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가면 모든 것이 처음이다. 낯설지 않은 곳에 갔을 때 그 낯설음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어떤 것은 그 곳에 그대로 남아있고, 다른 무언가는 이미 사라져버렸다.
어디를 가든 여행이란 결국 나를 중심으로 성찰하게되는 시간일 뿐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사물과 타자를 통해서 과거의 나, 즉 젊음이라는 욕망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한탄을 내뱉게된다.
부산 영화제으로 시작했던 각종 영화제 발걸음도 이제 열 여덞 해가 넘어간다.
어제 영화표를 검표하던 스무살 자원봉사자는 내가 처음 영화제 갔을 때는 아마 갓난아기였을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자면 나의 영화 사랑이 늙었다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전혀 진전되지 않았음을 지시한다.
여전히 확장 영화를 두려워하고 그저 가만히 객석에 앉아있는 순간 자체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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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제든 개막 초기 주말에 관객이 몰리기 마련이고, 나 역시 항상 그 시기에 맞추고는 했다.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변화된 첫 체험은 영화제 끝물에서야 그 곳에 다시 갔다는 것이다.
이제는 예년처럼 영화 지인들이 옆에 있지 않고 12년전 처음 이 곳을 왔을 때처럼 곁에 song님 뿐이다.
하지만, 그 때 우리 두 사람에게 길거리아를 사 주었던 친구는 이제 가정을 이루어 만날 수 없었다.
어린이날에 그는 두 아들을 위해 봉사하느라 약속 시간에 깊이 잠들어있었다.
노동자의 날에서 어린이날 사이에 2박 3일 혹은 3박 4일 동안 다녀갔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영화지인의 결혼식에 맞춰서 어린이날에 와 달랑 1박 2일 영화 3편의 짦은 체류에 머물렀다.
( 올해 전주에서 처음 본 영화의 제목은 우연하게도 <Short Stay>였다. )
역시 야외무대는 철거되었고 북적였을 길거리는 한산했고 자원봉사자들도 조금은 지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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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전주의 택시비는 5천원 내외면 해결되었고, 전주역 앞 버스정류장은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처음 탄 택시운전사 아저씨는 눈과 귀를 동시에 경기를 일으키게했다.
막거리집을 제외한 전주의 맛집은 어느 정도 탐방 완료한 손님이라는 눈치챈 노회한 택시 기사는
몇년전 밤늦게 길게 줄을 늘어서서 기다렸던 가맥을 판매했던 슈퍼 주인의 부음 소식을 전해주었다.
엄청난 세금으로 인해 압박을 이기지 못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은 전주 시민들 사이에 널리 퍼진 모양이다.
그는 이어서 전주 시내 이곳저곳 골목길로 택시를 운전하여 세금 집행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와중에 나는 전날의 기억을 접고 불꺼진 홍등가 골목의 쓸쓸함을 그 아침에 창너머로 응시하고 있었다.
결코 감상적으로 인지해서는 안되는 여성 성매매 노동자의 삶이 저기 스테인레스 칸막이 너머에 일렁거렸다.
아마도 이번 전주에서도 에코 페미니즘 영화를 보게될 것이지만, 당장의 현실은 저기 있었다.
이 땅에서 성매매 합법화 논쟁과 성매매 노동자의 권리 신장 사이의 간극이 새삼 눈끝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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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 항상 커다란 빈 공터였던 곳에 1년 사이 드디어 대자본 영화 체인점이 들어섰다.
당연히 각종 관련 프란차이즈 식당들이 입정해있는 동안 그 반대편에는 10 여년 이상 관객들에게
영화 중간중간 간식을 판매했던 소규모 부전부리 분식점들은 폐업을 해서 포스터만 붙어있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결국 그들도 자영업자 폐업률 통계 안으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아니면 좀 더 넓고 휘황한 점포로 이전해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지아 장 커의 <24 시티>가 어느새 전주 영화의 거리 안에서도 겹쳐서 상영되는 서늘함을 지울 수 없었다.
첫번째 영화를 전주 디지털 독립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관람했다.
부산과 전주에는 시에서 지원 운영하는 영화제의 유산인 시네마떼끄가 있고
그 곳에는 역대 영화제 작품 중 다수를 다시 볼 수 있는 감상실과 비상업성 영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내부 시설은 대기업 영화 체인에서 운영하는 아트하우스와 비견될 정도로 산뜻했다.
독립영화관 거리 앞에서 팔던 인삼 떡볶이 노점은 역시나 폐점하고 없었지만,
길거리 꽈배기 집에는 예전처럼 사람들이 늘어서 있지 않았고 빵이 포장해서 널부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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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위해 아중리 모텔촌 근처로 가니 작년에 찾았다가 만석으로 뒤돌아섰던 한식집이 거기 있었다.
이상하게도 식당의 젊은 종업원은 고가의 대표 음식보다는 점심 특정 메뉴를 권유했다.
결국 song님이 인터넷에서 강력 추천했던 위황창란한 약초 밥상은 견식해보지도 못했다.
아중리에서 영화의 거리로 직행하는 버스는 없었고, 결국 다시 택시를 탔고 연휴라 길은 정체 상태였다.
두번째 영화는 새로 생긴 대기업 영화 체인점에서 관람했다.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의 세계와는 10번째 조우이며, 리버풀을 떠난 그의 여성 연작이 3번째로 접어들었다.
이번에는 20세기초 스코틀랜드이고 제1차 제국주의 전쟁에서 종결되었다. 여전히 민초들의 노래,
섬세한 햇살과 파스텔톤의 조명은 고전극으로 돌아가고 있는 감독의 현재를 감지하게한다.
관객 중에 영화제만 가면 스쳐가는 긴 수염과 머리의 교주 스타일의 남성을 다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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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지 축제는 열렸고, 내리는 가랑비 속에서 관광객들은 흩어지고 있었다.
근처의 영동 슈퍼에서 통닭과 닭발은 여전히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는 별미 그대로였다.
밤늦게 작년에 개업해서 개점기념품을 받았었던 팥빙수 집은 불과 1년새에 폐업하고 없었다.
이곳저곳 밤거리를 떠돌아 알바 두 명이 지친 기색으로 지키고 있는 골목길 찻집으로 들어섰다.
창 너머에는 길 고양이 한마리가 끼웃 거리며 나를 가만히 처다보고 있었다.
전주에서의 밤이 다가왔고 모텔 옆 공영 주차장에서도 더 이상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일 아침 코르넬리오 포룸보이우의 신작을 보고서 짧은 식사 한번이면 올해 전주는 종결된다.
2016년 제 17회 전주는 작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영화의 거리의 외양이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거대한 자본이 침식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영화의 거리 고사동에도 점점 더 외연을 넓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어딘가에서 저항의 공간 정치학을 통해 만나게될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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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이 무슨 조폭 조직원처럼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