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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입 쇠고기 대형도매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수입업체 관련 정보를 왜 비공개로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한때 대기업들이 이 시장에 깊숙이 개입돼 있던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 한 관계자의 얘기다. “2001년 쇠고기 수입자유화 이후 2003년 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되기 전까지 한화와 롯데, LG, CJ 등 대기업들이 계열사나 협력업체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쇠고기 수입시장에 대거 진출했다. 이들은 기업 이미지상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대기업 가운데 롯데, LG 등은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자 2~3년 전쯤 철수했고, 한화는 아직까지 국내 유통업체들의 쇠고기 수입을 대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과정부터 불투명한 수입 쇠고기가 투명한 유통과정을 거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양 실장이 작성한 ‘수입 축산물(육류)의 유통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수입 쇠고기 유통구조(표 참조)는 매우 복잡하다.
국내 수입업체를 통해 들어온 수입 쇠고기는 일반적으로 도매상을 거쳐 육가공업체와 대량 소비처, 음식점, 정육점, 대형 유통업체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수입업체의 규모가 작고, 수입량이 많지 않을 때는 수입업체가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육가공업체나 대량 소비처, 음식점, 정육점 등에 판매하기도 한다. 규모가 큰 일부 도매상은 미국 수출업체로부터 직접 수입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수입품 유통구조와 비교했을 때 특기할 점은 수입업체 간 또는 도매상 간에 거래가 많다는 것이다. 이 같은 거래는 호주산보다는 미국산 쇠고기 시장에서 자주 발생하는데, 이는 미국 수출업자들의 독특한 판매방식 때문이다.
수입이 중단되기 전까지 미국산 쇠고기는 ‘구매자’ 중심이 아닌 ‘판매자’ 중심으로 매매됐다. 구매자인 국내 수입업체가 필요한 품목을 필요한 양만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판매자인 미국 수출업체가 팔고 싶은 품목과 양만큼 팔았던 것. 그것도 수출업체별로 달랐다. 도매상이나 대형유통업체 등 구매처에서 요구하는 품목을 맞추기 위해 국내 수입업체들은 서로 사고팔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
수입 쇠고기 유통망이 여기서 한 단계 복잡해지는 것은 일명 ‘나까마’로 불리는 중간 유통업자들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 마장동, 독산동 등 축산시장 주변에 사무실만 얻어놓고 국내 수입업체나 도매상들 간에 중개수수료를 받고 거래를 주선하는 ‘브로커’ 구실을 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절차가 늘어나면서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수입 쇠고기 가격이 필요 이상 상승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자료 거래의 빈도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무자료 거래가 많으면 그만큼 수입 쇠고기가 국내산 한우로 둔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내 수입업체끼리 사고팔던 구조
호주, 뉴질랜드산 쇠고기의 주요 수입품목이 사태와 앞다리, 설도, 우둔 등 국거리용인 반면 미국산 쇠고기 주요 수입품목은 갈비, 등심, 목심, 양지 등 국내에서 선호하는 구이용인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유통과정 중 한우로 둔갑하기에 가장 쉬운 단계가 음식점과 단체급식업체다. 그리고 가장 손쉬운 부위는 등심과 갈비다. 알목심, 알등심(꽃등심), 목등심 등으로 세분화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서 한우 등심으로 팔거나 LA갈비, 진갈비살, 갈비살 등을 한우 생갈비와 양념갈비로 속여 파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례로 국내에서 판매하는 ‘이동갈비’ 대부분이 미국산 쇠고기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2003년 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금지된 이후 전국적으로 ‘이동갈비’를 판매하는 음식점이 줄어든 것도 같은 이유라는 것.
마장동의 한 수입 쇠고기 전문도매상은 “(미국산 갈비가 들어왔을 때) 수입박스 포장을 풀어서 가져다 달라는 음식점이 많았다. ‘이동갈비’라고 하면 사람들이 대부분 한우라고 생각했는데, 음식점 주인들은 그걸 악용했다. 솔직히 요즘도 그런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업자는 “초등학교 등 학교 급식업체들도 한우 대신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거나 국내산 육우와 각종 수입 쇠고기를 섞어 파는 경우가 많았는데,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입 쇠고기가 가공된 이후 원산지 표시 없이 원료로만 사용되거나 한우나 국내산 육우로 둔갑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양 실장은 “미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등 수입 쇠고기는 포장된 상태로 유통되기 때문에 포장이 뜯겨지기 전까지는 한우로 둔갑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음식점이나 급식업체, 가공업체 등은 일단 포장을 뜯은 후 가공하거나 판매하기 때문에 둔갑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음식점 원산지표시 관리제도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시행한 제도인 데다 수입산, 특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큰 상황에서 과거처럼 속여 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업계 자정 차원에서라도 불법행위가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이야기를 일단 믿어야겠지만, 미국산 꽃등심 1kg이 9~10달러(예상시장가 1만4000~1만5000원)에 수입되는 데 반해 한우 등심 1kg은 10만원이 훨씬 넘게 팔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불법의 유혹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마장동 한 수입 쇠고기 도매상 한쪽에서 어디론가 팔려가기 위해 포장박스와 비닐이 벗겨진 채 칼질을 당하고 있는 수입 쇠고기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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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럼요. 아무런 체계준비도 없이 국민의 입에 강제로 퍼먹인 꼴이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