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의 진미
▶구글이 발표한 올해의 세계 최다 검색 레시피(음식 조리법)’ 부문에서 비빔밥이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인이 아니어도 그 맛을 알까 싶었던 비빔밥이 세상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세계인이 올해 구글에서 요리법을 제일 많이 검색한 음식에 비빔밥이 올라 있는 것은 구글 검색 넘버 원을 넘어 세계인이 즐기는 패스트푸드 반열에 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태양의 후예’ 같은 K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 덕분이라고 한다. 우선 드라마를 비롯한 K컬처로 접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비빔밥의 묘미를 깨달을 것으로 본다. 비빔밥은 어디서든 곁에 있는 식재료들로 쉽게 꾸밀 수 있다. 비빔밥은 같은 ‘밥’ 문화권인 일본, 중국에는 없는 독특한 음식이자, 한국형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다. 햄버거, 핫도그처럼 비만을 낳는 서양 패스트푸드와 달리, 비빔밥은 ‘음식과 약은 뿌리가 같다’(食藥同源)는 한국 음식 철학이 담긴 균형식이다. 재료 배합에 따라 저열량 다이어트식이 될 수도 있다.
▶1997년 대한항공이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제공하면서부터 웰빙 기내식으로 주목받아 이듬해 세계 최고 기내식에 선정, 상을 받게 된 것이 비빔밥의 보편적 매력의 시작이다. 요즘도 대한항공 국제선에선 연간 300만 개 이상 비빔밥이 소모된다고 한다. 곱게 어우러지되 하나하나 맛이 살아 있는 비빔밥은 내키는 마음껏 개성을 펼칠 수 있는 '식탁의 오케스트라'이다.
▶‘팝 황제’ 마이클 잭슨도 두 번째 한국 공연을 오던 비행기에서 맛보고 비빔밥 마니아가 됐다고 한다. 그가 머물던 신라호텔에선 비빔밥만 찾는 그를 위해 고추장과 육류가 안 들어간 ‘MJ 비빔밥’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외국 항공사들도 다투어 비빔밥을 내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 귀네스 펠트로가 요리사 친구와 함께 비빔밥 만드는 영상에서 말한 것이 벌써 14년 전,
"비빔밥? 비빔밥? "한국말로 모든 걸 다 섞었다는 뜻이야."
맞습니다. 이어령 선생 표현처럼 비빔밥은 '맛의 교향곡'입니다.
▶어느 기자의 파리 특파원 시절, 한식당에서 프랑스인을 대접할 때 비빔밥을 추천하면 성공 확률 100%였다고 한다. 식도락 내공이 남다른 프랑스 사람들은 비빔밥을 먹을 때 세 번 찬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밥·나물·계란·고기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색 조합이 첫 번째, 고추장·참기름을 넣어 직접 비벼 먹는 이색 체험이 두 번째, 단백질·탄수화물·지방 3대 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는 균형식이라는 점이 세 번째 찬사 포인트였다고 한다.
▶그들은 또 비빔밥의 기원 스토리도 재밌어했다. 제사를 올린 뒤 조상신이 남긴 밥·고기·나물을 후손들이 한데 모아 비벼서 나눠 먹었다는 ‘제사 음식 기원설’과, 어렸을 때 형제들끼리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겠다고 서로 머리 디밀던 양푼 비빔밥. 땡볕에 모 심다 보리밥에 푸성귀와 고추장을 썩썩 비벼 먹던 바가지 들밥. 등… 우리네 삶의 달고, 시고, 맵고, 짭조름, 쌉싸래한 다섯 가지 맛이 어우러지며 그 맛으로 너와 내가 아닌 우리였다고 하는 설명에 동양 유교 문화를 신기해했다고 한다.
▶비빔밥의 기원설에는 다른 버전도 있다. 모내기나 추수 때 품앗이 일꾼들을 먹일 음식 재료를 들판에 갖고 나가 한꺼번에 비벼서 먹인 데서 유래했다는 설, 한 해의 마지막 동짓날, 먹다 남은 반찬을 새해로 넘기는 것을 꺼려 밥에 남은 반찬을 모두 넣고 비벼 밤참으로 나눠 먹었다는 설도 있다. 거기에다 비빔밥처럼 고장 이름이 다양하게 붙는 음식도 드물다. 전주, 진주, 해주, 통영, 황등 비빔밥에 안동 헛제사 밥까지…
▶그중 대표 도시는 호남의 전주, 영남의 진주다. 전주비빔밥은 소머리를 곤 물로 밥을 짓고, 콩나물을 듬뿍 넣고, 날달걀을 넣어 비비는 게 특징이다. 소고기 육회가 들어가는 진주비빔밥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돌멩이를 나르던 부녀자들이 병사에게 고칼로리 즉석식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저마다 다른 맛과 꾸밈새를 뽐내지만 어떤 비빔밥이든 그 한 그릇에는 맛 이상의 맛이 있다.
▶코로나로 중단됐지만, 30년 전 시작한 관악산 연주암 점심 공양도 그랬다. 콩나물, 무채, 김치만 얹었어도 꿀맛이어서 등산객이 줄을 서곤 했는데 거기 담긴 절집의 공덕이 맛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느 시인은 '뻣뻣한 말들은 시금치와 콩나물처럼 데쳐서 숨을 죽이고, 가슴 속 응어리는 깨서 계란처럼 지단을 부치며 거기다 고소한 맛이 나도록 감사의 변(辯)을 그 위에 참기름처럼 뿌리자.' 이 드센 세상을 비빔밥 짓듯 순하게 살자고 한다.
온통 분노와 증오와 전쟁에 휩싸인 세계, 특히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남과 북 등, 그리고 가까이는 우리의 여의도 의사당도 비빔밥처럼 어울려 화합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1979년 이태리 참모대학 유학 시절이다. 로마 시내 유명거리에 한식점이 한곳에 있었는데 중국 식당 옆에 위치하여 손님이 너무나 대조적이라 항상 가슴 아팠던 기억을 더듬어보며 비빔밥이 세계적 관심을 받는 것도 국력에 비례하는가 생각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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