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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바위
“이크, 이게 누구야 오영자구나 얼마만이야.”
“김윤숙, 얼마긴 졸업하고 처음이구만.”
“몇 년 만이고.”
수십 년이 훌쩍 넘어간 세월이다. 전화로 만나자 해 놓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정류장을 서성거렸다. 내리면서 선뜻 알아보고 소리친 게 인천에서 온 불기 살던 윤숙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거들먹거리는 소행은 같다. 덜렁거리고 후다닥 하는 성질은 여전하다. 여태껏 어찌 참고 지났을까. 부산과 인천이 그리 멀어서일까.
소식을 끊고 살더니 느닷없이 대구 박순옥을 통해 연락이 왔다. 벚꽃이 흐드러졌다는 경주에서 만나자 대뜸 약속해서 이뤄진 일이다. 얼싸안고 한참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도 얼굴이 낯설어 맞나 다시 보곤 가슴을 토닥토닥 쳤다. 하도 늙어 어릴 때 모습이 어련하지 않고 아득하다. 그렇다니 믿고 돌아치고 귀를 잡아당겼다.
화장을 짙게 해도 숨길 수 없는가. 눈주름이 자글자글 퍼져있다. 안 죽고 산 것이 대견하다. 소식 끊긴 친구가 많다. 그중 여럿이 세상을 떴다. 남자들은 대부분 물려받은 농사일을 하거나 장사꾼이다. 나가 돌아치다 보니 목탁치고 염불하는 스님도 있고 십자가를 세운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도 나타났다.
고향에서 고을 현감 원님인 면장 하던 친구와 경기도 사는 수도공사 사장도 있고 춘천과 부산에서 중등학교 교장도 나와 대중없다. 늙바탕에 이제 와 동창회 하자며 몇 번 만났다. 담배 연기 자욱하고 술 퍼마시고 냄새 피우는 게 싫어 주춤했는데 난데없이 윤숙이 온단다. 영자는 얼른
“그래 전화를 어찌 알았노.”
불기 남동생 집에 들렀다가 너다리 순옥이 친척을 만나서 대구로 내려가 산다는 걸 알았단다. 그러면서 윤숙은
“그래도 너거들 이름 기억하고 있잖나.”
이내 나타난 순옥이 차로 셋은 예약한 숙소가 있는 보문단지로 갔다. 한 바퀴 돌고 솔솔 꽃비 내리는 그늘에 자리 펴고 앉아 또 한 번 손을 꽉 잡고
“반갑다 가시나야.”
순두부찌개 점심을 들고 또 퍼질러 앉았다. 해 뉘엿뉘엿하도록 불기, 장터, 너다리 살던 얘기로 어린 시절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고 있다.
“콩칠팔세삼륙 그만하고 이제 콘도로 들어가자.”
아래 슈퍼에 들러 먹을 걸 준비해서 저녁을 지었다.
“어릴 땐 이런 거 구경도 못했다.”
“입쌀밥이 뭐꼬 나는 꽁보리밥에 감자만 묵었다.”
“마실에 밥 얻으러 간 적도 있대이.”
셋은 이러쿵저러쿵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제비처럼 조잘댔다.
“야 너희들 남편은 다 어찌하고 왔노.”
윤숙의 물음에 영자는
“전기밥솥에 해 놓고 곰탕 끓여놨다. 찾아 먹을끼다.”
“우리 남편은 내 없어도 잘 챙겨 먹는다. 윤숙이도 그리 했제.”
순옥의 물음에 대답 없이 멀뚱하기에
“왜 무슨 일 있나 니 남편 복남이 잘 있나.”
한 반 친구인 한복남은 나만 쳐다보길 잘한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나 화장실 갔다 오다가도 찔끔 보곤 한다. 조별로 운동장 풀 뽑기와 흙 퍼 날라 고르기, 돌담 쌓기, 유리창 닦기 일할 때나 학급 회의에 내 일을 도맡아 해 주고 밀어준다. 싫지 않아도 너무 관심을 기울이니 남사스러워 민망하다. 대놓고 옆에서 얼쩡거린다.
“예 누가 봐 그만 해.”
그 뒤론 좀 멀찍이 지났다. 작은 산 넘어 사골 마을에 살면서 가까운 범고개로 넘어와 같은 반 친구인 봉진이와 주섭이, 종태를 만나러 온다. 그러다 우리 집 주위를 빙 둘러보곤 한다. 그의 따가운 시선이 늘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앙칼지고 차갑게 대하니 스멀스멀하게 사라지고 남남처럼 여전하게 돌아갔다.
여러 사람 앞에 모질게 말했더니 무안한가 씁쓰레하면서 입맛을 다시는 게 좀 미안하다. 뒤로 돌아 스르르 걸어가는 게 외로워 보였다. 그게 그만 걸쩍지근하게 늘 맘에 걸렸다. 별러서 그랬는데 공연히 그랬나 싶다. 속으로
“복남아 미안해”
외쳤다.
그 뒤로 거들떠도 안 봐주니 또 좀 이상하다. 다른 여학생에게 기울이는 것 같아 그만 시샘이 생긴다. 잘 생기고 친구들 간에 인기 있는 공부 잘하는 그를 너무 내치고 박대했나 싶다. 어지간해야지 졸졸 따라다니듯 하니 어찌 가만두겠나. 쉬는 시간에 수백 명이 쏟아져 나와 운동장은 요란하다. 철봉에 매달리거나 은행나무와 씨름판을 덮은 굽은 소나무에 기어오르겠다는 놈, 돌아다니며 고무줄 끊는 아이, 범 구멍으로 동그란 돌멩이 밀어 넣고 작대기로 쳐올려 자치기 날리기, 짚단을 묶어 공차기하는 게 벅적지근하고 북적북적 댄다.
얼마나 뜀박질에다 뒹굴고 장난이 심한지 땡땡땡 종 칠 때까지 난장판이다. 뽀얀 흙먼지가 자욱하다. 그런 가운데 뒤돌아보면 꼭 복남이가 보인다. 뭐라 했더니 그사이 삐쳤나. 관심 없어 하는 게 견딜 수 없다. 괜히 미워한 게 후회스럽고 미안하다. 난 왜 이럴까. 다시 관심을 끌려고 지나다 옆구릴 쿡 찔렀다. 깜짝 놀라며 쳐다보다가 무심하게 저쪽으로 걸어가 버린다.
졸업하고 여러 해가 느닷없이 흘러갔다. 복남이는 잘 있나. 가끔 생각이 난다. 아랫마을 주섭이와 점남이, 윗마을 봉진이, 종태, 재복이, 물 건너 신욱이는 한 마을이니 자주 만난다. 품앗이 모심기나 추수할 때 중참을 하면서 지나는 동창을 불러 국수를 말아 먹인다. 범고개로 뻔질나게 자주 넘나들던 복남이는 소식이 없네. 죽었나 살았나. 너무 매몰차게 했나 안쓰러워라.
금 간 동이를 철사로 친친 잡아매고 터진 검정 고무신도 밑바닥 갈고 옆을 때워야 했다. 오록 5일 장날 내려갔다가 너다리 순옥이와 정규, 창마 옥주, 삼용이, 도사리 태순이도 북적대는 장터에서 만났다. 장날에만 나타나는 강냉이 뻥튀기를 맡기고 빨랫비누와 양잿물, 제사상에 올리는 고등어나 조기 등 생필품을 사러 온 친구들이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 좀 한가해졌다며 이런저런 사는 얘길 했다. 음식점을 하는 복용이 집 앞 뜨거운 김을 물씬 뿜어내는 찐빵 가게에 웅성웅성 다들 모였다.
물컹한 팥고물을 한 입씩 베어 물고 시시덕거리며 입씨름하다 해 저물자 서둘러 헤어졌다. 이것저것 시장 본 것과 신발을 담은 동이를 이고 불기 집으로 타박타박 걸어 올라간다. 한 오리쯤 될까. 집 한 채 없는 한적한 길이다. 지난날 덕고개와 오전, 죽텃골, 옻밭골, 밤마, 생달, 쑥밭 골짝을 산판 차가 드나들면서 신작로가 생겼다. 휑하니 뚫린 길이다. 요즘은 달구지가 가끔 다닐 뿐 무싯날은 발길이 뜸하다.
좌우 바퀴 쪽은 반반하고 가운덴 풀이 나서 묵은 길이다. 예바위(고암)를 지나면 거지반이다. 장날은 길에 다니는 사람이 깔렸는데 그치고 혼자다. 이상하리만치 왜 이리 사람이 없나. 가을 해가 짧아 빨리 넘어갔다. 너무 늦어서인가 보다. 꺼림칙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때 복면을 한 건장한 남자가 바위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옹자배기를 밀치고 입을 틀어막았다. ‘윽윽’꿈틀거리고 뿌리치면서 몸부림하자.
“소리치면 목 조를 거야.”
바위 뒤 억새밭으로 끌려갔다. 불안에 발발 떨며 꼼짝없이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겁에 질려 숨쉬기도 어려웠다. 엉겁결에 왈칵 시달린 윤숙은 얼떨결에 주섬주섬 아랫도리 옷을 올리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남자는 바지를 쓸어 잠그고 부리나케 도망가 버렸다. 박살이 난 물동이를 한쪽 구석에 버리고 안에 든 것을 품에 감쌌다. 어정어정 걷다가 옆 내성천 둑에 펑퍼져 앉아 훌쩍훌쩍 한참을 울었다.
“내가 모를 줄 아나.”
그 목소리와 행동은 영락없이 복남이다. 장날마다 자주 기다렸는가 풀밭이 반반했다. 찐빵 가게 앞에 모인다는 걸 알고 훔쳐본 것 같다. 아래로 내빼면서 밤길 조심해서 가라는 말에 긴가민가 느낄 수 있었다. 큰 바위가 사각으로 앉았고 그 위에 좀 작은 바위가 올려져 있다. 꼭대기에 둥근 돌이 있어 마치 탑처럼 생겼다. 얼마나 큰지 양팔을 벌려 한참 돌아야 했다. 아래 밭침인 밑돌이 키 큰 어른 한길 넘는 높이다. 장 보러 가거나 먼 길 떠나면서 두 손 모아 빌고 절하는 사람도 있다.
바위는 얼마나 큰지 집 덩치이다. 네 벽이 다듬은 듯 깎이고 훌쩍 높아서 올라갈 수 없다. 오랜 세월 이끼가 끼어 거무튀튀하다. 외딸아서 으스스한 곳이다. 바로 뒷산 숲에서 천년 묵은 백여우가 나온다는 말도 있다. 십리 길 넘는 오전이나 쑥밭 아이들은 덕고개를 넘어 송장기를 거쳐 논두렁 길로 다닌다. 우린 장터 다리를 건너 제방 둑길로 올라온다. 학교를 오갈 때 남자아이들이 가끔 예바위에 올라가 꼭대기 돌을 밀치고 있었다. 작아 보여도 끄떡도 안 한다. 서로 목마를 하고 끌어당겨 올라가면 펑퍼짐해서 앉아 놀기 좋은가 보다.
내가 이 길로 다닌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복남이다. 그래도 그렇지 싸맨 물동이를 깨트려서 이제 어쩌나. 무섭게 복면은 다 뭔가. 수건을 쥐여주는 걸 보면 준비가 됐다. 몇 달이 지나자 음식 냄새가 심하고 토하려 ‘욱욱’한다. 엄마가 눈칠 채고 다그친다. ‘누구냐’고 물을 때마다 하늘이 노랗다. 이 일을 어쩜 좋아.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온다. 어딜 나가려도 참아야 하고 잠시 싸매고 다닌다. 처녀가 아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일까. 가맣게 모르고 있을 복남이에게 어떻게 알릴까 걱정이다. 며칠 뒤 만나자고 편지를 썼다. 그가 잘 넘나들던 범고개 솔밭에서 만났다. 오기 쉽고 나도 남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적한 곳이어서 안성맞춤이다.
“어찌 된 일이냐.”
복남이 무슨 일이냐 다짜고짜 묻는다.
“네놈이 놀라게 해서 배가 퉁퉁 부었잖나.”
순옥이 다그쳐 묻는다.
“그래 어찌 됐노.”
불기 아이들은 다 아는데 너희들은 몰랐나.
“무스기 말을, 어련히 듣긴 해도 설마 그런 일이 있었을라 했다.”
영자는
“너거 둘이 단짝이었잖나 그래서 으레 결혼할 줄 알았다.”
“그다음 얘길 해라 답답하다.”
순옥이 거듭 보대끼며 재촉한다.
배가 더 부르기 전에 꼭꼭 잡아매고 결혼식을 올렸다. 사골 신방에서 몇 달 살다가 영주로 방을 얻어 나갔다. 복남은 복면한 죄로 노동판에서 돈 벌어 오고 반찬 사와 장만해야 했다. 몸 무거워 거추장스러운 아내를 위해 정성껏 뒷바라지해 댔다.
“복면은 왜 했대.”
넌지시 던진 윤숙의 말에
“소리치고 할퀴면 어쩌나 꿈쩍 못하게 겁주려고 ---.”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경수라 지었다. 팔다리를 잠시 가만 안 있고 버둥거리며 침을 게워내는 게 귀엽다. 엄마가 안으면 움찔움찔 눈알을 부리부리 돌리며 방긋방긋 웃는다. 꼭꼭 안아주고 포동포동한 손목을 어루만지며 살며시 잡아준다. 가운데를 쓰다듬어주고 다리를 꾹꾹 눌러주면 쭉쭉 뻗으며 좋다고 우쭐우쭐한다. 모두 녹아내리고 사그라지며 한없는 행복감에 잠긴다.
“인천에 사는 친구가 일자리가 있다고 오라는 데 갈까.”
복남의 말에 윤숙은
“시댁과 친정을 가까이 두고 그리 멀리 ---.”
아파트 건축 공사장이다. 별난 기술이 없어서 등짐을 지고 벽돌을 나르는 노동이다. 떠받치는 기둥 나무를 올리고 허물어 매어 내리기도 한다. 모래와 시멘트, 자갈을 층마다 져 올리는 작업이 반복된다. 마치고 땀에 저린 고된 일을 닦아내기라도 하듯 함께한 일꾼들과 거나한 술에 취해 비틀비틀 집으로 들어간다.
완공되면 이곳저곳 새로운 일터를 찾아다니며 날품팔이 생활을 이어갔다. 윤숙이도 아파트 입구에다 조그마한 가게 내어 옷 장사하며 살림을 도왔다. 사는 것이 짭짤하기만 하다. 둘째 아들 경복이도 생겨 커 가는 것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저 멀리 고향에 살던 일들일랑 아스라이 가물가물 잊히는 옛 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또 그렇게 되길 원하면서 산 것 같다.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살아갔다.
복남은 ‘사흘이 멀다’하고 술에 절어 들어온다. 일이 힘들고 어려운가. 한데 날씨에 시달리면서 메고 져 나르느라 어깨 허물이 여러 번 벗어지자 가끔 바라보는 게 고향 쪽을 그리워하는 눈치다. 농사짓다가 공사장에서 생활하는 게 생뚱맞아서인가 온통 술 담배 냄새로 찌들었다. 어떨 땐 곤드레만드레 쓰러져 자는 모습이 안됐다. 주정 부릴 땐 어린아이 같다. 허튼 소릴 가끔 내뱉는다.
“무뚝뚝하면 못써 상냥해야지.”
하루가 다르게 풀썩풀썩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지남이 커다란 희망이다. 아이 키우고 가게 보며 살림하랴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남편은 뒷전이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바둥바둥 애쓰는데 무슨 엉뚱한 소린가. 어디엔가 늘 불만인 남편 복남이다. 등불을 끄고 함께 잠자리에 들 때면 닿는 감각이 섬뜩하다. 어두운 방과 부드러운 이부자리가 예바위처럼 느껴진다. ‘복면에다 목조른다.’는 말이 눈에 선하고 귓전을 때린다.
밤이 오면 변신한다. 다정하지 못하고 살갑지도 않다. 몸이 따뜻해지기는커녕 저절로 뿌리치고 냉랭해지며 쌀쌀맞다가 차가워짐을 느낀다. 무슨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부부 정이 생기겠나. 내 딴엔 한다고 하는데도 이 모양이다. 억누르고 참아봐도 되지 않는데 어쩔거나. 저리 낯선 곳에서 막노동으로 고생하고 한 반 동창으로 날 그리 좋아했는데 이러면 되나.
“무뚝뚝하다 상냥해야지”
말에 엄두를 못 낸다. 아이들 밖에 정 붙일 곳이 없는 외로운 복남은 점점 벗나가는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 해 하면서도 깜짝깜짝 놀라며 저절로 움츠러드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그 충격이 대단해 모든 남자가 다 그럴 걸로 느껴져 싫다. 내 이 마음을 어찌 다스려야 좋을까. 비뚤어져 가는 남편 복남이 불쌍해라.
간이 안 좋은가 요즘은 피곤하다며 약을 먹는 것 같다. 술독에 들앉아 사니 어딘들 온전히 견디겠나. 아침에 속풀이 북어 해장국을 끓이고 어깨를 주무르고 두들겨주며 상냥하게 대한다. 무뚝뚝하다 뭐라 해도 날 밝을 땐 괜찮다. 경수와 경복이가 엄마 대신 아버지에게 잘한다. 비 오거나 몹시 추운 날은 집안에 들앉아 장난을 친다.
가까운 학교 운동장에 가 축구를 하거나 뒷산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부두를 한 바퀴 돌아 항구를 살펴본다. 눈이 쌓여 온통 하얀 세상일 땐 실컷 눈싸움하고 들어오는 남편 복남과 아들 형제가 용감해 뵌다. 얼마나 격하게 했던지 등줄기에서 김이 무럭무럭 난다. 같이 바깥 외식을 즐기고 네 식구가 손잡아 집으로 들어올 땐 이것이 가족이구나 한다.
그러나 밤이면 어김없이 도지는 예바위 복면에 대한 두려운 병이다. 어떨 땐 옆에 자는 모습을 보고 소스라쳐 놀란다. 화장실이나 부엌에 가 한참을 보내고 들어와야 잠을 청할 수 있다. 늘 좋을 순 없다. 어쩌다 언짢은 말이 오갈 땐 여지없이 머리채를 잡히고 입을 틀어막아 끌려가는 게 생각이 난다. 몸서리칠 일이다.
중학교에 들어간 경수는 꽤 어른스럽다. 아버지와 세상 이야기를 곧잘 한다.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얘길 능청스레 할 땐 둘째 경복의 볼을 비비고 사랑스러워 안아준다. 내가 못 하는 걸 아이들이 아버질 위로해 준다. 자전거를 사서 셋이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온다. 여름엔 풍덩풍덩 송도 바다에 들어가 한바탕 수영과 물장구를 치며 멱을 감는다.
냉면집에 들어가 식초와 겨자를 넣어 새콤새콤하고 맵싸하게 톡 쏘는 시원한 음식을 먹을 땐 우리 가족에게 잘해야지 맘먹는다.
“춘천에 가서 일할 것 같아.”
회사가 전국 각처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인부가 달리는 춘천으로 갔으면 한다. 이곳 일이 거의 끝나감으로 서둘러 마무리한 뒤에 내달엔 옮기려 한다. 그곳에 가면 건 1년 남짓 있어야 하는데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하니 어쩌면 좋을까. 주말에 왔다 가는 수밖에 없다. 낯익은 학교 아이들을 두고 낯 설은 그곳으로 이사 갈 수 있겠나 함께 가 살자는 아내 말을 곰곰 생각한다.
“우선 가 일해 보고 힘들면 그리하지 뭐.”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니 켕기고 미안하며 밀려오는 후회스러움이 생긴다. 좀 더 잘할 걸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 어예 됐노 이사 갔나.”
순옥이 듣다 졸다 하다 묻는다.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인천 가 잘 사는 줄로만 알았대이.”
영자는 이어
“일꾼들 밥해주고 재워주는 함바가 있다던데.”
“1년이라니 참고 지났는데”
윤숙의 말에 순옥이
“그래서”
윤숙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한숨을 내 쉬며 그만 얼굴을 가리고 오열하듯 울음을 터트린다. 순옥이와 영자는 괜한 것을 물었나 싶어
“야, 왜 그래.”
윤숙은 겨우 추스르고 입을 열며
“연락받고 춘천 병원으로 달려갔어.”
남편이 일하다 말고 계단에 앉아 있었다. 잠시 쉬는 줄 알았는데 슬며시 눕고선 일어나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혼수가 오고 이내 병원으로 옮겼다. 아내 윤숙이 갔을 땐 이미 맥박이 가늘고 멎어갔다. 간과 심장이 약할 대로 나빴단다.
“이런 몸으로 어찌 일했나.”
의사의 진단이다. 어이없이 복남을 보내고 맨날 넋 잃은 사람처럼 방황하는 나날을 보냈다. 같이 산 지 20여 년이다. 대학 다니는 두 아들은 방안에서 씨름하던 걸 들먹이고 송도에서 수영하고 뒹굴던 일이 그리운가 얘기하면서 통곡한다.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봄꽃 피고 가을 단풍 든 뒷산을 오를 때와 자전거로 앞서고 뒤서던 게 어제만 같단다. 눈싸움으로 손은 얼고 등엔 땀이 났다. 함께 바깥 음식 먹던 게 새록새록 떠오른다. 특히 겨자를 많이 타 매운 냉면을 먹으면서 흘리던 눈물이 오늘 또 쏟아진다.
애틋하고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게 두고두고 맘에 걸려 무덤을 더 찾게 된다.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일해 아파트 사고 아이들 학교 보낸 남편이다. 자상하고 그럴 수 없이 인정 넘치며 묵묵히 헌신 봉사하다 떠난 복남이다. 살아생전에는 밉상이던 게 막상 저세상으로 떠나고 없으니 오만가지 생각이 물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가슴을 친다.
친정 불기를 오를 때 예바위를 지난다. 한 바퀴 돌면서 복면에다가 위협으로까지 나를 잡아 가지려던 그때를 그려본다. 다 아름다웠던 지난날 일이다. 밥상 크기의 네모 안 고암(古巖) 한자 음각을 어루만져본다. 누가 필요했던가 위의 돌덩이를 가져가고 바탕 바위만 덩그러니 남아 내 신세를 닮았다. 장터에서 압동, 부석 쪽으로 조금 가면 왼쪽 언덕이 복남의 집 사골인데 일부러 나 보자고 예바위를 지나 범고개로 빠져나갔다.
“고마워라 날 위해 밤낮으로 찾아다니고 죽자 살자 일해 일궈놓은 집안이다.”
“내 무엇으로 그 빚을 다 갚을거나.”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져 견딜 수 없다. 그의 새끼 경수와 경복을 바라보며 갚아야지 맘먹는다.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어도 그가 피땀 흘려 장만해준 아파트를 버리고 어딜 가나. 그의 숨소리가 들리는 이 집을 어찌할 수 없다. 그의 산소도 이곳에 있으니 내버려 두고 떠날 수 있겠나. 그의 소지품과 옷가지를 그대로 두고 쓸고 닦아주며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이젠 밤이 와도 두렵잖다. 살갑게 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랬나 아이고 안됐다.”
영자가 윤숙의 손을 잡고 달래며 껴안아 줬다. 순옥도
“우리 단오 때 짬을 내 고향을 가 봅세.”
“무심코 지나다녔던 예바위를 다시 한번 보자꾸나.”
“세끼들은 다 커서 지금 뭘 하노.”
영자 물음에
“결혼해서 집 나가 다들 손자 낳아 키우며 잘 살아간다.”
며느리까지 직장을 나간다니 사는 게 바쁘기만 한가 보다. 경수와 경복인 남편 가고 처음은 자주 오다가 요즘은 좀 뜸하다. 손주들이 눈에 밟혀 보고 싶으면 찾아간다. 그들은 할미를 돈줄로 생각한다. 또 한 푼씩 주는 게 즐거움이다. 옷 가게가 그런대로 잘 돼 단골이 많다. 창고에 가면 철 지난 것을 덕지덕지 가득 쌓아놨는데 묶어 무게로 판다. 승용차 앞뒤 자리와 트렁크에 가득가득 실어 온다.
풀어헤쳐서 다시 꿰매고 다려 반듯하게 정리해 걸어놓으면 산듯한 새 옷이다. 거저 가져오다시피 한 퀴퀴한 싼 옷을 비싸게 파니 장사가 솔솔 재밌어 쏠쏠하다. 또 의류회사의 옷과 패션의 때 지난 한물간 옷도 말쑥하게 전시한다. 구닥다리라서 처음은 싸구려로 하니 안 팔려 값을 올려봤다. 되려 손님이 나타나며 나가기 시작했다. 몇 해간 여기에 매달려 애썼더니 남편 없는 허전한 슬픔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경수와 경복이 약속이나 한 듯이 측량기사다. 토목과를 나와 도로 내는 곳과 건축 공사장을 다니며 반듯한 도면을 만들어낸다. 오늘은 무슨 다리 공사, 내일은 어디 터널 작업이라며 저들끼리 수다를 떤다. 산을 오르는데 구불구불한 여러 계곡을 조금씩 올라 고개를 넘어간다. 그러다 올라오는 도로 공사와 약속이나 한 듯이 맞닿을 때와 좌우를 뚫어 들어가다 딱 마주치는 터널 관통은 다 신통방통하다. 어찌 비뚜름하거나 벗어나 가지 않고 맞닥뜨릴까.
사람 사는 곳엔 도로와 수도관, 가스관, 통신망, 전신주는 어김없이 따라 들어간다. 그때마다 측량이 필요하다. 고속철과 고속도로, 항만, 비행장, 하천 정비 등 모두 측량의 설계로 이뤄진다. 낡은 관과 전선, 통신망을 교체할 때 땅을 파는데 걸핏하면 건드려 수돗물이 펑펑 쏟아져나온다. 낭패다. 틀어막고 다시 시작하려면 긴 시간이 흐른다.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한다. 그때마다 측량기사는 할 일 없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쉬는 멋쟁이 기사를 보고 늘 아들에게 저 일을 시켜야겠다 맘먹은 아버지가 아들의 진로를 안내해서이다. 기계를 보고 도면을 살피는 기사들의 모습에 반했다. 그들 주위엔 빛이 감도는 것 같다. 여러 자격증도 따 여기저기서 오라는 귀한 몸값을 하고 있다. 높이 올라가는 치솟는 건축물과 강과 바다의 긴 다리, 휘어지거나 한 바퀴 돌아 나오는 터널은 측량 아니면 이룰 수 없다. 걱정할 것 없는 자랑스러운 아들 가정이다. 세상이 이리 번창하면서도 근사하고 반듯하며 아름다운 것은 아들의 측량 공로이다.
편하고 안전하게 다니라며 낡은 차도 바꿔줬다. 철철이 옷이 넘치는 대도 사나르고 냉장고엔 알아서 고기와 채소, 과일에다 음료수, 꿀 병, 술까지 가득가득 채워 넣는 며느리다. 저녁마다 전화가 번갈아 와선 오늘 살아온 하루 일을 보고한다. 목소리가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에 가자고 야단이다. 여태껏 사느라 허둥지둥했는데 이제 여한이 없다. 그러자 이리 늙어 주글주글하다.
“그러다 풀썩 동창 생각이 났나.”
영자 말에 북쪽에 오래 살다 보니 내 고향이 있기나 했나 싶다. 친정 부모도 세상 뜬 지 오래고 형제도 안 만나니 소식이 감감해지면서 정이 머쓱하다. 윤숙은
“그래 생각나는 게 코흘리개 너거들이다.”
구겨진 흑백 졸업사진 한 장에 작은 얼굴을 보면서 누구누구 이름을 외쳤다. 남편 복남의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거두니 영자와 순옥이 보였다.
“그래 가게는 어찌하고 왔노.”
순옥의 말에
“나이 들어 그것도 못 할 일이다. 그만뒀다.”
종일 시달리니 힘에 부쳤다. 남 쉴 때 가게를 지켜야 하니 할 짓이 아니다. 아들 형제와 며느리가 그만두라 만날 때마다 권했다.
“이제 장사 접고 친구 만나 놀러 다니며 쉬세요.”
집에 들앉아 있기도 답답하다. 그거라도 하니 소일거리가 됐는데 한참 지나고 보니 이젠 홀가분한 게 손 놓기 잘했다 생각이다. 다시 하라면 번거롭고 엄청스러워 못 할 일이다. 그걸 어찌했나 싶다. 사 오고 펼치며 억척이었다. 팔려고 힘쓰다 보면 좋다느니 싸다느니 하는 비슷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게 부담이었다. 떼온 값에 판다는 말도 서슴없이 해 대니 야단났다. 처녀 시집 안 간다는 말과 노인 죽겠다는 말, 장사 밑지고 판다는 말이 거짓말이라 하잖나.
“갑자기 두면 그 옷가지는 다 어쩌노.”
순옥의 말에
“방구석에 처박아 뒀다.”
“야 그럼 그 옷 우리 좀 도.”
영자가 조르자
“다 가져가래이.”
윤숙은 징그럽다는 듯 가져갔으면 속 시원하겠다는 말이다.
“이러다 날밤 새우것다 눈 좀 붙이자.”
경부고속도를 냅다 달린다. 마침 윤숙의 사는 집도 구경할 겸 인천을 보고 싶었다. 순옥의 차로 쉴 때마다 번갈아 가면서 운전했다. 예바위를 가자 했다가 갑자기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집의 남편은 안중에도 없다.
“며칠 못 가요 잘 챙겨 드세요.”
순옥과 영자가 집으로 전화하는 모양새다.
쉬엄쉬엄 때 되면 휴게소에서 맛 나는 걸 사 먹고 주전부릴 하면서 왁자지껄 차내가 떠들썩하다. 아직은 덥지 않은데 빙과류를 입에 물고 쭐쭐 빤다.
“어어, 이 차가 왜 이리 빠르나 날아가는 것 같다 천천히 가. 말하지 말고 듣고 웃기만 해래이.”
윤숙은 속도를 높이는 운전자에게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능숙한가. 손짓과 고개를 돌려 말하는 순옥에게 딱지 떼는 소릴 한다. 둘은 학년이 바뀌어도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지내선가 허물이 없다. 모진 소릴 해도 잘 받아넘긴다. 옷이 탐났던가.
“방에 널린 쓰레기를 주섬주섬 청소하러 가자.”
말하고 차에 타라 한 것도 순옥이다. 평생 처음 가 보는 인천은 어떻게 생겼을까. 되게 멀리도 가 살았다. 정말 천릿길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인천은 언제 나타나려나.”
“자꾸 북쪽으로 치빼는데 이러다 정말 북으로 넘어가는 거 아닌가.”
싱거운 영자의 말이다.
안방만 가지런하고 두 방은 구질구질한 옷들로 가득 들어찼다. 오랫동안 쌓여선가 뜬 내도 나는 것 같다.
“웬 옷이 이리 많나 이거 누가 입던 거 아닌가.”
순옥의 말에
“좀 오래됐어도 모두 새 옷이야.”
윤숙의 옷걸이도 넘쳐난다. 입으려고 골라놓은 것이 주렁주렁하다. 걸쳐보고 맞으면 이것도 반쯤 가져가란다. 자기는 너무 많아 주체를 못 한단다. 옷 천지다. 사 입으려면 옷값이 얼만데 감히 엄두도 못 낸다. 이런 횡재를 만났나. 집집이 옷으로 널렸어도 새 옷 사 입으려는 욕심이 많다. 널브러진 세간살이와 함께 차고 넘치는 데도 더 가지고 싶어 하는 게 부엌 그릇과 의복이다. 사계절이 있어 철마다 걸쳐야 하니 옷은 끝없이 필요하다.
“야, 이러지 말고 고향 동창들을 불러 나눠주자.”
영자 말에 윤숙이
“꾀죄죄한 옷을 누가 좋아하나.”
“이 옷이 어때서 내 눈엔 번쩍거린다.”
순옥이 거든다.
“이참에 친구들 만나 보자꾸나.”
영자도 서둔다.
물야면 오록 장터 꽤 큰 음식점을 골라 들어앉으니 가득하다. 가벼운 옷차림을 한 이 골짝 저 골짝 가까이 사는 반 동창들이 스무남은 명은 모였다. 아직 농사철이 아니어서 쉬 쫓아 나왔다. 옷 나눠준다니 여자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옷값이 어디 한두 푼 하나. 등 다락 같다. 다들 옷이 흔해 빠져도 거저 준다는데 농촌 마을엔 철철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웬 옷이래.”
순철의 말에 점남이가
“순옥이와 영자가 점심 사고, 인천 윤숙인 옷도 한 보따리 준대.”
두 차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내려왔다. 한 차에 다 못 실어 윤숙의 차로도 실어 날랐다. 순옥이와 영자가 가져갈 건 차 뒤 트렁크에 실어뒀다. 윤숙은 국민학고 졸업하고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복남과의 얘기를 다들 어련히 들었지만 오래되어 잊고 살았다. 이리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식당이 소란해서 왁자지껄 호들갑으로 떠나간다.
식사가 끝나가고 얘기도 한숨 꺼벅 넘어갈 때 거렁골 승욱이
“그동안 어찌 살았노.”
그렇고 그리해서 복남이와 살게 됐다는 말과 인천 낯선 곳에서 늘 동기동창을 그리워하며 지냈다는 얘길 길게 늘어놨다.
“이제 내려와 여기서 같이 살자.”
덕순의 말에
“말은 고마워, 복남이 사준 집에 살다 죽을래.”
옷을 마루에 펼쳐놓으니 산더미 같다. 모두 눈이 번쩍 뜨이며 서로 들쳐 보면서 달려들어 가지려 하자
“잠깐, 이걸 어찌 나눈담”
태순의 말에 거듭 회장과 총무를 한 옥주가
“이렇게 하자.”
윤숙이와 영자, 순옥 셋은 빼라니 두고, 여기 모인 사람과 어렵게 사는 동창 네댓을 더 넣어 골고루 나눈다. 그 뒤 검정 봉투에 넣어 나갈 때 하나씩 복불복으로 가져가자 말하니 서들기에 사는 팔규가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하나.”
잠시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으로 들어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올핸 돈 안 되는 밭농사보다 뽕나무를 심어 가꾼 뒤 전처럼 누에를 키워 고치를 따서 수익을 올려볼까. 아니면 담배를 심어 뜨거운 건조실에 말린 뒤 노랗게 잘 익은 상품을 공판장에 넣을까. 농촌 사람답게 다가오는 벼 못자리와 밭갈이 걱정으로 주판을 놓고 헤아린다. 마루에서는 임원진 몇이 잡히는 대로 사람 수에 맞춰 옷 무더기를 만들어 넣는 작업이 한창이다.
“좋은 옷이 어디에 든 지 모른다. 그걸 입으면 한 인물 난 대이.”
“몸에 맞아야제.”
“이 뚱띵아 살 좀 빼거라.”
옥주와 태순이, 순철이가 번갈아 시시덕거리며 그 많은 옷을 골고루 챙겨 넣는다. 오늘 모처럼 임시 동창회를 열어 맛난 저녁을 먹고 노닥거리다 비싼 귀한 새 옷을 한아름 안고 가게 됐다. 인천과 대구, 부산 사는 친구의 덕분이다.
“얘들아,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했는데 오늘 같은 날이 자꾸 있었으면 얼매나 좋을꼬.”
바로 앞 회장을 맡았던 법전 석호가 말하자
“이제 내 말이면 영감 잘 들어준다. 그동안 외 주장으로 살았는데 늙바탕에 집안 가득 아내 바람이 분다. 더 늙고 아프기 전에 바리바리 만나제이.”
영주 읍내에 사는 춘희가 거든다. 또
“옷이 안 맞으면 어쩌노.”
그 말에 미국에 십여 년 아들 곁에 살다 온 성문이가 입을 뗀다.
“갑자기 주선한 일이어도 이리 만나니 참 좋다. 가을엔 내가 한턱낼게. 그때 다 모이자. 윷판도 벌려 보자. 몸에 안 맞으면 연락해서 서로서로 바꿔 입고 긴 바지는 잘라 손 보면 된다.”
대구 박순옥의 부름에 경주와 인천, 고향 물야까지 다녀간다. 우연히 어렵잖게 벌어진 모임이어도 잊지 못할 귀한 시간이다. 남북으로 오르내리던 종단의 나들이가 온 들판과 산기슭을 붉고 희게 물들이며 봄꽃처럼 무르익어만 간다.
농사 얘기로 술잔이 오가는 뒤풀이 방안과 주섬주섬 옷 봉지를 챙기는 마루를 나왔다. 윤숙은 잠시 화장실을 갔다가 들어가면서 번득 예바위 생각이 나 불기 쪽을 쳐다봤다. 그리 멀잖은 곳이어서 신발을 고쳐 신고 바깥으로 나서 바로 올라갔다. 미련하게 검은 바위는 그 자리에 그냥 버티고 앉아 있다. 예바위란‘고암’글자 골을 따라 훑으면서
“여보, 한복남씨! 철사 동여맨 물동이는 어디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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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평소엔 체면차리고 예의 차리다가도 이상하게 어릴적 동창들을 만나면, 무장해제 되어버립니다.ㅋ
점점 복잡해 살기 힘들어지는세상, 분명 어딘가에 툭터놓을데가 필요한데, 거기가 초등학교 동창회 아닐까 싶습니다.
고개넘어 학교가다, 산아래있던 친구집 마루에서 꽁보리밥을 먹던 친구네 가족을 저도 가끔씩 떠올립니다.
졸업후에 한번도 만나질 못했지만, 어디선가 저처럼 나이들어가고 있을겁니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마음 한켠엔 왠지...
성도님
반가워요.
다 옛날 얘긴데 죽을 때까지 안고 가는 추억입니다.
또 그때가 있어 훈훈합니다.
소설 감사합니다
며칠 좀 바빠 읽지 못했습니다
대단하신 선생님 늘 존경합니다
박회장님 카페를 잘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 들어와도 변함없이 맞아줍니다.
사랑님 성도님 가끔 들어오는 한적함에도
그 많은 작품들을 일일이 찾아 올리는 게 놀랍습니다.
늘 건강히시고 보랏빛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