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조선식산은행.제일교회.원동성당 외
일시:2024년 3월 6일 수요일
장소:구조선식산은행(현 제일은행원주지점),제일교회,원동성당,원주KBS방송국,문화의 거리
*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시 중앙동 중앙시장과 풍물시장 사이에 있다. 문화의 거리 입구 도로변에 옛 모습 그대로 있다. 조선식산은행은 1918년에 설립한 특수한 은행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큰 역할 했던 곳이다.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은 2층 건물로 1934년 원주 지역에서 가장 처음 세워진 은행이다. 1943년에는 한국인 150명을 포함하여 498명의 행원을 채용하였다.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금융기관으로 활동해왔다. 1948년 광복 이후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도입이 소멸하면서 은행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54년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라 한국산업은행으로 재출범해 오늘에 이르렀다. 건물 외관은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고, 상하로 긴 창문을 반복 배치하여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내부 공간은 천장을 높게 했다. 실제로 들어가보닌 처장이 높았다. 실내 공간은 모두 리모델링하여 쾌적한 현대식 분위기다. 예전 유적은 남은 게 없다며, 직원이 잘 설명해 주었다. 외벽은 인조석 질감의 몰탈 마감 등 일제강점기 은행건축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그로 인하여 대한민국근대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늘 뜻깊은 장소를 탐방해서 기쁘다. 남편은 우리은행 출신이다. 우리은행 종로지점 건물이 이 건물과 유사하다고 하니 더욱 의미가 깊다. 오랜 기간 동안 허물지 않고 은행 역사유적으로 보존하는 원주시에 감사했다.
* 제일교회
원주시 일산동에 있다. 원주기독병원 바로 곁이다. 건물 규모가 웅장하여 놀랍다. 유럽의 어느 유명한 종교 명소보다 훨씬 가치가 서린 대한민국의 종교 유적이다. 개신교의 강원도 선교는 원산으로 파송 받은 미국 남감리회 소속의 하디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하디는 동해안을 따라 선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1900년 강원도에서는 처음으로 김화 지경터 교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김화를 중심으로 양양, 강릉, 평해, 울진 등으로 교회설립이 확산되었다. 영서지방에는 무스와 콜리어 선교사가 개척을 시작하여 춘천과 홍천에 교회가 세워졌다. 1905년 상동리 풀밭에서 5~6명의 남자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원주제일교회(당시 원주읍교회)의 시작이다. 초기에는 교인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집 한 채를 구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원주제일교회는 1910년 노블 선교사가 원주 지역의 순행선교사, 권신일이 원주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안정되었다.
1914년에는 중등과정의 교육기관인 남녀공학 의정학교를 설립하였다. 의정학교는 1917년 원주공립보통학교에 병합되었다. 1916년에는 정신유치원을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원주유치원의 모체이다. 1916년에는 2층 붉은 벽돌 예배당을 신축하였으며, 1924년에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했다. 일제 말기에는 교회종이 전쟁물자로 징발되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예배당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었다. 전시 중에도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며, 원주로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위해 1952년 말 학성동에 예배처를 마련하고 이를 원주제이교회로 명명하였다. 원주읍교회는 이때부터 원주제일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천막 시대를 끝내고 1955년 석조 건축물의 몸체에 한옥 기와집 양식의 종각을 얹은 단층 예배당을 준공하였다. 1965년에는 교육관 2층을 건축하고 교회창립 6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1975년 창립 70주년에는 구예배당 석조 건축물 일부를 남기고 예배당을 개축하여 봉헌하였다. 원주제일교회는 교회 성장에 맞추어 다시 교회창립 90주년 기념 성전으로 지하 1층, 지상 3층 높이의 건축물을 지어 1995년 창립 기념 주일에 봉헌하였다. 선교 초기 강원도 영서지역 복음전도의 중심축이 되었던 원주제일감리교회는 만종교회를 시작으로 문막제일교회 설립에 이르기까지 국내에 모두 20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해외선교에도 힘을 쏟아 1996년 필리핀 페냐플랑카 교회, 1997년 인도네시아의 와링하르조 교회를 시작으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모두 20개의 교회를 설립하였다. 역대 담임 목회자 중에 신홍식 목사는 3·1운동 민족대표의 한 사람이었고, 송득후 목사 역시 평양의 3·1운동과 관련하여 옥고를 치룬 민족주의자였다. 교회 1층 복도에 교회 역사 사진을 설명과 함께 전시하여서 잘 보았다. 옛 사진 자료를 잘 보존하여서 생생하게 전달 되었다. 참으로 대단하였다. 나오려는데 직원이 제일교회의 안내책자를 준다. 고맙게 받아왔다. 잘 볼 것이다. 뜻깊은 탐방에 흐뭇하다.
* 원동성당
원주시 원동에 있는 역사적인 성당이다. 입구에서 소화유치원 건물이 먼저 반긴다. 하얀 예수님 동상과 천사 동상 풍경이 평화롭다. 원주 원동성당은 국가등록문화재의 종교시설이다.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139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천주교 원주교구 주교좌 성당이다. 유신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한 획을 그은 지학순 주교가 ‘원주선언’을 한 곳으로, 원주 지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장방형 평면으로 폭에 비해 길이가 매우 길며, 정면 중앙의 종탑 윗부분은 돔형으로 되어 있다. 외벽은 인조석 물씻기로 처리하고 줄눈을 사용해 석조처럼 보이게 하는 등 외관의 완성도가 높으며 건립 당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54년에 재건된 건물로 전후 복구된 성당건축으로는 드물게 형식적 완성도가 높고 원형보존이 잘 되어있으며,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도 관련이 있다. 종교의 위대한 힘을 보는 유익한 탐방지다.
* 원주 KBS 방송국
강원특별자치도 원주, 횡성, 평창, 영월 등 4개 시군을 방송권역으로 하는 KBS의 지역국 춘천방송총국 산하이다. 1964년 9월 1일 방송을 시작했다. 1971년 백운산, 1978년 태기산에 TV 송신소를 세움으로써 커버리지를 확보했다. 1987년에야 로컬방송을 시작했고, 디지털방송은 2005년 12월에야 시작했다. 현재는 평일 1라디오, 1FM 로컬방송을 하고 있다. 한편 KBS는 2019년에 목포, 순천, 진주, 원주, 충주, 안동, 포항 등 7개 지역국을 기능조정 대상으로 정하고 일부 기능을 관할 총국으로 이관하기로 하였다. 이로 인해 원주방송국 2020년 춘천방송총국에 TV제작, 방송편성, 송출, 총무, 기능 등 일부을 넘겨주게 되었다. 이에 대해 원주시민들은 반발 했지만 2022년 12월 KBS는 다시 반납 했다. 대로변에 있어서 지나오며 잠시 건물 외형만 보고 지나왔다.
* 문화의 거리
원주시 중앙동 중앙시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아주 길게 쭉 뻗은 도로다. 높은 공간에 전구들이 길게 설치되어 있고, 버스킹 공연 장소도 마련되어 있다. 거리의 끝 부분에는 목조 그네도 있어 타 보았다. 원주시의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 모여 진행하는 훈훈한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