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동산, 작성산
동산을 상징하는 남근석. 암릉 끝에 불끈 서 있는 모양새가 생동감이 가득하다. 이웃한 작은동산에는 여근석이 있고, 작성산에는 쌍과부바위(소뿔바위)가 있다. 멀리 청풍호가 보인다.
동산東山(895.5m)은 충북 제천시 금성면과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를 이룬다. 북으로는 작성산(830m, 일명 까치성산), 마당재산(661.2m), 호조산(475.3m)에서 산줄기를 이어받고, 남으로 뻗은 산줄기는 금수산(1,015.8m)에 이른다. 산자락에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무암사가 있으며, 안개바위, 장군바위, 낙타바위, 소뿔바위 등 암릉을 수려하게 빚은 기암괴석이 청풍호와 어우러져 시원스런 비경을 연출한다. 특히 암릉 끝에 선 어른 키 두 배만 한 거대한 남근석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지난 6월 4일 중앙고속국도 남제천IC를 빠져나와 청풍호반길에 접어든다. 이내 도로변의 기기묘묘한 바위 덩어리가 눈길을 빼앗는다. 이름도 찬란한 금월봉(226m)이다. 이곳은 1993년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취장으로 사용하던 중 기암괴석군을 발견했는데, 그 모양이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빼닮았다 하여 작은 금강산으로도 부른다.
청풍호반의 굽이진 S라인 도로를 누비며 동산 들머리인 성내리에 도착한다. 호숫가에 봉황이 나는 형상을 한 기암괴석이 서 있다. 마치 홰를 치며 곧 청풍호반 위로 날아오를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봉비암鳳飛岩이다. 어느 날 노파가 나타나 움막을 짓고 제사를 지내며 살아가다가 홀연히 움막과 함께 사라진 후 그 자리에 날아갈 듯한 형상의 봉비암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 밤이면 새 우는 소리를 내서 마을 사람들이 봉명암鳳鳴岩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산의 시원스런 암릉길. 암릉 끝에 선 남근석을 중심으로 천태만상의 변화가 펼쳐지고 음양이 조화를 이룬다. 그 너머에는 작성산이 우람하게 치솟아 있다.
운무가 산을 덮으면 보이는 무암
성내리 초입에서 무암골에 들어선다. 동에서 서로 곧장 뻗은 긴 계곡은 좌우에 작성산과 동산을 두고 있다. 무암저수지를 지나니 계곡을 사이에 두고 청풍호오토캠핑장과 제천산악체험장이 나오는데,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로 혼잡하고 시끌벅적하다. 특히 제천산악체험장은 그야말로 야단법석 난리다. 마린타워, 스카이타워, 짚라인 등 온갖 날것들에 매달린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며 아우성이다.
제천산악체험장에 주차를 하고 무암사로 향한다. 울창한 숲에 좁은 도로가 무암골을 따라 나 있다. 무암사에 이르는 동안 우측의 동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마다 안개바위, 애기바위, 장군바위 등등의 이정표를 거쳐 남근석 이정표가 있는 무암사에 이른다.
무암사舞岩寺에 올라선다. 깊은 산 속에 자리한 사찰은 작성산을 등지고 계곡 합수머리 위에 터를 닦아 세웠다. 집채만 한 바위를 끼고 가람이 지어져 있고,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그대로 살려 석축을 쌓았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극락보전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무암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무암사에는 부도가 2개 있는데 그중 한 개가 소牛의 부도로 죽은 소에서 나온 사리를 보관하고 있어 유명하다.
무암사에서 남근석을 향해 오르는 등산인들. 소부도골의 시퍼런 이끼계곡이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가 무림사를 세우려고 아름드리나무를 잘라 힘겹게 나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운반해 준 덕에 손쉽게 절을 세웠다. 얼마 뒤 소가 죽어 화장을 했더니 여러 개의 사리가 나와 사리탑을 세우고 절을 우암사牛岩寺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산사태로 절이 무너져 새로 세웠는데 맞은편 산의 큰 암석이 운무가 산을 덮으면 뚜렷하게 보일 뿐 아니라 노승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이 바위를 '안개바위' 또는 '무암'이라 부르고, 절을 무암사라 칭하게 됐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휘 둘러봤지만 무암이라는 큰 바위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방이 산이고 전체가 바위다. 특히 극락보전 처마 밑에서 바라본 동산의 산세는 가파르기 짝이 없다. 암릉 끝에 동산의 상징인 남근석으로 보이는 침봉이 솟아 있고, 그 오른쪽 능선에는 장군바위와 낙타바위가 무암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새의 날갯죽지처럼 수려하면서도 거친 산세다.
성봉을 오르는 등산인들. 뒤편으로 무암사가 내려다보이고, 치맛자락을 이룬 작성산 배바위와 짙푸른 청풍호가 절경을 빚는다.
청풍호반을 향해 불끈 솟은 남근석
무암사에서 100m쯤 내려서 소부도골로 들어선다. 남근석이 있는 남동쪽 능선을 타기 위해 150m쯤 계곡을 오르다 능선으로 방향을 튼다. 동산 오름길은 처음부터 가파르다. 똑바로 섰다는 표현이 옳겠다. 급사면을 오르다 보니 무암골 뒤편으로 배바위 암릉이 치맛자락처럼 펼쳐진다. 또 한 걸음 올라서자 무암사가 절벽 아래 내려다보이고, 그 다음 암릉 위에서는 청풍호반이 무암골 너머로 가득 펼쳐진다. 아찔할 정도의 이런 바위 지대가 몇 굽이 이어진다. 오히려 곧추선 암릉에는 난간 목재데크가 놓여 오르기 수월하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등에 땀이 비집고 나오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무렵 가파른 암릉 끝에 불끈 선 거대한 남근석이 반겨준다. 수천 년 동안 비바람을 한 몸에 담고 선 웅대하고 초연한 모습이다.
남근석은 동산을 상징하는 기암괴석이다. 동산의 생명력과 그 원천이나 다름없다. 사방 어느 곳에서 보나 남근석을 중심으로 천태만상의 변화가 펼쳐진다. 또한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건너편 작은동산 자락 계곡에는 여근석이 놓여 있고, 작성산에는 쌍과부바위(소뿔바위)가 있다. 묘한 이치다.
남근석을 지나서도 암릉이 주릉까지 굽이지며 줄기차게 이어진다. 아슬아슬한 슬랩을 올라서자 고추 모양의 꼬마 남근석이 솟아 있다. 함께 산행에 나선 아내가 농담을 던진다.
남근석이 자리한 북릉 암릉길. 좁은 침니 구간을 오르는 등산인 너머로 청풍호가 보인다.
"아기 고추바위인가 봐요. 남근석도 부자지간이 있네요."
오른쪽 건너편 암릉에는 낙타바위와 장군바위가 웅장한 기세를 뽐낸다. 그 너머로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청풍호가 일품이다. 호수 가운데는 비봉산이 날아갈 듯이 솟아 있다. 성내리 마을 어귀의 봉비암이 금세라도 날아올라 호수 위를 맴돌 것만 같다. 때마침 바람소리가 봉황 울음처럼 시원스럽게 몰아치며 더위를 씻어준다. 6월의 화창하고 청명한 날씨는 푸른 빛깔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우리는 다시 절벽을 이룬 암릉을 밧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다 더위에 지쳐 잠깐 바위 그늘에서 한 숨을 돌리는데, 갑작스런 인기척과 함께 한 부부가 모습을 드러내 깜짝 놀란다. 바위를 오르내리는 솜씨가 날다람쥐를 보는 듯하다.
"교리에서 외솔봉을 거쳐 동산에 올랐다가 남근석을 보러 내려왔어요. 다시 되돌아갈 예정입니다."
남근석 위쪽으로도 암릉과 침니들이 줄지어 있고, 곳곳에 로프가 이어져 능선으로 뻗어나간다. 동산 서릉 삼거리에 도착하자 성내리 방향에서 올라온 한 무리의 등산인들이 시끌벅적하다. 산줄기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휘어지며 때때로 암릉이 나타나더니 노송군락 아래 돌탑이 쌓인 성봉城峰(825.7m)에 이른다. 성봉을 지난 후에는 더 이상 암릉은 보기 힘들고,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숲을 이룬 전형적인 육산의 편안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무암사 뒤편 작성산 산자락에 있는 소뿔바위. 일명 쌍과부바위다. 두 뿔 사이에 동산의 남근석이 보인다.
어른 키만 한 돌탑이 선 중봉中峰(885.6m)을 지나 동산 갈림길인 삼거리에 당도한다. 동산(895.5m)은 이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을 타고 300m쯤 더 가면 나온다. 이렇듯 봉우리가 3개나 돼 이 산을 삼봉三峰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새목재로 내려선다. 고개 이름은 그 모양새가 새의 목을 닮은 데서 연유한다. 새의 목처럼 부드럽고 움푹하게 파인 재다. 새목재로 내려서는 길에 동산과 한 몸이나 다름없는 작성산(까치성산)이 올려다 보인다. 옛날에는 한양에서 배를 타고 와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보부상들의 큰 길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무릎 관절에 통증을 느낀 아내는 풀이 융단처럼 뒤덮인 새목재에서 무암사로 하산한다.
발걸음을 재촉해 가파른 오름 끝에 능선을 우회하며 40여 분 만에 작성산 정상에 도착한다. 돌탑과 정상석이 놓인 정상부는 잡목이 우거져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작성산鵲城山은 제천사람들에게 순우리말인 '까치성산'으로도 불린다. 그 이름이 이웃한 비스듬한 높이의 봉우리에 붙어 있다.
작성산 정상부에서 누리산악회 선병무씨와 일행이 되어 함께 길을 간다. 선씨는 오래전 뇌동맥류를 극복하기 위해서 산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선씨가 하산 중 지천에 핀 하얀 꽃을 발견하곤 말을 건넨다.
"혹시 이 꽃 이름을 아세요? 꼬리진달래입니다. 하얗게 핀 꽃이 너무 예쁘죠."
가지 끝에 옹기종기 모여 핀 아기자기한 꽃모습이 마치 강아지 꼬리처럼 보여서 꼬리진달래라는 이름이 붙었다.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상록으로 살아 있어 '참꽃나무겨우살이'라고도 불리는 '사철 늘 푸른 넓은 잎 키 작은 나무'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조우한 꼬리진달래의 매력에 흠뻑 빠져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