만큼이나 뚜렷이 보이는 상황에서 흰 고래는 맹렬히 몸을 뒤척이며 삽시간에 보트로 돌진했고, 아가리를 쩍 벌리고 꼬리를 휘저으며 마구잡이로 무시무시한 공격을 시작했다. 세 척의 보트에서 던져대는 작살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보트에 쓰인 널빤지를 하나하나 다 박살내겠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흰 고래가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종횡무진하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바람에 녀석의 몸에 박힌 세 작살의 밧줄이 복잡하게 되엉키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밧줄은 짧아지고 세 척의 보트는 작살이 박힌 고래의 몸 쪽으로 끌려가는 꼴이 되었다. 그 순간 고래는 보트에 더욱 무시무시한 일격을 가하기 위해 잡시 숨을 고르는 듯이 옆으로 비껴났다. 에이해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밧줄을 풀었다 당겼다 하며 엉킨 r서을 풀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먹이를 포위한 상어들의 이빨보다 더 살벌한 광경이 벌어졌다.
고래의 몸에서 뽑힌 작살과 창이 얽히고 설킨 밧줄에 감기고 꼬여 빙빙 돌면서, 섬광이 번쩍이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작살 날과 창끝을 곤두세운 채 에이해브 보트의 뱃머리 밧줄걸이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에이해브는 보트 칼을 움켜쥐고 섬광처럼 번쩍이는 쇠 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저쪽 편의 밧줄을 잡아당겨 뱃고물에 있는 노잡이에게 건넨 다음, 밧줄걸이 근처의 밧줄을 두 번 잘라 날아오는 작살과 창 뭉치를 바다에 빠뜨렸다.
그 순간 흰 고래가 남아 있는 다른 밧줄들 사이로 돌진했다. 그 바람에 밧줄에 더 휘감긴 스터브와 플래스크의 보트가 꼬리 쪽으로 끌려가면서 파도치는 해변에 뒹구는 조개처럼 맞부딪혔고, 고래는 부글거리는 물속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난파선에서 떨어져 나온 향기로운 삼나무 조각들이 빠르게 휘저은 펀치볼 속에 든 육듀구 알갱이처럼 빙빙 돌며 춤을 췄다. ~~~그래도 치명상이나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고래가 어느 쪽으로 가고 있나? 바람 불어가는 쪽으로 곧장 가고 있습니다. 선장님.
좋아, 키를 위로! ~~나는 끝없는 지구를 열 바퀴 도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지구를 뚫고 들어가서라도 그놈을 반드시 죽이겠다!
이제 더 뭘 하려고 그러십니까? 이 살인마 고래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바다에 처박을 때까지 추격을 계속할 겁니까? 우리가 바다 밑바닥으로 녀석에게 끌려 들어가야겠습니까? 고래에게 질질 끌려서 지옥의 세계로 들어가야겠습니까? 오오, 그놈을 더 이상 추격하는 것은 불경이요 신성 모독입니다!
135장. 추격 - 셋째 날
그놈이 보이나? 에이해브가 소리쳤다. 하지만 고래는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에이해브는 생각하지 않아, 오로지 느끼고 느끼고 느낄 뿐이야. 그것ㅁ나으로도 인간에게 충분히 tfjfp는 일이지! 생각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야. 신만이 생각할 수 잇는 권리와 특권이 있어. 생각이란 냉정하고 침착해야하는데, 우리의 가련한 심장은 너무 두근거리고 우리의 가련한 뇌는 너무 펄떡거려서 그게 안 된단 말이야.
하! 벌거벗은 인간을 공격하는 비겁한 바람이여, 너는 단 한 번의 타격도 허용하지 않는구나. 바람보다는 에이해브가 더 용감하고 고귀하다. 바람에게 몸뚱이가 잇다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인간을 더없이 화나게 하고 모욕하는 모든 것에는 몸뚱이가 없다. 눈에 보이는 몸뚱이가 없다는 말이지 그 작용까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어이, 돛대 꼭대기, 무엇이 보이나?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선장님. ~~~선장은 지금 바람을 거스르며 고래의 벌린 아가리를 향해 나아가고 잇어. 스타벅은 새로 펼친 주돛대의 아랫밧줄을 난간에 감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신이시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하지만 내 몸속의 뼈는 이미 축축해져 그 깊은 곳에서 살마저 젖게 하고 있구나. 선장에게 복종하다가 신에게 거역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드디어 바람 불어오는 쪽 약 3포인트 방향에서 에이해브가 다시 물줄기를 발견했고, 그 즉시 세 개의 돛대 꼭대기에서 형에 불이 붙은 듯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보트를 내려라! 에이해브가 항해사의 손을 단호히 뿌리치며 소리쳤다. 전원들 대기! 곧 보트는 본선의 고물 아래쪽을 스칠 듯이 나아갔다. 상어다! 상어다! 선장실 현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오, 선장님 , 선장님 돌아오세요! 하지만 에이해브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보트를 지휘하며 고함을 치고 있었던 데다가 보트가 앞으로 내달렸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들 주위로 파도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부풀어 오르더니 마치 물속에 잠겨 있다가 솟아오른 빙산에서 옆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기세로 솟구쳤다.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지하에서 들려오는 흥얼거림 같았다. 선원들은 모두 숨을 멈췄다. 밧줄과 작살, 창 등을 매단 거대한 물체가 바다 밑에서 불쑥 비스듬히 올라왔다. 엷게 깔린 안개의 장막을 수의처럼 몸뚱이에 휘감은 그것은 한순간 무지개를 뿌리며 공중에 머물다가 덮치는 기세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15미터까지 솟아오른 바닷물은 w마시 산더미 같은 분수처럼 반짝이다가 눈송이처럼 조각조각 떨어져 고래의 대리석 빛깔 몸뚱이 주변에 신선한 우유 같은 거품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쳤다.
오, 에이해브! 스타벅이 소리쳤다. 오늘이 사흘째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모비 딕은 당신을 쫓고 있지 않습니다. 미친 듯이 고래를 쫓고 있는 것은 당신입니다.
사흘 동안 계속되는 추격 때문에 지쳤는지, 몸뚱이에 칭칭 감긴 밧줄 때문에 짜증이 났는지, 아니면 내면에 숨어 있는 기만적이고 악의적인 본성 때문인지, 진짜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래가 이제는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 듯했다.
마침내 보트는 한쪽으로 기운 채 흰 고래의 옆구리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에이해브는 허리를 뒤로 젖히고 양팔을 높이 들어 자세를 취한 다음 날카로운 작살에 그보다 더 날카로운 저주를 담아 가증스러운 고래에게 던졌다. 작살과 저주가 늪에 빨려 들어가듯이 눈구명을 파고 들었다. 모비 딕은 몸을 옆으로 비틀고 옆구리를 발작적으로 굴리며 보트의 뱃머리를 강타했다. 보트는 구멍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 충격으로 뒤집어질 듯이 튀어 올랐다. ~~~두 명은 순간적으로 뱃전을 움켜잡았고, 밀려온 파도를 타고 다시 보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세 번째 노잡이는 불운하게도 고물 쪽 밖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물 위에 떠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흰 고래는 예고 없이 신속하게 강력한 의지를 발동한 듯 굽이치는 바다를 헤치며 돌진해왔다. 에이해브는 키잡이에게 작살에 연결된 밧줄을 기둥에 감고 꽉 잡고 있으라고 소리쳤고, 노잡이들에게는 정반대 방향으로 돌아앉아 보트를 목표물 가까이에 대라고 명령했다. 바로 그 순간 기대에 어긋나게도 밧줄이 급격한 방향 전환과 잡아당기는 힘의 이중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공중에서 그만 끊어져버렸다.
몸속에서 뭔가 부서진건가? 힘줄이 끊어졌구나! 아니, 이제는 괜찮다. 노, 노를 저어라! 놈에게 돌격하라!
고래는 그들의 운명을 가를 머리를 좌우로 기이하게 흔들어 반원형으로 넓게 퍼지는 물거품 띠를 만들며 돌진해오고 있었다. 강력한 응징과 즉각적인 복수, 한없는 적개심이 온몸에서 풍겨났다. ~~~고래는 가라앉은 배 밑으로 잠수하여 배의 용골을 따라 몸을 흔들며 달리다가 물속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 빠르게 수면 위로 올라왔다. 피쿼드호의 뱃머리 왼편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에이해브의 보트에서는 불과 몇 미터 되지 않은 곳이었다. 고래는 거기서 잠시 숨을 고르며 가만히 있었다.
작살이 날아가고, 작살을 맞은 고래는 앞으로 튀어올랐다. 작살 밧줄은 섬광 같은 속도로 홈을 따라 풀려나가다가 그만 엉키고 말았다. 에이해브는 허리를 숙여 엉킨 밧줄을 풀었다. 하지만 고리 진 밧줄이 날아가면서 그의 목을 휘감았고 터키의 벙어리 사형집행인이 교수형을 집행할 때처럼 그는 소리 없이 보트 밖으로 내던져졌다.
하늘의 새는 대천사 같은 비명을 지르며 오만한 부리를 위로 쳐들었지만, 꼼짝할 수 없게 된 몸뚱이는 에이해브의 깃발에 감겨 피쿼드호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배는 사탄처럼 천상의 생명 한 조각을 잡아당겨 투구처럼 쓰지 않고는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이제 작은 바닷새들이 여전히 입을 크게 벌린 심연 위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고, 시무룩한 흰 파도가 소용돌이의 가파른 측면에 부딪혔다. 이윽고 모든 것이 침몰하고, 거대한 수의 같은 바다는 5,000년 전에 넘실거린 것처럼 그렇게 넘실거렸다.
[에필로그]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욥기)
그것은 우연이었다. 파시교도가 실종된 후, 에이해브의 보트에서 공석이 된 뱃머리 노잡이의 자리가 운명의 지시에 따라 내게 돌아온 것도 우연이고, 셋째 날에 흔들리는 보트에서 내동댕이쳐진 세 명의 선원 중에 고물 쪽 밖으로 떨어진 자가 나인 것도 우연이었다. 그래서 나는 파국의 가장자리에서 그 광경을 훤히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피쿼드호가 침몰하면서 일으킨 소용돌이가 얼마간 힘이 약해진 상태로 다가오면서 나는 막바지에 이른 그 속으로 천천히 끌려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 보니 소용돌이는 거품이 이는 웅덩이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나는 익시온 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천천히 회전하는 동그라미의 중심축, 단추 같은 검은 물거품 쪽으로 계속 끌려 들어갔다. 드디어 중심축에 이르렀을 때, 검은 물거품이 위로 솟아올랐다. 그러자 관으로 만든 구명부표가 용수철의 탄성으로 배에서 절묘하게 떨어져 나와 엄청난 부력을 받고 물 위로 솟구치더니 다시 떨어져 내 옆으로 떠 왔다. 나는 그 관에 올라탄 채 하루 낮과 하루 밤 동안 구슬픈 만가 같은 바다 위를 표류했다. ~~~둘째 날, 배 한 척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마침내 나를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 그 배는 항로에서 벗어나 항해하고 있던 레이철호였다. 실종된 이들을 찾으러 다니다가 또 다른 고아인 나를 발견한 것이다.
[해제]
허먼 멜빌은 1819년 8월 1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멜빌은 유복한 가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830년 부친의 가세가 기울어 파산하고 1832년 부친이 사망. 당시 열세 살 멜빈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은행 점원, 농장 일꾼, 학교 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스무살에 상선 세인트로렌스호의 선실 급사로 승선하여 영국의 리버풀을 다녀왔고, 이 일은 훗날 그의 문학적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후에는 포경선 아쿠쉬넷호의 말단 선원으로 승선하고 1844년까지 3년 동안 선원생활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첫 소설<타이피>를 썼다. 1846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후 <오무> <레드번><하얀재킷> 등 해양소설을 써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모비딕은 1850년 3월에 시작하여 1851년 7월에 탈고하였다. 이 책은 독자로부터 호옹을 얻지 못하였다. 그후 호손(너다니엘 호손)의 조언을 얻어 내용을 부분적으로 수정하였으나 독자들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그의 사후에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미국 모더니즘 문학이 도래하던 시기에 새롭게 조명되면서 재평가 받았다.■
[review]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감정중 하나인 복수심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동물에게는 복수심이 없다고 한다. 만약 회초리를 맞은 동물이 두고두고 원통함을 풀지 않고 앙갚음을 품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인간은 동물을 길들이지 못할 것이다. 복수심은 인간만이 지닌 특성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 속에 이기적 성향을 진화시켰다고 했다. 복수심은 이기심에서 생겨난 또 다른 전술이며 폭력성을 지닌다.
이 책 <모비 딕>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소설의 주인공, 포경선의 선장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고래를 향한 오직 복수심의 일념으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열여덟 살에 고래잡이배에 올라 사십 년 동안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고작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오직 험한 파도와 싸우며, 온갖 풍상을 겪으며 고래의 등에 작살을 꽂았다. 그때마다 수많은 고래들이 생명을 잃었고, 그는 상대적으로 성취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에게도 행운만 따른 것이 아니다. 거대한 흰 향유고래 ‘모비딕’에게 당하고 말았다. 사나운 고래가 그의 한쪽 다리를 물고 물속으로 사라지던 날 그는 다리를 잃은 슬픔보다 더한 패배의 치욕을 맛보았다. 그날이후 그는 고래 뼈로 만든 의족으로 잃은 다리를 대신했다. 불편한 몸으로 위험한 배에 오른 것은 오로지 모비 딕을 향한 복수심이었다. 그때 마다 주변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나는 끝없는 지구를 열 바퀴 도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지구를 뚫고 들어가서라도 그놈을 반드시 죽이겠다! (본문)
‘모비 딕’을 잡으려고 3년이 넘도록 항해를 하였고, 결국 운명의 날이 왔다. 고래가 그 허연 대리석 같은 몸통 을 드러내고 유유히 물을 뿜었다. 잔잔하게 펼쳐진 바다는 한낮의 목초지 같았다. 고래는 평온한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그때까지도 고래는 사냥꾼의 낌새를 모르는 것 같았다. 등에는 큰 상선의 선체 위로 깃대가 솟아 있는 것처럼 얼마 전에 박힌 듯 한 긴 창이 자루가 부러진 채 꽂혀 있었지만, 그에게는 복수심도 없어 보였다. 가끔 고래의 앞부분이 서서히 물 위로 떠오를 때는 몸뚱이가 버지니아 주의 내추럴 브리지처럼 높은 아치를 그리며 깃대 같은 꼬리를 경고하듯이 공중에서 흔들어댔다.
“녀석은 파도가 넘실거릴 때마다 반짝이는 혹을 드러내며 공중으로 주기적으로 물을 뿜어 올렸다.” (본문)
소설은 ‘에이해브’가 이끄는 포경선이 고래와의 싸움에서 침몰하고, 선장 에이해브는 고래에게 던진 작살에 매인 밧줄에 몸이 감겨 바다에 빠지고, 모든 사람이 죽는 것으로 끝난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오직 목숨을 건진 한 사람이 자신 작가임을 알린다. 작가는 소설 속 인물에서 자신의 이름을 ‘이슈메일’(성서 인물, 버림받은 자식, 이스마엘), 그리고 복수심에 희생된 선장을 ‘에이해브’(성서인물. 북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 ‘아합’)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이 책은 실재 포경선원으로 경험한 저자의 풍부한 자료를 근거로 해서, 고래에 대한 생물학적 그리고 신체 구조 등 많은 자료가 들어 있을 뿐 아니라, 포경 선원들의 선상생활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어서 한 때 ‘고래 백과사전’으로 분류되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독자는 장대한 드라마를 보는 듯 소설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도 중간 중간에 지나치게 학술적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사후에 인정을 받은 책으로 그의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열두 살 이후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작가는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도 희비의 갈림길에서 칠십 이세의 생을 마감했다.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그의 생이 평범한 삶이 아닌, 험난한 바다의 노동으로 보내는 소설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는 생각은 우연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 심정을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표현한 것 같아 보였다.
“그것은 우연이었다. 파시교도가 실종된 후, 에이해브의 보트에서 공석이 된 뱃머리 노잡이의 자리가 운명의 지시에 따라 내게 돌아온 것도 우연이고, 셋째 날에 흔들리는 보트에서 내동댕이쳐진 세 명의 선원 중에 고물 쪽 밖으로 떨어진 자가 나인 것도 우연이었다. 그래서 나는 파국의 가장자리에서 그 광경을 훤히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피쿼드호가 침몰하면서 일으킨 소용돌이가 얼마간 힘이 약해진 상태로 다가오면서 나는 막바지에 이른 그 속으로 천천히 끌려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 보니 소용돌이는 거품이 이는 웅덩이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나는 익시온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천천히 회전하는 동그라미의 중심축, 단추 같은 검은 물거품 쪽으로 계속 끌려 들어갔다. 드디어 중심축에 이르렀을 때, 검은 물거품이 위로 솟아올랐다. 그러자 관으로 만든 구명부표가 용수철의 탄성으로 배에서 절묘하게 떨어져 나와 엄청난 부력을 받고 물 위로 솟구치더니 다시 떨어져 내 옆으로 떠 왔다. 나는 그 관에 올라탄 채 하루 낮과 하루 밤 동안 구슬픈 만가 같은 바다 위를 표류했다. ~~~둘째 날, 배 한 척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마침내 나를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 그 배는 항로에서 벗어나 항해하고 있던 ‘레이철호’였다. 실종된 이들을 찾으러 다니다가 또 다른 고아인 나를 발견한 것이다.” (본문)
선장 ‘에이해브’가 끝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은 흰 고래 ‘모비 딕’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비의 대상이다. 그것은 신의 존재일 수도 있고, 세상을 지배하는 또 다른 불가항력의 대상일수도 있다. 복수심은 인간에게 주어진 끊을 수 없는 불행인 동시에 이성을 마비시키는 죄악이다. 이 책은 흰 고래 ‘백경’ 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에게 더 널리 알려진 책으로 저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분량이 많아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작가만의 언어, 독특한 표현 방식을 눈여겨 읽으면 흥미롭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북극의 여름“ (?)이라는 프로를 보다가 원주민들이 고래를 쫓는 모습을 보았다. 거대한 몸뚱이를 반쯤 드러낸 채 구불거리며 지나가는 고래에게 작은 보트를 타고 다가가서 한가롭게 작살을 던지는 모습이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던 중이라서 저렇게 쉽게 작살을 던지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고래는 포획 금지동물이라서 전 세계적으로 조업이 금지된 종이다. 그러나 불법적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고. 텔레비전에서는 모습만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장생포나 부산 자갈치 시장에는 고래 고기를 파는 식당이 있다고 하는데 그 맛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본문)
“마침내 배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자 희망봉 일대의 바람이 불어닥쳤고, 우리는 그 길고 험난한 바다에서 파도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상앗빛 피쿼드호가 돌풍에 고개를 숙이며 화난 것처럼 뱃머리의 뿔로 파도를 들이박자 은 부스러기가 쏟아지듯 물보라가 뱃전 너머로 날아들었다. 생명체를 모두 비워버린 듯한 적막함은 사라지고 전보다 더욱 음산한 광경이 펼쳐졌다. ”
“빠른 진동이 용골을 번개처럼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팽팽한 밧줄이 배 밑바닥을 살짝 스치더니 탁 소리와 함께 부르르 떨면서 뱃머리 앞에서 솟구쳐 올랐다. 밧줄에서 물방울이 튀면서 유리 조각처럼 바다 위에 와르르 쏟아졌다. 고래는 저 멀리서 다시 솟아올라 시야에 들어왔고,”
“향유고래는 경우에 따라 고의로 큰 배에 구멍을 내거나 박살내고 침몰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영악함, 신중함, 적개심을 가지고 있고, 실재로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이제 더 뭘 하려고 그러십니까? 이 살인마 고래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바다에 처박을 때까지 추격을 계속할 겁니까? 우리가 바다 밑바닥으로 녀석에게 끌려 들어가야겠습니까? 고래에게 질질 끌려서 지옥의 세계로 들어가야겠습니까? 오오, 그놈을 더 이상 추격하는 것은 불경이요 신성 모독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거적을 짜고 있을 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길게 끄는 듯한, 너무나 거칠고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자유의지의 실 꾸러미를 툭하고 떨어뜨렸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그 소리가 날개처럼 떨어져 내린 구름 쪽을 올려다보았다. "
“고래 지방층이 고래의 가죽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 가죽은 대형 향유고래의 경우 100통이나 짜낼 수 있는 기름을 안에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양이나 무게를 따져보았을 때, 기름은 가죽 전체가 아니라 4분의 3 정도에서만 짜낸 것이다. 겉가죽의 일부에만 이렇게 엄청난 양의 기름이 나오는 것을 생각해보면 향유고래가 얼마나 거대한 동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기름 10통을 1톤으로 환산하면 고래 가죽의 4분의 3 정도가 무려 10톤이나 나가는 것이다.”
“내가 세심하게 계산한 크기와 스코스비 선장의 일부 추산을 종합해보면 몸 길이가 18미터인 초대형 그린란드 고래의 무게는 70톤 정도 된다. 또한 나의 세심한 계산에 따르면 몸 길이가 25~27미터 정도 되고 몸통 둘레가 12미터 가까이 되는 초대형 향유고래의 무게는 최소한 90톤은 나간다. ”
"향유고래는 먹이를 찾아 해역을 이동할 때 확실한 본능, 아니 신에게 받은 신비한 지성에 이끌려 이른바 맥(脈)을 따라 헤엄친다. 그들은 헤매는 법 없이 정확하게 특정한 바닷길을 계속해서 따라가는데, 세상의 어떤 배가 어떤 해도를 따라 항해한다고 해도 그 경이로운 정확성에는 10분의 1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경우 고래가 선택한 방향은 측량기사가 그은 평행선처럼 곧고, 따라서 고래가 나아가며 남긴 흔적도 직선 항로 범위 내로 국한된다. 그러나 고래가 따라가는 그 임의적인 맥은 폭이 보통 수 킬로미터에 이른다(맥의 폭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 폭은 이 마법의 수로를 따라 신중하게 항해하는 포경선의 돛대 꼭대기에서 살필 수 있는 시야의 범위를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요약하면 특정 시기에 그 해역 안에서 직선 항로로 이동하면 이동 중인 향유고래들을 거의 확실히 발견할 수 있다"
“신의 심판에 대한 부분은 그에 수반되는 독특한 세부 사항이 앞으로 내가 이야기할 비극의 은밀한 핵심을 이루는데, 그 이야기는 에이해브 선장이나 항해사들의 귀에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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