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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업가로 다듬는 세 기준
우리는 전업 작가가 아닙니다. 사회사업가입니다.
사회사업가가 쓰는 글의 목적은 훌륭한 문장으로 만든 작품이 아닙니다.
바르게 실천하려는 도구로 글을 씁니다. 그런 사회사업가이기에 글을 내놓기 전에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사회사업인지 살피고, 문제될 내용은 없는지 살피고, 부끄럽지 않을지 살핍니다.
첫째, 사회사업인지 살핍니다.
사회사업은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고 더불어 살게 돕는 일입니다.
사회사업가의 기록은 당사자가 복지를 이룬 이야기,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가 핵심 주제입니다.
퇴고하며 이런 글인지, 이것이 잘 드러났는지 주의 깊게 살핍니다.
우리 글의 목적은 문학작품이 아니고 사회사업가는 문학 작가가 아닙니다.
사회사업가로서 ‘잘’ 쓴 글은 문장으로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글 실력이야 꾸준히 읽고 쓰면 나아지기 마련입니다.
사회사업 글쓰기의 중심은 당사자의 삶과 지역사회 사람살이입니다. 이것이 글에 선명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이런 글 반대에는 사회사업가가 활약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흑백 풍경의 당사자를 배경 삼아 화려한 색의 사회사업가가 주인공인 이야기입니다.
이런 글을 아무리 뛰어난 문장으로 기록한들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 내용을 훌륭한 글 솜씨로 썼다면 오히려 두루 읽힐까 두렵습니다.
둘째, 문제될 내용이 없는지 살핍니다.
현장에서는 불합리한 상황에 처한 이를 만날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옮겨 적는 가운데 주의하여 살피지 않으면 그 기록으로 문제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당사자는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그 상대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으로는 판단하기 조심스럽습니다.
어떤 이의 잘못을 적을 때, 그 이야기의 당사자는 변명할 말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것을 묻고 듣지 않은 채 기록하는 건 위험합니다.
명백한 잘못이 있다고 해도 역시 조심합니다. 그 이야기를 쓰는 가운데 그 사람이 달라졌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공개적으로 자신을 비판하는 그 글이 그 사람을 더욱 강퍅하게 만들지 모릅니다.
셋째, 부끄럽지 않을지 살핍니다.
우리글의 독자는 분명하다 했습니다. 동료 사회사업가이기도 하지만 그 글의 당사자가 읽을 때를 상상합니다.
당사자를 돕겠다는 사회사업가의 이야기인데 당사자에게 보여주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에게 보여주어도 부끄럽지 않을지 살핍니다. 그런데,
“여자 노인의 안구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느 사회사업가가 쓴 글입니다. 어르신을 섬기는 선생님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과정을 글로 옮기는 가운데 그날 일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가까이 만나는 어르신을 ‘노인’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여자 노인’이라니, 생물학적 용어 같습니다. 그냥 ‘할머니’라 쓰면 좋겠습니다.
사회사업가가 ‘할머니’를 ‘여자 노인’이라 부르면, 할머니를 나와 다른 특별한 존재로 여기기 쉽습니다.
객체로 여길 위험이 크다는 말입니다. 감정 교류가 없는 서류상에 존재하는 대상일 뿐입니다.
‘안구’ 역시 그렇게 우리 일의 대상이 되어버린 어르신의 눈을 부르는 건조한 표현입니다.
그냥, ‘할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하면 좋겠습니다. 말이 의식을 만들기에 신중히 살핍니다.
어느 지적 약자를 거든 사회사업가의 기록 첫 문장이 이러했습니다.
‘김구슬, 지적장애 2급, 알코올 의존증, 60대 남성, 독거노인, 집중 사례관리 케이스….’
이 글을 읽는 할아버지는 그 마음이 어떨까요?
나를 돕겠다고 찾아온 사회사업가가 나와 만남 뒤 남긴 기록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은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에 아무리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더는 읽고 싶지 않은 게 사람의 심리입니다.
당사자의 강점에 주목하고, 당사자의 것으로 돕겠다고, 희망을 말하겠다고 찾아온 사회사업가의 말이 거칩니다.
어떤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는지 오싹합니다.
이렇게 적은 뒤에 당사자와 둘레 사람의 강점이 보이기 쉽지 않습니다.
당사자의 객관적 정보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김구슬 어르신은 웃음이 많고, 인정이 넘치며, 손재주가 뛰어나기도 합니다.
사회사업가는 이를 묻지도 않았고 적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묻습니다.
말과 글로 의식을 깨우지 않으면 점점 당사자의 하소연 듣는 말귀가 어둡게 됩니다.
‘곡선의 시선’에 중심을 두고 쓰고 다듬기
사례관리 상담일지와 같은 기록은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습니다.
감정은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 주장의 의도가 짐작이 가지만,
사회사업가는 강점과 가능성 따위를 바라보는 ‘곡선의 시선’을 가진 존재입니다.
적극적으로 당사자를 향한 자기 생각과 실천 의도와 소망 따위를 기록합니다.
사회복지사가 초기면담을 위해 당사자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쌓여 있는 쓰레기, 널브러진 가구, 나뒹구는 술병…. 그 속에서 강점을 생각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가정방문을 마친 사회복지사는 이제 복지관으로 돌아와 기록합니다. 그는 무엇을 쓸까요?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 따위를 기록하는 이는 직선의 시선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면, 곡선의 시선을 가진 이는 그 문제 너머에 감춰진 다른 모습을 보려고 애씁니다.
곡선의 시선을 가진 사회복지사는 문제를 소극적으로 기술합니다.
그런 눈으로 당사자와 그 환경을 바라본 사회복지사는 초기면담에서 섣부른 판단을 보류합니다.
답답한 모습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싶고, 꿈을 이야기 하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싶고,
만나면 좋을 사람을 제안하고 싶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적극적으로 서술합니다.
직선의 시선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 상황이 오래 되었다면 이미 많은 이가 당장 눈에 보이는 어려운 이야기를 해왔을 겁니다.
우리라도 다른 시선으로 보고 말하면 좋겠습니다.
문제 상황이 심각하다면, 그래서 우리도 어찌할 수 없다면 더욱 문제를 외면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관점에 따라 방법이 달라집니다. 관점은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복지관 사례관리 공부노트> (김세진, 구슬꿰는실, 2022)
‘김구슬 씨는 술을 좋아한다.’와 ‘김구슬 씨는 알코올중독자이다.’는 완전히 다른 뜻을 담고 있습니다.
‘구슬이는 지각했다.’와 ‘구슬이는 지각대장이다.’처럼,
마주한 상황을 기록할 때 사회사업가는 학습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자기 철학을 바탕으로 기록합니다.
우리는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당사자의 ‘생태와 강점과 관계’를 마음에 두고, 이를 찾고 생동하려는 마음으로
‘의도와 근거와 해석’을 중심으로 작성할 뿐입니다.
강점으로 치우친 사람입니다.
무엇을 중심에 두는 가를 세우고 다듬어 가면, 무엇을 어떻게 쓸지가 어렵지 않게 다가옵니다.
좋은 사례
그렇다면, 김구슬 어르신 기록을 어떻게 시작했어야 할까요?
장애인주거시설 ‘월평빌라’ 입주인 서은성 씨를 도왔던 임우석 선생님 글에서 희망을 봅니다.
서은성 씨를 소개하는 첫 글이 이러했습니다.
은성이는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열여덟 살 남학생입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야구 배구 같은 스포츠 중계와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도서관에서 혼자 책 보는 것도 즐깁니다. 무엇이든 혼자 해보려 하고, 스스로 해낸 것에 대해 기뻐할 줄 압니다.
은성이는 부산에서 살다가 사정이 있어 2010년 3월 2일에 월평빌라로 이사 왔습니다. 부모님과 동생은 부산에 삽니다.
뇌병변장애가 있어 식사와 용변 같은 일상생활에 직원의 도움이 부분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휠체어를 스스로 움직이고, 목욕도 스스로 합니다.
글을 완벽히 읽고 쓰지 못하지만,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는 없습니다.
특히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면 끝없이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2015년 12월 현재 샛별중학교(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또래들에 비해 학교를 조금 늦게 들어갔습니다.
평일에는 대부분 학교에서시간을 보냅니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조금 일찍 하교해서 학원에 갑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드립니다.
「너의 바다가 되어줄게」 (임우석, 구슬꿰는실, 2020)
「마라톤 갑니다」에서 정진호 선생님도 이보성 씨의 ‘집안일’을 지원하려할 때, 그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올해 스물여섯, 이보성 씨는 강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관심이 있으면 무엇이든 선뜻 하려 하고, 또 잘 해낸다는 겁니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니 쉽게 해냅니다. 그 기쁨을 엿보는 일이 즐겁습니다.
집안일도 그렇습니다.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인데 그동안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보성 씨와 올해를 계획하며 ‘집안일’을 열심히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잘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망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설거지와 청소, 빨래, 옷장 정리…. 하나씩, 조금씩 스스로 하도록 권하고 거듭니다.
‘해야 합니다’라거나 ‘하세요’ 하지 않고, ‘같이 해봅시다’ ‘정말 잘하네요’ ‘한 번 더 해볼까요?’ 하니
이보성 씨도 관심을 가지고 집중합니다. 집안일도 가벼운 마음으로 하니 즐겁습니다.
누구나 집안일은 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하루를 보내며 매일 마주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보성 씨가 그 일을 자기 손으로 스스로 했으면 좋겠고, 지금처럼 즐기며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보성 씨에게 익숙해졌을 때, 그때는 ‘자기 일’로 여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머지않은 그날을 기다립니다.
「마라톤 갑니다」 (정진호, 구슬꿰는실, 2020)
이 글을 함께 읽은 여러 선생님이 은성 씨와 보성 씨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만약 두 선생님이 사정이 생겨 일을 멈춰야 했을 때,
새롭게 은성 씨와 보성 씨를 지원하는 사회사업가는 이 글을 읽고 같은 마음이 들 겁니다. 기대와 설렘이 교차할 겁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사람들은 마리코를 장애아라고 부른다.
마리코는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병을 앓고 있어서 표정조차 읽기 어렵다.
웃고 있어도 화를 내도 전혀 알 수가 없다. 함께 그림을 그린다.
함께 만들기를 한다. 마리코는 크레파스를 제대로 쥐지 못한다. 가위질을 하지 못한다.
정말 답답하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길을 걷는다. 온몸으로 격렬한 춤을 추듯이 걷는다.
겨우 몇 백 미터를 걷는 데에 지루할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속이 터지겠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생각없이 "저런 애는 무슨 낙으로 살까?" 하고 빈정거리면,
심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람을 비난하기 힘들다.
(...) 나는 조금씩 마리코의 생활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스쿨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을 쫓아가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마리코가 얼마나 많은 생물과 친구인지 알 수 있다.
도시락 가게 고양이한테 아침 인사를 한다. 과식을 해서 몸이 산성화되어 버린 고양이는
속이 좋지 않다. 이런 고양이에게 조릿대 잎이 좋다는 사실을 마리코는 알고 있다.
마리코가 한숨 돌린다. 운이 좋으면 나뭇잎에 앉아 쉬던 벌이 몸 속에 있는 여분의 수분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벌이 만든 그 작은 물방울은 아침해를 받아
더없이 아름답게 빛난다. 마리코는 그것을 벌의 비눗방울이라고 부른다.
채송화에게도 아침 인사를 한다. "안녕?" 하고 마리코가 수술 하나를 살짝 건드린다.
그러면 손이 닿지 않은 다른 수술까지 마리코 쪽으로 기울어지며 인사를 한다.
마리코는 채송화의 그런 습성을 훤히 알고 있다.
언어 장애를 앓고 있는 마리코의 '안녕?'은 다른 사람들 귀에는 '안녕?'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마리코의 아침 인사에서 넘치는 생명력을 느낀다. 말이 되지 못하는 말 속에
상냥함이 깃들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마리코는 겨우 몇백 미터를 걷는 동안에 수많은 생명을 발견하고 그 생명과 기쁨을 나눈다.
그런 아이에게 우리는 "저런 애는 무슨 낙으로 살까?" 하고 말함으로써 스스로
비인간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속도를 정복한 우리는 그 대신에 잃은 것이 한두 가지가 이니다.
"저런 애는 무슨 낙으로....." 라는 말은 그대로 마리코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다.
<내가 만난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
하이타니 겐지로의 글을 읽다 ‘어디선가 비슷한 글을 읽었는데…’ 싶었습니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구슬꿰는실 사회사업 글쓰기 모임 함께한 장애인거주시설 교남소망의집 신영혜 선생님 글이었습니다.
신영혜 선생님이 쓴 글 가운데 비슷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은서 씨와 함께 봉제산 을 오르기 시작한 건 작업치료 중 감각활동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감각활동은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오감 외의 전정, 고유수용감각 활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각 감각의 과다한 추구나 회피를 하는 경우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런 경우 감각통합 활동을 해 주는데 등산을 하는 과정은 전정. 고유수용성자극 및 감각 협응에 도움이 됩니다.
산을 오른 후 은서 씨가 하는 독특한 행동을 보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풀을 치는 행동이었습니다.
높고 낮은 풀들을 손끝으로 가볍게 치는 모습이었는데 ‘촉각 자극활동인가 아니면 치는 소리를 듣는 청각자극 활동인가?
집에서 단단한 장난감을 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고유수용감각 자극인 것 같았는데’ 하면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그 때 또 다른 생각이 듭니다. ‘풀들에게 인사하는 것일까?’
그 때부터 은서 씨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니 교남 안의 풀들도 종종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낮은 풀은 허리를 낮춰 치기도 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표현언어가 어려운 은서 씨가 마음속으로 ‘안녕 잘 잤니? 너 그새 많이 컸다.’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함께 따라서 살살 쳐 봅니다. 눈으로만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사회사업가는 학습하고 경험하여 깨달은 만큼 당사자와 지역사회를 이해합니다.
말과 글의 한계가 내 실천의 한계입니다. 오래도록 익숙해진 실천 방식을 바꾸는 데 기록 만한 게 없습니다.
사회사업 글쓰기는 사회사업가의 자기 실천을 글로 남기는 일입니다.
사회사업 실천의 자기 철학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사회사업가의 의도와 그에 따른 결과의 해석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이고 이념적인 행위가 글쓰기입니다.
사회사업가는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실천과 기록을 합하여 사회사업이 완성됩니다.
과장하면, 사회사업가에게 공부는 주업이요. 실천은 부업입니다.
공부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남는 게 없지만, 공부하지 않고 실천하면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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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희 시설 소식지를 준비하며 살피고 있습니다. 때마침, 올라 온 선생님 글을 보며 반성합니다. 기록의 의미를 다시 새깁니다. 고맙습니다.
윤주영 선생님께서 잘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