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전날, 몸도 마음도 바쁜 날이지만 한양도성 시리즈 제3탄으로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종묘사직과 5대궁을 찾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지난 연말연시, 한양도성을 둘러싼 성곽 18.625m를 2차례 나눠 걸으면서 북악산이나 낙산에서 바라 본 도심 속 구중궁궐을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죠.
1392년 이성계와 정도전을 중심으로 하는 유학자들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성리학의 조선을 건국합니다. 고려시대가 불교의 나라였다면 조선은 유교의 나라였고, 조선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조금 일찍 중국을 통일한 명(明)나라 체제, 중화제국의 일원으로써 하나의 독립된 왕조를 세웁니다. 왕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중국 천자의 제후국에 지나지 않은 것이죠.
새 나라를 세우면 건국이념부터 통치방식부터 다 다르죠. 건국이념과 통치방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왕을 중심으로한 정치체제이며, 이것을 뒷받침하는 각종 법제와 이를 외형적으로 완성하는 각종 건물(종묘사직과 궁궐)의 등장입니다.
조선은 개경을 버리고 한양에 수도를 정하면서 가장 시급히 조성에 나선 것은 종묘와 사직, 그리고 왕이 정사를 돌보고 거처하는 궁궐이었습니다. 종묘는 왕의 조상들의 혼령과 위패를 모신 곳, 사직은 땅의 신(사)과 곡물의 신(직)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 왕실의 근본과 생산을 기리는 곳입니다. 왕의 거처하는 새로운 궁궐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남산을 바라보는(남향) 방향으로 좌청룡 낙산과 우백호 인왕산에 둘러싸인 경복궁을 법궁으로 삼아 조성에 나섭니다.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유교 가르침에 의하면 사직은 왕이 거처하는 궁궐 오른쪽에, 종묘는 왼쪽에 둔다고 했습니다. 서울지도를 보면 사직단은 서대문쪽, 종묘는 동대문쪽 아니냐고 하시는데 북악산 밑 왕의 앉아있는 자세를 기준으로 하면 사직단은 오른쪽, 종묘는 왼쪽입니다.
조선의 첫 번째 궁은 경복궁입니다. 한자로 景福宮은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의미를 따 지었으나, 이곳에 왕들이 머문 기간은 1405년(태종 5) 지어진 일종의 별궁인 창덕궁(昌德宮)에 비해 훨씬 짧습니다. 왕조 초창기 세종·문종·단종이 이곳에 주로 기거했지만,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경복궁을 기피해 창덕궁에 기거하면서 임금이 살지 않는 궁이 되었죠. 이후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불탄 후 270여 년간 폐허상태로 있다가 1865년(고종 2) 대원군에 의한 대규모 재건공사로 재건됐지만, 마지막 불꽃, 일제식민지로 전락하는 비운의 궁입니다.
경복궁은 정궁이자 법정궁이지만 창덕궁 보다 거주기간이 짧은 궁, 그래도 조선시대의 궁궐 중 으뜸인 곳으로 다른 궁궐에 비해 전체모습이 정연한 비례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궁궐건축의 배치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 원형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입니다. 경복궁이 있지만, 세종대왕에게 양위를 한 태종이 갈데가 없어 따로 궁을 만든 것이고, 경복궁이 풍수지리나 정치적 격변을 많이 받아 왕들이 창덕궁을 더 선호, 임진왜란 이후에는 고종 때까지 법궁의 기능을 담당하였죠. 창덕궁은 경복궁 건립 이후에 지어진 이궁(離宮)이라 체계적이진 않았어도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고, 각종 건물들이 복잡한 왕실 생활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창경궁은 본래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지은 수강궁(창덕궁)이었는데 그후 1483년 성종 15년 세 분의 대비들을 위해 수강궁 자리에 별궁인 창경궁을 건립한 것이죠. 작고 아담한 곳, 그래서 1909년 일제가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짓고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어 불른 곳으로 1984년 일제가 철거했던 문정전과 월랑 등을 복원하고 정비하면서 다시 이름을 창경궁으로 환원했습니다. 창경궁의 특징 중 하나가 모든 궁들이 남향을 하는데 반해 이곳은 풍수지리 특성상 동향을 하고 있는 점입니다.
경희궁은 정치적으로 소수파였던 광해군이 새로운 정치를 일으키고자 만든 궁인데 1620년 완공했지만,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쫒겨난 곳, 서쪽에 위치한다 해서 서궐로 불린 곳이기도 합니다. 인조반정 이후 인조의 직계들인 효종부터 철종에 이르는 10여 명의 임금이 살았죠. 현종과 숙종은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고, 장희빈의 아들이자 영조의 형인 경종이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함으로써 경희궁에서 최초로 즉위식을 올렸지만, 영조는 이곳을 회피, 오랫동안 빈 궁이 됐습니다. 정조 때 편찬한 ‘경희궁지’에 따르면 꽤 큰 규모였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완전히 해체된 곳이기도 합니다.
덕수궁은 처음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되어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죠. 이후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고종이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에서 덕수궁(德壽宮)이라 다시 바꾼 곳입니다.
조선 후기에 덕수궁은 궁궐다운 건물도 없었고 왕실에서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고종 말년 조선 왕조가 열강 사이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고종이 덕수궁으로 옮기자, 비로소 궁궐다운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고, 1897년(광무 1)에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죠. 이 때를 전후하여 궁내에는 많은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일부는 서양식으로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덕수궁은 조선 말기에 궁궐로 갖추어진 곳이기는 하지만, 구한말의 역사적 현장이었으며 전통목조건축과 서양식의 건축이 함께 남아 있는 곳으로 조선왕조의 궁궐 가운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궁이기도 합니다. (이상의 내용은 다음백과에서 발췌)
왕(과 왕비)의 공간 5대 궁궐은 이름도 그렇고 내용도 복잡합니다. 언제 세워지고 어느 용도로 쓰였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흐름속 어떤 역할,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복잡할 것 같은 궁궐도 왕릉과 같이 유교적 가르침에 의한 일정한 규칙과 원칙이 있습니다. 42기 왕릉이 일정한 원칙이 있듯이 궁궐도 조성원리, 배치의 형식이 일정합니다. 원형이 되는 경복궁을 기준으로 보면 북악산 밑 정방형 구조에 남쪽에 광화문, 북쪽에 신무문, 동쪽에 건춘문, 서쪽에 건추문이 있습니다.
광화문을 통해 들어가면 흥례문이 있고, 메인건물인 근정전 앞에 근정문이 있죠. 궁에서 가장 메인이 되는 건물은 근정전 같은 왕이 정사를 돌보는 곳입니다. 경복궁은 근정전, 창덕궁은 인정전, 창경궁은 명전전, 경희궁은 숭정전, 덕수궁은 중화전이죠. 유교 이념은 정치를 어질게 해서(仁) 백성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궁궐의 가장 메인건물은 정사를 부지런히(근), 어질게(인), 밝게(명), 받들어서(숭), 조화롭게(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정전 같은 건물이 핵심이고 정사를 돌보는 곳이지만, 정사만 돌볼 수는 없죠. 왕의 침실인 강령전, 왕비의 침실인 교태전 등이 있습니다. 궁궐에 가보면 수많은 건물들이 있는데 이것도 기능과 용도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는데 대체적으로 전(殿)·당(堂)·합(閤)·각(閣)·재(齋)·헌(軒)·루(樓)·정(亭)으로 나뉩니다.
전殿'은 건물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건물로 규모도 크고 품위 있는 건물이죠. 궁궐에서 전殿은 왕과 왕비, 혹은 대비가 쓰는 건물입니다. 전殿은 평소 기거 활동 공간 보다는 의식이나 공적인 활동을 하는 건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임금을 보통 전하殿下라고 부르는 것은 전의 주인이자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전(殿)·당(堂)·합(閤)·각(閣)·재(齋)·헌(軒)·루(樓)·정(亭)은 너무 길어서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안종운의 漢字 이야기 - 殿·堂·閤·閣(전당합각) (한자신문)
http://www.hanj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5
너무 길어서 2부로 이어집니다.
몽산님이 간식을 들고 오셔서 나눠주시고...
덕수궁 맞은편 웨스턴조선호텔 후원 같은 곳에 위치한 환구단.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첫번째로 만든 곳인데...
덕수궁도 고종이 옮겨와 정치의 중심이 되자 급조한 건물이기도 합니다. 일제에 의해 서양식 등 복합건물로 전락.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 건물인 석조전이죠. 1909년 준공했는데 고종이 죽자 일본은 미술관으로 활용.
석어당은 임진왤한에서 고생한 선조가 승하한 곳. 석어당 뒤 즉조당과 함께 덕수궁의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합니다.
고정이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정관헌
덕수궁에 새로운 건물이 나타나 깜놀했는데...
돈덕전입니다.
돈덕전도 외국 사신 등 주요 귀빈을 맞이한 연회장
덕수궁에서 예전 러시아공사관은 200m도 안되는 곳, 아관파천 시 고종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서울시립역사박물관 앞 마당에 그려진 수선전도. 수선은 수도를 의미합니다. 수선전도 왼쪽이 경복궁, 오른쪽이 창덕궁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복궁은 북궐, 창덕궁 창경궁은 동궐, 경희궁은 서궐로 불렸습니다.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
경희궁의 메인건물은 숭정전입니다.
왕실의 후예같은 짱가님
멋진 사진을 남겨주시는 연우님
여니님
또다기님이 인도하셔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신 미카엘님
경희궁 숲길에서... 예전 오케스트라 달빛걷기에서 몇번 왔습니다. 야간에 보면 멋진 곳...
서진님과 까멜리아님. 푸른돛님이 서진님을 초대, 서진님이 까멜리아님을 오케스트라로 인도 하셔서 단원이 늘었습니다.
티몬님 쌈장님 원더풀님 바위님
성곡미술관. 쌍용그룹 창시자인 김성곤 회장의 흉상이 빛나네요. 신정아 스캔들로 유명한 곳.
사직단 가는 지하도에 '사직꿈터'라는 사행시가 걸려 있네요. 꿈을 이룰 수 있는 꿈터, 오케스트라입니다~~ 2부에서 만나요.
* 재미없고 지루한 종묘사직 5대궁 이야기는 자료와 기록의 차원에서 남깁니다.
첫댓글 와~정말 대단 하십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계셔야 하실분인데~ㅎ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덕수궁이름도 처음 알았네요.
찬찬히 읽어보니 그날 낙화님
열심히 해주시던 설명이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물론
또 금새 잊어버리고 말겠지만요.
여하튼 넘나 수고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낙화 박사작가님
인솔가이드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
오케에 오면 사직꿈터 뿐 아니라...
평생 교육의 기회를 드리며, 치매는 절대 안걸리게 됩니다. ㅎ
이날도 무지 수고 많으셨어요~~
와~~ 진짜 낙화님!!
진성진골진짜배기이십니다
그날 못들은 얘기 찬찬히 들을게요
오케스트라에 대한 낙화님의 진한 애정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기억에서 가물거리던 500년 조선의 역사를 꺼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길어도 너무 좋은 내용인 거 같아서
밑줄 처가면서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궁궐역사를 듣고 숙연해집니다.
낙화님의 설명을 듣고나니
조선왕조에 무심했던 날들을 후회합니다..ㅋ
궁궐사진까지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