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예레미야(1)/사역/부르심
제목 : 예레미야 사역의 시작
성경 : 렘 1:1~10
찬송 : 324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40626 낙양교회 수요예배
렘 1: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렘 1: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렘 1:3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
렘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렘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렘 1: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렘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렘 1: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렘 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렘 1: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언약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적절한 사람을 세워 말씀을 전하는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부르심이 있고, 그 부르심에는 하나님의 사명이 담겨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남 왕국 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당시 유다 사회의 죄악에 맞서서 온갖 박해와 고통을 당해야 했으며, 급기야 나라의 멸망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멸망을 바라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기에 눈물의 선지자란 별명이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선지자로서 사역을 감당했던 것은 하나님이 절대주권으로 그를 선택하시고 소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셔서 사명의 길로 이끄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의 출신 배경
렘 1: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예레미야’는 아나돗에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입니다. 이름을 풀이하면 ‘여호와께서 세우시다’라고 합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이름에는 성씨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소개할 때 아버지를 소개하면서 ‘누구의 아들’ 그렇게 소개합니다. 즉 ‘힐기야의 아들’이나 지역을 언급하면서 ‘어디의 누구’ 즉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5km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수 21:18 아나돗과 그 목초지와 알몬과 그 목초지 곧 네 성읍을 냈으니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땅이었는데 레위인들이 거주했던 마을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제사장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세습제가 아니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이 오랫동안 많이 임하면 길게 선지자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단 한 번 임하면 그는 한 번만 말씀을 전하고 그 역할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경우는 대략 20세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 관행으로는 매우 젊은 나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이렇게 이른 나이에 선지자로 불러 사용하신 것은 그만큼 시대적 상황이 급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제사장의 집에서 자라도록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 집안은 다른 가정에 비해 분위기가 훨씬 신앙적입니다. 즉 예레미야는 어렸을 때부터 신앙적인 분위기에서 하나님을 많이 생각하는 배경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예레미야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민감한 분위기에서 자란 것을 말합니다.
렘 1: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렘 1:3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요시야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13년에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나이를 고려해 볼 때 아마도 14대 므낫세 왕 때에 예레미야가 출생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므낫세는 55년간 통치를 했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극악했고 우상숭배도 열렬하게 했던 왕입니다. 그 아들 아몬이 불과 2년 만에 죽고, 16대 요시야가 왕이 되었는데 그 시대에도 므낫세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이 불신앙과 우상숭배의 절정을 달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물론 여호와의 성전도 있었고, 제사장도 있었고, 제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종교라는 종교양식은 있었지만 내용은 여호와 신앙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예레미야의 집은 그 시대에 제사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기 선지자로 부름 받은 때를 요시야 왕 통치 13년으로 명시하는데, 그때는 BC627년 경입니다. 3절은 예레미야가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이 통치하던 때(BC609~598년)부터 시드기야 제 11년 말(BC587년경)까지 사역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불타던 때까지 사역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사역은 유다 말기 여호야김과 시드기야의 통치 시기에 집중됩니다. 유다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들이 이 시기에 많이 발생합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나라의 마지막 등대였습니다. 그는 요시야 13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 시작해서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이 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에게 등불을 끄지 않으신 것을 보여 줍니다. 유다 백성들은 거부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에 요시야와 요시야의 두 아들 여호야김과 시드기야의 이름이 나옵니다. 요시야는 그야말로 유다의 마지막 등불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5년 후, 요시야는 성전을 수리하다가 두루마리 율법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유다의 마지막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기회가 됩니다. 그런데 이 요시야의 개혁과 예레미야의 설교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요시야 이후의 왕은 네 명이지만 애굽에 붙들려간 여호아하스와 바벨론에 끌려간 여호야긴은 각각 3개월씩만 왕으로 있었기 때문에 본문에는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두 사람의 이름만 나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모두 강한 민족주의적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애국자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는 이스라엘을 위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죄에 빠졌을 때에는 이스라엘을 위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은 여호야김 때 1차로 바벨론 포로가 이루어지고, 그 아들 여호야긴 때 제 2차 포로가 이루어졌으며, 그의 동생 시드기야 때 예루살렘이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그 때 예레미야는 죄를 지은 사람은 마땅히 그 죄 값을 치러야 하고 지금이라도 바벨론에 항복해서 형을 살면 예루살렘은 멸망은 피할 수 있다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
렘 1: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선지서들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것에 대해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사 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사야가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가 보아야 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입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지 않으면 이사야가 볼 것이 없습니다.
암 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여기서도 강조점은 ‘하나님이 이상을 주셨다’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아모스가 받을 것이 있습니다.
미 1: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합 1:1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이상, 묵시, 경고, 말씀 등 다양한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공통점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든, 들려주시든, 말씀하시든 ‘주셨다’이고 인간이 보든지, 듣든지 ‘받았다’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인간이 받아서 결과적으로 “맡은 말씀”을 “에언”이라고 부릅니다. 선지자 또는 예언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말씀을 말하는 자입니다.
렘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기독교의 너무나 소중한 특징,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당연해서 종종 잊어버리는 특징 한 가지를 확인하겠습니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특징, 기독교의 가장 소중한 특징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말을 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여기서 ‘말씀하신다’는 것은 ‘설명한다, 알려준다, 가르쳐 준다’는 의미입니다. 신학적 전문 용어로 ‘계시’라고 합니다. 좀 더 크게 확장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활동하신다, 역사하신다는 의미이고 그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활동 중의 하나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입니다. 이것이 정말 감사한 이유는 하나님이 숨어 계시지 않고, 감추지 않고, 비밀로 하지 않고, 몰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 종교와는 정반대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인간이 신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활동하심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시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밝히 알려주시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예고하셔서 준비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하실 일의 내용을 모두, 전부, 온전히 알려주시는 분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계적으로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하지만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기도 하고 책망하기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전혀 자신의 감정을 섞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대로 전달하는 것은 천사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인간이기에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몸부림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선지자는 그 말씀이 먼저 자기 자신에게 고통이 되고 어떤 때는 자기가 먼저 애통하고 회개를 합니다. 선지자가 자신이 먼저 아프고 난 후에 그 말씀을 전하므로 이 말씀은 이미 백신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백신은 병균을 소나 다른 짐승에게 주사를 놓아서 그 혈청을 주사하는 것이므로 병을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이 있습니다.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은 이미 자신의 인격을 통과했기 때문에 그 안에 죄에 대한 저항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떠난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믿음으로 듣고 순종하면 바로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부르심
렘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렘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5절은 하나님이 선지자를 어떻게 준비시키시고 일하게 하시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예레미야의 소명 기사는 여호와 하나님이 대화를 주도해 가시는 1인칭 화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10대 소년인 예레미야를 찾아 오셔서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너를 선지자로 택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가 세워지는 것은 어떤 상황에 따라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사용된 세 가지 동사 (‘내가 너를 알았고’, ‘내가 너를 구별하였으며’, ‘내가 너를 새웠다’)는 사실을 공포하는 기능을 합니다. 나라가 망해 가는 시점에 유다의 선지자를 세울 필요가 있는가 되묻게 되는데,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음을 말씀하십니다. 즉 그를 망국의 선지자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BC6세기 격동의 세계사 속에서 열방을 품고 사역할 선지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레미야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렘 1: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하나님의 선포를 들은 예레미야는 매우 놀라고 당황하면서 자신이 적임자가 아니라는 부정적 반응을 보입니다. “저는 아이라서 어떻게 말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사야서나 에스겔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보여 주시기 전에 그가 생각하고 결단하도록 이끄십니다. 예레미야는 ‘나는 아이’라는 이유를 제시하며 소명을 거절합니다. 이런 반응에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걱정하는 바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 예레미야에게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그가 염려하는 원인을 제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네 가지 일을 하십니다. 명령하시고, 약속을 주시고, 표징을 보여 주시고, 마지막은 그의 사역의 특성을 말씀해주십니다.
1)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렘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예레미야가 자기는 아이이기 때문에 어른들을 상대로 해서 말씀을 전할 자신이 없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아이이기 때문에 심부름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는 어른이 가서 하라는 말씀만 전하면 됩니다. 아이가 어른이 해도 안 되는 일을 성사시키려면 매우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변화시키는 일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니 우리는 가서 심부름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까지 하려고 하니 부담이 되어서 아예 시도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린아이가 심부름하는 자세로 하면 됩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2)하나님의 보호 약속입니다.
렘 1: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어린아이가 어른의 심부름을 갔는데 어른들이 그 말을 싫어해서 어린아이를 해치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예레미야가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시기를 절대로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며 어려운 곤경에서 건져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3)하나의 표징을 주셨습니다.
렘 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입에 손을 대시면서 말씀을 주시는 표시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에게 친히 말씀의 권위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스랍의 천사를 보내어 제단 숯불로 입을 지졌습니다. 그것은 그의 부정한 입술을 정결케 해서 이제부터는 백퍼센트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게 된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의 손을 예레미야의 입에 대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적으로는 예레미야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지자는 오직 예레미야 한 사람인 것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끝까지 말씀의 능력을 거두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사탄의 역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서 떠나면 그의 능력은 잃게 되므로 끝까지 그와 함께 하시겠다는 표시를 주신 것입니다.
4)그의 사역의 특징입니다.
렘 1: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선지자들 중에는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 땅을 개간하여 씨를 뿌리는 임무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할 일은 아직 한 번도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는 단단한 땅을 기경해서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또 이미 익은 곡식을 거두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장 신나는 사람이 추수를 해서 알곡을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낫을 들고 나가서 휘두르기만 하면 한아름씩 알곡을 거두어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 지어진 집을 부수어서 다시 지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알곡을 심기 전에 잘못 지어진 가라지들을 뽑아야 하며, 새로운 건물을 짓기 전에 잘못 지어진 건물들을 부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의 임무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무허가 건물 철거반 같은 임무였습니다. 그에게는 심고 건설하는 기쁨보다는 뽑고 부수고 파괴시키는 쪽의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분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감사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