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 CLASSIC 066
<<생활을 위하여 -중년의 詩>>
박방희 지음
2021년 1월 27일 초판 1쇄 발행
도서 출판 지혜
◆ 박방희의 시 가운데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대개 길이가 짧고 이미지가 선명한 특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비행기가 하늘에 줄 하나 쳐 놓고 갑니다/ 허기진 낮달이 그 줄을 간신히 넘어 갑니다”(「낮달」)라는 시를 보자. 이 작품은 마치 무채색 배경의 캔버스에 비행운과 낮달이 그려진 단정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라는 동양의 시화상합론(詩畵相合論)이나, “시가 말하는 그림이라면, 그림은 말 없는 시다.”라고 했던 고대 그리스 서정시인 시모니데스의 말은 시와 그림의 친연성을 드러내는데, 박방희의 시 세계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의 무진장이다. 시에서의 이미지란 세상을 모사하거나 시인의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 일조하거니와, 박방히 시의 이미지는 상처 입어 훼손된 세상을 치유하는 자연을 닮아 있다.
미루나무 식당에는 미루나무가 있다/ 그 아래 개울이 있고/ 미루나무 우듬지로도/ 한 줄기 푸른 강이 흘러/ 징검돌로 놓인 까치집과/ 오가는 사람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깍, 깍, 호객하는 까치가 있다/ 미루나무 식당에는/ 소주 백세주 동동주 산머루주에/ 요강 뚫는 복분자주/ 자주 몽롱해지는 안개주/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파전에/ 매미소리로 무친 도토리 묵채/ 개울물 소리로 다갈다갈 볶은/ 닭찜이 나온다/ 저녁이면 배고픈 별들 모여드는/ 미루나무 식당에는 / 언제든 따르릉 전화가 있고/ 불 켜진 간판의 그림 닭이/ 낮에 죽은 닭들을 대신해 한 번씩 / 꼬끼오! 하며, 운다
-「미루나무 식당」 전문
「미루나무 식당」의 큰 그림은 개울과 미루나무가 있는 곳에 위치한 식당의 풍경이다. 술과 안주를 전문으로 파는 이 식당의 하루와 그 주변을 시각적으로 포착하는 시인의 섬세한 언어는 천진한 상상력으로써 싱그럽게 살아있는 언어를 건져 올린다. 위로 푸른 하늘은 지상의 개울에 대응하는 강물이 되고, 미루나무 우듬지에 지어진 까치집은 천상의 강물과 한 몸으로 결합해서 징검돌이 된다. 여기에 시인은 “깍, 깍, 호객하는 까치”, “다갈다갈 볶은 닭찜”, “매미소리” “따르릉 전화”, “꼬끼오” 라는 청각 이미지를 덧붙인다. 그러나 ‘다갈다갈’은 개울물과 인접한 사물인 관계로 자갈돌이 구르는 소리와 구분되지 않거니와, 전화기 소리인 ‘따르릉’ 역시도 기계 자체로 호환되는 ‘의미의 감각화’를 이루며 역동성을 창출하는 시적 장치로 기능한다. 인접한 기호와 기호의 자의적 교섭은 이 시의 역동성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시인은 기존에 존재 하는 소리 이미지를 상상력으로 새롭게 변형하여 시각 이미지와 적절하게 배합한다. 식당 안과 주변에 자리 잡은 평범한 사물들이 어우러져 밝고 따뜻한 화음이 만들어진다. 시각에서 청각으로, 청각에서 다시 시각으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연쇄 속에서 미루나무 식당은, 사람들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현대문명에 지치고 병든 세상을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박방희 시의 풍경은 때로 소년처럼 순수한 활기로 가득하다. 다음의 시는 자연을 지향하는 시인의 시작(詩作)을 엿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화가는
바닷가로 이사 해
한 폭 캔버스에
바다를 담으려 했다
보고 또 보고
담고 또 담고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이 갔다
다시 봄이 오고
다시 봄이 오기를
수도 없이 했을 때
그의 캔버스에는
바다가 담겨지고
하얗게 머리 센 화가는
찰랑거리는 바다를 메고
마당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물결을 잡았다!”
“물결을 잡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물도 없이 잡은
물결을 보러 오자
그에게 잡힌 물결들이
자르르, 자르르
캔버스에서 풀려나며
화가의 집을 섬으로 만들었다
-「물결을 잡다-김품창 화백」 전문
김품창은 제주도에 살고 있는 작가다. 그는 주로 제주의 푸른 바다와 하늘과 공기를 그린다. 그의 그림 속 바다는 물을 뿜는 남방고래와, 고래 등에 올라탄 아이, 만선의 기쁨에 취한 배 등이 한데 어우러져 넘실거린다. 그림의 대상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자연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하나로 연결되고 지속되며,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환호하는 듯싶은 정서를 만들어 낸다. 현실과 상상과 꿈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김품창의 그림을 놓고 시인은, “그물도 없이” 물결을 잡는다고 표현한다. 지시하는 대상과 실재하는 대상 사이의 위계가 무화된 자리에 사물과 사물은 그 자체로 현존하는 것이다. 요컨대 박방희의 시가 자연을 쉼과 생명의 알레고리로 사용하는 맥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방희 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연 이미지를 이해하는 일은, 시인의 세계관이나 가치관 등 상상력의 토대를 밝히는 일과 동궤를 이룬다. 다시 말해 시인에게 삶과 자연은 하나다. 그의 시에서 자연을 그리는 마음은 ‘도시 벽을 허물고 콘크리트 맨가슴에 초록 움을 돋게’(「초록, 시멘트를 깨고 일어서다」)한다. “세상 모든 휴식”은 “해질 무렵 잔디밭/ 그 투명한 푸름 속”(「저녁답」)에 있고, ‘까치밥’은 꽃이 아니라 “마음이 켜놓은 燈”이자 “배고픈 날짐승이 꿈꾸는 마지막 희망”(「까치밥」)이라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자연은 남의 것을 빼앗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문명과 반대된다. 자연을 추구하는 삶이란 이치에 따라 겸손하게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꿈꾼다. 이는 그의 시가 “교묘하게 꾸미고 그럴듯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으로부터 먼 이유이다. 박방희의 시가 드러내는 바는 언제나 단순한 형상 속에서 드러난다. “시 행간에 여운을 깊게 하는 것이 어렵다.”라고 했던 다산의 가르침과 그의 시는 반대되지 않는다.
시인의 상상력은 문명과 역방향에 있는 자연의 아름답고 여유로운 이면을 만진다. 그의 상상적 촉수가 뻗어나간 곳에서 우리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이를테면 오리의 저 한없이 바지런하고 낙천적인 유영에서, 삶에 대한 희망의 단초를 발견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오리가 꽁지를 곧추 세우며 물고기를 쫓아 자맥질한다
오리의 똥꼬가
하늘을 향해 열리며
한 송이 꽃으로 피자
언저리가 환하다
ㅡ오늘도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발름발름
똥꼬는 기도하고
주둥이는 고기를 물어 올린다
-「오리」 전문
----박방희 시집 {생활을 위하여}, 도서출판 지혜, 양장, 값 10,000원
◆ 저자 소개
박방희
박방희 시인은 1946년 성주에서 태어났고, 1985년부터 무크지 《일꾼의 땅》 《민의》 《실천문학》 등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 『불빛하나』, 『세상은 잘도 간다』, 『정신은 밝다』, 『복사꽃과 잠자다』, 『나무 다비』, 『사람 꽃』, 『허공도 짚을 게 있다』와 시조집 『너무 큰 의자』, 『붉은 장미』, 『시옷 씨 이야기』, 현대시조 100인선 『꽃에 집중하다』 외 『참새의 한자 공부』, 『참 좋은 풍경』, 『판다와 사자』 등 여러 권의 동시집이 있다. 방정환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사)한국시조시인협회상(신인상), 금복문화상(문학부문), 유심작품상(시조부문) 등을 수상하였다.
박방희 시인의 {생활을 위하여}라는 시집은 ‘무위자연의 삶’을 노래한 시집이며,‘입신入神의 경지’오른 시인의 역작力作이라고 할 수가 있다. “조실스님 방/ 댓돌 위에// 구름이 신고 가다/ 벗어놓은// 하얀 고무신/ 한 켤레// 나절 볕이/ 만선이다”라는 [만선滿船]처럼, 더 이상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시가 삶이 되고, 삶이 예술이 되고, 이 아름다운 삶이‘만선의 꿈’처럼 고대 오후의 행복으로 빛난다.
이메일 주소: pbh0407@hanmail.net
첫댓글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아무쪼록 대박 나시기를 기원합니다... ^^*...
박방희 전임회장님
(생활을 위하여-중년의 시)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늘 좋은 일만 있기바랍니다~
박방희 전임 회장님,
시집 <생활을 위하여 - 중년의 시>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박방희 전임 회장님
시집 <생활을 위하여 - 중년의 시>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박방희 전임 문협회장님~
<<생활을 위하여-중년의 시>>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박방희 회장님
깊이 축하드립니다.
내내 건안욱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