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봄도 끝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봄하면 연상되는 꽃이 진달래, 개나리, 목련꽃, 벗꽃이지요. 이제 이 꽃들이 대부분 떨어지고 있으니 봄도 따라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명곡 <봄날은 간다>로 보입니다. <봄날은 간다>는 2004년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시인 100명이 대중가요사상 최고로 아름다운 가사라고 선정한 바 있지요. 이 노래의 가사는 시적 운율을 연상시키듯 아름답습니다. 가사에는 한국적 색채가 짙은 용어들이 많이 나오고, 따라 부르기도 쉬워 많은 한국인들이 애창하는 명곡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봄날은 간다>는 1954년 백설희 님의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널리 알려졌고, 그 후로도 기라성 같은 가수들이 이 곡을 리바이벌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봄날은 간다>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는 한편 여러 각도에서 해석을 해보고자 합니다.
봄은 청춘의 상징이고 여자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봄이 오면 봄처녀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봄날은 간다>는 연분홍 치마를 즐겨 입던 열아홉살 처녀가 친구와 성황당 길, 역마차 길, 신작로 등으로 어울려 다니며 꽃, 별, 새 들을 구경하는 광경을 묘사합니다. 또 노래에는 산제비, 청노새, 뜬구름 등 봄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산제비는 봄철에 찾아오는 철새이고, 청노새는 젊은 노새를 뜻하며, 뜬구름은 청운으로서 봄을 의미하지요. 이같이 노래의 시각적 이미지가 선명한 것은 이 곡을 작사한 손로원 선생님이 화가였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봄날 강가의 벗꽃
<봄날은 간다>에는 약속을 의미하는 용어가 자주 나옵니다. 봄은 새파란 풀이 돋아나고 찬란한 꽃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변화무쌍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변덕이 심한 봄날같이 친구와 했던 약속도 퇴색해져 갑니다. 약속의 농도도 1절의 알뜰한 맹세, 2절의 실없는 기약, 3절의 얄궂은 노래처럼 점점 얕아지지요. 이 대목은 봄철 한바탕 펼쳐진 꽃의 향연이 끝나듯이 우정도 사랑도 끝나간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노래에 나오는 도로들의 변화도 의미심장합니다. 1절의 성황당 길, 2절의 역마차 길, 3절의 신작로 등 더 빠르게 운행할 수 있는 도로들로 바뀝니다. 언제라도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같은 시각에서 보면 ‘봄날은 간다’라고 제목을 부여한 이유도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즉 꽃피는 봄이 지나면 여름 장마, 가을 태풍, 겨울 폭설이 이어지지요. 좋았던 시절이 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봄날은 간다>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상처입은 여인들의 한을 노래했다는 견해, 한국 여인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견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했다고 보는 견해, 봄날의 찬란한 풍경과 인간의 허무한 심정을 노래했다는 견해, 속절없이 지나가는 인생을 노래했다는 견해 등이 제기됐습니다. 그만큼 이 노래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반증이겠지요.
<봄날은 간다>는 유니버설레코드사에서 처음 발매될 당시의 음반에는 녹음시간 문제로 2절 가사가 빠졌고 1, 3절 가사만 수록됐습니다. 이후 재판 녹음 때 2절이 추가되어 현재의 3절 형태로 완성되었지요. 이 노래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2. 새파란 꽂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3. 열 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성황당길
<봄날은 간다>에는 생소한 도로명이 나오는데 간략하게 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황당 길은 성황당 주변을 지나는 도로이지요. 성황당은 전근대시대부터 내려오던 민간 신앙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 철거되어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요. 노래의 주인공은 그 곳을 지나가며 나름대로의 소원을 빌었을 것입니다.
역마차 길은 노새나 말이 끄는 역마차가 다니던 길이었지요. 일제 시기 운행을 개시한 역마차는 정기적 구간을 운임을 받고 운행했습니다. 물론 조선 시대에도 관청에서 운영하는 역마제가 있었지만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수단은 아니었지요. 역마차는 해방 이후에도 운행을 계속하다가 자동차 증가로 인해 1949년 서울 운행이 금지되고 시외로 밀려납니다. 노래에는 주인공이 역마차를 끄는 노새가 방울을 울리며 달리는 것을 구경하는 광경이 나오지요. 방울은 운행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나 동물을 피하게 하는 구실을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신작로는 조선시대에도 쓰였던 용어이지요. 즉 구도로인 구작로가 열악하기 때문에 새로 만든 도로라는 의미로 쓰였지요. 그러나 일제는 러일전쟁 이후 반일 의병을 신속히 진압하고자 신작로를 만들기 시작했고, 강제 병합 이후에는 지역 주민을 동원하여 기존 도로를 대대적으로 확장하여 신작로를 만듭니다. 신작로 주변에는 미류나무, 플라타너스 등을 심었 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신작로는 자동차가 달릴 수 있게 됩니다. 신작로는 일본인의 내륙 지방 침투의 수단이 되고, 내지의 곡식을 일본으로 운송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신작로는 해방 이후 국도라는 용어로 많이 사용되다가 고속도로 개통 이후에는 잘 쓰이지 않지요.
<봄날은 간다>의 절마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은 노래의 주인공이 산뜻하게 전원을 활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 가운데 옷고름을 매만지는 광경, 제비가 날렵하게 산마루를 날아다니는 모습, 친구와 꽃길을 걸으면서 성황당에서 소원을 비는 장면, 친구와 진지하게 희망찬 앞날을 맹세하는 모습 등이 이어지지요.
그러나 2절에서는 벌써 그 약속이 부질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창이어야 할 꽃이 떨어져서 물에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보이지 않던 역마차라는 교통 수단이 등장합니다. 성황당 길이 산기슭에 자리하여 구불구불한 도로인데 비해 역마차 길은 좀 더 넓은 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마차는 언제라도 타지로 갈 수 있는 상황을 시사하지요. 노래의 주인공은 친구로부터 타지로 이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꽃편지를 강에 내던집니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강물에 꽃잎을 띄우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예전에 친구와 했던 약속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3절은 역마차보다 더 빠른 교통 수단인 자동차가 달리는 신작로가 등장합니다. 동시에 친구와 이별하는 광경이 보이지요. 슬픈 심정, 답답한 가슴, 뜬구름 등 친구와의 굳센 약속이 무산된 것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속출하지요. 마침내 친구는 신작로에서 버스에 몸을 싣고 타지로 떠나고 주인공은 배웅을 합니다. 주인공이 친구와 작별하고 돌아서는 순간 신작로 주변에 있는 가게에서 얄궂은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주인공은 씁쓸한 기분에다가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노래를 듣게 됩니다. 귀가한 주인공은 황혼을 보며 봄날이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봄날은 간다>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꽃다운 시절이 가고 있다’, ‘봄같이 포근했던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이 떠나가고 있다’라는 의미라고 보여집니다.
<봄날은 간다>는 가사에 나오는 약속의 대상을 누구로 볼 것인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즉 노래의 주인공이 약속을 한 대상을 여자 친구로 볼 수 있고 남자 친구로 볼 수도 있지요.
먼저 여자 친구와의 우정을 노래한 시각으로 살펴보도록 하지요. 이 노래에 나오는 처녀는 친구와 성황당 길, 역마차 길, 신작로 등으로 놀러 다니며 꽃, 별, 새 등의 자연을 구경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가 남녀가 밤낮으로 어울려 다닌다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이란 것을 감안할 때 여기에 나오는 친구는 여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노래는 또래 여자 친구가 시집, 취직, 이사 등의 사유로 타지로 떠나 작별했다는 사연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남자 친구와의 사랑을 묘사했다고 볼 수 있지요. 비슷한 시기 손로원 선생님이 작사한 가요 <에레나가 된 순희>에는 ‘시집갈 열아홉살 꿈을 꾸면서 노래하던 순희’라는 구절이 나오고, 역시 손로원 선생님이 쓴 <즐거운 목장>에는 ‘능금을 먹으며 손짓하는 마차 위의 아가씨야 노래를 불러라 불러라 첫사랑의 노래를 오늘도 방울소리 울리면서 지나간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에 따르면 이 시기 19세 여성은 첫사랑을 할 나이였고 시집을 갈 나이였습니다. 이같은 측면에서 <봄날은 간다>는 19세 처녀가 사귀어온 동네 총각이 군대나 타지로 떠난 것을 슬퍼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가 씌어진 때는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여서 언제 또 포성이 울릴지 알 수 없는 긴박함이 감돌았습니다. 당연히 앞날을 기약하기가 어렵습니다. 집안의 성화에 밀려 언제든지 시집을 가야 할 나이지요. 그래서 이 노래는 19세 시절은 황혼을 보는 것 같이 슬프다는 주인공의 사연을 담았다고 볼 수 있지요.
여러 증언들에 의하면 1950년대 후반 한국 여자들은 <봄날은 간다>를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한 시인은 ‘저의 언니는 연분홍 치마를 즐겨 입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던 사람과 맺어지지 못하고 부모의 뜻대로 중매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언니는 친정에 올 때마다 연분홍 치마를 입고 뒷동산의 성황당을 찾아 갔습니다. 그 때마다 언니는 <봄날은 간다>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라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여인의 한이 담긴 이 곡은 섬세한 감정 표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동안 여러 무대를 통해 한국 여인의 한을 잘 표현해온 가수에게 잘 어울리는 곡으로 보입니다.
https://youtu.be/aZBmL0_h0H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