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어릴 적 사진이 거의 없다. 집마다 카메라가 보급되지도 않았지만 딸 부잣집의 막내에게 백일이나 돌 사진은 사치였다. 그래서인지 몇 장 없는 사진에 애착이 많이 간다.
결혼하고 얼마 후의 일이다. 남편의 사진첩을 넘기는데 유독 한 장의 사진에 눈이 갔다. 그 사진은 현방리의 작은 공원에 있는 선린회 기념비 사진이었다. 외조부님께서 ‘선린회’라는 자선단체의 회원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활동을 하셨는데 지역 주민들이 공적을 기려 기념비를 세운 거였다. 그분은 마을 주민들의 휴식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시간만 나면 공원에다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데 정성을 쏟으셨다. 외가 댁이 우리 마을과 가까운 곳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나의 사진첩 속에서 정지된 유년의 사진을 꺼내자 똑같은 장소가 겹쳤다.
초등학교 6학년 추석쯤이던가. 소꿉동무들과 현방리에 걸어서 간 적이 있다. 오일장이 서던 현방리에 가려면 하천을 건너야 했다. 작은 하천을 경계로 여주와 이천으로 나뉘게 되는데 난 여주, 남편의 외가는 이천의 행정구역이다. 현방리에서 처음 눈에 띈 것은 빨간 우체통이다. 유난히 신기하게 보이던 우체국과 우람해 보이는 면사무소, 사진관을 비롯해 단층 건물이지만 몇몇 상점이 눈에 띄었다. 마을 끝자락에는 아름답게 가꾸어진 공원이 있었다. 여러 개의 바위와 비석, 꽃과 나무가 우리를 반겼다. 나는 친구들과 공원을 둘러보며 즐겁게 놀았다. 늘 보던 우리 동네와는 달랐기에 신기했다. 낯설지만 새로워서 좋았다.
한참 놀이에 집중하다가 지쳐갈 무렵 사진관의 기사님을 모셔서 사진을 찍었다. 누구의 생각인지 기억에 없다. 사진 속에는 남편이 가리키던 그 기념비 앞에 일곱 명의 소녀가 수줍게 서 있다. 한결같이 수줍고 촌스러운 표정으로 굳어있었고 아예 눈이 감긴 소녀도 있다. 같은 장소에서 사람만 바꿔서 찍은 사진이 몇 장 더 있고 바위 위에 나란히 앉아서 찍은 사진도 있다. 우리는 어떤 의미가 새겨진 비석인지도 모른 채 비석 앞과 주변에 흩어져 있던 바위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앉아서 사진을 찍고 놀던 바위가 고인돌이었다는 걸 안 것은 어른이 되어서였다.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가 남편의 외할아버지와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남편과의 인연은 이미 그때 비롯된 건 아니었나 특별하게 느껴졌다. 고향에 다녀올 때면 가끔 공원에 들린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기념비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외조부님의 성함이 나오는 부분을 클로즈업하여 찍어보기도 한다. 지금은 검바위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추억 속 공원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사진에는 기념비 바로 앞에 우리가 서 있는데 이제는 보호막이 쳐져서 몇 발짝 건너서 바라보아야 한다. 고인돌 또한 잔디를 심어놓아 보도블록에서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낡아서 오래된 역사의 상징으로 보이던 정자는 사라지고 크고 튼튼한 현대식 정자가 우뚝 서 있다.
내 기억 속의 공원은 야트막한 언덕으로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작은 놀이터였다. 지금은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옛 모습은 기념비와 고인돌에서나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현방리의 검바위 공원, 그곳은 언제나 추억 속에서 눈부시게 기억되는 아름답고 특별한 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