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시 한 편 필사하며 그녀를 생각합니다. 물푸레나무같고 별밭같고 가을 드들강같고 사방연속 꽃무늬같이 아프고 쓸쓸하고 소박하고 맑은 시인 김태정의 이 시를, 시집을, 그녀를 아프게 그리워 합니다.
외롭게 병을 안고 땅끝에 잠든 그녀,
미황사에서 제일 먼저 피는 애기동백나무에 뿌려진 가난한 시인,
그녀가 별이 되었을 때, 그 아픔이 미안하고 짠해서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막의 별 같은 그녀가 먼나라에서 이제는 편안하길 빕니다.
동백꽃 피는 해우소/김태정(1963~2011)
나에게도 집이란 것이 있다면
미황사 감로다실 옆의 단풍나무를 지나
그 아래 감나무를 지나
김장독 묻어둔 텃밭가를 돌아
무명저고리에 행주치마 같은
두 칸짜리 해우소
꼭 그만한 집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방에도 창문이 있다면
세상을 두 발로 버티듯 버티고 앉아
그리울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얼굴로
버티고 앉아
저 알 수 없는 바닥의 깊이를 헤아려보기도 하면서
똥 누는 일, 그 삶의 즐거운 안간힘 다음에
바라보는 해우소 나무쪽창 같은
꼭 그만한 나무쪽창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마당에 나무가 있다면
미황사 감로다실 옆의 단풍나무를 지나
그 아래 감나무를 지나 나지막한 세계를 내려서듯
김장독 묻어둔 텃밭가를 지나 두 칸짜리 해우소
세상을 발로 버티듯 버티고 앉아
똥 누는 일 그 안간힘 뒤에 바라보는 쪽창 너머
환하게 안겨오는 애기동백꽃,
꼭 그만한 나무 한 그루였으면 좋겠다.
삶의 안간힘 끝에 문득 찾아오는
환하고 쓸쓸한 꽃바구니 같은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 / 2004)
[동백꽃 사진/하늬바람 김연선작가]
두물머리 세미원 상춘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