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딜쿠샤,
은행나무 언덕위 2층 양옥집
4월 가고 나니 아카시아, 줄장미, 산딸나무꽃, 오동나무꽃, 붓꽃이 5월을 수놓으며 입하를 알리는 날들이 지나간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기쁘지만 걱정의 달이라고도 한다.
아울러 보복 여행이란 말 생길 정도로 봇몰 터지듯 모임 많아지고, 숨죽였던 전시 공연행사도 줄을 잇게 되니 우리도 발맞춰 바쁘다.
오늘 답사 코스 두개의 포인트에는 2023년에서 돌아보는 100년전 서울 모습이 담겨 있었다.
1923년 건축된 딜큐샤저택을 들머리로, 1923년생 원계홍 화백 회고전을 날머리로 하는 코스 보며 한세기의 의미를 가늠하게 되었다.
1913년생 성곡 김성곤 회장의 저택도 둘러 보게 되니 더욱 그러했다.
독립문역 언덕 위 우뚝한 2층 뱍돌 양옥집을 올라가니 땀이 살짝 났는데, 오랜 옛동네의 가옥들과 골목길이 정겨웠다.
4월 꽃들이 화려한 반면 5월 꽃들은 향기로 벌들과 승부하나보다. 장미꽃, 찔레꽃 향이 은은한 행촌동 딜쿠셔 가옥 옆 우람한 은행나무가 장대해서 은행골 옛 마을 모습이 상상되었다.
딜큐샤 저택은 3.1운동을 처음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가 지은 집이라는데 사진 보니 두 사람 다 영화배우처럼 멋지고 이뻤다.
그들의 아들 부르스 테일러가 3.1운동 전야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에서 태어났을 때 앨버트가 독립선언서를 요람에 감추었다가 동생 통해 일본으로 보내 미국으로 타전했다는 자료가모두 전시되어 있었다.
3.1운동 없었다면 우리 민족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며, 운산 금광 광산 사업가 테일러 집안의 딜큐샤 저택을 돌아보게 되었다.
메리 테일러는 영국배우였는데 인도에서 결혼하고 1923년 은행나무 옆 행촌동에 딜쿠샤 저택을 짓고 20여년 보냈다.
딜쿠샤는 기쁜 마음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 결혼해서 그런지 안주인 메리가 인도의 러크나우 사원에서 따왔다는 기록이 있다.
어려운 시절이었으나 가장 행복했던 한국에서 보냈던 딜쿠샤의 순간들 잊지 못했던지 자서전을 남겼다.
메리가 1917년부터 42년까지의 딜쿠샤 이야기를 쓴 (호박목걸이)는 그의 아들이 유고 정리하며 한국의 딜쿠샤를 찾아냈다는데....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이라는 부제의 이 책에는 그들의 서울생활이 그림 그리듯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저택엔 남편이 결혼선물로 주었다는 어마어마한 호박목걸이가
전시되어 있었다.
넓은 거실의 고전적 건축양식과 인테리어가 옛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멋져서 셔터가 마구 터졌다.
일제에 의해 투옥되기도 했고 태평양전쟁 시 41년 추방되어 죽으면 한국에 묻어 달라 했다니 한국사랑 대단한 외국인이다.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았어도 태어난 곳에 묻히고 싶었을텐데, 부부가 나란히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안장되었다니 우리가 오래도록 추억할만한 가옥이리라..
행촌동에서 20여년 살았던 아들 브루스는 66년 만에 서울을 찾았고, 비로소 은행나무골 붉은 벽돌집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3.1운동 100주년 되는 딜큐사는 테일러의 손녀로부터 300점 자료를 기증받아 2019년 복원되어 개방되었다.
딜쿠샤 옆 420년된 은행나무 아래 행주대첩 명장 권율장군 생가터란 표지석이 있었다.
은행나무의 권율, 딜쿠셔의 앨버트 모두 시간차는 있지만 우리의잊을 수 없는 숙적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북한음식점 능라밥상
맛있다! 소박하다! 깔끔하다!
소나무 아래 작약과 다알리아 등 정원이 아름다운 식당 능라밥상은 기대이상으로 미각을 만족시켰다.
딜쿠샤와 은행나무 보이는 뷰맛집 2층 식당에서 친구들은 능라밥상의 상호 유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테리어도 고급진 능라밥상에서 평양식 냉면과 평양식 비빔밥을 감자만두와 독두지짐 곁들여 장수막걸리 한잔씩했다.
백김치 맛있어 자꾸 리필했다.
허영만의 백반기행에도 소개되었다. 재방문의사 충분한 식당은 맛집이다. 다음에 오면 어복쟁반, 개성무찜, 명태전골 먹어볼 참이다.
놋그릇은 아니지만 놋그릇기분나는 식기에 정갈하게 담겨 나오니 옆자리 친구가 대접 받는 느낌 난다 하였다.
3. 성곡미술관
비올지 모른다하여 우산 챙겼지만 식당에서 미술관까지 가는 길은 햇살 뜨거웠다.
원계홍전은 5월 21일까지였는데 6월 4일까지 연장되었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미술관 정원 언덕 조각품 감상하며 미술관 둘레길 걷고 잠시 휴식했다.
성곡미술관 원계홍 화백 그림들은 시립미술관 전시의 에드워드 호퍼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가 납니다.
일상의 조용한 풍경 속 정지한 듯한 화면에서 사람의 고독한 내면이 투사되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면에서요.
우리나라 1920년대 생 아티스트들은 요즘 탄생 100주년 맞아 회고전이 많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통 오가느라 청춘시절 보내고 우리들 키우느라 고생 잔뜩한 불우한 20년대생 부모님 세대 생각하면 안쓰러우면서 친근감 듭니다.
경제학도였던 원계홍화백은 57세에 작고해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소장가들의 노력으로 40년만에 기념전이 열려서 우리를 익숙한 70년대의 거리로 데리고 가줍니다.
개발도상기 골목길의 추억이 많은 우리 세대들은 아버지세대의 원화백 그림에서 왠지 정감이 많이 갈 듯합니다.
아파트가 보편화 되기 전 골목길에서 놀기도 하고, 하염없이 친구를 기다리기도 데려다주기도 하며 데이트하던 옛날 모습 생각나서 추억 여행 저절로 하게 됩니다.
가장 맘에 드는 낯익은 골목 풍경 그림 앞에서 서로 사진 찍으면 좋을 거 같아요..
성곡미술관 원계홍전은 10호내외의 소품위주이지만 100점이 소개되는데, 1970년대 성북동이나 부암동과 수색역, 회현동, 홍제천, 홍은동 새벽 골목길 풍경이 많습니다.
주로 새벽에 스케치해서 그렸기 때문에 사람은 그림에 나오지 않아서 더욱 적막한 쓸쓸함으로 가득합니다.
5월 21일까지 전시였는데 인기가 있는지 6월 4일까지 연장한다네요.
성곡미술관은 문제적 인물 신모 큐레이터가 먼저 생각나지만, 미술관 뒤 언덕 야외 조각 정원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줄장미나 찔레꽃 피기 시작하고
하얀 꽃나무들이 향기로운 5월의 신록 속 성곡미술관 정원에서 차를 마시면 그림에서 보는 카페가 따로 없을 듯..
2시 도슨트 설명들으며 작품 감상하기도 했는데, 70년대 골목길 풍경 많이 그린 작가의 작품중 자기가 살거나 익숙한 동네의 그림앞에서 사진 찍었다.
귀가하려는데 소나기 쏟아져 잠시 멈추었다가 귀가했다.
오늘 날씨 정말 버라이어티하네..
하루에 많은 공부해서 흐믓했던 학창시절 처럼 오늘도 뿌듯한 하루...
첫댓글 도슨트가 해설했군요.
역시 성곡 미술관은 큰 미술관 이라 큐레이터와 도슨트를 따로 운용 하는군요.
워낙 해설을 전문적으로 잘 하시더군요.
미술품은 해설을 듣는게 필수라는 것을 새삼 느낀 하루였습니다.
오영희 동기화백의 해설도 큰도움이 되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