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위를 향해 별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타이탄과 올림포스 신들 간의 전쟁 이후 타이탄 족의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명령으로 인간을 창조하게 된다.
제우스가 원했던 ‘동물과 다른 인간’이란 본능에 의지하여 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이성으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는 존재였다.
하지만 흙과 물로 인간을 만들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신을 우러르는 일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인간이 영원히 신에게 복종한다면 행복은 없으리라 믿어 천상의 불을 훔친 반역의 역사는 그렇게 비롯된다.
산을 오르는 이유도 그렇다.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도전과 응전’이라는 캐릭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산쟁이들의 보편적 특징이기도 하지만 ‘하늘과 별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이듯, 가슴이 아린 사연을 침묵 속에 묻고 사는 것도 산쟁이의 다른 모습이다.
이명희도 그렇다.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친구하고 북한산을 오르다 인수봉을 보았다.
매끈한 바위덩어리가 눈에 박혔다.
오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몰랐다.
위문에서 만경대로 발길을 돌렸다.
아직 차가운 크랙엔 얼음도 박혀 있었다.
길도 모르고 무작정 올랐다.
친구는 울고불고 진퇴양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 프로메테우스를 만났다.
타이탄산악회의 송태선씨였다.
덕분에 산행 첫날 만경대에서 노적봉까지 내달렸다.
기분은 날아갈 듯했지만 느지막이 집에 돌아와서는 아버지한테 무릎 꿇고 빌어야 했다.
죄명은 ‘다 큰 처녀가 처음 보는 남자를 따라다닌 죄’.
“선배들한테 욱하는 성질밖에는 배운 게 없어요.”
하지만 그는 첫 번째 스승으로 최철산씨를 꼽는다.
대표적인 선인파로 올해 36년째인 타이탄산악회의 막내로 들어와 12년, 시커먼 남자들 속에서 동기도 여자친구도 없었지만 강짜로 버티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선배 최철산의 매질 덕분이었다.
타이탄산악회의 12년 막내
“그때는 여자는 크랙등반은 안된다는 생각들이 많았어요. 산악회에 여자회원이 들어오면 그저 후등으로 따라다니거나 선등을 해도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슬랩등반이나 하는 줄 알고 있었죠. 시집을 가면 산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지만요. 철산 형은 그런 생각을 깨준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전부 안 된다고 할 때 너는 할 수 있다고 어디든 올려 보냈어요. 눈물나게 욕도 많이 먹었지만 잘 하라고 그런 것이니 나쁘지 않아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바윗길은 선인봉 하늘길이다.
길게 뻗은 40m 레이백 크랙을 올라치면 통쾌하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어디하나 부러지지 않고 몸성히 산에 다닌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그곳이 길이건 아니건 볼트야 박혀 있건 말건 ‘무식하게도’ 올라 다녔다.
좋은 말로 하자면 ‘와일드’ 한 것이다.
“박쥐코스에 볼트가 없었을 때 누군가 깊숙이 박아놓고 간 트랑고 4호 프렌드를 철산 형이 하루 종일 매달려 회수해서 선물로 주었어요. 와이어가 터지고 고장 난 프렌드지만 수리해서 기름칠하고 지금도 가지고 다니지요. 가장 애착이 가는 장비에요.”
12년 막내였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는 돈 주고 산 장비가 별로 없다.
모두 선배들이 물려주거나 무상으로 100년쯤 임대한 것들이다.
산에 미친 누구에게나 그렇듯 빨간 날은 전부 산에 갔다.
배낭이 불타고 로프는 가위로 잘려지고 빗자루로 얻어맞기도 하는 고난의 길이 그에게도 이어졌다.
“일요일에는 선인 침니교에 다닌다고 그랬어요. 정말 그런 종교가 있는지 알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큰 벽으로 가는 길
바위에만 푹 빠져 지낼 적에는 아예 선운산에서 살기도 했다.
“고미영 언니하고 선운산에서 매주 문제풀이를 했어요. 5.11을 하고 5.12를 하고 그러다 보니 바위실력이야 많이 늘기도 했지만 한도 끝도 없더라고요. 그게 산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관뒀어요. 그보다 높은 데 가고 싶었거든요.”
가냘픈 여인을 생각하고 우습게 봤다가 눈물을 삼키고 돌아선 남자가 한 둘이 아니다.
어느 날 인공암장에서 턱걸이 3개하고 내려오는 사내 앞에서 간단히 15개를 해 보였더니 다음부터 그 사내는 종적을 감췄다.
하지만 선머슴 같던 그의 마음속에도 한 남자가 찾아온다.
개미산악회의 최성문씨다.
“인공등반은 98년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청죽산악회의 김미선하고 골수회 채미선 이렇게 여자들 셋이 요세미티에 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었거든요. 남편도 그때 알았어요. 인공등반을 배우고 싶은데 가르쳐줄 만한 사람도 없고 해서 임성묵 형 소개로 그이한테 배웠거든요. 외향적인 내 성격하고 차분한 그이 성격하고 잘 맞았나 봐요. 어쨌든 준비는 잘 되었는데 아무도 미국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결국 청화산악회 팀하고 같이 가게 되었지요.”
지난 2003년 로체샤르에서 죽은 박주훈씨는 그가 매듭법을 가르쳐 주고, 설우길 슬랩에서 바위를 가르쳐 준, 산으로 치면 그의 후배다.
노즈를 등반하면서 자유등반구간은 박주훈씨가, 인공등반구간은 그가 리딩을 했다.
모두 처음이다 보니 사흘이 넘게 걸린 등반에서 식량이 바닥났다.
다행히 어두워 도착한 비박지에서 크랙 사이에 깡통 몇 개를 발견하고 고맙게 먹어치웠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크랙에 오물통이 터져 범벅이었다.
“요세미티에 다녀오고 나서도 더 큰 벽에 가보고 싶었어요. 만년설과 크레바스가 있는 그런 곳이요.”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처럼 노즈에서 똥을 먹고 깨달은 셈이다.
그는 2001년 여름 카라코룸 멀티4 원정대원으로 히말라야로 향한다.
동반자 최성문씨와 함께. 하지만 경험과 체력이 부족했던 탓에 힘들었던 기억도 많은 첫 히말라야였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메고 많이 걸어본 건 평생 처음이었어요. 고소도 힘들었고 빙벽용 크램폰을 가져가서 스노우볼 때문에 추락하기도 했어요. 사실 리딩도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지요. 인수 선인에서는 무거운 배낭을 메지 않고도 선등만 서면 되었는데 실전에서는 그러면 안 되겠더라고요.”
먹고살 돈만 있으면 끝까지 있고 싶던 히말라야에서 배낭 팔고 장비 팔아 근근이 버티다가는 석 달이 다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해 가을 곧바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렇게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선인봉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는가 싶었다.
“아이 가졌을 때는 몸무게가 66㎏까지 불었었는데 낳고나서도 옛날 생각만하고 남편하고 바위를 하러갔지요. 그런데 쉬운 곳에서도 몸이 굳어서 너무 어려운 거예요. 남편이 배려를 해줘서 조금씩 선등도 서게 되고 이제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잠에서 깨어나고 싶어요. 예전 모습들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서요. 그걸 조금이라도 다시 찾아보고 싶어서요.”
그가 결혼과 출산 이후 3년간의 공백 끝에 다시 산에 나타난 이유다.
아들 보건이가 두 돌이 지난 올 2월부터 인공암장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7개월 만에 시험 삼아 서울시장기 대회에 출전해서 결승까지 올랐다.
사람들은 “얼마나 독하게 매달렸길래”하며 혀를 내둘렀다.
앞으로 대회라면 인공벽이건 빙벽이건 모두 출전해 볼 생각이다.
기회가 있으면 고산에 오를 테고 거벽을 향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고 싶어
이번 익스트림라이더 인공등반대회에서 그는 친구 채미선의 장비를 빌려 사용했다.
내 장비를 가지고 1등을 했으니 한턱 단단히 내라고 했다는 미선과는 물오른 시절 서로 선등을 서겠다고 가위 바위 보를 하고 다투던 ‘웬수’ 지간이다.
하지만 배꼽친구인 둘은 약속했단다.
돈을 많이 벌어 네가 큰 산을 갈 때 내가 원정비를 전부 내주마 하고.
“승권 형의 등반 스타일이 좋아요. 고산이나 스포츠클라이밍만 하는 게 아니라 올라운드잖아요. 나도 깨끗한 바위나 얼음 보다는 지저분한 곳만 골라 다니는 체질인가봐요. 사실 승철 형이나 형진이가 더 생각나지만 얘기하면 가슴 아파할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동갑내기는 아니었지만 그들과 잘 어울려 다니던 이명희도 깊게 각인된 푸르던 기억을 벗어나기에는 스무 살 그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다.
언젠가 그와 함께 등반한 적이 있는 선인봉 푸른길을 다시 찾았다.
그때 추락하다 턱이 까졌던 그는 침 한번 뱉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올라갔었다.
2호 프렌드를 박고 넘어가던 크랙에 전에 없던 볼트가 생기고 나서 이제 아슬아슬하던 그곳에서 바닥치기를 할 걱정은 없지만 더욱 반들해진 바위는 예전 같은 손맛이 없다.
“어휴, 여기가 생각보다 엄청 섰네. 우리 내려가면 맛있는 거에다 술 한 잔 해야지요? 나는 사이다면 되요.”
술은 입에도 못 대지만 술 먹는 분위기가 좋아 어느 자리건 빠지지 않는다는 그는 가로크랙을 지나 혹점을 잡고 테라스 너머로 사뿐히 사라지고 잠에서 깨어난 그의 완료소리는 푸른 가을하늘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언제나 절망은 벽이다.
탁 트인 절망이란 없다.
하지만 클라이머는 절망의 벽에 매달려서도 내려가야 할 땅이 아니라 넓은 하늘과 별을 바라본다.
- 글 이영준 -
첫댓글 그저 대단한 삶의 경험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뿐이네요. 저렇게 머리자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