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여수해양문학상 당선작
제11회 여수해양문학상 가작
여수역 / 최일걸
오랜 기다림은 곰삭은 홍어 같은 것이어서
사무치는 그리움에 콧날이 시큰해지면
물기 그렁한 눈망울에 여수역이 맺힌다
한반도에 한 획으로 그어지는
철로를 따라 온갖 상념을 목록처럼 매달다 보면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신비를
고유한 필체로 서술하는
거대한 손을 떠올리게 된다
내 안의 지각 변동에 검푸른 바다를 불러들이고
몇 개의 섬을 빚어 올리는 권능의 손이 아니라면
한려수도의 오묘한 조화의 극치를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신생대 3기에 머물러 있던 의식을
기관차의 단속적인 진동에 맞추자
만성리 해안선이 급하게 곡선을 긋는다
여기가 끝이구나, 탄식하려 할 때
그제야 비로소 오롯이 모습을 드러내는 여수역,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종착역에서
시작을 꿈꾸는 것은
전생의 기억처럼 밀려드는 파도 때문일까
겨울 칼바람이 거세게 몰아치지만
뱃고동보다 더 거세게 박동하는 심장은
미리감치 오동도 동백나무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제11회 여수해양문학상 우수상
동백 / 김영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를 지금 여수에 데려다 주오
남도의 끝자락 오동도에 가
하루를 살겠네
오늘을 살겠네
삼만 육천오백 날 보다 더 아름다운
하루를 살겠네
남녘 둔덕마루 깎아지른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서서
푸르게 빛나는 우듬지에
시뻘겋게 불타는 가슴을 연다면
보아라,
만 리에서 달려 온 물결들이
하얗게 부복을 하는 바다
오늘을 사는 거다
오늘 하루를 사는 거다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붉은 가슴을 열고
꽃처럼 살다 가는 거다
살 에는 해풍에 맞서
파도를 껴안은 마음
이리 붉을 때
너에게 못다 한 말은
단 하루라도 우리
꽃답게 살 걸 그랬다
불같이 살 걸 그랬다
게으른 봄을 위하여
이 겨울을 다 태울 걸 그랬다
초록이 쫓겨 온 땅 끝
벽오동 지는 섬 둔덕에 서서
우리 이렇게 동백으로 핀다면야
생에 어찌 한 자락의 여한이 남으랴
하루가 천 날 같은
내 생의 마지막 날에
제11회 여수해양문학상 대상
백야 나룻배 / 김정애
어디 갔을까
한 배 타고 다녔던 파도 소리, 천지간에
해가 솟고 갈매기 날고 다시 잠기는데
개펄에서 늙고 있는 신발 한 척
뻘구멍에서 게가 기어 나오고
실 눈 뜨듯 계절이 열린다
귓바퀴 묶고 있는 밧줄 없다
섬사람 뭍사람
갯일 갈 때 마실 갈 때
층층이 신고 다닌 신발 이였다
짠 내 나는 신발
졸고 있는 갯벌 위에서
놓았던 물소리 다시 쥐고
제 속을 헤 집는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뭍을 향할 때나 섬을 향할 때나
그리움 앞세우고도
늘 그리움 남기고 건넜다는 걸
뭍 도 섬 도 아닌 그가
섬을 건네주고 뭍을 건네주는
길이 되고 싶어 했다는 걸
지느러미 뭉툭해지도록
길이 되고 있었다는 걸
[당선소감]
산에 오름니다.
아침에 오르고 저녁에 오르고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앞 선이의 땀방울이 보이고 휙 지나가는 서러움도 보입니다.
나무들의 그늘이며 그늘이 슬어 놓은 입김이며
미처 헤아리지 못한 흐느낌까지 보입니다.
그렇게 오르고 오르다 보면
구릉이 나오고 평지가 나오고 내리막이 나오고
약수 물 소리도 들립니다.
거짓말 같은 당선 소식을 듣고
또 산에 오름니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급한 마음에 미처 다독이지 못한 시의 안자락을
꼭 안아주기 위함입니다.
산이 좋았습니다.
시가 좋았습니다.
무작정 올랐고 무작정 썻습니다.
내일도 오르고 내일도 쓸 것입니다.
시 속에서 길을 잃고 길을 찾고 길을 만들 것입니다.
틈틈이 종포 해안 도로, 돌산 대교, 향일암 종소리,
두루두루 살필 것입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너무 많습니다.
침묵으로 때론 호령하듯 시의 중심을 잡아 주신 신병은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화요일을 꼭 붙들고 싶을 만큼 똘똘 뭉친 화요 문학회 회원들과
전남대 여수 평생 교육원 원우들과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아직 나약하기만 한 제 시의 발목을 잡아 주신 심사 위원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