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을 해치는 자를 용납하면 ...
“바람을 마주하여 먼지를 털면 그 먼지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듯이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면 그 미움은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미워하는 사람이나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는 사람은 그 누구든 재앙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그것이 원수에게서 항복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잡아함경).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태복음 5장 44-45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누가복음 6장 27-32,35절).
그러나 개인적인 사사로운 원수가 아닌 공공의 대중에게 해악을 끼치는 자들에 대하여는 우리는 생각을 달리하여야 한다.
그런 자들에게는 그 죄와 해악의 정도에 맞게 법에 따른 처벌을 가해야 하며 이것이 공공의 피해를 막는 길이며 나아가 그 죄인들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타당하고 알맞은 형벌은 죄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회개하는 마음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벌은 올바르게 사용하면 교정의 능력이 있다. 다만 가혹한 형벌은 반드시 피해야 하니 이는 오히려 반감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을 시련에서 건져내시고, 불의한 사람을 벌하셔서, 심판 날까지 가두어두실 줄을 아신다”(베드로후서 2장 9절).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다양한 성격의 악인, 원수들에 대해 사랑과 자비로서 도덕적인 토대 위에 대할 것이로되, 다만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적법한 형벌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공익을 해치는 악인, 원수들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여 공자는 말하기를 “오랑캐에 임금이 있어 기강(紀綱)이 잡힌 것이 지금 중국에 임금이 없는 듯한 혼란 상태보다는 낫다.[夷狄之有君(이적지유군)不如諸夏之亡也(불여제하지무야)]<논어 팔일(八佾) 5장>.”라고 한 것이다.
2024. 7. 6.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