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보고대회 열기를 느끼면서
11월 11일 광화문에 갔다. 나는 2년 만에 태극기 행사로 참여한 것이다. 오우회 지회장 박승부의 강력한 요구로 오랜만에 참가하기로 응답은 했지만, 갑자기 강릉집에 문제가 생겨 강릉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어 참가가 어려웠다, 다행으로 큰 어려움 없이 해결되어 약속한 대로 아침 일찍 KTX로 상경해서 참가하게 되었다. 광화문을 가득 메운 “자유 마을” 피켓을 든 전국 각지에서 참여하는 자유인들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했다. 그들은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 전국 조직으로 오늘은 부정선거 규탄 집회라고 한다. 우렁차게 들리는 마이크 소리에 다소 흥분하는 분위기다. 그래 우리도 현역 시 작전에 투입될 때 병사들의 사기를 제일 먼저 생각했지 하면서 육사 구국동지회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반가운 동료들 옆에 약간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앉았지만, 무리하면서도 여기에 참석한 것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었다.
가까이 있으니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스피커 소리가 크다. 연단에는 어느 군인 출신 연사가 목청을 높이며 우리는 오천 년 역사에 920여 회 전쟁을 겪었으며 평균 5년 주기로 한 번 했었지만, 그 마지막 6.25 전쟁 이후 70여 년간 전쟁 없이 평화를 유지한 것은 캠프 험프리스에 있는 미군과 부산 유엔군 묘지에 묻혀있는 UN군이 있었기에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면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유엔사를 해체하자고 하는 좌파들의 주장은 무엇을 뜻하는가를 묻고 싶다면서 UN 참전용사 추모의 날을 기억하자 했다.
11월 11일은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이다. 캐나다 출신 6·25 참전용사의 제안으로 2007년부터 해마다 11월 11일 11시에 1분 동안 세계에서 부산을 바라보며 묵념한다. 지구상 하나뿐인 유엔 기념공원의 ‘추모의 날 (일명 턴 투워드 부산, Turn Toward Busan)’ 이다. 올해는 정전 70주년으로 더욱 의의가 있다. 한국전 참전 11개국 2.300여 명이 안장된 그 묘지 풍경이 참배객을 압도한다.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튀르키예, 영국, 미국 등의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오와 열을 맞춘 채 잠들어 있다. 6·25에서 생환한 유엔군 장병 중 훗날 전우 옆에 묻히기를 희망한 용사들을 위해 조성된 묘역도 보인다.
몇 년 전 공원을 방문했던 기억은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여기에 오면 다들 감격한다고 한다. 폐허가 된 그 나라가 이렇게 발전한 것을 보고 그때의 헌신과 희생에 큰 보람을 느끼며 전우 곁에 잠들고 싶다며 희망하는 분들은 언제든 올 수 있도록 2015년에 안장 규정을 바꿨다며 정문에 들어서면 보이는 검은 돌에 ‘정숙’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다. 그 아래 영어로 ‘Your respectful silence is required’라고 적혀 있고 그런 요구가 없더라도 침묵이 묵직하게 내려앉는 장소다. 사진 속 참전용사들은 모두 푸르른 청춘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평화와 자유는 그들이 목숨을 바치며 바라던 내일이었다. 11월 11일은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 이날을 기하여 광화문 광장 보수의 모임이 더욱 의의가 있어 보인다.
또 오늘을 ‘빼빼로 데이’라 한다. 11월 11일, 날짜로 보면 재밌는 의미가 있는 날이다. 그 옛날에 pepero 과자를 선물 받은 적이 생각났다. 빼빼로처럼 빼빼하게 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여학생 사이에 과자를 주고받는 것인데, 이날을 기념하여 기업에서 ‘빼빼로’라는 과자를 출품하여 ‘데이 마케팅’으로 부추기면서 인기를 얻어 연 매출의 절반을 이 기간에 발생시켜 빼빼로 데이가 더욱 유명해졌다. 날짜를 이유로 만든 다양한 이름, 3월 3일 삼겹살 데이, 4월 14일 짜장데이, 5월 3일 오삼불고기 데이, 6월 4일 육포 데이라 명명되어 부르지만, 빼빼로 데이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외에도 11월 11일은 다른 이름으로 유명하다. 이날을 농업인의 날, 가래떡 날, 또 지체장애인의 날이자 보행자의 날, 해군 창설 기념일이자 레일 데이(코레일)다. 최동원상(등번호 11번) 수여 일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빗자루들만 모아 전시회를 연 변동해 씨는 문 앞에 걸어두면 마음이 가지런해진다며 11월 11일을 빗자루 데이라고도 명했다는 재밌는 일화다.
청계천 방향에서는 또 다른 스피커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광화문 행사를 방해하는 모습이다. 그쪽은 윤석열 정권퇴진운동 촛불행동대로 거의 매주 하는 집회라 한다. 전상열 동기와 나란히 앉아 있었기에 그의 설명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보수와 진보로 표현되는 조직이 서울 거리를 장악하고 악을 쓰고 있는 모습이 가련해 보이지만, 진보의 목소리는 원천적으로 5.18 광주사태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지금도 광주시민의 마음을 보듬어 준다면 전라도는 보수의 편에 많이 동조할 거라면서 순천 출신의 인요한 위원장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한다. 바로 옆 천막에서는 지만원 박사의 사면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으니 광주시민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 줄 수 있는지 인 위원장을 기대해 본다.
저녁 식사하면서 김학영 구국동지회 지회장의 인사말과 특히 육사회관 건립기금 모금 운동에 대한 동기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의견과 5.18문제에 대한 박승부 지회장의 대대장 시절 얘기 등으로 이어졌다. 박현규 전 구국동지회 회장은 5.18은 아직도 사실에 대한 찬반 논란이 진행 중이라 팩트에 대한 진실이 밝혀 지지 않고 있으며, 특히 유공자에 대한 명확한 해명으로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 주어야 하며 더욱 아쉬운 것은 지자체장이 국가 유공자를 결정하도록 하는 법이 문제이고 그 법을 만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실무 책임자였던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난하는 그의 목소리가 유독 돋보였다.
그는 보수의 핵심 인물인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노태우 등 군인 출신을 죽이기 위해 문민정부라는 간판을 걸고 군인에 대한 복수의 칼로 난도질하면서 국정을 파탄 내고 보수를 죽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 장본인이라고 하면서 오늘의 진보라는 이름의 주사파를 길러낸 대통령으로 영원히 저주받을 인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周恩來가 일본과의 전쟁 배상 문제를 논의할 때 한 푼도 안 받겠다고 하면서 한 말, 以德報怨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 이라는 말을 김 전 대통령이 이해했다면 주사파가 우리 사회에 이렇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진보와 보수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통합위원회> 성과 보고회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새는 날아가는 방향이 같아야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 힘을 합쳐 그 방향으로 날 수 있다.
시대착오적인 투쟁·혁명 같은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다.”라 하면서 왼쪽 날개에 대한 문제를 제시했다.
류근일 논설위원은 최근 우리 사회의 진보에 대한 칼럼에서
세계사는 자유·민주·개인·인권·시장경제 등 산업화를 계기로 근대문명으로 진입하여 엄청난 발전을 했지만, 그 발전에 따른 부작용으로 나온 것이 평등의 추구, 진보주의 운동이었다고 하면서. 보수·진보 “양날개론”이 이때부터 생겼다고 했다.
문명적인 사회라면, 마땅히 자유와 평등은 보수와 진보 모두가 고루 갖춰야 한다는 것인데
사회는 ‘양날 개'가 아니라 '외날 개'만 허용하는 체제로 발전해 왔다. 그 양상을 보면 ;
(1) 보수의 독재로 진보를 허용하지 않는 파시스트 독재
(2) 진보의 독재로 보수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당 독재를 볼 수 있다.
히틀러 극우 독재의 보수와 스탈린 극좌 독재의 진보가 만나면서 이루어진 것이 2차대전이었다. 그 이후 서방 사회는 문명적 기준에 가장 맞는 자유·민주를 존중하는 보수와 진보, [양 날개] 짓의 가능 조건을 갖추어 왔지만, 공산국가는 진보 독재로 자유와 평등, 민주라는 보편적 가치를 부정해 왔다.
한국에선 이 문제가 어떻게 되어 왔는가?
대한민국 왼쪽 날개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였다. 1987년에 민주화가 됐을 무렵, 보수 일변도의 사회에서 “새는 두 날개로 날아야” 한다며 이제부터는 진보도 널리 허용하라고 요구하였고. 실제로 민주화 추세에 편승해 진보 세(勢)는 그 후 급속하게 세졌으며 그런대로 논리적 타당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진보의 발전은 70년대는 공산주의 운동인 막스 레닌주의가 주축이었지만 참으로 불행하게도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 좌파 진영은 북한의 주체사상에 급속히 접수당하면서 한국 좌파의 주도권이 독재적 좌파, 전체주의적 좌파 극좌파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여기에 통일 혁명당의 하부조직으로 활동하는 박성준. 한명숙 부부가 핵심적 역할을 했고, 86세대들이 이어왔다고 전 전대협 연대사업국장 이동호씨의 증언이다.
그들은 군사독재 타도뿐 아니라, 자유주의 타도, 수정주의 타도를 공언했다. 자유주의 타도란
군사독재를 타도한 후에는, 자유민주주의도 타도하겠다는 것이며, 수정주의 타도는
좌파를 해도 반드시 독재적 좌파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주장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이다.
실제로 그들 패거리의 잘 알려진 인물인 이해찬은 ”보수를 소멸시키고 우리가 50년 집권해야 한다고 했으며, 권위주의 시대에 [양 날개] 짓이 불가능했으니, 민주화되면 그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던 그들이, 일단 권력을 잡고 나선
”우리도 [양 날개] 짓을 허용하지 않겠다“
”우리도 [한 날개] 짓만 하겠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대한민국에 '진보'는 없다. 대한민국 왼쪽 날개는 진보가 아니다. 극좌 주사파 날개다
윤석열 대통령이 ”시대착오적 투쟁·혁명 같은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바로 그런 [한국 좌파의 전체주의적 민낯]을 지적한 말이며 그래서 이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버리자고 하는 자들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사파이지 진보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류근일의 칼럼을 보면서 지금 저쪽 편의 마이크 소리는 윤석열 정권 퇴진 촛불행동대원들이 주사파 편에서 보수에 대한 증오와 저주의 깃발을 들고 보수를 소멸하여 공산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구소련을 붕괴시키고 냉전을 종식한 전략가라면 냉전 승리의 틀을 짠 트루먼, 소련을 압박하여 총 한 방 쏘지 않고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한 레이건, 그리고 중국과 화해하여 소련의 힘을 약화시킨 닉슨이 그들이다. 以夷制夷(이이제이: 오랑캐를 제압하려면 오랑캐를 이용하라)란 말이 있다. 지금 저 건너편 소리는 우리 사회의 병폐인 내부 분열을 획책한 것이 아닌가? 북한 김정은이가 총 한 방 쏘지 않고 ’以夷制夷‘ 전술로 남한 내 자체 균열로 무너지는 것을 가장 좋아할 것이 아닌가?
중국의 시진핑이 김정은과 회담에서 핵무기에 대한 논의가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김정은 보고 잘 익은 사과를 밥상에 올려놓을 것이니 너무 그렇게 서둘 필요가 없다고 했던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저쪽에서 울부짖는 목소리의 주인들이 잘 익은 사과 만드는 주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베트남 호치민(구 사이공) 씨티를 관광하고 온 친구의 말이 기억난다. 가이드가 호치민시를 관광하면서 특별하게 느낀 사항을 마지막 날 말씀해보라 해서 마지막 날 이것저것 말하는 가운데 한 분이 이상하게 노인을 한 명도 못 보았다고 했다. 잘 보셨다면서 지금부터 50년 전 북월남이 무력 통일하면서 자본주의에 물든 청년들을 모조리 북으로 보내 농장에 가두고 가혹한 노동으로 자멸시켰기 때문에 현재 호치민 같은 도시에는 70대 노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고 한다. 오늘 여기에 참가하면서 친구의 그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남는 날이 되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빨갱이들이 같은 마을 사람들 가슴에 죽창을 내지르던 슬픈 역사의 공산 세계를 보았다. 저쪽 마이크에서 울려 퍼지는 저 목소리는 그때의 후신들이 되살아나 공산혁명을 부르짖는 건가요. 다시 죽창가를 부르며 등장한 그들의 눈에는 70여 년 전 공산(共産)의 광기(狂氣)로 눈이 뒤집힌 내 친구 어머니 같은 그 여인들이 ”개딸“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하여 우리 앞에 저렇게 당당하게 응시하고 있는 건가 남베트남은그래도좋았구나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온다.
박헌영은 전쟁 이전 남한 내부에 무수한 비극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남로당을 동원하여 대구폭동부터 제주4.3사건 여순 반란까지 온갖 폭동을 지시한 인물이지만 그는 김일성에 의해 미국 간첩으로 몰려 죽었다. 북으로 간 대부분의 공산주의자 남로당 빨갱이들은 그들이 말하는 천국에서 모두 미국 간첩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주사파들이여! 귀하들이 원하는 대로 북한으로 가든가 공산화로 통일된다면 그들도 어느 날 쓸모를 다하면 처형될 신세로, 씌워진 죄명은 변함없이 미국 간첩일 것이다. 아니 친일파로 몰아 총살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씁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광화문 광장에서 모든 악조건을 헤치면서 태극기 집회에 열성을 다하는 동료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특히 김명희 여사의 열성적인 투혼의 마음가짐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새로운 마음을 다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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