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323085805938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노년의 찬란한 환각 그린 김혜자
"나를 사랑해준 하늘의 남편에게 이 드라마 보여주고파"
"내 배우 인생의 마지막 챕터, 이 나이까지 기다려준 김석윤 감독 믿고 했다"
"드라마가 곧 나 자신, 끝나면 끈 떨어진 연처럼 허망해져"
"세상에 공짜는 없어… 젊은이들, 시간 소중히 붙잡았으면"
자신의 연기가 사람들의 지친 삶에 바늘끝만큼의 빛이라도 비춰주길 바란다는 김혜자./사진=이태경 기자
-"드라마가 나예요"라며 인터뷰를 여러번 거절하셨어요.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았어요. 자연인 김혜자가 드라마 속 김혜자를 보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맘이 많이 아파서 울었어요. 그런데 울면서도 생각을 했어요. 요즘 사람들, 많이 힘든데 내 연기가 쪼끔 이라도 사람들 위로를 해주면 좋겠다. 뾰족하고 성난 마음들, 쓰다듬어 주면 좋겠다… 그런데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렇담, 잘했어요. 많이 울면 맘이 순해진다잖아요."
-슬퍼서가 아니고, 너무 좋고 아름다워서 울었어요.
"그러길 원했어요. 이 드라마에는 내 인생을 겹쳐볼 수 있겠더라고요.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저렇게 스스로를 비춰볼 테니, ‘아! 이게 정말 특별한 작품이 되겠구나' 감이 왔어요. 연출자인 김석윤 감독은 ‘청담동 살아요'도 같이 했는데, 그때 느꼈어요. 이 사람이 마음 밭이 참 깨끗하네. 좋은 밭에 싹이 떨어지니 잘 자라는 거죠."
-김석윤 PD도 이남규 작가도 대단한 것이 ‘김혜자'라는 한 사람의 일생을 참 오래 관찰하고 연구했다 싶었어요. 그걸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와 섞어서 알맞은 타이밍에 선물처럼 안겨줬어요.
"나는요, 그 사람들 믿었어요. 처음엔 주변 사람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김혜자가 왜 저런 진부한 ‘타임슬립’ 드라마를 하나… 뻔한 환타지물에 왜 나와?’ 그때 속으로 생각했어. ‘그래, 오해할테면 해라.’ 이제야 다들 고개를 끄덕여(웃음). 이젠 슬픈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때가 된 거예요. 우는 건 첨부터 노상 울고, 심각한 건 내내 힘주고… 그건 옛날 연기잖아. 내가 배운 건 힘을 뺄 때 정말 좋은 게 나온다는 거예요."
-사실 힘을 빼는 게 더 어렵지요.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운동할 때 우리 코치가 그래. "선생님, 힘 빼세요. 엉뚱한 데 힘주지 마세요!" 연기도 똑같아요. 필요없는 데 힘쓰면 안되거든(웃음)."
-힘을 빼고 한 이야기 중에 어떤 게 기억에 남으세요?
"등가교환 이야기 할 때요. 영수(손호준 분)가 자고 있을 때 채팅방에 들어온 젊은이들하고 댓글로 얘기하잖아요. 그땐 정색하고 말하면 안돼요. ‘(한달음에)니네들 그렇게 살다가 나처럼 된다~' 그 말을 장난처럼 툭 던지는 거예요. 무방비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졸고 있다가 잠결에 들을 지도 모르잖아. 난 그 장면 대사를 한 100번쯤 연습했어요."
-세상에 공짜는 없군요.
"거저 얻어지는 건 없어요. 내 귀중한 걸 희생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어요. 그게 등가의 법칙이에요. 운 좋은 사람? 운 좋았다 해도 노력 안 하면 사라져요. 나는 이해력도 부족한 사람이라 열심히 안 하면 할 수가 없었어요. 오죽하면 꿈에서도 대본이 나왔어요."
중략
-마지막일 지도 모르는 챕터에서 선생이 찾은 건 무엇인가요?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이죠. 우리는 이제까지 치매라고 하면 며느리가 밥 안 줬다고 악을 쓰는 노인만 봤잖아요. 살아보니 제일 아름다웠던 순간도 가슴 아팠던 순간도 다 소중하게 모여서 기억이 돼요. 뇌가 쪼그라들어도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으로 살아요."
-25살 혜자를 살아서 행복하셨어요?
"행복했죠.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던 시간도 같이 보던 노을도… 정말 눈부시게 행복했어요."
-마지막으로 들려주세요.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시간은요, 정말 덧없이 확 가버려요. 어머나, 하고 놀라면 까무룩 한세월이야. 안타까운 건 그걸 나이 들어야 알죠. 똑똑하고 예민한 청년들은 젊어서 그걸 알아요. 일찍 철이 들더군. 그런데 또 당장 반짝이는 성취만 아름다운 건 아니에요. 오로라는 우주의 에러인데 아름답잖아요. 에러도 빛이 날 수 있어요. (미소지으며)하지만 늙어서까지 에러는 곤란해요. 다시 살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 눈 앞에 주어진 시간을 잘 붙들어요. 살아보니 시간만큼 공평한 게 없어요."
자신의 연기가 사람들의 지친 삶에 바늘끝만큼의 빛이라도 비춰주길 바란다는 말로 기나긴 인터뷰가 끝났다. 살아보니 ‘인생에서 경계할 것은 교만’이라고, 부디 이 인터뷰가 덧칠없이 순하게 읽혔으면 좋겠다고.
며칠에 걸쳐 전화로 문자로 대화로, 김혜자와 오손도손 정담을 나누다보니 그녀가 지금쯤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지 머리에 순하게 그려졌다. 강아지 남매 보리 수수에겐 오늘도 ‘잘 자라’고 인사했는지, 아침마다 골목길 비질하는 이웃은 여전한지, 마당에 벚꽃은 지금쯤 꽃망울을 터뜨렸는지, 오늘은 또 무슨 공상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드라마 속 그 여자를 떠나보내며 시들비들 앓던 몸은 좀 나아졌는지…
생각해보면 아프리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쓰다듬을 때나, ‘눈이 부시게'에서 젊은 한지민과 중년의 이정은을 바라볼 때나 김혜자의 눈빛은 동일하게 메아리쳤다. "너는 나야!". 그것은 연기라기보다는 본능이 데려다놓은 어떤 간절한 상태로 읽혔다. 그것을 몰아(沒我)라 할까, 이타(利他)라 할까. 그토록 꿈꾸었으나 우리가 이르지 못했던 아름다운 착란이라 할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여자가 또 그녀 안에 겹겹이 눈부신 똬리를 틀게 될까.
전문은 출처에 있습니다
첫댓글 이 인터뷰 너무 따뜻해요ㅠ 살아보니 시간만큼 공평한게 없다는 말 너무 공감되고 반성하고있어요ㅠ
와 선생님 저 눈이부시게는 안봤는데 인터뷰 답변내용이 무슨 시처럼 아름답고 마음에 와닿아요 드라마도 꼭 보고싶네요 디마프에서의 연기도 정말 감히 어떻다고 말하기도 뭐할만큼 좋았는데.. 김혜자 선생님 연기 정말 오래도록 보고싶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