洛川淸疏 2023. 9. 15
[낙천] 신흥무관학교는 나라를 빼앗긴 지사들이 광복 전쟁을 시작할 후일을 기약하며 독립군 장교들을 길러내던 숭고한 애국정신이 담긴 곳이었다. 한반도와 만주, 미주, 연해주 등지에서 애국지사들이 항일투쟁을 했기 때문에 미국 등 서양 각국은 조선을 해방시켜야 할 피압박 민족과 국가로 보았다. 친일부역자들은 극소수이고 거의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반일인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태평양전쟁 동안에 일본열도는 맹폭격을 했지만 한반도는 폭격하지 않았다. 신흥무관학교는 헌법 전문에 있는 3.1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나라 국군 모든 사관학교의 뿌리이다.
[뉴스. MBN]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모멸감 느껴"…육사 명예졸업증 반납
강혜원입력 2023. 9. 15. 18:04
홍범도 등 5인 흉상 철거 결정에 "수치스러워“
오늘(15일) 육사 앞에는 지청천 장군 외손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과 윤기섭 선생 외손 정철승 변호사 겸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조직위원장, 이상룡 선생 증손 이항증 광복회 이사를 비롯해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이 졸업 증서에 의미가 없어졌다며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아주 끝없는 모멸감을 느낀다고 성토했습니다.
[논평] 3.1 독립만세운동과 상해임시정부와 미국의 이승만, 만주와 연해주, 시베리아 등지의 애국지사들의 분투와 노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소련 등 연합국은 한반도와 조선인들을 해방시켜야 할 피지배 민족으로 여겼다. 그래서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에 무기와 군수물자, 식량을 생산하는 한반도이지만 전혀 폭격하지 않았다. 친일부역자들이 식민지 조선에서 대세를 이루었다면 일본열도와 똑같은 취급을 당했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이 없었으면 일본은 만주와 중국 본토 침략, 태평양전쟁을 감히 도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나대기 시작한 뉴라이트파는 우리나라의 시작을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에서 찾는다. 그래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과 독립군 투사들의 항일투쟁을 간과한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관은 역사의 연속성을 무시하는 단점을 갖고 있다. 국가란 이 땅 위에서 한때 생겼다 사라지는 형식이다. 항복을 하든 점령을 당하든 식민지가 되든 이 땅에는 한민족이 대를 이어 면면히 살아오고 있다. 1910년 조선이 망했지만 9년 후에 3.1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켜 일본의 지배를 반대한다는 뜻을 세계만방에 확실하게 보였다. 그러면서 곧 그 해에 비록 영토는 없지만 3천만 조선인들의 의지를 모아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그에 이어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군관들을 양성하고자 신흥무관학교를 만주에 창설하였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주력이 바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었다.
뉴라이트가 3.1 독립운동과 신흥무관학교를 소홀히 여기는 것을 보니 은근한 친일 논리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러니 근대화론을 강조하는데, 그 근대화는 일제식민지 때부터이다. 이것은 조선 말기인 1900년 대에 노론파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친일 개화론, 즉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에 뿌리를 둔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을 망친 노론파는 피보호국이 되고서 일왕으로부터 훈작과 거액의 하사금을 받았다. 그리고선 식민지 36년 동안 친일파로서 기득권을 누렸다. 해방이 되자 그들 노론파들은 미군정에 붙었다. 그리곤 민주당을 만들어 이승만을 등에 업고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앞장섰다. 그 민주당이 김영삼 김대중으로 이어졌고, 양김의 분열 이후 김영삼계를 형성해 지금의 국힘당에까지 그 굵은 한맥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홍범도 장군 흉상을 문제 삼는 자들의 웃대 조상들이 어떤 인물들인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역사관에 따라 두 개의 흐름으로 극명하게 나누어졌다. 역사관은 한 인간의 의식과 행위를 결정하는 뼈대와 같다. 역사관에 따라 정치적 선택과 판단이야 항용 있는 것이지만,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로 인해 육군사관학교가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국가적인 손해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에서 빼내야 한다는 사람들은 자유시 참변에서 홍범도 장군이 악역을 저질렀다고 한다. 자유시 참변은 같은 공산주의자이면서도 노선이 다른 상해파와 이르쿠츠파 사이에서 벌어진 참변이다. 상해파가 당했으니 그럼 뉴라이트는 공산주의자인 상해파를 지지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서 홍 장군의 1927년 소련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는다. 논거에 일관성이 없다. 그러면서도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에서 제거하려는 것은, 홍범도 장군이 수백 명 일본군을 사살했기 때문에 일본으로부터 극혐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미개한 조선을 피보호국으로 만들고 근대화시켜준 일본이 고맙기 때문인가? 일본군 출신으로 국군 장성이 된 졸업생이 즐비한 육사에서 홍범도 장군과 이청천 장군, 이범석 장군 등 독립군 출신들의 흉상이 거북했을 것이다.
사색당쟁이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자기가 어느 당파의 후손인가를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