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 법구경 풀이,시조단상]421 - 풀이
이 게송에서는 시간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수행자는 시간에 대하여 어떠한 상태인가?
문제의 관건은 시간의 존재 여부가 아니다.
그러한 시간속의 마음에 번뇌 여부이다.
그러므로 시간적인 개념부터 정리해 보아야 한다.
시간은 순환적인 시간관과 절대적인 시간관의
구분이 가능하지 않으리라 한다.
절대적인 시간이란 주관적인 시간인데 시간을
어떠한 절대자가 만들었다라는 주장과 함께
시간의 흐름도 직선적이다.
창조의 기점부터 시간이 시작되고 창조주가
세상을 멸망 시킬 때 시간은 무력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간을 직선적이며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주관적 시간이라 하자.
반면 순환적 시간은 돌고 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마치 순환하 듯 돌고 도는
반복적인 시간이므로 원형이며 곡선적인 흐름이 있다.
그리고 이 시간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무한 순환의 시간이다.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수행자들의 시간은 어떨까?
그러면 이러한 두 종류의 시간에 대한 이해 속에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집착, 애착이라는 장애물이다.
이러한 집착과 애착이 있으면 시간을 초월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마음에는 그 어떠한 걸림도 없어야 하며
또 그 어떠한 물건에도 집착과 애착이 없어야만 한다.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라는 혜능스님.
'때때로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는 신수스님.
이 두 스님의 입장을 시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시간도 없다?
그럼 다른 중생은 어떨까?
물건도 있고 시간도 있지 않은가?
때때로 부지런히 닦으라는 말 속에는 부단한
노력의 관점이 숨어있다.
그러므로 신수스님의 입장은 아직 덜 깨친 것이고
육조스님은 완전하게 깨쳤다라고 일반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되었든 모두 주관적인 마음과
사물의 이해상태 이다.
시간과 사물의 존재여부가 문제가 아닌 그러한
시간과 사물에 대한 인식의 문제, 이 두 스님도
글에서 나타난 의미로 짚어 본다면 육조 스님은
시원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다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며
일반적으로 수용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함께 한다.
신수스님은 답이 모범답안 이다.
그러나 여유가 부족하다.
계속 부지런한 진행형 이어야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갖고 토론할 때 두 분은 나란히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간과 사물이 지금 이 순간 그대 자신에게는
어떻게 받아 들여지는가?
진정한 수행자는 시간의 여부에 관계 없이 시간을
초월하며 그 어떠한 물건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시원한 답이며 분명한 답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성취한 수행자는 진정한
수행자이고 사문이고 바라문이라 한다.
------2568. 6. 22 법주도서관 심적 대견 합장
자림 시조 단상 421
하늘사람 건달바 인간에 종적 없어
모든 번뇌가 사라진 깨친 아라한
진정한 바라문이라 부를 수 있나니
-----자림 대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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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 사경반
법구경 풀이,시조단상 421
깨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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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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