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김종진)이 발행하는 <월간문화재> 3월호에 조선불교 중흥조 허응당 보우 대사를 폄하하는 글이 실려 물의를 빚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봉은사 소장 문화재에 대한 명칭도 잘못 표기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전통문화의 향유권 확대와 창조적 계승을 목적으로 설립된 문화재청 산하 문화유산 전문기관이라는 점에서 시정이 시급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현재 서울 봉은사는 해당 기관에 공식 항의를 한 상태다. 봉은사 관계자는 오늘(10일) 오전 통화에서 “내부 논의를 거쳐 항의공문도 보낼 계획”이라며 “법적 대응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3월호에 ‘지명이 품은 한국사-말죽거리 그 누가 지은 땅이름인가’라는 글이 실렸다. 이 글에 따르면 보우대사는 당파를 업고 날뛴 요승으로 그려졌다.
특히 말죽거리 지명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면서 보우대사를 임금의 진상품으로 올라온 제주 조랑말로 묘사했다. 내용인 즉슨 보우대사가 제주에서 순교 후 조랑말로 환생해 임금의 진상품으로 과천을 지나 서울로 들어오던 중 죽을 먹고 달아났다고 해 봉은사 근처의 그곳을 ‘말죽거리’라 부르게 됐다는 것.
이에 대해 고영섭 동국대 한국불교사연구소 소장은 “말죽거리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역참들이 타고 온 말에게 죽을 끓여 먹고 쉬었다는 데서 유래됐다”며 “꿰맞추기 식으로 보우스님과 연관이 있다고 한 것은 큰 오류”이라고 지적했다. 보우스님을 ‘요승’으로 서술한 것 또한 “<조선왕조실록> 등에 나타난 유교적 입장에서 쓴 것”이라며 “스님은 평생 불교 개혁을 위해 힘쓴 순교자”라고 강조했다.
본지에 이같은 사실을 알려온 제보자도 “제목은 말죽거리 지명에 대한 내용인데 전혀 관련 없는 ‘간승’이나 ‘요승’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보우스님 내용으로 도배했다”고 지적했다.
사진=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월간문화재' 3월호 캡쳐화면.
심지어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봉은사의 ‘판전(板殿)’ 건물의 현판은 ‘전판’이라고 썼다. 이 현판은 추사의 노숙한 신필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1992년 12월 서울시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됐다. 봉은사의 또 하나의 상징인 미륵대불은 ‘석가상’으로 표기해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관계자는 통화에서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문화재 명칭을 잘못 표기한 것은 책 편집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용 부분은 현재 필자에게 근거자료를 요청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글을 쓴 필자는 “(보우스님을) 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 한 뒤 “서정억 선생이 쓴 <고금청담>이라는 책에 실린 이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 필자는 “글 말미에도 미신 같은 이야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