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이름 이름사랑 배우리 원장 아기이름짓기 작명 개명 이름바꾸기 상호짓기
한국인의 이름
□ 이름의 중요성
이름은 한 마디로 말해서 각 개인의 고유 '기호'라 할 수 있다. 무릇 모든 기호가 알기 쉽고 쓰기 쉬워야 하듯이 사람의 이름 역시 누구에게나 기억되기 쉽고 쓰기 쉬워야 한다. 그런데, 사람의 이름은 분명히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것이지만, 남이 주로 써 주므로 공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각자의 기호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은 함부로 지을 수도 없고 적당히 생각할 수도 없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 안에 받는 좋은 정신적 선물이 바로 '이름'이라고 하는 선물이다. 그 선물은 잠시 썼다가 버리는 하찮은 물건과는 너무도 다른 아주 귀한 선물이다. 일생 동안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 또 죽어서도 남겨야 할 '영원의 선물'이다. 우리가 '이순신'이나 '주시경'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받은 '이름'이라는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이 귀한 이름 선물은 그 부모로부터 받는다. 이런 점에서 그 부모는 이름을 함부로 짓지 않는다. 더러는 작명가의 머리를 빌리기도 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나 어른의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아기는 자신의 '이름'이란 선물을 오직 부모로부터 받았다고 생각을 하며 자란다. 그리고, 일생 동안 그 귀한 선물을 쓸 때마다 부모의 고마움을 느낀다. 이름에는 무한한 꿈이 담겼다. 그 속에는 그 당사자로 하여금 일생 동안 '이렇게 살아라' 하는 삶의 지표가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랑함'의 뜻이 담긴 '다솜'이라는 이름을 짓고, 해처럼 밝은 마음으로 자라나라는 뜻의 '해나'라는 이름을 짓는다. 우리 나라처럼 이름에 많은 슬기를 쏟고 그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나라는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것이다.
□ '이름'이란 말의 뜻과 그 어원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누구를 지칭하거나 호칭하는 것이 이름이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는 넓게는 성과 이름을 모두 합쳐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은 우리 나라 중세어에서 '일홈' 또는 '일훔' 등으로 표기되고 있다. '이름'이란 말은 '이르다(謂)'나 '말하다'는 뜻을 가진 옛말 '닐다'의 명사형(名詞形)인 '닐홈'이 '닐흠-일음-이름'의 과정을 거쳐 나온 말이다. 즉, 사람들이 어느 누구를 '이르는(짚어 말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닐다: (말하다) `성과 닐홈 닐우믈 즐기디 아니하고(不肯道姓名) (성과 이름을 옳게 여기지 않고) <두시언해>(초간본.八-1) `惡世예 이 닐움 어려움이 갇디 몯하니(未若惡世此止爲難) (이 이름 어려움이 악한 세상에 같지 못하니) <법화경 四-142) `可히 니르디 몯하리로소니(不可設) (가히 말씀드려 올리지 못할 것이니) <두시언해> (重九-6) `아바님 지하신 일훔 엇더하시니 (아버님이 지으신 이름 어떠신지) <요비어천가> (90)
□ 이름의 여러 가지 형태
이름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삶을 누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키큰이', '뚱뚱이', '차돌이', '갓난이'식으로 어떤 뜻을 부여하여 순수한 토박이말로 지었던 이름이 한자의 유입과 함께 한자식 이름으로 지어 나가면서 오늘에 이른다. 이름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아명(兒名) 관명(冠名), 자(字), 호(號), 시호(諡號) 등이 그것이다.
▲ 아명 아명(兒名)은 그 글자 뜻 그대로 어린아이 때의 이름이다. 달리 '유명(乳名.幼名)'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는 자연히 불리지 않게 되는 이름이다. 조선시대의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경우, '이(珥)'는 관명이지만, 아명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이 꿈에 용을 보았다 하여 '현룡(見龍)'이라 하였다. 자는 '숙헌(叔獻)'이고 호는 '율곡' 외에도 '석담(石潭)', '우재(愚齋)' 등이 있다. 특히, 아명은 대체로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염원하면서 천하게 짓는 경향이 있어 '개똥이', '쇠똥이', '말똥이' 등의 이름도 흔했다. 관명이 ‘희(熙)’였던 고종 황제의 아명이 개똥이였고, 황희(黃喜)의 아명은 도야지(都耶只)였음이 그 사례이다. 아명이 그대로 관명으로 되어 한자로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개똥이-개동(介東), 계동(啓東) *소똥이-소동(召東), 소동(蘇同) *말똥이-마동(馬銅), 마동(馬東)
▲ 관명(冠名)과 자(字) 관명은 장성해서 그 집안의 항렬에 따라 짓는 이름인데, 대개는 관례(冠禮) 후부터 불러 오던 이름이다. 자는 대체로 혼인한 후에 본이름 대신 부르는 이름으로 일상생활에서는 어른 아닌 사람들이 이 자를 불렀다. 이상은 사대부 집안 남자의 경우이고, 서민들은 아명으로 평생을 살다 가기도 하였다. 여성의 경우, 특별한 사례 외에는 출가와 함께 아명은 없어지고 대신 '충주댁', '양양댁' 같은 택호(宅號)가 따랐다.
자(字)는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관명 대신에 부르기 위해 만들었던 것인데, 이것도 역시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 호(號)
호는 자 이외에 쓰는 아명(雅名)으로 학자 ·문인 ·서화가들이 가지는 또 하나의 이름이었다. 우리 나라나 중국에서 본이름이나 자(字) 외에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이다. 2종 이상의 이름을 갖는 복명속(復名俗) 또는 본이름 부르는 것을 피하는 실명경피속(實名敬避俗)에 근원을 두고 나오게 된 이 호는 중국에선 당나라 때부터 시작하여 송나라 때에 보편화되었다. 원효의 호가 소성거사(小性居士), 낭산(狼山) 아래 살았다던 한 음악가의 호가 백결선생(百結先生)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면 우리 나라에 있어서도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호는 자기가 짓기도 하고 남이 지어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호는 아호(雅號)와 당호(堂號)로 나누기도 하는데, 이 외에 또 별호(別號)와 시호(諡號) 등도 있다. 그리고, 글 쓰는 이가 자신의 본이름을 감추고 내세워 쓰는 필명(筆名)도 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호는 대개 땅이름이나 고사 등 그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 등에 의하여 지어진다. 아호는 본래 시문(詩文) 또는 서화(書畵)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우아한 호'라는 뜻으로 일컬은 것이고, 당호는 본래 집의 이름을 뜻하나, 그 집의 주인을 일컫게도 되어 아호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조선시대까지는 호를 대개 한자로 지었으나, 한말 이후부터는 우리말(한글)로 호를 지은 사람도 많이 나왔다. 유명한 국어학자 주시경의 호는 '한힌샘'이고, 시조 작가 이병기의 호는 '가람'이다. 최현배의 '외솔'이나 전영택의 '늘봄' 같은 호도 우리 귀에 설지 않은 한글 호이다.
▲ 시호(諡號)
시호는 경상(卿相)이나 유현(儒賢) 등이 죽은 뒤 임금이 그 행적을 칭송하면서 추증하는 이름이었다. 오늘날에는 그 중에서 아명 등은 거의 없어지고 관명, 호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름을 한자로 지을 경우의 성명 3자 가운데에서 선택권은 1자밖에 없다(외자 이름도 있지만). 성과 항렬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남은 1자도 같은 항렬의 동명이인을 피해야 하고 가까운 조상의 이름에 나오는 글자도 피했다.
□ 우리 이름의 시대별 특징
오늘날까지의 우리 나라의 이름 제도의 변천은 크게 다섯 기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그 첫번째 시기가 고유 명사 사용기이고, 두번째 시기가 한문화 시기이며, 세번째 시기가 한문화 완성 시기이다. 그 다음이 일제에 의한 창씨개명 시기이고, 광복 후부터 지금까지의 한글이름 전파 시기이다. 고유 명사 사용기는 부족국가시대부터 신라 중기, 즉, 6세기 말까지 이르는 시기로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고전에 나타나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름들이 순수 우리 토박이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제대로 표기할 수 없는 우리글이 없어 이러한 이름들은 한자로 의역(意譯)되거나 차음(借音)되어 전해져 오고 있다. 이름의 한문화 시기는 그 후부터 대략 신라 통일에 이르는 시기인데, 이 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중국식 이름을 쓰고 있었다. 이름의 한문화 완성 시대가 그 다음에 오는데, 대체로 통일신라 이후가 된다. 우리 한반도에서 여러 부족들이 곳곳에 작은 나라 형태를 이루고 살 무렵, 중국에서는 진(秦)나라가 망하고, 그 유민들이 한반도로 흘러 들어왔다. 또, 한(漢)나라가 한반도의 북서쪽에 네 군현(郡縣)을 두어 다스리는 등 중국 문화의 자극 및 영향을 받게 되자, 우리 겨레는 언어와 풍습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름의 한문화 시도는 이의 하나로서 나타났으며, 그것은 신라보다 백제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완성된 것은 신라 통일 이후였다. 신라는 한반도를 통일하자, 당시 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룩했던 당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이고 알맞게 소화하였던 까닭에 이름도 당나라 사람들의 그것을 본따 보급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이름은 중국 민족의 양식을 본땄지만, 고려시대 이후 또 다른 민족의 영향을 받아 그 양식을 모방한 것도 적지 않았다. 즉, 고려 중기 이후로 몽고나 여진식 이름도 있었고, 근세 이후에 와서도 외국식 이름을 모방한 것이 적지 않게 나왔다. 중국 문물이 유입되면서부터 이름에도 중국식을 따르려는 경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나 고려 중엽 이후로는 거의 모든 한자식 성과 이름을 갖게 되고 돌림자(항렬)도 이 때쯤 생기게 되었다. 선조를 숭배하는 씨족 관념이 강한 사회에서 씨족 이름인 성(姓), 같은 세대끼리의 동지적 결속을 강화하여 그 동족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항렬에 자기 이름까지를, 단 석 자의 틀에 담아 놓았기 때문에 한국 사람의 이름처럼 조직적인 것이 없다고 외국인들도 말할 정도이다.
□ 각 시대의 이름
▲ 삼국시대 전후
이 땅에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의 이름은 토박이말이었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후 한자의 유입과 성(姓)의 보급에 따라 한자식 이름으로 차츰 바뀌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땅이름의 경우와도 상통한다. 원래, 고대의 우리 사회에는 성과 이름의 구별이 없었다. 삼국시대로 들어와 상류 계급에서 성과 이름을 갖기 시작했으나, 서민 계급에서는 대개 성이 없이 이름만 써 왔다. 거칠부, 이사부, 사다함, 아사달 같은 이름들도 그러한 예에 속한다. 사람의 이름이 한자로 바뀌는 것은 땅이름이 한자화했던 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부터 심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이름에서도 그것이 토박이 이름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다.
▲ 신라 때
신라의 시조 ‘혁거세(赫居世)'는 ‘불거뉘’ 또는 '발간누리'의 한자 표기이다. 뜻으로 풀어 보면 '밝은 세상'의 의미를 지닌다. 3대 임금 ‘유리(儒理)’와 14대왕 ‘유례(儒禮)’는 똑같은 ‘누리’의 음사(音寫)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신라의 '이사부(異斯夫)'와 '거칠부(居漆夫)'는 '이어 받은 우두머리'의 뜻인 '이사마로'와 '용감한 장수'의 의미인 '거츨머리'의 한자식 표기로 보고 있다. 법흥왕(法興王)이나 진흥왕(眞興王)도 '벌마로(원종=原宗)'와 '털보마로(삼맥부= 麥夫)'라는 이름이 따로 있었던 것으로 전해 온다. 신라 '박제상'(朴堤上)의 경우, 또다른 이름인 ‘모말(毛末)’이 그 토박이 이름이었다고 하고, 김유신(金庾信)의 두 누이동생인 '보희(寶姬)', '문희(文姬)'에게도 ‘아해(阿海)’ ‘아지(阿之)’와 같은 토박이 이름이 있었다.
▲ 백제와 고구려
백제왕의 경우도 시조왕 ‘온조(溫祚)’로부터 23대 ‘삼근(三斤)’까지는 토박이 이름의 한자 표기이고, 24대 ‘동성(東城)’부터가 한자식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백제의 3대왕 ‘기루(己婁)’나 20대왕 ‘개로(蓋鹵)’도 같은 토박이말의 다른 표기인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의 상류계급에도 토박이 이름이 있으면서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한자식 이름을 썼던 듯하다. 고구려 '을지문덕'의 '을지(乙支)'는 '웃치(상관=上官)' 또는 '엄지'의 뜻으로 유추되고 있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金首露)'도 '알띠마로'라는 이름이 원이름인 것으로 보고 있다.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토박이 이름과 한자 이름의 혼재(混在)는 고려시대로 이어지고, 다시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고려시대 이름은 통일신라시대 이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와서 성이 더 많이 보급되고, 한자식 이름 또한 그에 따라 많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1910년 5월 10일에 완성된 사상 최초의 민적부(民籍簿)에 의할 때, 그 때까지 성이 없는 사람의 수가 있는 사람에 비하여 1.3배였으니, 토박이 이름인 사람도 그만큼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까지의 토박이 이름은 주로 하층계급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 토박이 이름의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① 출산 장소에 따른 것(부엌손, 마당쇠) ② 간지(干支)나 달 이름에 따른 것(갑돌이, 정월이) ③ 성격에 따른 것(억척이, 납작이) ④ 기원을 곁들인 것(딸고만이, 붙드리) ⑤ 순서에 따른 것(삼돌이, 막내) ⑥ 복을 비는 천한 것(개똥이, 돼지) ⑦ 동식물, 어류 이름에 따른 것(강아지, 도미)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 동물 이름이다. 본인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이 그 사람 성격이나 특징 등에 의해 지어 주다 보니 조선조 학자 김정희 (金正喜)는 '추사 (秋史)'를 비롯, 503개나 되는 호를 갖기도 했다.
▲ 일제 강점기와 창씨 개명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이름 문화는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철저하게 유린을 당했다. 일본은 2차 대전 중 전시 체제를 강화하면서 당시 피지배자인 우리 겨레에 대해 물심양면으로 발악적인 압박을 가해 왔다. 황민화(皇民化) 운동을 광적으로 추진하여 우리말을 배우지도 쓰지도 못하게 하고, 공사간에 일본어만 상용하라고 강제하였으며, 우리말의 신문-잡지를 폐간시키고,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그런가 하면 징병-징용의 법을 만들어 우리의 청장년을 전쟁으로 내몰아 막대한 인명을 희생시켰다. 민족 말살 정책을 펴 그 완성편격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단행, 우리 고유의 성(姓)까지 그들식으로 바꾸게 했다. 대륙 침략과 미일전쟁(美日戰爭)을 전개하면서 발악적인 식민 정치의 마지막 수단으로 이른바 그들이 부르짖는 내선일체,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의 일환으로 우리 나라 사람의 성과 이름을 일본인식으로 고치도록 강요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인식 창씨는 입부혼인(入夫婚姻), 서양자(女胥養子) 제도와 함께 1939년 말부터 실시되었다. 그 해 11월 10일, 일제는 조선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공표했는데, 이의 핵심은 '조선인 호주는 6개월 이내에 새로 씨(氏)를 정해서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1940년 2월부터 8월까지 신고를 마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관련 조항에선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는 본령 시행 전 호주의 성을 씨로 한다'고 돼 있어 형식적으로는 조선인이 성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총독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은 조선인은 행정 기관에서 일을 볼 수 없게 하고, 물자를 배급해 주지 않는 등 각종 불이익을 주었다. 또, 각급 학교에도 입학할 수 없었으며, 겉봉에 조선식 이름이 쓰인 우편물이나 화물은 배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행정 조직과 경찰을 총동원해 가정마다 일일이 창씨개명을 종용, 강제적으로 이를 밀어붙였다. 결국 이같은 험악한 분위기 안에서 전체의 약 40퍼센트에 달하는 320만 호의 조선인이 이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성도 이렇게 바뀌어 버렸지만, 또 많은 이들은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어야 했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전형이 '영자(英子)', '정자(貞子)'식으로 여자 이름의 끝에 붙는 '자(子)'자였다. 사대부집 여자 이름에는 '희(姬)', '경(卿)', '옥(玉)', '주(珠)'자 등이 보통 씌었고, 상인 계급에서는 '간난이', '입분이', '언년이', '아지(아기)' 등으로 보통 명사처럼 붙여 왔던 여자 이름들이 하루아침에 '춘자(春子)', '화자(花子)' 등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일제의 영향으로 여자 이름에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는 이 '아들자(子)'자 외에 '가지지(枝)'자도 있다. 또, 남자 이름으로는 '랑(郞)'자, '웅(雄)'자, '식(植)'자, '일(一)'자 등이 많이 씌었다.
▲ 광복 후 우리식 이름의 정착
1945년 8월, 2차대전 일본의 패망에 따라 우리가 광복을 맞고 그 한 달 후부터 미군정(美軍政)이 개시되었다. 그리고, 1946년 10월 23일 조선 성명 복구령(朝鮮姓名復舊令)이 법령 제 122호로서 공포되자, 일제 하의 창씨개명으로 변경한 호적부 기재와 본령에 배치되는 모든 법령-훈령 및 통첩은 그 창초일부터 무효가 되었다. 그러나, 이름은 한번 지어지거나 고쳐지면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으면 여간해 다시 고쳐지지 않게 마련이어서 창씨개명으로 인한 성명의 원상 복구는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여자 이름은 그리 중요시하지 않았기에 '자(子)'자 등이 들어간 이름은 거의 그대로 놓아 두었고, 이미 일제시대에 새로 지어진 이름은 다시 개명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그대로 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남자 이름은 그보다는 덜해서 원상으로 돌아온 경우가 많았다. '아들자(子)'자가 들어간 일본식 여자 이름은 그 세대 여성들 이름을 특징지운 채 아직도 역사의 상흔으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무신경하게도 그 이후에 태어난 2세들에게까지 이 부끄러운 잔재를 물려주어 일본식 이름을 계속 퍼져가게 하였다. 한 조사에 의하면 아직도 지금의 여자들 이름에 '영자', '정자', '순자' 등 '자'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이름 분야에 일제 잔재가 얼마나 깊이 박여 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광복 이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흐름은 1천5백 여 년의 중국 문화에서 벗어나 순수한 우리말로 이름을 지으려는 노력들이 살아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글이름 전파 시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정부 수립도 되기 전인 1947년 9월, '금난새'라는 한글이름이 처음 호적에 올랐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해서 한글이름이 나왔는데, 이것은 대학 국어 운동 단체에서 벌인 '고운 이름 자랑하기'나 민간 단체에서 벌인 보급 운동의 결과였다. 그러나, 아직도 한자 위주의 전통 작명법을 따르려는 집안이 많고, 집안의 항렬-족보 의식 등이 뿌리깊게 남아 있어 한글이름이 주종을 이루기엔 아직도 길이 먼 느낌이다.
▲ 인터넷 시대의 이름
바야흐로 대중문화, 국제화,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예명이나 PC 통신, 인터넷 ID가 또다른 이름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미국의 헐리우드에선 '마리온 마이클 모리슨', '노르마 진'이란 진부한 이름의 배우들이 '존 웨인', '마릴린 먼로'라는 예명으로 대스타가 됐고, '신성일'이란 예명이 너무 유명했던 한국의 배우는 국회의원 출마를 하며 '강신영'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강신성일'이 됐다. 또 '1524', 'syh'처럼 의미 있는 숫자나 영문이름 첫자를 따거나 '흑장미' '데릴라' 'momo', 'newspoet' 등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에 따라 고른 통신 ID들은 지방이나 지구촌 건너편 이들까지도 친구로 만들어 준다. 그런가 하면 성명학을 기초로 한 작명소들이 인터넷에도 등장, 부모들이 집에 앉아서 이름을 지어 받을 수 있다.
□ 한국 이름의 특징
(외국 이름과 비교) 우리 나라 현재의 이름은 성을 포함하여 거의 3자로 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중국 사람들의 이름이 거의 세 글자 이름이다. 일본은 이와는 조금 달리 네 글자 이름이 많고, 더러는 5 글자, 6 글자도 있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성을 앞에 넣는 것은 우리 나라와 같다.
▲ 서양의 이름짓기
서양의 이름은 대개 성을 이름 뒤에 붙인다. '죠지 워싱톤'이라고 하면 '죠지'가 이름이고, '워싱톤'이 성이다. 이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들이 미국 같은 나라에 가게 되면 그 곳에 관례대로 '박찬호'를 '찬호박'식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는 우리 나라와 달리 이름 글자 수의 제한을 크게 두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아주 짧은 이름도 있고, 아주 긴 이름도 있다. 서양 사람의 이름은 기본적으로 두 이름으로 구성돼 있다. 즉, 개인을 나타내는 퍼스트네임(first name)과 가문을 나타내는 가명(家名.family name)의 두 이름이다. 예컨대, '조지 스티븐슨'이란 이름에서 '조지'는 그 개인의 이름이요, '스티븐슨'은 우리네의 성씨와 같다고 할 그 집안의 공통 이름이다. 퍼스트네임은 대개 세례명으로서 '크리스찬네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고대 로마인은 셋 또는 넷의 이름을 가졌었다. 제1의 이름은 어른이 된 뒤에 부르는 프리노멘(praemen)이고, 제2의 이름은 그 본인이 씨족의 한 사람임을 나타내는 노멘(noman)이다. 제3의 이름은 본래 개인의 본명이었으나, 나중에 가명으로 사용되기에 이른 코그노멘(cognoman)이었는데, 거기에 또 본디의 씨족명과 관직에 의하여 수여된 이름이 부가되었다. 아라비아 사람은 더 많은 이름을 가졌다. 유럽 사람들의 인명은 본디 공통하였으나, 나라에 따라 부르기-적기 들의 변화를 거친 것이 많아 같은 이름이라도 상당한 음(音)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나오게 되었다. 예를 들어 '가장(家長)'이라는 뜻의 영어의 '헨리'는 라틴어의 '헨리쿠스', 독일의 '하인리히', 프랑의 '앙리', 이탈리아의 '엔리코', 스페인의 '엔리케', 덴마크의 '헨드리케' 등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나라에만 창씨개명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 1940년대 유럽이나 미국의 유태인들 중에는 나치의 압박을 피하거나 사회적 출세를 위해 유태인식 이름을 스스로 버린 경우도 많았다. 하긴 이름을 꼭 하나만 가졌던 것도 아니다. 대혁명으로 자유와 평등을 쟁취한 나라 프랑스가 사람의 이름과 성(姓)에 관해서만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보수적이다. 수백 년 동안 프랑스 사람은 이름을 400여 개 안에서만 골라야 했다. 이 목록에서 가장 많은 것은 '장'(요한), '피에르'(베드로), '조세프'(요셉) 같은 기독교 성인 이름이나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다. '세자르'(카에사르) 같은 고대사의 인물, '앙리'(헨리), '에두아르'(에드워드)처럼 중세 이전에 흔히 쓰던 이름, '아실'(아킬레스) 같은 신화 속 인물의 이름 등도 들어 있다. 1993년에야 법이 개정돼 이름 제한이 풀렸다. 프랑스에 있는 성은 25만개쯤이다. 외국인이 귀화할 때는 성을 프랑스식으로 바꾸도록 당국이 요구할 수 있다. 성은 프랑스말로 ‘파트로님’이라고도 하는데 '아버지 이름'이라는 뜻이다. 한자의 성(姓)과 씨(氏)가 모계 중심 사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당연히 프랑스에서는 절대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돼 있다. 미혼모 소생만은 예외적으로 어머니 성을 따라도 된다. 자녀에게 어머니 성을 아버지 성 다음에 붙여 줄 수는 있어도 그 다음 대에 계승되는 것은 아버지쪽 성이다. 그러나, 최근 뉴스를 보면 ‘파트로님’이 곧 제 뜻을 잃게 될 것 같다. 프랑스 하원이 01년 11월 초 어머니 성 따르기를 허용하는 법안을 가결했기 때문이다. 1994년 유럽 인권 법정이 아버지 성만 계승하는 것을 ‘차별’로 간주했고, 유럽에서 이 ‘차별’이 남아 있는 곳은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 몇 나라밖에 없다. 어머니 성 따르기가 우리에게는 먼 옛날에 이미 있었다. 가락국 개조이며 김해 김씨 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은 바다 건너온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았다. 왕자 가운데 둘이 어머니를 위해 허씨 성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 후손 김해허씨는 김해 김씨와 한 혈족이라 하여 통혼하지 않는다. 이슬람권에서는 성이 없는 대신 자기 이름 뒤에 아버지 성을 붙인다. 그래서, 이름이 길어지는 경향이 많고, '모하멧'이니 '오사마'니 하는 흔한 이름도 아주 많다. 예를 들면, 지난 01년 9월 발생한 미국 테러 사건의 배후 인물로 떠오른 '오사마 빈 라덴'은 정식 이름이 아니다. 그를 지칭하는 이름을 ‘빈 라덴’으로 부르고, 표기하고 있지만 아랍권 사람들은 정해진 성이 없고, ‘~의 아들’이라는 뜻의 ‘빈’을 사용한다. 즉, ‘오사마 빈 라덴’은 ‘라덴의 아들 오사마’라는 뜻이므로 그의 이름은 ‘오사마’일 뿐이다.
▲ 우리 나라의 이름짓기
우리 나라는 이름을 아주 중요시하며, 뿌리를 중시하는 민족이어서 성(姓) 더욱 중요시한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선 이름을 말할 때 '이순신', ''김정호'식으로 성을 앞에 붙인다. 거기다가 이름에 어떤 좋은 뜻을 부여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우리 나라처럼 이름에 어떤 큰 의미의 뜻을 찾아 지으려 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만 해도 그냥 다른 사람과 구분하기 위한 글자를 찾아 이름을 지을 뿐이지 그 이름에서 어떤 뜻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장졔스(장개석-蔣介石)'이나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伊藤博文)' 같은 이름에서 '개석(介石)'이나 '박문(博文)'이 그 글자 그대로의 뜻을 생각해 지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나라도 옛날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지금과는 달리 그 글자의 뜻에 그렇게 크게 얽매이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이퇴계('李退溪)'나 '지석영(池錫永)'에서 '퇴계'나 '석영'이 애초부터 어떤 뜻을 담기 위해 그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나라 이름이 외국의 이름과 크게 다른 점은 항렬(行列)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항렬'이란, 친족 집단 안에서, 세대(世代) 관계를 나타내는 서열을 말하는데, 흔한 말로는 '돌림'이라고 한다. 외국에는 이렇게 항렬을 따라 이름짓는 경우가 거의 없다. 현재 우리 나라 이름의 또다른 특징의 하나는 한자식 이름과 한글식 이름이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도 한자를 넣지 않고 짓는 이름이 있긴 하지만, 우리 나라처럼 그리 많지가 않다.
▲ 이름짓기의 새 경향
뭐니뭐니해도 우리 나라 이름의 가장 큰 특징은 성을 포함하여 대개가 세 음절 이름이라는 저일 것이다. 그러나, 한글이름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우리 나라의 이름도 이제는 두 글자의 틀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긴 이름도 그 동안 많이 나왔는데,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긴 이름은 '황금독수리세상을놀라게하다'로, 성을 포함하여 무려 13음절이나 된다. 요즘에 와선 여성도 남성처럼 활동을 많이 하므로 여성이라 하더라도 꼭 여성적 이름만을 고집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채빈', '지원', '지수', '다빈', '한솔' 같은 중성적 이름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남에게 튀어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이름을 특별나게 짓는 경우도 있다. '우리-대한-민국'처럼 오누이를 이어 짓는 경우도 있고, 외국에 나가 거주할 것을 생각해 우리말인지 외국말인지 알 수 없는 묘한 발음의 이름도 등장하고 있다.
□ 이름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
▲ 한글이름에 관한 문제
짓는 방법에 따라 한글이름을 짓는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우리말 상식이 풍부하지 못한 사람들이 지을 때 여러 가지 유의할 점을 고려하지 않아 잘못 나온 이름도 많이 볼 수 있다. 봄에 낳은 아기라는 점을 강조하여 '봄이'를 '보미'처럼 소리대로 적어 맞춤법과 관계없이 짓는다든지, '오리진'(오리지널)처럼 외국 발음을 모방한다든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러나, 요즘에 와선 우리말의 다양화를 위해 이런 것도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 한자이름에 관한 문제
한자이름에서는 사주팔자(四柱八字)에 너무 집착하는 것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주팔자는 우리 나라에서만 특별히 심하다. 이름은 음(音.소리)을 중시해야 한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짓는 데 우리 나라처럼 사주를 깊이 적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이름을 짓는 데 사주를 전혀 적용하지 않는다. 또 로마자 표기에 따른 이름을 한자로 근거로 하는 사주를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작명시에 사주 적용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 나라 많은 인물들 중에서 비교적 행복하고 평탄한 사람들의 이름들을 분석해 보면 사주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조사가 나와 있다. 사람의 행복이나 불행이 사주와 무관함을 말해 주고 있는 단적인 예다. 그래서, 이름을 전문으로 짓는 사람들 중에도 아예 사주를 배제하고 '소리'나 '획수'에 중심을 두어 짓는 사람들이 많다.
□ 건강한 이름 문화를 위하여
▲ 이름을 지을 때는 이렇게
새 시대에 어울리고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이름을 지을 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① 성씨와 어울리는 이름을 짓는다 . 이름은 공식적으로 불릴 때 '김경자', '이아름'식으로 성과 이름이 어울려 불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름을 지을 때는 우선 성(姓)과 이름(名)을 생각해서 지어야 한다. '리라', '새내', '자란', '어진' 같은 이름은 이름만 불릴 때는 좋은 이름으로 느껴지지만, 만약 고(高), 김(金), 모(毛,牟), 문(文)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 이름이라면 '고리라', '김새내', '모자란', '문어진(무너진)'이 되어 놀림감 이름이 되고 만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는 성과 이름을 아주 잘 어울려 지은 예가 된다. 강-모래 (강모래: 강의 모래) 온-민족 (온민족: 온 누리의 겨레) 금-잔디 (금잔디: 금빛 잔디) 이-로운 (이로운: 이익이 되는) 한-국민 (한국민: 한국의 백성) 안-뜰에봄 (안뜰에봄: 뜰 안의 봄) 양-나래 (양나래: 양쪽 날개) 차-돌샘 (차돌샘;차돌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샘) 그런데, 성씨에 따라서는 이름의 뜻을 엉뚱하게 이끌거나 정반대로 만들어 주는 것도 있어 성과 이름의 조화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안(安)씨 같은 경우는 그 대표적 예이다. '안'은 '아니다(不)'라는 부정을 나타내는 말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이름의 뜻을 정반대로 돌려 놓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착한','어진' 등의 이름이 따를 경우, '안착한','안어진'이 되어 착하지 않다거나 어질지 않다는 뜻으로 가 버리고 만다. 따라서, 이러한 성씨를 가진 사람은 용언(用言;동사-형용사)으로 짓지 말고,명사를 이용해 짓되, 가급적 '안'이 부정의 뜻으로 새겨지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② 복합적 뜻을 갖춘 이름을 짓는다. 이름은 단 몇 글자로 좋은 뜻을 요약하는, 언어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름 속에 좋은 뜻, 그것도 더 많은 뜻을 담고 싶어한다. 그러나, 많은 뜻을 단 두세 글자 속에 담아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름 재료 중에서도 명사가 주로 쓰이는데, 이 명사는 대개 '하늘', '바다', '시내'처럼 두 음절의 것이 많아 그 자체로도 이름이 되기 때문에 복합적 뜻을 갖춘 이름을 짓자면 자연히 이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복합적 뜻을 갖춘 이름을 지을 때는 '해', '별', '달', '솔', '내(川)', '샘', '한(大)', '새(新)', '얼', '울(울타리)', '참'처럼 단음절 명사를 많이 이용한다. *참샘; 참(진실)이 솟아나는 샘 *한솔; 큰 소나무 *새한울; 새롭고 큰 울타리 두 음절 이상의 낱말들을 조합해 만들 때는 이름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 낱말의 대표음(代表音)을 뽑아 이름을 만든다. '예쁘고 슬기롭게'라는 뜻을 담고 싶을 때 '예쁘다'의 '예'와 '슬기롭다'의 '슬'을 대표음으로 삼아 '예슬'이란 이름을 만드는 것이다. *나리울; 개나리 울타리 *우솔; 우람한(큰) 소나무 *다사나; 다사로운 사랑 안에 자라나 ③ 형제-오누이를 이어 짓는다. 아기를 하나만 낳을 경우는 필요 없지만, 둘 이상을 낳을 때는 이름도 가족 계획과 함께 미리 계획을 세워 짓는 것이 좋다. 한자식 이름에도 돌림자(항렬자)를 쓰듯이 한글이름에도 일정한 돌림틀을 정해 지으면 그 이름들이 훨씬 돋보이는 장점이 있다. *대한-민국-만세 *그루-송이 (한 그루-한 송이) *머루-다래 (머루랑 다래랑 먹고) *참-아름-다운 (참 아름다워라. 찬송가 가사) ④ 조금은 특이한 이름을 짓는다. 이름은 가급적 흔한 것을 피해 조금 특이성을 부여하는 것이 좋다. 이런 이름을 짓고자 할 때는 꼭 두 음절의 틀에 묶일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너무 길어도 좋지 않다. *속; 겉보다 속(내용)이 좋은 사람이 되라고 *참; '진실'의 뜻 *깁피; '깊이'의 옛말 *어지루; '어질다'의 '어질'을 연철시켜 만든 이름 *갈잎소리; 갈잎의 소리 현재, 우리 나라에선 이름이 무한정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성과 이름을 합해 여섯 글자까지만 지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따라서, 이름만은 다섯 자까지 지을 수 있는데, 황보, 독고, 남궁, 선우 같은 두 음절의 성을 가진 이는 넉 자까지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있기 전에 이미 지어 놓았던 일곱 자 이상의 이름은 그대로 두도록 했다. 지금까지 나온 아주 긴 이름의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강)뜰에새봄결 *(박)차고나온노미새미나 *(금)빛솔여울에든가오름 *(윤)하늘빛따사로움온누리에 *(황)금빛독수리온세상을놀라게하다.
▲ 좋은 이름이란
한자이름이건 한글이름이건 '좋은 이름'이란 다음과 같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① 좋은 뜻을 갖춘 이름 ② 부르기 쉬운 이름 ③ 성과 이름이 조화를 이룬 이름 ④ 외우기 쉬운 이름 ⑤ 놀림감이 되지 않는 이름 ⑥ 부모의 소망을 담은 이름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한국민이므로 한국적인 이름을 갖는 일일 것이다. /// (글.배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