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2 - 후쿠오카에 도착해서는 지하철로 옛 후쿠오카 성터를 보다!
2023년 봄 규슈 여행은 우리 부부에 딸과 사위, 손주 3명등 일곱명 가족여행 인데.... 2023년
2월 22일 후쿠오카공항에 내려 입국수속을 마친후 셔틀버스를 타고 국내선 공항
으로 이동해 공항 밖으로 나와 길을 건너 Budget 라는 회사에서 8인승 승합차 를 인수합니다.
렌터카 를 몰고 후쿠오카 시내로 들어가는데, 우린 사가현의 가라쓰 로 가기 전에 잠시 시내를
볼 생각인데.... 그 전에 딸이 오늘저녁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 근처 숙소는 키친이
있으니 저녁을 해서 먹어야 하는지라 휴대폰을 검색해 먼저 마트에 들러서 장 을 보고 가잡니다.
일행이 신선시장 バリュ- (밸류) 마트 SVALUE 에 들어가기로 나는 밖에서 기다리며 후쿠오카 시내에서
들를 곳을 생각해 보는데 시간이 없으니 다자이후 텐만구나 후쿠오카타워며 후쿠오카 역사박물관은
어렵고 내 마음대로 하자면 후쿠오카성 과 그 옆에 해자에 건설된 오호리코엔 을 잠시 보는게 좋겠습니다.
아니 이건 내 취향이고... 오늘 손주 2명에 손녀 1명도 동행하니 애들 기준으로 보아 아크로스 후쿠오카
를 찾아 그 특이한 외관을 구경하고는 캐널시티 하카타 에 들러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데 10분이면 나올줄 알았던 딸 일행이 30분도 지나도 나오지 않으니 그만 속이 탑니다.
40분이나 지나 바리바리 싸들고 나오는데 오늘 저녁뿐만 아니라 며칠 장이라도 본 것일까요?
그런데 딸이 하는 말이 더 기가 차게하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하우스텐보스를
구경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후쿠오카 시내는 포기 하고 바로 가라쓰 로 가자는데....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참고 차를 타면서 아쉬운 마음에 옛날 후쿠오카 여행을 회상 해 봅니다.
시모노세키역 에서 기차를 타고는 간몬해협을 터널로 건너 고쿠라 小倉(소창) 역에서 내려서
역 구내 코인로까에 배낭 을 넣고는 택시를 타고 무라사키 강 紫川(자천) 에 놓인.......
불의 다리 라고 불리우는 무로마치교 를 건너 성을 두른 해자에 내려 고쿠라성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강변을 걸어 리버 워크 키타큐슈 リバウォク 北九州 에 도착하는데 이 건물은 물을
끌어들이는 건축가 저디 파트너스 가 물을 소재 로 만들었다는 데... 그가 도쿄롯폰기힐스 와
후쿠오카 캐널시티 다음으로 만든 작품으로 무라사키가와 紫川(자천)에 있는 컬러풀한 건물 입니다.
리버 워크 를 나와 걸어서 고쿠라역 에 돌아와 코인로카에 넣어 두었던 배낭을 꺼내는데
이제 후쿠오카 로 가야 합니다. JR 패스가 어제 날자로 만료되었는지라!!! 기왕
돈을 내는 김에 JR 패스로는 탈 수 없는 신칸센 노조미 를 탈까 해서 열차 시각표를 보니?
11시 40분 노조미 자유석 을 타면 요금은 1,320엔 + 자유석 좌석 940엔 = 2,260엔
으로 불과 17분 후인 11시 57분에 후쿠오카의 하카타역 에 도착하지만......
노조미 는 아무래도 너무 비싼지라 돈을 아낄겸 12시 11분 출발하는 가이소쿠 가고시마혼센 快速
鹿兒島本線 을 타니 요금은 1,430엔으로 13시 21분 후쿠오카 하카다역 博多驛 에 도착 한답니다.
기차에서 보는 간몬해협에 놓인 붉은색 철교 가 참 예뻐 보이는데.... 바닷가를 달리더니 이윽고
내륙으로 들어가 대나무숲을 지나고 무나카타시 아카마 를 지나는데 깊은 협곡 인지라
예전에는 후쿠오카로 넘어가지 못하고...... 고쿠라에서 여기까지만 철도 가 놓였었다고 합니다.
이윽고 다시 바다가 나오더니 마침내 후쿠오카 하카타역 에 도착하기로...
지하에 있는 코인로까 를 찾아 배낭 을 넣고는 다시 위로 올라옵니다.
그러고는 울 마눌에게 꼼짝하지 말고 서 있으라 이르고는 하카타역을 제대로 파악
할 겸 해서..... 인포메이션 과 미도리노마도구찌 매표 창구 등을 둘러 봅니다.
열흘전에 여기서 JR 패스를 교환하고 티켓 을 끊을 때 첫 인포 옆 매표소 가 아니고
두 번째 매표소 로 가야 했었기에...... 그 위치를 다시 확인해 본 것이지요!
그러고는 마눌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니 세상에!!! 보이지를 않네요? 아니 절대로
나를 찾아 움직이지 말고 그냥 꼼짝말고 있으라고 그렇게도 신신당부를 했건만....
하여 혹시나 밖으노 나갔나 해서 나가보니 치쿠시 구치 의 반대편인 하카타
博多(박다) 구치도 문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서 더 헷갈립니다.
다시 들어가 몇바퀴를 도는데 이눔의 역은 엄청 크고 복잡 한데다가 사람들로 인산인해
라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찾았더니..... 울 마눌 꼼짝하고 서 있기만 했답니다??? 뭐야?
그러니까 다른 방향 을 보고 있었던 모양 인데..... 내가 그 앞으로 몇 번이나
지나갔으면서도 하도 복잡해서 서로 알아채지 못했던 모양이네요?
“Forno 프르노 ” 간판은 로마 시내 트레비 분수 옆에서 처음 보고 놀란적이 있는 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은 전혀 아니고, 구멍가게 규모의 슈퍼 를 말하는 것이네요?
하카타 博多 구치 로 해서 밖으로 나와서는 광장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아뮤플라자 로 내려가서는 자판기에서 지하철 1일권 을 끊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기다려서 지온( 祇園 기원) 방향 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는 4정거장인 아카사카 赤坂(적판) 역 에서 내립니다.
오호리 공원 은 예전에 두 번이나 본 적이 있으므로 생략하고 오늘은 공원 한켠 호수
반대쪽 에 있는 후쿠오카조아토 福岡城跡(후쿠오카 성터) 를 보기 위함 입니다!
여기 후쿠오카성 은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의 공적으로 구로다 요시타카 와 아들인
나가마사 부자 에게 치쿠젠 지방 이 내려지니 두 사람이 7년동안 건축했다고 합니다.
구로다 요시타카 는 원래 효고현 하리마국 히메지성의 성주 였는데 동쪽의 오다 노부나가 와 서쪽의
모리 데루모토 사이에서 협공 을 받으니..... 일본은 아시카가 막부 시절이던 1467년 오닌의 난으로
교토가 불타고 전국이 200여개 나라 로 갈라져 전투로 날을 지새우는 센고쿠(전국)시대 가 되었습니다.
당시 효고현 오카야마 하리마국 의 지배자는 고데라 가문의 마사토모 였는데 작은 나라로 동서 양쪽에서
협공 을 받자 미키 성주 벳쇼 나가하루등 대부분의 가신들이 주고쿠 히로시마의 대영주 모리가문 에
복속할 것을 주장하나.... 혜안을 가진 구로다 요시타카만은 홀로 동쪽의 오다 노부나가 에게 귀부 합니다.
해서 구로다 요시타카는 복속의 증표로 아들 나가마사 를 인질 로 보내니 오다 노부나가는
어린 나가마사를 가신인 기노시타(후일 도요토미) 히데요시 에게 맡기는데..... 성장한
후에 1583년 시바타 가쓰이에를 치는 시즈가타케 전투 에 참전해 2천석 영지 를 얻습니다.
그전에 아버지는 노부나가의 의심을 사서 죽임 을 명하니 사형 집행인 다케나가 시게하루 가 미노국에
숨겨 주어 훗날 도요토미 시대에 재기 했던 것인데 히데요시의 꾀주머니 가 되어 일본 최고 군사
가 되니 구로다 간베에 (黒田官兵衛) 라는.... 2014년 NHK 대하드라마 구로다 간베에의 주인공 입니다.
이후 구로다 부자 는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규슈 분고 (오이타) 와
휴가(미야자키) 공격에 공을 세우니 부젠국(오이타) 을 영지 로 받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 제2군 가토 기요마사에 이어 구로다는 제3군 1만
2천명을 이끌고 황해도 를 점령 하고........ 부산의 기장군에 일본식 성을 축조 하였습니다.
그후 정유재란 때 일본군은 울산에서 순천까지 28개 왜성 을 쌓고 장기전에 들어갔던 것이지요?
세례명이 아우구스티노인 고니시 유키나가 는 사위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 등 1만 8천명 부하
대부분이 예수교도 로 군기는 흰색 십자가 로 삼고 신부 세스페데스가 종군 하였습니다.
진해 웅천왜성에서 세스페데스 신부의 미사 를 그르지 않은 고니시 에 비해....... 둘 다 구마모토에
영지를 가진 가토 기요마사 는 이치렌종 신자 로 예수교도를 박해 하며 고니시와 불화 합니다!
두 사람의 싸움 은 이순신이 조정의 명을 거역 함으로써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면직 되기에 이릅니다.
이순신장군으로서는 아무리 사이가 나쁘다 해도 고니시가 조선수군의 손을 빌어 가토를 죽이려
했다는걸 믿을수 없었던 것 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측근 구로다 나가마사 는
재빨리 본처와 이혼 하고는 도쿠가와의 양녀인 요시히메와 재혼 하여 살길을 도모 하게 됩니다.
구로다 나가마사 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의 동군 으로 참전해서 치쿠젠(후쿠오카)
을 영지 로 하사받아 1601년 부터 성을 축조했던 것이지요 ! 고니시 유키나가가 서군 이 되자
철천지 원수 가토 기요마사 와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반대편 동군에 참전해 서로 살육전 을 벌입니다.
후쿠오카성의 바깥 해자는 지금은 오호리 공원 이 되었고, 폭 50m가 넘는 안쪽 해자 가
혼마루(주성), 니노마루(둘째 성곽), 히가시니노마루 와 미나미니노마루 입니다.
이 성은 산성이 아닌 평지성 으로 대천수각, 중천수각, 소천수각 이 연결된 거대한 천수대
가 구축되었으며 성 안에는 40기 이상의 성루 가 성곽의 요새 마다 세워졌다는데.....
메이지 유신 후인 1871년 폐번치현으로 허물어 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남쪽의 마루타몬
성루 와 덴시오미 성루 등 극히 일부인데 현재 마이즈루 (舞鶴) 공원 으로 조성 되었습니다.
천수각 은 복구되지 않고 성곽과 성터 만 보이는 데, 노구치 가즈나리의 지휘로 쌓아진
석벽이 뛰어났기 때문에 별칭으로 세키성 (石城: 돌 성) 이라고도 불렸다고
하는데..... 다몬 망루, 니시노마루 미나미스미 망루 는 중요문화재로 지정 되었습니다.
벚꽃 철 에는 온 성터가 화사한 벚꽃 으로 뒤덮인 모습이 참으로 환상적이라고 하네요?
성과 성하 마을 은 구로다 가문의 옛 터전 이었던 고향인 비젠국 후쿠오카
( 현재 오카야마현 세토우치시 오사후네정 후쿠오카 ) 의 지명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구로다 나가마사 는 성을 축조한후 조카마치(성아래 마을) 를 만들면서 자신의 어린시절 고향
마을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후쿠오카(福岡) 로 개명 하였으며.... 나카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있는 항만도시는 상인들의 거주지로 하카타 라고 불렸으니 지금 부두와 기차역 이름 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