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203 배정현
저의 20살의 처음의 시작은 병원이였습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경산에서 20년을 쭉 살아왔습니다. 전 어릴때 부터 깔끔한 걸 좋아하고 부끄러움이 많았습니다. 깔끔한 걸 좋아하다 보니 어릴때 오감체험 놀이를 가도 절때 들어가지 않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그렇게 지내다 5살쯤 무렵 어린이 집에 들어갔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셔 전 항상 어린이집에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항상 다른 친구들이 전부 하원을 하고도 전 몇몇 친구들과 남아 있었지요. 그때는 정말 외로웠습니다. 지금도 부모님과 장난으로 옛날 얘기를 하곤합니다. 그럴때 마다 부모님은 미안하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지만 전 이해합니다. 그러다 6살 무렵 유치원에 다닙니다. 유치원때도 어린이집과 똑같이 남들이 하원하고 저녁 6시까지 유치원에 남아있다 마지막 하원 차를 타고 하원을 했습니다. 유치원때는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늦게 하원하는 것도 익숙해 지고 친구들도 많이 사겨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8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때 입학식을 하고 수업을 조금하다 집에 갔었는데 전 그런지 모르고 친구와 입학식만 하고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그때 저희 어머니께서는 우리아이가 없어져서 정말 놀라셨다 합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무리하고 반을 배정 받았습니다. 처음 제가 배정받은 반은 1학년 3반이였습니다. 1학년때는 모르는 친구도 있고 같은 유치원을 나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점점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어느덧 반장 선거 날이 찾아 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장이나 부반장이 되면 부모님들이 반에 햄버거를 돌렸습니다. 반장의 부모님이 햄버거를 돌려 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다 처음으로 체육대회라는 것을 했습니다. 전 정말 계주에 나가고 싶었는데 초등학교 생활동안 계주를 한번도 못 나갔습니다.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계속 학교 생활을 하니 어느덧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습니다. 고학년부터는 영어라는 과목을 배우는데 난생처음 다른나라의 언어를 배우는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영어라는게 쉽게 적응도 안되고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영어학원을 다녔습니다. 성적도 그냥 반반하게 가다 처음으로 영어시험에서 96점을 맞았습니다. 그떄 까지만해도 전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6학년이 되었습니다. 6학년때는 그 학년에서 제일 무서운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6학년때는 전 그야말로 사고뭉치였습니다. 주의의 친구들이 전부 저랑 비슷한 사고뭉치였거든요. 전 학교생활내내 사고치고 친구들과 장난치고 일수였습니다. 어느날은 물감으로 장난치다. 선생님께 걸려 복도에서 친구와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저의 장난끼를 발동하여 손에 묻어있는 물감을 친구 얼굴에 비볐습니다. 그리고 6학년때 친구들과 자전거를 많이 탔습니다. 자전거를 헬멧없이 타다 선생님께 많이 걸려 혼도 많이 났습니다. 전 그때 인생에서 가장많이 반성문을 써본거 같네요. 반성문만 공책 한개를 넘겼습니다. 초등학교때 인라인스케이트를 우연히 타봤는데 너무 재미있어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러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때 정말 인라인스케이트를 잘 타서 선수까지 준비했지만 어린나이에 너무나도 고된 훈련에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게 아직까지도 한이 맺혀있습니다. 그때 정말 잘 버티고 탔으면 지금은 어떤선수가 되어있을지 상상하곤 합니다. 그렇게 다사다산한 초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중학교를 직학하게 됩니다. 중학교를 배정할때 뺑뺑이를 돌려 학교를 오는데 전 집에서 가장 먼 5지망인 학교에 걸려 처음으로 집에서 먼 학교를 다니게됩니다. 학교의 이름은 사동중학교였습니다. 처음 중학교로 입학을 하였을때 같은 초등학교에서 온 친구들도 거의 없어 전 거의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를 잘 사귀어서 곧잘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생활도 전 사고뭉치였습니다. 학교에서 맨날 남아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친구들과 복도에서 항상 뛰어 다니고 물장난도 치고 수업시간에도 장난을쳤습니다. 중학교 공부는 좀 어려웠지만 그래도 남들에겐 뒤쳐지진 않았습니다. 나름 학원도 다녔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야영갔는데 그때 친구들과 밤에 방에서 장난을치다 선생님이 들어와 저와 친구들은 크게 혼났습니다. 다음날 선생님이 저와 친구들을 한방에 따로 불러 저와 친구들은 벽에 머리를 박고 반성문을 썻습니다. 그때 다른 친구들은 야영 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저와 친구들만 그 영상에 없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선생님들이 전부 모인 장소에서 선생님들께 돌아가며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야영장에 있는 물들을 옮기는 봉사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야영은 끝났습니다. 중학교때는 친구들과 학교가 끝나면 PC방에도 많이가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항상 축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저의 축구실력은 형편없습니다. 축구를 그렇게 많이 했지만 축구를 왜 못하는지 전 구기종목에 재능이 없는거 같았습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잘 지내다보니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2학년때도 1학년때와 다름없이 잘 지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고 같이 놀던 친구들과도 잘 지내었습니다. 그렇게 놀다보니 저의 성적은 학교생활과 반비례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성적이 떨어지더니 내가 입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였습니다. 그래도 전 그 걱정은 뒤로하고 노는데 정신 없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체육대회를 했습니다. 그때 전 초등학교때와 달리 운동신경이 많이 올라 달리도 반에 1등을 했습니다. 전 중학교때 항상 1등이였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계주를 나갔습니다. 하지만 계주때 너무나 긴장 탓에 바통을 놓쳐 1등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체육대회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 생활을 하다 전 그때 나이에 하지말아야 할것을 해버렸습니다. 바로 담배였습니다. 처음은 친구가 주는 담배를 호기심에 피웠다가 나중에는 제가 그 담배를 찾아 있더라구요. 그렇게 흡연을 시작하게 되었고 전 학교 뒤에서 친구들과 흡연을 하다 선생님께 걸려 부모님께 연락이 갔습니다. 부모님께는 호기심 피웠다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제가 아직은 금연을 할 수 있다 말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전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금연에는 성공하였고 중학교때는 담배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 생활도 끝이 났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는 코로나가 터져 원격수업을 많이 했습니다. 원격수업은 그야말로 저에게 아주 달콤했습니다. 대신 성적은 점점 떨어졌습니다. 맨날 아침에 일어나 친구들과 게임을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는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도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반 친구들이 어떻게 생긴지 인터넷 화면상으로 확인을 했어야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는 이젠 정말 공부를 좀 하여 고등학교를 진학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다시 열심히 하여 입문계 고등학교에 간당간당하게 들어갔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그 선생님께 좋은 조언도 듣고 여전히 사고뭉치였지만 선생님이 절 많이 아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고등학교 진학때문에 저의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이 많이 상담하셨던 기억이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은 코로나로 인하여 많은 학교행사를 하지 못하였고 원래 졸업여행이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취소가 되어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졸업식이 점점 다가왔습니다. 전 여전히 성적관리를 위하여 그때 처음으로 독서실이라는 곳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저의 중학교 생활의 마지막을 알리는 졸업식이 다가왔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졸업 한다는게 정말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졸업을 한다니 한편으로는 아쉽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고등학교 배정은 집에서 조금 먼 입문계 고등학교였습니다. 그 고등학교는 옛날 국정 교과서로 유명한 문명고등학교였습니다. 고등학교도 중학교때와 마찬가지로 몇몇 친구들이 있었지만 새로운 친구들 훨씬 많았습니다.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처음에는 친구들을 사귀는게 조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곧잘 친구들을 사귀고는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정말 무서운 선생님이였습니다. 친구들과 조례시간에 장난을 치다가 선생님께 걸려 반 모두 친구들이 의자를 들고 무릎을 뚫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중학교때와 달리 정말 대학을 가여겠다는 생각에 독서실도 다니고 학원도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순간 그 장래희망이 보디빌더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항상 학교가 끝나면 헬스장으로 달려가 운동을 했습니다. 전 그 당시 정말 헬스를 좋아했습니다. 헬스도 하고 항상 운동이 끝나면 닭가슴살과 샐러드를 항상 먹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침 시간마다 헬스와 관련된 책과 인체 해부학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고등학교 1학년 생기부는 온통 운동과 해부학 이야기로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2학년때 부터는 장래희망이 보디빌딩이 아닌 체육대학에 가는것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4월말쯤 처음으로 체대입시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처음으로 상담을 받고 전 바로 학원을 등록한 다음 학원에 가서 운동을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형들과 운동을 하는것이 조금은 무서웠으나 금방 형들과 친해져 재미있게 운동을 했습니다. 항상 형들이 저에게 체력이 진짜 좋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항상 뒤에서 출발을 해도 나중에는 전 항상 상위권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체대입시와 학교생활을 병행하며 생활을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내신을 따기 위하여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때 처음으로 모의고사에서 한국지리 영역 2등급을 맞았습니다. 제가 전교에서 한국지리 2등을 하는게 꿈인줄 알았습니다. 한국지리가 재미있어 내신에서도 한국지리 점수가 좋아 내신이 조금이나마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내신관리와 생기부관리 운동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때는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수학여행 목적지는 바로 부산이였습니다. 부산은 저의 지역과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였습니다.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정말 설래였습니다. 그렇게 수학여행 당일날이 찾아왔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아침 일찍 기차역에 모여 선생님과 친구들 함께 기차에 올랐습니다. 기차에서 친구들와 떠들다 보니 어느순간 부산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부산에 도착하니 빌딩들이 너무나 높고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수학여행 일정은 먼저 친구들과 자유여행이였습니다. 친구들과 부산을 돌아다니며 부산 맛집에도 찾아가보고 부산에서 유명한 곳도 가보았습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놀다 밤이 되어 학교에서 잡어놓은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호텔에 들어가기전 선생님들이 가방검사를 하였는데 그때 가방검사를 하다 담배와 술이 걸린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숙소에 들어와 짐을 풀고 씻은 다음 친구와 몰래 다른 방에있는 친구를 보러 갔습니다. 가보니 다른 친구들도 많이 와있었습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밤새 떠들며 잠에 들었습니다. 둘째날이 찾아보고 학교에서 부산 아쿠아리움에 갔습니다. 가보니 다양한 물고기들과 상어 등의 많이 어류들이 있었습니다. 아쿠아리움을 끝으로 저의 수학여행은 막을 내렸습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매일매일이 똑같은 생활을 하다 보니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라니 정말 시간이 빠르게 흘러 가는게 느껴졌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에는 체육대학 진학을 위하여 생기부가 끝나는 9월까지는 학교를 정상 하교하며 지내다. 생기부가 끝나는 시점에서 전 항상 4교시 점심을 먹고 먼저 하교를 했습니다. 하교를 하고 병원에 들러 물리치료를 계속 받았습니다. 치료가 끝나면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 운동을 하였습니다. 학원에서는 그 기간을 시즌이라 부르는데 시즌동안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과 항상 붙어다녀 어울리곤 했습니다. 친구들과 하루에 2타임 총 5시간 이상 운동을 하다 보니 각자 힘든점과 운동을 할때 어떤 종목이 어려운지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시즌을 하는동안 친구들과 정말 재미있었던거 같습니다. 물론 힘든점도 있었습니다. 힘든점은 제가 시즌을 하다 잔 부상과 큰 부상이있었다는 것이였습니다. 잔부상으로는 피로골절,근육통,컨디션 조절 실패였고 큰 부상으로는 바로 발목 인대파열이였습니다. 전 그때 정말 앞이 막막했습니다. 이대로 나의 인생은 끝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멘탈관리와 병원에서 치료를 꾸준히 받은 덕분에 잘 치료하고 마음을 굳게 바로 잡은 뒤 운동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학원에서 각종 종목들을 연습하며 쉬는시간에는 친구들과 밥도 먹고 같이 피로골절 마시지를 해주곤 했습니다. 그 당시 학원에서는 친구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 피로골절 마사지는 그야말로 지옥이였습니다. 그렇게 학원 생활을 이어가니 전 학원에서 주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주장자리여서 그런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떤 식으로 함께 운동을 해야할지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장이란 무게에 멘탈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다 저의 방식으로 운영을 하였습니다. 몸을 풀때에도 각자 페이스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몸을 풀고 대학교에 따라 실기 종목도 다르니 실기종목에 맞는 친구들과도 함께 몸을 풀었습니다. 항상 시즌기간에는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마다 기록을 측정하였습니다. 그런 시즌생활을 하다보니 어느덧 실기 날이 찾아왔습니다. 저의 처음 실기 대학은 대구대학교였습니다. 처음실기는 실기장의 분위기와 상태를 체크해보는 느낌으로 갔습니다. 처음 실기를 처보니 너무나 떨렸습니다. 실기를 치는 날 새벽에 학원으로와 친구들과 몸을 풀고 학원차를 통하여 실기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실기장 종목은 제자리멀리뛰기와 Z런 달리기였습니다. 다행히 학교 종목들이 제가 자신이있는 종목이라 큰 걱정은 없었습니다. 처음치는 종목은 제자리 멀리뛰기였습니다. 총 기회는 두번으로 주어지는데 처음뛰는 순간 바로 만점이 나와 두번째 기회없이 바로 다음 종목을 치르러 갔습니다. 두번째 종목은 Z런 달리기 였습니다. Z런 달리기는 기회가 한번 뿐이라 많이 긴장했습니다. 자유출발이여서 한번 심호흡을 한 다음 바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실기장 바닥상태도 매우좋다보니 매우 잘 뛰어 만점을 받았습니다. 그때 기억으로는 뛰때 다른사람들이 환호소리를 쳤습니다. 그렇게 전부 만점을 받고 소리를 한번 지른 후 실기장을 떠났습니다. 첫 실기부터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와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얼마 뒤 바로 두번째 실기인 순천향대학교 실기가 찾아왔습니다. 순천향대 실기는 싯업을 빡세게 본다 하요 많이 긴장했습니다. 순천향대 실기는 학원에서 혼자였기 때문에 혼자 타 지역으로 가 실기를 친다는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실기날이 찾아오고 전 대운동장 옆에있는 주차장에서 홀로 몸을 풀었습니다. 몸을 풀고 체육관으로 들어가 실기를 쳤습니다. 순천향대학교는 실기 순서가 제자리멀리뛰기, 농구공던지기, 싯업순이였습니다. 먼저 제자리멀리뛰기를 하는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못해 멘탈이 조금씩 나갔습니다. 두번째로 농구공던지기를 하는데 예상과 달리 기록이 잘 나와 마지막 싯업만 잘한다며 이 대학에 합격 할 수있다는 생각에 죽기살기로 마지막 종목인 싯업을 하여 좋은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두번째 실기도 잘 마무리하여 다시 경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나머지 실기인 건국대학교 글로컬갬퍼스, 경남에 있는 경남대학교, 부산에 경성대학교, 대구의 계명대학교까지 모두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렇게 저의 체대입시 생활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대망의 합격발표 날이 찾아왔습니다. 대구대학교는 장학생으로 합격이 났습니다. 두번째 순천향대학교는 후보8번이 나와 너무 아쉬웠습니다. 나머지 학교들도 합격과 후보로 나뉘었습니다. 전 순천향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후보8번이라는 숫자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순천향대학교의 추가합격발표날이 찾아오고 전 하루종일 순천향대 사이트를 새로고침하여 추가합격을 기다렸습니다. 첫번째 추가합격 발표시간에는 후보8번에서 후보1번으로 바뀌어 1번에 끝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절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두번째 추가합격발표가 나오는 시간에 들어가 확인을해보니 합격이라는 글씨가 저의 눈에 딱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전 바로 순천향대학교 문서등록을 하고 행복한 상상한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습니다. 전 1월1일이 되는순간 친구들과 술집거리로 나가 술을 마셨습니다. 그 술집에서 제 친구는 친구들이 주는 술집을 너무나도 많이 마신탓에 기절을 하여 결국119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전 보호자로 술을 먹다 119에 타게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탄 119는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처음 술 자리는 끝이났습니다. 전 그후로 맨날 술 자리에 나가 술을 먹다보니 대학교 입학식이 찾아왔습니다. 대학교에 와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대학에서도 친구들을 사귀어 아직까지 친구들과 놀고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20년 생활이였습니다
첫댓글 결국 실패 끝에 다시 도전해 성공하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노력하고 부상에도 좌절하지 않는 모습이 멋진거 같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모습이 멋집니다
씩씩하게 이겨내는 모습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