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열정과 향기 (5)
충주 탁구인들과 청바지의 스승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이풍과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여자는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남자는 용기와 사기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지금 청바지가 그렇다.
어제 송미정 생일을 맞아 자축하는 뜻에서 사진이라도 얻겠다며 서울로 올라갈 때의 청바지가 아니다. 윤화중 대 선배를 만난 이후 그는 삶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을 회복했다. 단지 말 몇 마디와 따듯한 대접 뿐이었는데도---그만큼 청 바지는 외롭게 살아왔고 힘겨운 생활을 해 온 것이다.
송미정과의 선후배로써 또 남,여 사이로 사랑에 빠져 그 힘겨운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이후 처음갖는 자신감이다.
그것은 자신의 실력을 극대화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제, 한효진이나 장선홍과 시합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장선홍이나 조이풍도 국내에서는 내노라 하는 아마츄어 고수지만 아무래도 아마츄어와 프로간에는 허물래야 허물 수없는 벽이 있게 마련이다.
"선수 출신이라면 핸디 몇개 잡아야 하는거 아닙니까?"
라켓을 든 죠이풍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제 장선홍과 맞짱 뜬 걸 생각한다면 핸디 3개 정도가 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기도 올라있고, 어제 탁구장에서 여럿과 시합을 하며 충분히 몸을 푼 상태다. 지금 효진이와 시합을 한다면 박빙의 게임을 할 수 있으리라--그렇 다면~~
"5개 잡아 드리죠~~."
"다섯개요?"
조이풍이 머리를 갸우뚱이며 청바지를 바라 보았다. 아무리 선수 출신이지만 과연 5개로?
"예 좋습니다. 하지만 이번 세트 끝나면 핸디 조정해 주시는겁니다?"
"허허허허 예 그러지요~~."
아마추어 세계에서는 청바지보다 조이풍이 훨씬 유명하다. 전국 최강전 톱10에 있는 그다. 그리고 이 게임을 관전하는 사람들은 청 바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 동로 스승 외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일이다.
드디어 시합이 시작 되었다.
공을 주고 받기 시작한 뒤에야 조이풍은 이 낯선 청바지의 사내가 얼마나 현란한 몸의 움직임과 보기 힘든 구질을 가졌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때로는 강력하게 또 때로는 부드럽고 유연하게--그러다가 전광 석화 같은 스매싱을 때릴 때는 공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조이풍으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이동 서비가 그를 괴롭게 하였다. 리시브를 할때의 타점을 찾을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국가 대표에 발탁되지 않았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죽을힘을다해 공을 받아 내지만 마치 벽 앞에 서있는기분이었다.
'흠 이친구도 실력은 만만치 않군--장선홍과 맞수쯤 되겠는데?'
관전하는 사람들은 두사람의 진짜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너무나 현란 하게 움직이는데다 무슨 기술을 쓰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점수가 날 때마다 박수는 요란하게 쳐 대지만 그 점수가 어떻게 어떤 기술로 얻어낸 것인지 알아 낼 재간이 없다.
도로 장 진성 스승은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정말 아까운 아이야--어떻게든 재기에 성공해야 하는데--.'
충주 시의회 의장도 시장을 데려 오지 못한게 한이었다. 이런 엄청난 게임을 놓치다니--충주시청 팀이라도
창설하고 싶은 심정이다.
첫 셋트 11: 9
두번째 셋트 15:13
마지막 셋트는 11: 7 겨우 두점만 따고 조이풍은 패배의 쓴 맛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패배가 문제가 아니라 이 고수와 게임을 했다는 체만으로도 여간 영광이 아니었다.
"예술이었습니다. 전 처음 이런 시합 해보는 겁니다."
"아닙니다. 조이풍님도 아마츄어 로서는 대단한 실력이십니다. 어제 장선홍 씨와 마포에서 게임 했는데
두분 실력이 비슷할 겁니다."
"예? 장성홍님과 게임 했어요?--허허허 저와는 호형호제 하는 사이인데--하기야 이 바닥이 생각하면 참 좁은 세계죠."
이들 일행은 시합을 끝내고 뒷풀이를 위해 수안보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도 탁구얘기로 밤을 지새울 것이 분명하다.
사실, 강회장과 강회장 부인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지금 한국 경제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신아그룹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견실한 송회장의 그룹은 나날이 성장 하여 10년 만 지나면 50대 재벌로 성장 할 것이다. 문제는이 기업을 누구에게 물려주느냐 하는 것이다. 운동하는 외동 딸에게 물려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미정이 엄마는 송회장보다 강신호에게 더 적극적이다.
인물이나, 학벌이나 신아그룹을 이어 받기에 더 적합한 자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의ㅡ 싹싹한 성품이 그녀를 더욱 적극적이게 했다.
강신호가 은밀히 찾아와 청바지 문제를 제기 했을때 이제는 구정을 내야겠다고 작심했다. 더구나 가정이 풍지박산 됐으니 이런 기회를 놓치면 더 힘들 것이라 판단 한 그녀였다.
어찌보면 청 바지를 충주로 쫓아낸 것은 강신호와 부인 최영심 여사의 합작 품인지도 모른다.
아니--철저한 두 사람의 작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강직한 성격이라 하더라도 돈 때문에 절박한 사람에게는 돈에 무릎을 꿇게 되어 있어--그러니 돈으로 위기를 구해주고 대신 다시는 미정이를 만나지 못하게 해---나도 걔는 싫어 죽어도 그 거렁뱅이한테 미정이를 줄 수는 없어--알았지. 강 서방!"
"예--하지만 최광진이 크게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돈 앞에 자존심이 어딨어?"
---하지만 송회장은 다르다.
그는 미정이 제일 주의자이다. 만일 미정이가 청바지에게 목숨이라도 건다면 청바지에게 줄 용의도 있었다. 그가 성품이 건실하고 사고방식이 건전한 청년이라면 미정이가 그토록 좋아하는데 결혼시켜 안될 것이 무어란 말인가?
'기업?--이게 내것인가?----꼭 물려 줘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나?----늙어 죽기전에 사회와 탁구계에 반납하면 될거아닌가?----미정이가 그 가난한 청년과 결혼한다고 금방 굶어 죽나?--재산 좀 물려주고 또 둘이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런게 보람된 일이지--광진이가 미정이하고 금메달이라도 따 온다면 국내 탁구 붐도 일어날 것이고 또 사상 첫 부부 탁구 금메달이 탄생 되는 거 아닌가? 이거야 말로 세계 톱기사 감이지--금메달리스트 부부--멋진 사건 아닌가?'
지금은 아직 미정이의 더 깊은 마음을 알수 없고 또 미정 엄마가 워낙 기세 등등해서 조용하지만 결단을 내리게 된다면 모든 권한을 미정이의 선택에 맡길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정이가 강신호를 초대했으니 그 결과만 지켜 보면 알 것이다.
"그런데 광진이 그 녀석은 도대체 왜 사라진거야?--개인적인 무슨일이 생긴거 아냐?"
그는 자신도 잘 파악할 수 없는 자신의 재산에서 한 50억 정도만 미정이에게 떼어 주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리라 진작부터 결심한 터 였다. 설혹 강신호와 결혼한다고 해도---그리고 그 속내를 아내를 비롯한 누구에게도 털어 놓은 일이 없다.
'난 미정이가 원하는대로 할거야----광진일 택하든 신호를 따라가든~~한 번 뿐인 인생인데 미치고 싶은일에 미쳐 보는 게 사람의 갈 길이지--내가 사업에 미쳤듯 말이야---.'
그리고 보니 자신도 라켓은 쥐어 본지 오래 되었다. 그는 맨 손으로 휙휙 스윙 폼을 휘둘러 댔다.
"당신 뭐하는 거에요~~"
아내의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고함에도 아랑 곳 없이 그렇게 휘둘렀다.
타구라면 진저리를 내는 아내다.
'자기도 탁구 한번 배워보면 내 심정이나 미정이 심정이나 광진이 심정 알게 될거야----풋풋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