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조용하고 고즈넉하지만 요샌 종로 부암동에도 주말이면 꽤 사람들이 몰린다. 근처 인왕산 등산객들과 한 쪽 어깨엔 카메라를 매고 두 손을 꼭 잡은 데이트족들이 부암동의 예쁘장한 카페들을 가득 채운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로 몇몇 장소를 빼곤, 한껏 여유가 흐르는 동네가 또한 부암동이다. 창의문(자하문) 고갯마루, 정확히 말해 부암동 주민센터 바로 건너편 건물 2층에 자리한 플랫274(flat.274)처럼 말이다. 274라는 숫자는 이 공간의 주소(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274 – 1번지 2F)에서 따왔다.
건물 밖에서 볼 땐 미처 몰랐는데 플랫 274의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니 얘기가 달라진다. 꽤 넓다. 한눈에 시야가 탁 트일 만큼. 게다가 사방에서 아낌없이 햇살이 비춰 한가로운 낮에 앉아있기에 안성맞춤이다. 창 밖으론 나무들과 아직 채 눈이 녹지 않은 야트막한 산등성이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어딘가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을 떠올리게 하는 단정하고 가지런한 주방에선 각종 음료, 주류, 브런치, 야식 등은 물론 여름에는 ‘솔직한 팥빙수’, 겨울에는 ‘뱅쇼’ 같은 계절 메뉴들을 만들어 낸다. ‘언제라도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이 한적하게 쉬다 갈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탁 놓이는 공간.
플랫 274는 지난해 3월에 문을 열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스킨 작업으로 이름을 알린 일러스트레이터 홍시야와 그래픽 디자이너 기묘주 자매가 함께 도란도란 운영한다. 창작하는 사람들답게 자매는 이곳을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꾸리고 있다.
다채로운 문화의 향기는 플랫274의 문을 열자마자 맡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공간은 왼쪽으론 홍시야 작가의 개인작업실이고, 오른쪽으론 ‘그간 데뷔 무대가 없어 집에서 혼자 꼬물꼬물 작업만 했던 사람들, 아직 용기가 없어 전시를 고민만 하던 사람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는 아담한 갤러리다. 이름하여 ‘대안공간 274 gallery’. 요샌 김정자의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서 열심히 생각합니다>전이 열리고 있다.(~1월 13일까지) 언뜻 보기엔 뭔가 ‘텅 빈 마음' 마냥 심플한 전시라고나 할까?
카페 내부로 들어서면 또 하나, 재미있고 유익한 공간이 있다. 약 40세대의 아티스트들이 입주한 작은 아파트인 아트샵 ‘부암274 단지’가 그것. 말이 거창해 아파트 단지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은 커다란 책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파트란 가로 30cm, 세로 40cm의 작은 공간. 아티스트들이 플랫274에 매달 임대료(3만원 / 로얄층 4만원)을 내고 자신의 작업물을 전시, 판매 등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프로젝트 공간이다. 어떤 이는 자신의 저서를, 어떤 이는 직접 디자인한 텀블러를, 또 어떤 이는 수제 원단 브로치 등을 들고 ‘부암274 단지’의 일원이 됐다. 홍시야, 기묘주 자매는 정기적인 반상회를 열어 ‘부암274 단지’ 입주자들과의 커뮤니티도 운영하는 등 마음을 쏟는다.
또 플랫274에선 종종 다양한 문화행사가 벌어진다. 비정기적으로 날씨 괜찮은 일요일 오전 2시부턴 플랫274 옥상에서 프리마켓이 열린다. 때론 인디밴드의 공연장, 때론 소규모 파티나 출판기념회 장소로도 쓰인다. 부암동 마실 코스로 기꺼이 추천할 만한 산뜻한 공간, 플랫274.
복합문화공간 flat.274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274 -1호
* 찾아가는 법 ㅣ 5호선 광화문역 3번출구 앞 버스정류장 혹은 3호선 경복궁역 앞 버스정류장 1020, 7022, 7212 탑승 후 부암동주민센터에서 하차. 길 건너편 건물 2층.(1층에 떡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