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3
박 춘
송파 도서관 인문사회 자연과학열람실 맞은편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60초반의 남자가 일어섰다. 무심코 바라보다 순간 놀랐다. 모자는 렉서스라고 쓰인 상표가 큼지막했다. 주머니에 넣으려는 휴대폰은 애플이다. 두툼한 오리털 상의 파카 상표는 영문 콜롬비아다. 검은 선글라스가 날렵하다. 장갑에는 이름 모를 외국어상표가 세련되었다. 운동화는 데상스다. 일부러 보려한 건 아니다. 눈이 아파 잠간 책에서 시선을 떼는 중에 그가 알맞게 눈에 띠었을 뿐이다. 바람이듯 그는 성큼 사라졌다.
생각이 어수선하다. 그는 누구일까. 어린 날 보아 친숙하던 모습, 예컨대 남과 마주앉게 되거나 일어설 때 고개를 숙이거나 실례한다는 어떤 배려, 그러니까 전통적인 예禮의 모습은 없다. 두루마기 차림이든 베잠방이 포의차림이든 서로 마주앉기 위해서 은연 중 실천했던 중절모를 벗고 선객에게 실례하겠다거나 그냥 가볍게 목례를 보내는 절차 같은 것이다. 중고생 시절 검은 석탄연기와 하얀 김을 내뿜으며 달리던 깜장통학기차를 타면 으레 보던 풍경이다. 그 모습에는 무언가 뭉클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어쩐지 설운 빛깔로 남아있다. 설날이면 부친과 종숙들은 차례를 모신 후 빙 둘러 앉아 맞절을 하며 세배를 나눴다. 매일매일 마주하다시피 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건만 그 자세에는 넘볼 수 없는 진중함과 고요가 놓여 있었다. 지난여름 물꼬를 놓고 한바탕 몸싸움을 벌리시든 재종숙 두 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각별하셨던 기억이 선명하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잠실에 있는 아내의 작은 반찬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후 5시에서 7시 퇴근까지 하루 두 시간이다. 크고 작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다. 아내는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한다. 아내가 반가워하고 좋아하는 고객은 이제 뒤뚱대고 아장거리는 아이와 취학 전의 대여섯 살의 아이들이다. 진짜 고객인 엄마나 할머니는 몰라도 엄마나 할머니를 따라 나온 아이들은 기억한다. 이 꼬맹이 녀석들은 지를 예뻐하는 줄 알고 오늘 학원에서 배운 것을 자랑한다. 조금 전에 여섯 살 백이 남아는 이단 옆차기를 배웠다고 자랑하고, 지금 다섯 살 여아는 수학학원에서 나눗셈과 소수점을 배웠다고 자랑하는 중이다. 아내는 칭찬하고 즐거워하지만 실은 나는 많이 놀란다. 불현듯 안쓰러움에 사회구조를 탓하기도 한다. ‘아가, 재밌게 놀면서 하는 거야.’ 가끔 눈총 받을 염려도 던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녀석은 이제 세 살 된 통통한 남아 녀석이다. 엄마보다 앞장서 상가를 좌충우돌 시찰한다. 이웃 정육점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꼰지발을 세우는 딱한 처지지만 매우 의젓하다.
다섯 살 여아가 나눗셈을 배우고 소수점이하의 수학을 배워야할 이유는 없다. 동무와 가족 그리고 작은 공동체에 필요한 소양과는 무관하다. 실용적이지도 않고 굳이 알아야할 이유도 없다. 지능을 개발하기 위한 정도가 가장 적당하고 훌륭한 이유일 것이다. 실제는 선행학습으로 다른 아이보다 뒤떨어지지 않거나 앞서기 위한 욕구의 소산이기 십상이다. 아이의 덕목이나 장래를 위해 갖춰주어야 할 일상의 예와 인간적인 태도, 말하자면 전통적인 도리와 분별은 목록에 없거나 차선의 일이다. 그것들과는 무관한 오직 뒤떨어지지 않고 앞서기 위한 요구의 부응이기 쉽다. 처음부터 목표와 목적이라는 생활태도에 길들게 한다. 아이는 그 장래라는 목적에 볼모가 되어 순응하든, 의심하든지간에 세월 앞에 성장한다.
어린 날 엄마는 집에 동냥을 얻으러 오는 사람에게 따뜻하고 후했다. 양식거리를 내주고 음식을 싸주었다. 별거 아닌 음식을 만들어도 이웃들과 함께하고 나누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엄마는 맛있고 귀한 먹을거리가 생기면 아무도 몰래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다짐 놓았다. 그런 날이면 나는 슬펐던 것 같다. 손위 누나, 손아래 누이, 때로는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으면 그런 슬픈 감정은 안 생겼을 것이다. 어린 날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혼자 먹는다는 이상한 죄책감과 달큰한 맛의 쾌락에서 나는 혼란과 무언지 모를 고통을 느꼈다. 엄마의 이중성을 이해하게 되고 내가 가졌던 이상한 슬픔을 이해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내가 가진 감정의 혼란과 죄책감을 눈치 채지 못하셨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밑도 끝도 없이 복잡해진 현대라는 세계는 한사람을 왜소화시키는데 누구도 당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옳음과 그름 같은 것들에 대한 실천적인 자세를 체화할 공간도 시간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모두가 현실질서 대응에 목숨을 걸다시피 고난의 행군을 우선해야 된 때문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어떤 자리일까. 이성적인 사람이 바라는 삶의 이상과 실천을 요구당하는 자리일 것이다. 권력이 당연히 존경받는 권위로 공인되어야 하는 자리다. 권위가 경찰의 진압봉이 되고 군인의 총이 될 때 권위는 이미 희화화 되고 만다. 역대 대통령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다. 미국으로 야반도주한 사람, 내부자에게 거부당해 죽은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들, 탄핵소추당한 면면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들로부터 거짓과 힘의 간교함을 알게 되고 뒤쫓는 삶을 누빌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한반도인은 그들 악덕의 지배에서 본받을 수도, 멀리 도망할 수도 없는 회색인간들의 생태지가 되고 말았다면 억을할건가. 애초부터 무풍지대로 남을 수 없는 것이 인간 삶의 구조다. 다섯살 아이의 부모와 아이가 선행학습에 목을 매게 된 원인이다. 아이에게 최소한의 보신책을, 보호막을 만들어 주고 싶은 생물학적 본능의 눔물겨운 발현이다. 어디 누구를 탓하고 호소할 명목이 들어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지도층의 부정과 부패는 한 나라의 붕괴를 초래할 만큼 크나큰 눈에 보이지 않는 범죄행위다. 한반도는 유난스레 그것들에 무지하거나 온정적이다. 아니면 누구누구를 탓하지 못할 정도의 마비가 우리에게 일반화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왜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지 자본의 시선보다 권력의 시선보다 도리와 희망이라는 단어로 느껴보라. 세상은 우리를 너무 둔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너무 둔해졌다.
이제 검은 석탄연기를 내뿜으며 하소연하듯 긴 기적을 울리고 시속 30킬로가 장하다는 듯 달리던 검정기차는 없다. 낡은 의자와 색 바랜 중절모를 벗으며 선객에게 자리를 앉는다고 면목을 세우던 어른도 없다. 기제사를 모시려 신 새벽까지 희미한 전등아래에서 긴 겨울밤을 기다리시든 풍경도 간곳없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지 서른 해다. 뒤늦게 문득문득 아버지에게 말을 한다. 어떤 선택적인 상황 혹은 분별을 요구당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버지에게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당신이 어떤 순간 말씀 하셨고 어떤 경우는 아무 말씀이 없었던 침묵을 무의식 중에 되새기는 것이다.
깊은 겨울 오후 5시쯤의 2호선 전철을 타고 강변역에서 한강을 건너 잠실나루역을 가다보면 석양이 열어놓은 길을 볼 수 있다. 서편 하늘에 매달린 붉은 빛 무리가 강변과 멀리 여의도 고층건물들을 동화 속의 고성처럼 만들며 너른 강물위로 때로는 금빛으로 때로는 은빛으로 길을 연다. 그 길을 따라 나서면 도솔천이든 천상이든 곧장 다다를 것만 같다. 금방이라도 그 길을 타고 나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바람이듯 성큼 사라진 렉서스 모자가 남긴 상념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2024년 1월1일)
후기 - 워낙이 부족해 마지막 두번째 행간을 수정했음을 알립니다.
첫댓글 새해 벽두에 묵직하고도 긴 글 엄숙하게 잘 읽고 갑니다. 새해에도 늘 건안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새해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새해 첫날 새벽에 깨어 스치는 생각을 그냥 주어 모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습니다.
깊이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박 춘 올림.
도솔천이든 천상이든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은 그 환상이 현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웃음소리 들리는...
송파도서관에 다니시는군요.
하남이 그리 멀지 않고, 방이동에 산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네요.
퍼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열심히 써보는 수밖에 없구나 그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