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말씀(시편 6편)은 첫째 참회의 시입니다.
물론 다윗의 시입니다.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O LORD, do not rebuke me in your anger or discipline me in your wrath.
Be merciful to me, LORD, for I am faint; O LORD, heal me, for my bones are in agony.
My soul is in anguish. How long, O LORD, how long?
Turn, O LORD, and deliver me; save me because of your unfailing love.
No one remembers you when he is dead. Who praises you from the grave ?
I am worn out from groaning; all night long I flood my bed with weeping and drench my couch with tears.
My eyes grow weak with sorrow; they fail because of all my foes.
Away from me, all you who do evil, for the LORD has heard my weeping.
The LORD has heard my cry for mercy; the LORD accepts my prayer.
All my enemies will be ashamed and dismayed; they will turn back in sudden disgrace.
시편 6편과 함께 참회의 시로 보는 시편은
32, 38, 51, 102, 130, 143편입니다.
우리가 이 중에 제일 잘 아는 시편은 시편 51편입니다.
시편 51편은 분명한 죄가 드러나 있지만
오늘 본문은 무슨 죄로 인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본문 4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자신의 죄가 무언지 드러나지 않지만
육신의 생각으로 살다가 ‘여호와와 관계가 멀어져서’ 죄를 지은 겁니다.
이런 죄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지는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책망과 징계가 반드시 있습니다.
성도는 사생자가 아닌 아들이기 때문에 징계가 있습니다(히12장).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을 받을 때에
뼈가 떨리고 영혼이 떨리는 심정으로 주께 고쳐달라고 합니다.
자기가 잘못하였으면 자기가 회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한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인 ‘헤세드’ 곧 긍휼과 자비에 호소합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모시고 나서 기뻐 춤을 춥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윗과 함께 함을 보고서
다윗은 기뻐하며 춤을 춥니다.
내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여 주심’을 인하여 기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삶에서 뼈가 떨리고 영혼이 떨리는 고통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함이 고통입니다.
다윗이 핍박을 받고 환난을 당할 때에는 늘 하나님과 동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사건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적들을 거의 다 물리치고 평안해지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졌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오는 일들이 육신의 소욕들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책망과 징계를 받음으로 다시 회복되는 내용이 이런 시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고통이며
‘회복됨’이 구원입니다.
오늘날도 성령이 임한 자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의 썩어질 것이 없어서 탄식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짐으로 인하여 탄식하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도 믿는 자들이 어떤 탄식을 하는지
왜 징계를 당하는지 아주 많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23절에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들이 탄식한다고 합니다.
성령이 임한 성도가 탄식하는 이유는 아직 몸의 구속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면서 살지만
아직도 몸으로 일어나는 연약함과 죄들을 보면서 탄식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1:31~32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문맥은 성찬을 잘못한 일에 대한 책망입니다.
성찬에 먼저 온 자들이 먹고 취하는데
늦게 온 자들은 먹을 것도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징계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징계가 일어나는 이유는 자신들이 살피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판단을 받는 것이 징계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징계를 역사 속에서 받음으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이 많습니다.
징계를 통하여 세상이 받을 심판과 정죄에서 빼내십니다.
고린도후서 1:8~9절.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사도가 자기 죄가 아니라 복음 전하는데도 왜 이런 환난을 주십니까?
우리가 육신이 있기에 환난이 아니면 다시 자기 육신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형 선고받은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하여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십니다.
지금 여러 가지 심신의 고통들이 있다면
그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면
이 고통이 복입니다.
물론 탄식도 함께 나옵니다.
그러나 그 탄식으로 인하여 주님을 의지하게 됨이 복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