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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순 여행 스케치 뷰 제 212화]
♤ 제 목 : 소백산 삼가야영지 비박여행
♤ 언 제 : 2024년 1월 27~29일
♤ 장 소 :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로 509
♤ 누구랑 : 친구들이랑
♤ 목 차
01. 소백산 삼가야영장
02. 비로사(毘盧寺) 가는길
03. 비로사(毘盧寺)
04. 삼가야영장에서 저녁식사
05. 삼가야영장 야간 캠핑장 풍경
06. 소백산 비로봉 해돋이 탐방
07. 삼가야영장 체크아웃
08. 영주 부석사(浮石寺) 탐방
# 프롤로그
12월말 중국 철차산, 적산 3박4일 여행
다녀온 뒤, 목 감기와 기침감기로 2주간 내내
고생하면서 드문불출 하였던바,
1 월달 산행 및 비박여행 못하노라니
몸도 베기고, 좀이 쑤셔서 근질 거리던 차,
마침 형합친구 비박가자며 연락온다
옳다거니 하고 참여키로 하였는데
어딘고 하니 경북 영주 소백산 삼가야영장
소백산도 처음, 영주시도 초행길
초행길 그것도 동계 비박여행
더군다나 생소한 친구들과의 첫 만남으로
설레임 가득안고 애마타고 출발한다
천둥산 휴게소, 단양팔경 휴게소
초행길 낮선도시 여행 가는길 휴게소는
일부러 경험하기위해 들어간다...ㅋ
왠지 휴게소 규모가 다소 작다는 느낌
약 세시간 넘게 걸려서 네비 girl의 안내받아
영주 인근에 도착한다...
영주 인근에 들어서자
저 멀리 소백산으로 보이는 산등성이
정상 부위에 하얀 눈 보이나니 벌써부터
기대감 불러 일으킨다...ㅎ
1. 소백산 삼가야영장
삼가야영장에 도착...
먼저온 친구 세명과 인사 나누고
관리직원 안내받아 미리 예약해 놓은 야영장 B9 사이트에 먼저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영삼 친구와 같은 데크에 텐트 설치완료 후,
야영장 주변을 탐색하여 본다
야외 개수대,
혹한기에는 동파염려 폐쇄 사용금지
건너편 실내 개수대 이용
데크 사이트 야영장 바로 옆에는
A구역 하우스 10여동 계곡따라 줄지어 설치 간격이 너무 가깝다는 느낌 들기도...
한 쪽에는 "풀 옵션 캠핑장"이 따로 있었고,
국립공원 야영장 치고는 다소 아담한 크기로
협소한 탓에 소음 걱정도 ...ㅋ
잠시후,
함께할 친구들이 속속 도착하며 일반야영장
B구역 8개 사이트에 자리를 메꾼다...ㅎ
우리들의 본부센타
대형 피피형 쉘터 진지구축 완료 하노라니
내부공간이 어찌나 넓은지 참가자 18명 거뜬히
수용 하기에도 넉넉 했다요...ㅎ
우리 친구들의 B 구역 사이트
야영장 텐트 친 풍경 이모저모
점심시간…
공동으로 떡국 끓여먹으며 언 몸도 녹이고나서
소화도 시킬겸 비로사까지 간단히 트레킹 하며
다녀 오기로 하였다
2. 비로사(毘盧寺) 가는길
비로사 (毘盧寺)올라 가는길 야영장 입구
좌측 계곡물 흐르는 청아한 소리 들려오노라니
고개를 돌려 내려다 보았더니
계곡물 얼어 흰 얼음표면 뚫여진 숨구멍
아래로 명경지수 흐르나니 소백산 산자락
따라 두루두루 거치며 내려 왔으리라
삼가 야영장 건너편 산자락 위
파란 하늘에는 흰구름도 바람에 흩날리고
있나니 찬기운이 느껴진다
삼가야영장 입구풍경 이모저모
비로사(毘盧寺)로 가기위해 야영장 입구에
있는 아스팔트 도롯가를 걸어서 올라간다...ㅎ
얼어붙은 계곡풍경 감상하며 올라가노라니
어느덧 달맞이길 탐방로 들어서고
여기서부터 비로봉까지 4.2km 남았고
삼가주차장에서 1.3km 걸어 왔더이다
주변 석벽에 메달린 고드름 감상하며
아스팔트 도롯길과 데크 무장애길 번갈아
걸으며 올라가노라니 비로사는 0.8km 남았더이다...ㅋ
3. 비로사(毘盧寺) 탐방
어느덧 소백산 비로사 일주문에 도착
일주문 지나 오르막길 올라가노라니
좌측 언덕위 상록수 나무들 사이로 비로사
전각들이 빼꼼히 보이기 시작한다
언덕 계단길 오르노라니
비로사(毘盧寺) 연륜과 과거 찬란했던
규모를 가늠케하는 커다란 바위 석축이
말해주고 있더이다...ㅎ
계단길 올라서니 비로사 전경 내부는
횡하니 전각들은 띄엄띄엄, 마당 한가운데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고목나무가 눈길을
사로 잡는데 왠지 쓸쓸함이 묻어난다...
비로사(毘盧寺) 각종 전각 풍경 이모저모
비로사(毘盧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
통일신라시대 진정(眞定)이 창건한
화엄종 절로서 신라 말에는 소백산사(小白山寺)라고도 불리었다고
가난으로 인하여 장가도 들지 못한 채
홀어머니를 봉양하던 진정은 의상(義湘)이 태백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소문을 듣고 출가하여 의상의 문하에서 화엄학 공부
「비로사사적기」에는 의상이 683년에
이 절을 개창하고 비로사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 말에는 한 승려가 중창하고 진공(眞空)을 청하여 이곳에서 살게 하였는데,
그 때 고려 태조가 방문하여 법문을 듣고
대사를 매우 존중하였고, 그가 937년
(태조 2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태조는 진공대사라는 시호와 함께 보법(普法)이라는 탑호(塔號)를 내려주었다.
1126년(인종 4)에는 왕이 김부식으로
하여금 불아(佛牙)를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고, 1385년에는 환암(幻庵)이 중창
세조 때에는 복전(福田) 5명을 두어 『화엄경』을 강의하게 하였고 1469년(예종 1)에는 김수온(金守溫)이 왕실의 복을 비는 도량으로 삼았다.
임진왜란의 병화로 인해 석불상(石佛像)
2구만이 남고 모두 불타버렸으며, 1684년
(숙종 10)에 월하(月河)가 법당과 산신각
등 40여 칸을 중창하였다.
1907년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과
사지(寺誌)가 화재로 소실,1919년에 주지 범선(泛船)이 법당을 중수하였고,
1927년에는 요사를 중건하였으며,
1932년에 다시 법당을 중수하였다.
이 절은 계단식으로 된 전형적인 산간사찰
(山間寺刹)로서 현존하는 당우로는 새로
지은 법당과 요사채뿐이다
(인터넷에서 발췌함)
비로사(毘盧寺) 전경 이모저모
비로사 석조단간지주...
진공대사 보법탑
비로사(毘盧寺) 배경으로 셀카를...ㅋ
아래 비로사(毘盧寺) 요사채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었다요
아마도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계시나 보다...ㅋ
비로사 범종...
보도당(寶道堂)
비로사(毘盧寺)를 뒤로하고 하산한다
하산길 햇님은 이미 서산으로 기울어
주변 사위는 어둠이 서서히 잠식하며
어둑어둑 해 진다
하산 완료하여 야영장에 도착
4. 삼가야영장에서 저녁식사
본부센타 쉘터 안에서 빙 둘러앉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지글지글 구워내고
구수한 두부 된장찌개에 밥 말아 먹기도 하며
각자 기호에 맞는 성인음료 마시면서 야영장
밤은 깊어만 간다
5. 삼가야영장 야간 캠핑장 풍경
삼가야영장 B구역 캠핑장엔
우리 친구들의 텐트만 있어서 좋았으나
그러나 주변 다른 하우스 이용객 들은
우리들 목소리가 커서 민원까지...ㅋ
우리들의 즐거움이 다른 사람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음을 깨닳고 다음부터는
공공장소에서는 유념을 해야겠다요
6. 소백산 해돋이 탐방
새벽 4시부터 데크 밟는 저벅저벅 발소리
소란스러움에 눈이 떠지고 잠 에서 깼다
소백산 해돋이 탐방팀들이 일어나서
필자 텐트 옆 간이 쉘터에서 라면 끓여먹고
올라가기 前 준비를 하기위함 이었으니...ㅋ
필자는 피곤해서 올라가기로 않기로 해서
텐트 안에서 잘 갔다 오라고 외치고는 다시
눈 감고 자려고 했으나 다시 잠자리에 들기
에는 이미 틀려 버렸다요...ㅎ
아래 사진은 필자는 올라가지 않은 관계로 형합친구와 다른 친구들이 찍어온 사진을
모셔와 올려 놓았음을 밝힘니다...ㅋ
소백산 중턱 전망대에서...
소백산 정상 부근에
피어있는 상고대 풍경 이모저모
소백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
소백산 비로봉 해돋이 풍경 이모저모
소백산 비로봉 정상비석에서 친구들...
새벽부터 고생하며 소중히 찍어온
친구들의 사진으로나마 감상하며
올해 소백산 탐방을 대리만족하여
봅니다...ㅋ
다녀온 친구들께 감사드립니다...^@^
7. 삼가야영장 체크아웃
아침 8시경 일어나서
간이 쉘터 안 청소를 하고 모닝커피
한잔 마시고 아침 먹을 준비를 한다
본부센타 쉘터 內에서 고등어 구이와
시원한 김치 콩나물국으로 어젯밤 달렸던
속 을 풀어주는 해장을 하였다...ㅋ
각자 텐트 철거를 하고 체크아웃 완료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삼가야영장
캠핑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ㅎ
8. 영주 부석사(浮石寺) 탐방
삼가야영장 뒤로하고 시간을 내어
인근에 있는 영주 부석사(浮石寺)
탐방 하기로 하였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은행나무들이
좌우로 도열하면서 방문객을 반겨주고
있었으나 낙엽 떨어진 나무는 차갑고
웬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길을 올라간다
태백산부석사 (太白山 浮石寺)란
현판을 걸고있는 부석사 일주문을
통과하며 들어선다
은행나무길은 지금은 삭막하기 그지없지만
가을되면 노란색으로 물들어 울창한 풍경이
가히 절경을 이룬다고 하여 가을에 다시 한번
방문해 봐야 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져본다
부석사 당간지주 (浮石寺幢竿支柱)
천왕문(天王門)...
사천왕
원래는 고대 인도에서 세계의 수호신이었던
것을 불교가 수용한 것
동방의 지국천왕, 남방의 증장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북방의 다문천왕
사천왕이 천왕문 안에서 눈 치켜 뜨고서
지나가는 방문객 감시를 하고 있구나요...ㅋ
천왕문 지나 돌계단이 놓여있고,
그 위로 또 돌계단이 부처님 만나기가
이토록 쉽지 않나니 그 옛날 불교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짐작이 간다요
필자는 무량수전으로 곧바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지않고 좌측 석축을 따라
차도를 걸어 올라가기로 하였다
오르막 길을 올라오노라니
관음전이 좌측에 자리하여 있고,
우측으론 무량수전 가는길이 놓여 있었다
무량수전 가는 길목에
웬 커다란 굴뚝이 보이는데 전각과 많이
떨어져 있어서 용도가 궁금 하였다는...ㅋ
그냥 소각장 일 수도 있겠다는...ㅎ
무량수전 가는길 풍경 이모저모
우측 방면 전경 보노라니
구중궁궐의 축소판이 따로 없었다는...ㅎ
부석사(浮石寺) 범종루(梵鐘樓)
삼성각(三聖閣)
부석(浮石)에 얽힌 사연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를 떠난 의상은 상선(商船)을 타고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어느 신도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 집의 딸 선묘(善妙)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
선묘는 그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를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웠다.
의상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지엄(智儼)을 찾아가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그 뒤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다시 선묘의
집을 찾아 그 동안 베풀어준 편의에 감사를
표하고 뱃길이 바빠 곧바로 배에 올랐다.
선묘는 의상에게 전하고자 준비해 두었던
법복(法服)과 집기(什器) 등을 넣은 상자를 전하기도 전에 의상이 떠나버렸으므로,
급히 상자를 가지고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배는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선묘는 의상에게 공양하려는 지극정성으로
저만큼 떠나가는 배를 향해 기물상자를 던져 의상에게 전하고는, 다시 서원(誓願)을 세워
몸을 바다에 던져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는
용이 되었다.
용으로 변한 선묘는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옹호하고 다녔다.
의상이 화엄의 대교(大敎)를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500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다.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뒤에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선묘용이 변화했던 바위라고
전한다.
전설따라 삼만리~~~~ ㅋ
무량수전 옆 모습
무량수전 처마 밑 귀공포
천년사찰이라 일컬으면서
목조건물이 천년이상된 건물이 현존하는
경우는 일본과 중국에 일부 있다고 한다
국내에는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건물을 꼽는데,
그 연대를 밝힐수 있는 근거로 상기 사진
귀공포의 생김새로 여러 학자들이 연구하고
사료를 찾아 중국것과 비교검토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확실한 근거는 밝히지 못했다나
뭐라나...ㅎ
무량수전 앞 마당에서 아래 전각 바라보니
과거 사세(寺勢)의 규모가 만만치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었다
무량수전(無量壽殿)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부석사의 중심 법당
무량수는 태어남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뜻 한다.
고려 공민왕이 썼다는 현판
무량수전(無量壽殿)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몇 안 남은 고려시대의 건축물로 고려시대
중기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서로
누가 더 오래되었나로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는데, 무량수전이 언제 건립됐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중수 기록을
통해 추정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1376년에 진각국사
(眞覺國師) 천희(千熙)[1]가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전통 건물은 보통 짓고 나서 100~150년 후에 수리하기 때문에 건립 시기는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이를 것으로 본다.
봉정사 극락전은 136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일반적으로는 봉정사 극락전이
조금 더 오래되었다고 여겨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만 하는 것이다.
봉정사 극락전이 한국 건축의 구조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한국 건축의 형태, 비례미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순수한 건축물로서 완성도를 본다면 무량수전
이 더 급이 높고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확실하게 창건연대가 정확히 밝혀진 것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은 예산 수덕사 대웅전
(국보 제49호)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1962년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인터넷에서 발췌함)
무량수전 처마 밑
풍경은 오래되지는 않은듯 보였다
부석사(浮石寺) 안양루(安養樓)
위 로 올라가면 조사당과
의상대사 지팡이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그냥 패쓰하고 말았다
부석사 삼층석탑
탑은 원래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하기위해 세운 축조물을 말한다
2단의 바닥돌 위 3층 탑신을 세운
구조로서 보물 제 249호
탑 은 법당 앞쪽에 세우는것이
일반적인데 무량수전 동쪽 언덕에
위치해있어 이채롭다
삼층석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거북 약수터에서
한 바가지 담아 한 모금 마셔 보았는데
물이 차갑지않고 오히려 마치 미온수
처럼 시리지 않았다요...ㅋ
무량수전 아래로 내려가면서
우측 안양루 측면을 바라보았다
전각 기와 지붕에
와송이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ㅋ
세월을 가늠키 어려운 석축 따라 내려간다
아랫쪽에서 보는 안양루 현판은
봉황산부석사(鳳凰山浮石寺)라
적혀 있었다
쌍 삼층석탑
안양루 아래 좌/우 쌍 삼층석탑인데
원래는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200m에
절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1966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천왕문과 안양루 사이에 있는
중간 문 통과하고나서 내려다 보이는
아래풍경 이모저모
천왕문을 통과하노라니,
앞서 내려가는 친구들이 보이고,
은행나무 사잇길에 있는
친구들이 포즈를 취하길레 찍어본다
일주문을 지나고,
옹기나라 도예공방을 지나치며
내려가노라니 어느덧 하산완료하여
부석사 입구 공영주차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영주
삼가야영장 캠핑과 연계 부석사 탐방
공식 일정을 무사히 모두 마치게 된다
이것으로 영주 삼가야영장 캠핑, 부석사
탐방 1박 2일 여행기를 갈음코져 합니다...^@^
# 에필로그
새해 갑진년(甲辰年)을 맞이한지 세월이 유수라던가 어느덧 한 달 다 되어가던 와중 형합친구 소개로 나들이 백캠핑 전문밴드에
가입하여 처음 캠핑 따라 나섰지
낯선이들과 첫 만남이란
낯가림 많이 하는 필자로선 항상 걱정하며
불안감과 설레임이 공존했었지
막상 만나보니 갑장이라는 동질감
같은 세대로서 걱정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금세 친구로 동화되는 느낌이 들었지
어색함의 해결방법은 술 한잔 나누노라면
금새 술기운과 함께 분위가 달라진다는걸
우리는 살면서 자주 경험 했었지
기존 친구들의 신입회원에게 베푸는
배려심과 친절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모든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 한다는...ㅎ
경북 영주라는 도시 초행길
소백산 삼가야영장 동계캠핑 첫 경험
좋은 친구들과 함께여서 즐거움 배가
되었음은 물론 행복했더이다
게으름 늘어서 자꾸만 꾀만 남나니
새벽녘 소백산 비로봉 해돋이 탐방 다녀오지
못함 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나마 비로사까지 트레킹하며
탐방하노라니 나름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더이다
영주 부석사 탐방 평소 시간되면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이번 기회를 만들어준 친구
제위 여러분께 감사를 표해 본다는...^@^
좋은 친구들 덕분에
좋은 캠핑여행
행복한 추여행억으로
기억되리라
다음을 기약하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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