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8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제자들이 ‘주께서 쓰시겠다’ 할 때에, 나귀 새끼의 주인에게서 100% 순종을 보았습니다(눅 19:33-34).
그것은 자신의 소유됨을 당연히 주장할 수 있음에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 포기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목숨임에도 자기의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기꺼이 십자가에 내어주신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잘 예표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며 심지어 ‘하나님처럼’ 나의 의를 얼마나 많이 주장하며 살았는지요?
십자가에 죽어야 할 자가 바로 나임을 고백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밖에는 소낙비가 엄청나게 쏟아집니다.
오늘은 4박5일 간 베캄지역선교부 선교대회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립니다.
함께 모이는 주의 백성들이 나귀의 주인이 되게 하옵소서.
아니 생명을 내어주신 우리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27:27-44
제목 : 주님이 주신 떡을 배부르게 먹음에도 여전히 나의 인생의 유익만을 구하며 사는 자가 여기 있습니다.
27 열나흘 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 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276명이더라.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42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 나의 묵상
로마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호에 모두 276명이 타고 있다.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더욱 신뢰하여 미항을 출발하여 뵈닉스로의 항해를 강행한다.
처음에는 선택을 잘 한 듯 순항하였으니 이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위경에 처한다.
큰 풍랑과 흑암이 계속되며 구원의 여망이 사라질 무렵 바울이 일어나 그들을 안심시킨다.
그것은 그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전날 밤에 나타나서 그들을 다 구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항해를 시작한지 14일째 되는 날 밤에 배는 아드리아 바다에 표류한다.
한 밤중 선원들은 어떤 섬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물의 깊이를 재보니 스무 길, 좀 있다가 다시 재보니 열다섯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혹시 암초에 걸릴까 하여 닻 4개를 물에 던져 넣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한편 선원들은 도망할 마음을 먹고 배 앞쪽에 닻을 더 내린다는 구실로 거룻배 곧 구명정을 바다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바울이 백부장에게 선원들이 배에 있지 않으면 모두가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하자, 군인들은 밧줄을 끊어 구명정을 떼어버렸다.
날이 밝을 무렵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고 직접 하나님께 축사한 후에 떡을 먹게 한다.
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용기를 얻어 음식을 먹고 남은 밀은 바다에 던져 배를 가볍게 한다.
날이 밝아서 보니 그들의 눈에 모래밭이 있는 항만이 나타났다.
그들은 배를 모래밭에 대기 위해 닻줄을 끊어서 닻을 바다에 버리고 동시에 키를 묶은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돛을 올려서 바람을 타고 해안 쪽으로 배를 몰았다.
그런데 배는 두 물살이 만나는 곳 곧 모래수렁에 걸리고 만 것이다.
이에 뱃머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선미는 거센 파도에 부딪쳐 깨어지고 말았다.
이 때 군인들은 죄수들이 헤엄쳐 도망할까봐 그들을 죽이자고 하였다.
하지만 백부장은 바울을 살리고자 군인들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헤엄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육지로 나갈 것을 명하였다.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이나 부서진 배조각을 붙잡고 육지로 나가라고 하였따.
이렇게 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무사히 구조되어 육지로 올라갔다.
바울은 항해를 시작할 때는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죄수 중 하나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유라굴로 광풍이 일어나 모두가 죽게 되었을 때부터 모든 사람의 중심에 선다.
그는 구원의 여망이 사라진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심어준다.
바울을 무시하던 백부장은 이후로 바울의 말을 들으며 그를 소중히 여긴다.
그의 말을 듣고 거룻줄을 끊어 선원들을 배에 남게 하고, 군인들이 죄수들을 몰살하려고 하자 바울을 살려두기 위하여 그들의 뜻을 제지하기도 한다.
이처럼 바울은 광풍으로 좌초하는 배에서 중심인물로 부각한다.
특히 14일간 굶주리고 지친 이들에게 하나님께 축사하고 떡을 떼어주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다.
이 모습은 오병이어의 현장에서의 예수님을 연상케 한다.
기근과 절망에 갇힌 이들은 바울을 통해 용기를 얻고 배불리 먹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병이어의 축사를 하고 떡을 떼어 무리에게 주었다.
그것을 배불리 먹은 무리들은 그를 임금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까닭은 표적을 본 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먹고 배부른 것은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주기 원하셨던 생명의 떡의 모형이다.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의 떡은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것이다 .
하지만 그들은 생명의 떡은 외면하고 예수님을 떠나간다.
(요 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바울을 통해 먹고 배부른 이들, 그들은 여전히 자기를 위해 살아간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먹고도 자기 살길을 찾는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선원들은 자기들만 살고자 구명정을 바다에 띄운다.
하나님께 축사한 후에 먹은 음식으로 배부른 군인들은 바울을 포함한 죄수들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듯 자기를 위한 인생의 모략을 폐하신다.
백부장의 마음을 감동시켜 바울을 살리고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 또한 살리신다.
작금의 세상은 풍랑을 만나 좌초하는 알렉산드리아 호와 같다.
33분 만에 한 명씩 자살한다는 통계와 청소년의 성적 타락과 성범죄가 유사 이래로 최고치이다.
요즘 서울 등 각 지방에서 묻지마 흉기난동이 온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자기를 쳐다봤다고 가서 찌르고, 자기보다 잘 살게 보인다고 또 찌른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 미친 듯이 살고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는 어떤가?
질풍노도 같은 광풍이 교회 안에도 불어 닥친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교회가 세상에 의해 변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잘 믹어보고자 하는 열정은 점점 식어지고 세상적으로 잘 살아보자는 욕망이 득세한다.
하나님께 축사한 후에 먹는 떡으로 배부르지만 육신에 참 만족이 없다.
단지 이생의 필요만을 구하며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떡을 말하면 어렵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다 떠나간다.
나는 어떤가?
나의 가장 참담함은 내 마음에 불어 닥치는 광풍이다.
나 자신이 말씀 앞에 깨어 있지 못하면 음란과 시기, 부정과 사욕, 탐심과 방탕이나 향락의 광풍이 나를 휘어 감는다.
영의 양식을 먹는 내 안에도 이런 죄악의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친다.
주님을 따르지만 순식간에 죄의 세력이 나의 죽을 몸을 지배한다.
잠시라도 죄의 몸을 불구로 만들지 않으면 어느 순간 죄에 종노릇 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연약한 자이다.
이것이 나의 실체다.
나는 다른 그 무엇보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본질이다.
내가 바로 하나님처럼 살려는 그 악마적 욕망과 이기심으로 불타오르는 자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그렇기에 내 안에서는 어떠한 소망도 찾을 수 없다.
이런 나는 죽은 흙이요 없음이며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도 이런 나를 뼛속 깊이 인식하고 내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날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주님의 사랑을 바라본다.
나는 어떠한 경우도 하나님의 영광 곧 그 의에 이를 수 없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곧 속량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그 의를 얻은 자 되었음을 믿는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아담의 본성으로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그 아담의 본성은 곧 내가 ‘하나님처럼’ 살려는 나의 의를 드러내었으며 그것이 나의 자기주장의지였습니다.
이런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입니다.
그런 나는 지금 지옥에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광풍이라는 고난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받을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고난의 광풍으로 나를 밀어 하나님이 주기 원하시는 그 소원의 항구인 영생의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그저 주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릴 뿐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