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창순의 김유정소설문학여행] -2016. 5. 1
제58차 김유정 수필[오월의 산골짜기]문학여행기
금강(錦江) ……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둥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한강이나 영산강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이 제주도를 건너 보고 뜀을 뛸 듯이, 전라도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 또 한 번 우뚝 …… 높이 솟구친 갈재(蘆嶺)와 지리산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長水로 鎭安으로 茂朱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 좌우도의 접경을 흘러간다.
그리고 북쪽 줄기는,
좀 단순해서, 차령산맥이 꼬리를 감추려고 하는 경기 충청의 접경 진천 근처에서 청주를 바라보고 가느다랗게 흘러내려오다가 조치원을 지나면 거기서 비로소 오래 두고 서로 찾던 남쪽 줄기와 마주 만난다.
이렇게 어렵사리 서로 만나 한데 합수진 한 줄기 물은 게서부터 고개를 서남으로 돌려 공주를 끼고 계룡산을 바라보면서 우줄거리고 부여로 …… 부여를 한 바퀴 휘 돌려다가는 급히 남으로 꺾여 단숨에 논뫼 강경이까지 들이닫는다.
여기까지가 백마강이라고, 이를테면 금강의 색동이다. 여자로 치면 흐린 세태에 찌들지 안한 처녀적이라고 하겠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에서부어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참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이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예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다. 향은 서서남으로 빗밋이 충청 전라 양도의 접경을 골 타고 흐른다.
이로부터 서 물은 潮水까지 섭슬려 더욱 흐리나 그득하니 벅차고, 강 넓이가 훨씬 퍼진 게 제법 양양하다.
이름난 강경벌은 이 물로 해서 아무 때고 갈증을 잊고 촉촉하다.
낙동강이이 한강이니 하는 다른 강들처럼 해마다 무서운 물난리를 휘몰아 때리지 안해서 좋다. 허기야 가끔 홍수가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까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에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 소설 [탁류]에서 (1937,8년 조선일보 연재)
[위 사진]
북한강의 색동강은 신연강이다.
신연강은 춘천에서 가평에 이르는 북한강을 말한다.
경춘선(서울-춘천) 출발역, 상봉역에서 첫차(06:00)를 타고 달리다 낭만의 강촌역 전역인 백양리역에 들어서기 전의 북한강 모습이다.
아래 그림은 정미의병(丁未義兵)의 기세가 드높았던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강원도 춘천부(春川府) 남내이작면(南內二作面) 증리(甑里-실레) 427번지,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서 부친 김춘식(金春植) 모친 청송(靑松) 심씨의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차남으로 출생한 김유정 작가가 6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서울로 떠나는 장면이다.
김유정 작가의 부친 김춘식 참봉은 왜, 식솔들을 데리고 실레를 떠나야만 했나?
김유정 작가의 10대조 김육(金堉)은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한 실학(實學)의 선구자였으며, 9대조 김우명(金佑明)은 현종(顯宗)의 국구(國舅-임금의 장인)였고 숙종(肅宗)의 외할아버지였다.
고조부 김기순(金基恂) 때 춘천 실레마을로 이주했다. 증조부 김병선(金秉善)은 실레마을에 화서학파(華西學派)의 거유(巨儒)인 김평묵(金平默)을 초빙, 학당(學堂)을 열고 자제들을 교육케 했다. 화서학파의 위정척사(衛正斥邪) 학풍(學風)을 이어받은 조부 김익찬(金益贊)은 춘천 의병(義兵) 봉기의 배후 인물로 재정 지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일제의 감시대상이 되었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서울로 이사한 것으로 보인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딛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다 50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그러나 산천의 풍경으로 따지면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귀여운 전원이다. 산에는 기화이초로 바닥을 들었고, 여기저기에 쫄쫄거리며 내솟는 악수도 맑고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서 골골거리며 까치와 시비를 하는 노란 꾀꼬리도 좋다.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 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디인기 시적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 하는 그들을 대하면 딴 세상을 보는 듯하다.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김유정 작가의 생가가 고요하다.
벽촌이라 교통이 불편하므로 현 사회와 거래가 드물다. 편지도 다달이 한 번씩밖에 안 온다. 그것도 배달부가 자전거로 이 산골짜기까지 오기가 괴로워서 도중에 마을 사람이나 만나면 편지 좀 전해달라고 부탁하고는 도로 가기도 한다.
이렇게 도회의 인연이 멀므로 그 인심도 그리 야박하지 못하다. 물론 극히 궁한 생활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악착한 행동을 모른다. 그 증거로 아직 나의 기억에 상해사건으로 마을의 소동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그들이 모여 일하는 것을 보아도 퍽 우의적이요, 따라서 유쾌한 노동을 하는 것이다.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지금의 실레마을에서 수필의 내용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금병산으로 오르면 귀엽고 단란한 전원을 만날 수 있다.
가까이서 여인들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저마다 손에 들병을 들고 나타난다.
아마도 홍천이나 인제에서 넘어 온 여인들이리라. 이곳 실레마을에서 얼마간 머물다가 떠날 것이다.
“자, 이 들병에 담은 술 맛! 최고니 한잔 사게유!”
열아홉 쯤 돼 보이는 들병이가 손을 끈다.
“자, 떡시루 마을을 앞에 두고 시루떡으로 안주 좀 하시구유!”
계숙이라는 들병이가 시루떡 조각을 입에 넣어주니 사르르 녹는다.
“그런데 남편들은요?”
“왜 멱살이라도 잡힐까봐 겁나유! 걱정말아유! 밤새 노름을 했을 테니 주막에 자리라도 잡으면 그림자처럼 찾아 올거유!”
그러면서 어느 들병이는 병든 남편을 물레방앗간에 숨겨놓아야겠다고, 또 어느 들병이는 뭉태며, 덕만이며 사내들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신명난 눈웃음이다.
막걸리 몇 잔을 먹고 값을 계산하려고 하니 카드는 사절이란다.
“솥도 좋구, 맷돌도 좋구, 속곳도 좋구유!”
“콩이나 좁쌀도 좋아유!”
어느 들병이는 은비녀보다 사내의 솜바지가 더 좋단다.
“우리는 생계형작부지만 그래도 정은 두둑하지유!” 하면서
한마디씩 들병이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데.
“애교를 판다는 것도 근자에 이르러는 완전히 노동화 되었지유!”
“노동하여 생활하는 여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구유!”
“조선의 집시지유!”
“우리두 성한 오장육부가 있고 낌끌한 희망으로 땅을 파던 농군이었지유!”
“농촌의 유일한 명절인 가을을 역경으로 보냈지유.”
“지주와 빗쟁이들에게 수확물을 주고는 다시 한겨울을 염려하기 위해 땀을 흘렸지유!”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거기서 분발한 것이 우리들 생활이지유!”
“아, 그렇군요!”
“뭇사람들이 구경거리라 할지 모르지만 분발하여 사는 게 중요하지유!”
"자! 마셔유!"
오월쯤 되면, 농가에는 한창 바쁠 때이다. 밭일도 급하거니와 논에 모도 내야 한다. 그보다는 논에 거름을 할 갈이 우선 필요하다. 갈을 꺾는 데는 갈잎이 알맞게 퍼드러졌을 때, 그리고 쇠기 전에 부랴사랴 꺾어내려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일시에 많은 품이 든다. 그들은 여남은씩 한 떼가 되어 돌려가며 품앗이로 일을 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일의 권태를 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의 능률까지 오르게 된다.
갈 때가 되면, 산골에서는 노유를 막론하고 무슨 명절이나처럼 공연히 기꺼웁다. 왜냐면 갈꾼을 위하여 막걸리며, 고등어, 콩나물, 두부에 이밥-이렇게 별식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농군 하면 얼른 앉은자리에서 밥 몇 그릇씩 해치우는 탐식가로 정평이 났다. 사실 갈을 꺾을 때, 그들이 먹는 식품은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먹지 않으면 몸이 감당해 나가지 못할 만치 일도 역시 고된 일이다. 거한 산으로 헤매이며 갈을 꺾어서 한 짐 잔뜩 지고 오르내리자면 방울땀이 떨어지니 여느 일과 노동이 좀 다르다. 그러니 만치 산골에서는 갈꾼만은 특히 잘 먹이고 잘 대접하는 법이다.
개동부터 어두울 때까지 그들은 밥을 다섯 끼를 먹는다. 다시 말하면, 조반, 점심겨누리, 점심, 저녁겨누리, 저녁 이렇게 여러 번 먹는다. 게다가 참참이 먹이는 막걸리까지 친다면 하루에 무려 여덟 번을 식사를 하는 셈이다. 그것도 감투밥으로 올려 담은 큰 그릇의 밥 한사발을 그들은 주는 대로 어렵지 않게 다치고 치고 하는 것이다.
"아, 잘 먹었다. 이렇게 먹어야 허리가 안 휘어!"
이것이 그들이 가진 지식이다. 일에 과로하여 허리가 아픈 것을 모르고, 그들은 먹은 밥이 삭아서 창자가 홀쭉하니까 허리가 휘는 줄로만 안다. 그러니까 빈창자에 연신 밥을 먹여서 꼿꼿이 만들어야, 따라서 허리는 퍼질 걸로 알고 굳이 먹는 것이다.
갈꾼들은 흔히 바깥뜰에 멍석을 펴고 쭉 둘러앉아서 술이고 밥이고 한데 즐긴다. 어쩌다 동리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가게 되면 그들은 손짓으로 부른다.
"여보게, 이리와 한잔 하게."
"밥이 따스하니 한술 뜨게유."
이렇게 옆 사람을 불러서 음식을 나누는 것이 그들의 예의다. 어떤 사람은 아무개 집에 갈 꺾는다 하면 일부러 찾아와 제 몫을 당당히 보고 가는 이도 있다.
나도 고향에 있을 때 갈꾼에게 여러 번 얻어먹었다. 그 막걸리의 맛도 좋거니와, 옹기종기 미이어 한 가족같이 주고받는 그 기분만도 깨끗하다. 산골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귀여운 단란이다.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귀엽고 단란한 전원, 금병산에 앉아 '오월의 산골짜기'를 위해 하모니카를 불러본다.
그리고 산골에는 잔디도 좋다.
산비알에 포근히 깔린 잔디는 제물로 침대가 된다. 그 위에 바둑이와 가팅 벌릉 자빠져서 묵상하는 재미도 좋다.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우뚝우뚝 섰는 모조리 푸른 산아매, 잡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 산속에 누워 생각하자면, 비로소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요히 느끼게 된다. 머리 위로 날아드는 새들도 갖가지다. 어떤 놈은 밤나무 가지에 앉아서 한 다리를 반짝 들고는 기름한 꽁지를 휘휘 두르며,
"삐이죽! 삐이죽!"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이번에는 하얀 새가 "뺑!" 하고, 날아와 앉아서는 고개를 까댁까댁 하다가 도로 "뺑!" 하고 달아난다. 혹은 나무줄기를 쪼며 돌아다니는 딱따구리도 있고, 그러나 떼를 지어 푸른 가지에서 유희를 하며 지저귀는 꾀꼬리도 몹시 귀엽다.
산골에는 초목의 내음새까지도 특수하다. 더욱이 새로 든 잎이 한창 퍼드러질 임시에는 바람이 풍기는 그 향취는 일필로 형용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개운한, 그리고 졸음을 청하는 듯한 그런 나른한 향기다. 일종의 선정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짙은 향기다.
뻐꾸기도 이 내음새에는 민감한 모양이다. 이때부터 하나 둘 울기 시작한다.
한 해 만에 뻐꾸기의 울음을 처음 들을 적만치 반가운 일은 없다. 우울한, 그리고 구슬픈 그 울음을 울어대면 가뜩이나 한적한 마음이 더욱 늘어지게 보인다.
다른 데서는 논이나 밭을 갈 때 노래가 없다 한다. 그러나 산골에는 소 모는 노래가 따로이 있어 논밭 일에 소를 부를 적이면, 으레 그 노래를 부른다. 소들도 세련이 되어 주인이 부르는 그 노래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노래대로 좌우로 방향을 변하기도 하고, 또는 보조의 속도를 늘이고 줄이고 이렇게 순종한다.
먼발치에서 소를 몰며 처량히 부르는 그 노래도 좋다.
이것이 모두 산골이 홀로 가질 수 있는 성스러운 음악이다.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나비가 꿀을 따느라 정신이 없다.
아픔이든 상처든 그리움이든
잘 견디며 부지런히 가꾸자
어디선가 풀씨며 꽃씨가 날아와
향기 은은한 마음의 정원 만들어 주리니
-긴고랑 권창순 디카詩 <나무의 정원에서>
김유정 작가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만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그의 삶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유정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의 길을 온전히 굳건히 걸었다. 그러기에 그는 우리들에게 문학의 멋진 정원을 선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귀엽고 단란한 전원' 금병산은 김유정 작품명을 등산로 이름으로 갖고 있는데, 위 그림은 [동백꽃길]의 명물 'OX 소나무'다.
산골의 음악으로 치면, 물소리도 빼지는 못하리라. 쫄쫄 내솟는 샘물소리도 좋고, 또는 촐랑촐랑 흘러내리는 시내도 좋다. 그러나 세차게 콸콸 쏠려 내리는 큰 내를 대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논에 모를 내는 것도 이맘때다. 시골에서는 모를 낼 적이면, 새로운 희망이 가득하다. 그들은 즐거운 노래를 불러가며 가을의 수확까지 연상하고 한 포기의 모를 심어 나간다. 농군에게 있어서 모는 그들의 자식과 같이 귀중한 물건이다. 모를 내고 나면, 그들은 그것만으로 한 해의 농사를 다 지은 듯싶다.
아낙네들도 일꾼에게 밥을 해내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리고 큰 함지에 처담아 이고는 일터에까지 나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은 그 함지 끝에 줄레줄레 따라다니며 묵묵히 제 몫을 요구한다.
그리고 갈 때 전후하여 송화가 한창이다. 바람이다로 세게 불적이면 시냇면에 송화가루가 노랗게 엉긴다.
아낙네들은 기회를 타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산으로 송화를 따러 간다. 혹은 나무 위에서, 혹은 나무 아래에서, 서로 맞붙어 일을 하며, 저희도 모를 소리를 몇 마디 지껄이다가는 포복절도 할 듯 깔깔대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월경 산골의 생활이다.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산 한 중턱에 번듯이 누워 마을의 이런 생활을 내려다보면,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물론 이지없는 무식한 생활이다마는 좀더 유심히 관찰한다면 이지 없는 생활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는 만한 그런 순결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내가 고향을 떠난 지 한 4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산천이 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금쟁이의 화를 아직 입지 않은 곳이매, 상전벽해의 변은 없으리라.
내내 건재하기 바란다.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첫댓글 작가님 행복한 기행 문학기행을 다녀오셨습니다 행복한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져옵니다 배우고갑니다 금상첨화 김유정 소설가님에 관한한 박사님 같아요 감상잘했어요
사진 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