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의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하나님 나라의 법칙, 네 번째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 이유
11/19 토요일
좀 더 나은 신앙생활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자신이 변화되지 않음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왜 나는 변하지 않을까?
우리가 변하지 않는 것은 말씀을 삶에 적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것만 받아들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말씀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판단의 기준에 맞지 않는 말씀은 다 버립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2)
우리가 변하지 않는 것은 공허한 배움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배움은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 마음의 태도에 따라 배움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배움은 성령에 의해 채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은 ‘진리의 영’ 성령이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공허한 배를 충족시키기 위한 배움보다는 골방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거룩한 낭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것은 배우기는 하지만 익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는 익히는 단계입니다. 많은 말씀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나를 어떻게 이끌고 있는가? 이것이 중요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말씀이 내 심령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말씀이 내 마음을 지배할 때 그 말씀이 나를 사로잡아 나를 변화시킵니다. 마치 소금을 물에 집어넣은 것과 같이, 소금물이 된 후에는 소금의 흔적은 없지만 물은 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것은 내 삶으로 적용해 보지 않고 지식적인 가르침만 주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닌 관계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체험해 보지 않고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진리는 지식으로 습득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포기할 때 성령께서 자신을 변화시킨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이론과 실제 모두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가르침은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해 전하는 것입니다. 대상이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13)
기독교적 가르침은 보여주는 것을 포함합니다. 익히고 전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줄 때 진정한 가르침이 될 수 있습니다. 상당수 그리스도인은 공부를 많이 하고 사람을 가르치는데 왜 자신은 변화되지 않은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삶에 적용하지 않고 지식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 것은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삶을 들여다보면 환경이나 관계 속에서 어떤 반응을 하는가?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보나 마음 깊숙이에서 솟아나는 생각들을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성령이 안에서 행하신다면 절대로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손과 생각에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부에서 함께 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14:10). 사단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불행한 이유를 환경에서 찾으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불행의 원인은 자기 안에 있습니다.
사단이 주는 거짓 정보입니다. 얼마나 자신이 속고 있는지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 )의 말로 선포하시면 됩니다.
◉ 자기 자신에 관한 거짓정보입니다.
☆나는 완전해야 한다.
(나는 완전할 수 없다. 완전하신 분은 오직 주님이시다)
☆나는 모든 사람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
(나 중심의 삶,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사람에게도 인정받게 된다. 내가 굳이 인정받으려 할 필요가 없다)
☆문제에 직면하는 것보다 회피하는 것이 낫다.
(문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정면 돌파해야 한다. 결코, 회피하는 것은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나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존재이다. 행복은 그분과 하나가 될 때 만족에서 온다.)
☆나의 불행은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이다.
(내가 불행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불행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 탓을 하면 안된다. 그리고 아담은 하와에게 전가. 하와는 뱀에게 전가했다. 결과 모든 관계가 깨어진다.)
◉ 세속적인 거짓 정보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만 내 것이 된다. 그것도 소유는 하나님의 것, 누리는 것만 허락하셨다.)
☆당신의 업적이 당신의 가치를 나타낸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나는 그릇일 뿐, 하나님만 영원한 가치이시다.)
☆인생은 편하게 살아야만 한다.
(인생은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인생은 공평해야 한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쓰시는 그릇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의 눈으로 보면 공평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릇의 역할로 살아간다면 가장 잘 사는 삶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계수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삶에서는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기다리지 말라.
(세상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쟁취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주신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다.
(선이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아가 죽고 주님이 나타나는 삶만 선하다 할 수 있다)
◉ 결혼생활과 관련된 거짓말입니다.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한 이유는 배우자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그 배우자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결코, 대상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문제는 나 때문이다. 내가 변하면 어떤 사람도 수용할 수 있다.)
☆만일 결혼생활이 힘들고 어렵다면 우리 부부는 서로 맞지 않는 짝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룬다. 맞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 사람이 변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변하면 그 사람도 변한다.)
☆배우자가 나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만 한다.
(나 중심의 삶은 어렵다. 내가 그의 부족을 채워주라고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대로 살면 만족할 수 있다.)
☆나의 배우자는 내가 그를 위해서 해온 모든 수고에 대해 신세지고 있다.
(모든 것은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상대방의 관점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 나 중심의 관점이 가장 위험하다.)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나의 인격을 변화시킬 필요는 없다
(내가 먼저 변할 때, 상대가 변한다. 인격의 변화는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이다. 성숙한 신앙인의 열매가 인격의 열매이다.)
☆배우자는 나와 비슷해야 한다.
(모든 면에서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되지만, 이왕 만난 배우자라면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 종교적인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력으로 얻어낼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 믿음은 노력이 아닌 은혜로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선물이다)
☆하나님은 죄와 죄인을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사랑하신다. 그리고 죄는 회개하면 용서하신다. 하나님의 속성을 믿으면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아픔과 고난을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아픔을 겪지 않는가? 하나님은 나를 다듬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시지만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왜? 고난을 통해 하나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이니까. 거룩해지는 것이 하나님 성품이니까,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
☆나의 모든 문제들은 내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물론 죄 때문에 고난 당할 수도 있지만, 인과응보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대부분 문제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되기 원하신다. 그래서 신앙의 성장을 위해 문제를 주신다.)
☆다른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채우는 것은 그리스도인인 나의 의무이다
(인간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단 사람을 통로로 일하신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필요를 채우라는 감동을 주실 때, 내가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다.)
☆분노, 우울, 그리고 걱정과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는 표시이다. 따라서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분노나 걱정 혹은 우울증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어차피 연약한 존재이다. 분노할 수도 있고, 걱정, 염려할 수도 있다. 성경에 나와 있다. 왜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365번이 나오는가? 많은 그리스도인이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감정을 절제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고통스러울 때 사람에게 호소하지 말고, 하나님께 토설하라고 한다. 오히려 분노, 고통을 하나님께 토설할 때 하나님께 치유 받는다. 누구나 정신적인 병이 올 수 있다. 병이 왔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나쁜 감정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회복의 길이 된다.)
☆만일 내가 영적으로 강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할 수가 없다.
(내가 강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나를 강하게 만들어서 사용하신다. 나 스스로 강해지려는 사람은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And...
내가 노력해서는 조금도 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변화될 수 있는 길은 날마다 내가 죽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시면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내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보이는 현실에 붙들려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보이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 그림자라고 합니다. 그림자는 본질에 의해 움직입니다. 금새 사라질 실제 때문에 염려 걱정하는 것은 주님과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단 하나 주님과 연합에 힘쓰는 것입니다.
보이는 현실은 거짓이라고 받아들이고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나타나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존재가 됩니다. 거짓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하는 길입니다.
내가 죽겠다고 고백하지만 죽겠다는 주체가 주님이셔야 합니다.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께서 죽으실 때 나도 죽었음을 믿고, 지금 이 상황에서 내 자아를 죽음에 넘기겠다고 고백할 때 주님께서 죽음의 자리로 넘어가게 하십니다. 이때 제3자의 눈에는 내가 변화된 모습이 보이게 됩니다. 주님과 연합된 내 안에 내 자아가 죽음으로 온전히 주님만 나타납니다. 날마다 죽어야 날마다 주님이 나타납니다.
내가 죽으면 변합니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주님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마귀의 통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할 죄입니다.
‘날마다 내가 죽노라’, 날마다 나를 통해 주님만 나타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아의 죽음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내가 없고
https://youtu.be/smOC64sTZ9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