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은 무게감을 참고 견뎌서 열 달 채워 포궁에 안착한 생명 꺼내 놓은 것이 열여덟 꽃다워야 할 시기였다. 온몸을 불편하게 하는 복중 아이의 고동 소리 때문인지 예민하게 곤두선 신경 때문인지 나는 그 시절 퍼진 소문과는 다르게 국공을 가만 내버려두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싸지른 건 너인데 고생은 왜 엄한 내가 해야 하지?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뱉으려다 뱃속에서 발로 차는 느낌이 들면 억지로 삼키느라 성질이 돋았다. 끝내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는 건 예사고, 제풀에 지쳐 침상에 기대듯 눕는 것도 다반사였다. 아이는 두 번 다시 낳지 않으리라. 저승의 문턱이 보일 듯한 환영을 넘기면서 악을 삼키듯 다짐한 게 고작 이 년도 채 넘기지 못할 줄은 몰랐지만.
몸을 푸느라 사교계는 일절 얼씬하지 못했으니 그 햇수로만 꼽아도 족히 세 해는 넘어가고도 남을 것이다. 해산 후에는 갓난아이 돌보느라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지 못했지. 그건 사정이 아주 조금 나아진 지금도 완벽하게 돌아왔다고 할 수는 없는 일상이니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황녀의 앞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부르더니 막상 자리에 모여 하는 말이라곤 그 어린 것의 거취를 논하는 일이라니. 감당하기 어려우면 진작 계후를 들이던가, 아니면 액정에 후궁이라도 꽉 채워놓던가. 위대하신 나의 형제께서는 손 하나 까딱 않고 사람을 부릴 줄 알았다. 심씨가 산고 끝에 명을 달리했다 하니 황녀는 제 어미 얼굴조차 보지 못한 셈이었다, 불쌍하게도. 이럴 경우 보통은 정궁인 황후가 봐주기도 하는데 하필 두 해 전에 태어난 쌍생 황자녀로 인해 막내 황녀까지 돌보기가 벅차다는 게 중론이라서. 황가의 웃어른 가운데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이를 찾자니 짜맞추기라도 한 듯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려 들었다. 마침맞게도 내가 딱이었다, 이 말이었다.
황후께는 두 분 마마가 계시니 아니 될 말씀이고, 그렇다고 액정의 몇 안 되는 후궁 마마님께 맡기자니…
맡기자니. 맡기자니 뭐? 왜 말을 끝맺지 못하고 질질 끌면서 내 눈치만 살피는 게지?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야 차고도 넘쳤다. 두 분 마마가 계셔서 아니 돼? 나도 두 분 따님이 계신데? 액정의 후궁들은 연치 어리고 경험이 없어 불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누구는 청춘이 흐드러질 때부터 할 거 다 했건만. 그냥 저들은 어미 없는 조카님을 떠맡기 싫은 게 분명하다.
황실의 웃어른이신 화왕야께서 나서신다면 황녀 마마께도 큰 위안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만 황실의 웃어른이라 대우하는 게 진저리 쳐졌다. 이건 황명만 내려오지 않았을 뿐, 이미 사람을 골라 놓고 대응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온기가 가신 교연의 얼굴에 미동이 없다 싶더니 입매만 둥글게 휜다. 작정하고 사람을 우습게 만드는구나. 내가 낳지도 않은 큰아이를 내 핏줄로 인정하였다 하여 어미 없는 아이라면 누구든 다 아무렇지 않게 봐주리라 생각한 모양이지? 대차게 거절하려 했다. 궁에 보모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이미 왕부를 차려 나간 사람까지 불러와 손을 거들어야 하는 이유가 대관절 무엇인가 싶어서. 하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구는 발언과 종종 군주를 데려와 같이 돌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겠느냐는 사탕발림에 입을 다물었다. 무엇보다도 떠밀리듯 마주하게 된 어린것의 얼굴이 괜스레 신경을 자극해서는,
“웃지 마, 정들어.”
배냇짓 하는 질녀를 보며 한숨을 삼켜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황녀를 봐주기로 해놓고 궐에 찾아가 들여다본 건 열 손가락은커녕 다섯 손가락으로도 꼽지 못할 횟수밖에 되지 않았다. 황녀를 볼 때 군주도 같이 보아라, 떠맡기면 아주 좋을 성싶었지. 그러나 그즈음 뱃속에 향의 동생이 될 씨앗이 꿈틀거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아이를 가진 지 다섯 달이 넘어갈 무렵이었을 것이다. 부푼 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황녀를 보러 궁에 간 이후, 아니 정확히는 아이를 낳는 그 지독한 산고를 겪으면서부터. 나는 그 일을 새하얗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화왕부가 축조된 이래 자의로 궁을 찾은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봄날의 기운을 마음껏 누려보기 위해서 나선 거긴 하지만 대도에서 가장 많은 화원을 소유하고 있는 곳은 궐인 까닭에 오랜만의 입궁을 마음먹은 것이었다. 예전 내가 머물던 화궁에 심은 꽃만 하더라도 족히 수십 종은 될 테니 행선지에 무사히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변덕이 심한 기분은 순순히 고공행진 중이었다. 이맘때쯤이면 꽃놀이를 즐기러 나오는 이들이 제법이어서 진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누각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함도 본 적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식을 하고 화원이 색다른 꽃으로 바뀌는 모습도 절경이었는데.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자연스럽게 누각으로 향하는 나를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내게는 평화가 주어지지 않을 모양인지, 눈앞을 가로막는 광경에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척 보기에도 이담이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가 천 조각을 든 궁녀들 사이에 끼어서 계단을 문질러 닦는 일을 하고 있었다. 누각을 다 오르기도 전에 김이 팍 식어버렸다.
“거기, 이리 와 봐. 그래, 거기 너.”
“넌 누구지? 너처럼 어린 여궁궁궐의 잡일을 담당하던 노비을 들였단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손을 까딱여 아이를 불러놓고 보니 꼴이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어디 길바닥에서 동냥하며 다니는 거지라 해도 이보다는 나을 게 분명했다. 곁에 있던 궁녀가 대신 나서서 입을 열기에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가, 말 못 하니? 나는 정확히 ‘참을 인’ 자를 세 번 새겼다. 입을 닫고 열 생각 않는 아이의 행동을 보고 소리치지 않기 위해서. 한데 한참이나 있다가 겨우 시선만 맞춰 보내는 눈빛이 온통 의문투성이라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만큼 기가 찬 적은 단연 처음일 것이다. 가까이에서 본 아이가 입은 옷은 본인의 체구에 비해 좀 더 작았고 얼마나 오래 갈아입지 않았는지 본연의 색을 알 수가 없을 만큼 바래 있었다. 소매 끝이나 치맛단은 해진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그보다 어이가 없는 건,
“화, 화왕야-”
기겁하여 달려온 상궁이 예를 갖추고는 천 조각을 쥔 아이를 어떻게든 내 시야에서 가리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몸집으로 뭘 하려는진 몰라도 자꾸 움직이면 더 수상해 보일 뿐이라 전하려다 어딘가 얼굴이 낯이 익어 이맛살을 찌푸렸다. 내 표정이 좋지 않음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아이를 향해 어찌 마마께서 이런 걸 들고 계시느냐며 깜짝 놀란 체했다. 거짓을 고할 생각에 아주 속이 벌벌 떨리나 보지? 말까지 더듬는 게 영 미덥지 않은데. 저걸 어디서 봤던가? 내가, 이 궁을 제외하고 저리 미천한 상궁의 얼굴을 한 번 본 걸로 기억할 리가- 없, 지 않았다. 있었다. 있네, 저거 그 배냇짓 하던 갓난쟁이 보모상궁이었잖아? 하도 오랜만에 와서 이제야 생각이 났다. 빠르게 아이를 살핀 시선이 상궁에게로 향하자, 빛나는 안광에 손끝을 떨던 그녀가 털썩 주저앉아 빌기 시작했다. 맞구나? 내 조카. 사라 황녀의 보모.
“화왕 서수량은 보기 좋은 꽃이라, 검은 물이 조금 튄다고 해서 큰 티가 날까.”
“…예?”
“그렇게 생각해서 내 얼굴에 먹칠 중인 것 아닌가?”
“아, 아닙니다. 오해이십니다!”
“하면, 기억력이 떨어져 내 친히 당부했던 말조차 깨끗하게 잊었나 보구나.”
막내 황녀를 떠맡은 후에야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되어서 몇 번 찾아오지 못했다. 전적으로 보모상궁인 그녀를 믿고 황녀를 부탁한다 하였으니 좀 전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이를 깨달았는지 상궁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고두하기를 반복했다. 내 체면이 곤두박질쳤는데 널 용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니면 지하를 뚫고 들어가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황녀를 힐끗, 곁눈질로 확인하고는 조용히 일언했다. 봄 날씨치고는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폐하의 따님이다. 궁중의 보옥을 애틋하게 여기도록 해.”
그건 황녀가 보는 앞에서 줄 수 있는 나름의 협박이자 경고였다.
화궁까지 가서 그냥 왔더니 몹시 찝찝해졌다. 꽃구경하러 갔다가 목적은 이루지도 못한 채 돌아와서 그런 건 아니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보모 노릇을 하면 그 지경이 될 수가 있나 싶어서. 아이들은 가만히 풀어두어도 제가 알아서 잘 크지 않던가. 그럼 문제는 둘 중 하나였다. 국고가 빈약하여 어미 없는 막내 황녀에게까지 황가의 일원이 받는 금전이 주어지지 않았거나, 보모상궁이나 그녀와 한 무리인 궁녀들끼리 빼돌려 뒷주머니를 찼거나. 몸이 불편하지는 않은데 자꾸만 뒤척거리던 나는 참지 못하고 조반을 들자마자 다시 입궁했다. 그 결과,
“아국의 재정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전각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화궁 곳곳에 장식된 사치품의 위용이 여전하다는 걸 보고 온 참이라 두말할 나위 없었다. 한데 사라 황녀가 머무는 처소만 황망하여 눈 둘 곳이 마땅치 않다니, 이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흔한 장식 하나 없어 휑한 방을 훑어본 끝에 구석에 선 황녀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가. 사라, 맞지?”
“끼니는 잘 챙겨 먹는 게야? 차림새는 어제보다 낫긴 하다만.”
“보모상궁은 어디 갔어? 궁녀들은?”
혹시나 모종의 사유로 물건들을 옮겨 둔 게 아니냐고 물으려 했는데, 단순한 대답조차 못 하는 게 사람을 영 답답하게 만들었다. 끝내 나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는 않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황녀궁에 온 지 제법 되었건만 사람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는 걸로 보아 고의로 나타나지 않거나, 튀었을 게 뻔한 까닭이었다.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이 들기라도 했는지 눈앞이 빙 도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너, 벙어리는 아니지?”
“글은 아니?”
마지막 질문은 던지지 말았어야 했나? 황녀가 글자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대화도 안 통하고 속이 터질 것 같아서 홧김에 꺼낸 물음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황녀 사라가 처음으로 알아들을 만한 반응을 보였다는 데에 있었다. 네,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처럼 고개만 도리질 치는데 나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어제부터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만 연속해서 겪는 중이긴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도리? 아니라고? 벙어리가 아니라고? 글자가 아니라고? 원체 충격이 커서 그랬는지 사고가 유연히 흐르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버벅대는 병이라도 옮았나, 한참 동안 아이의 행동을 머릿속으로 분석하고 나서야 그게 정말로 글을 모른다고 한 것이었음을 깨달은 나는 지난 십 년간 방치한 황녀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그 심각성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내 손에 맡겨지기로 한 아이가 글자도 모르는 무지렁이라니.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천치라니. 제가 소료에서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건 알기나 할까? 황녀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이지 끝이었다. 사교계에서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할 테니까. 나는 내 평판에 이런 식의 변질된 오점이 생기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다 떠나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지금 사라의 연치 십일세. 앞으로 사 년 후면 혼인도 가능해질 시기인데. 시간이 없었다. 교연은 처음으로 교육의 막중한 필요성을 느끼며 포문을 열었다.
“고모가, 가르쳐줄까?”
예기치 못한 육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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