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장애인들이 손을 모았다. 발단은 어느 장애인이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비롯됐다. '하버드대학 출입문을 고친 사람'으로 유명한 이일세 씨에 의하면 뒷이야기는 이렇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김영주 씨라고 있어요. 이 친구도 저처럼 경추를 다쳤는데 정말 열심히 살아요. 파워 블로거로 통하는데요. 다음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던가 봐요. '우리나라에도 중증장애인이지만 열심히 활동하는 장애인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미국에 유학을 다녀왔거나, 미국에서 활동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한국에서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이상묵 교수가 그 글을 보고 '우리가 모여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함께 의논해 보자는 제안을 해서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이일세 씨 역시 미국유학을 다녀온 국가대표 장애인의 한 사람이다. 앞서 김영주 씨의 블로그에 등장하는 국가대표 장애인은 6명. 국내파로 통하는 서울대 이상묵 교수,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김종배 박사, 사단법인 열린세상 국민문화운동본부 이일세 대표, 이렇게 세 사람은 미국유학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 활동하고 있다. 해외파는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이승복 박사, 미국 뉴욕시 형사법원 정범진 판사와 미 백악관 정책차관보를 역임한 강영우 박사를 말한다.
"이상묵 교수랑 김종배 박사, 제가 모두 동갑이에요. 농담으로 저주 받은 61년생 소띠들이라고 할 정도로 평소 말이 잘 통하는 사이죠. 셋 다 다친 데가 경추예요. 장애 레벨도 같아서 공감대가 더 많죠."
경추장애인이라면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손가락 펴고 쥐는 일이 어려울 정도로 장애 정도가 높다. 그런 그들이 왜 꼭 미국에 가야 했을까. 84년 스키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자, 일세 씨는 대학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밥숟갈 뜨기도 어려운 몸이 되어 버렸다고 젊은 패기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병원생활을 마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려 하자 캠퍼스 곳곳에서 휠체어를 가로 막는 턱과 만났던 것.
"다치고 나서 부모님은 어디든 저를 데리고 가주셨어요. 음악회도 음식점도 사람 모이는 곳 마다 일부러 더 데리고 다니셨어요. 그 때는 리프트 차가 없어서 저를 차에 싣고 내릴 때마다 두 사람이 동원돼야 했죠. 그런 가족들 때문에 제가 삼 남매 중 맏이인데 우리 집 대빵 노릇은 제대로 해야겠다, 그렇게 맘을 먹었죠."
한국에서는 포기해야 했던 대학생활이지만 미국에서는 달랐다. 사고 후 9년 만에 공부를 시작했다. 96년 메사추세츠주립대학 경영학부를 3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에도 합격했다. 전공은 의회 정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은 세계적인 수재들만 다니는 곳으로 이름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세 씨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96년 일세 씨가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 입학하자 대학원 측은 "불편한 것은 없느냐"고 물었다. 하버드대학에 장애학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케네디스쿨에선 처음이었다. 2주간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36년에 세워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강의실과 독서실, 식당의 출입문이 자동문으로 바뀌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도 생겼다. 컴퓨터실에는 마우스 대신 트랙볼을 갖춘 장애학생 전용 좌석이 설치됐고, 장애인 전용 주차석까지 내주었다. 고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특혜가 아니라 미국 장애인법(ADA)이 장애학생들도 동등하게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5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왔을 때 일세 씨는 다시 김포공항의 계단과 마주쳤고, 타고 다니던 장애인용 미니밴을 들여오는 데도 관세를 천만 원이나 물리는 인식의 차이에 부딪혔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틈틈이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일단 여행을 간다 하면, 장애인이라 해도 어디를 가든지 거기는 내가 다니기 힘들 거야, 그런 생각이 들질 않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어딜 가려면 거기 가면 밥 먹기도 힘들겠구나, 우선 걱정부터 하게 되죠."
미국에서 귀국한 지 12년. 일세 씨는 파란만장하게 살았다. 민주당 창당 멤버가 되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지 그를 능력이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테두리에 가둬버렸다.
"미국에서는 장애인이 직장을 간다 해도 내가 이 정도 공부했으니 이 정도 직장은 가겠지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이 없어져요. 장애인이면 장애인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죠.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살려면 비장애인 능력의 5배 정도는 돼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를 막았던 것은 언제나 휠체어가 넘을 수 없는 턱이었다. "다치기 전에는 스포츠광이었어요. 지금은 대신 여행을 해요. 재작년에 몸이 아파 집에서 지내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저의 여행기도 나눌 겸 장애인 여행 카페를 만들었어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죠. 요즘 그분들이랑 온라인에서 매일 대화하고 만나고 여행을 가기도 하고 재밌어요."
'휠체어로 세계로'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다 같이 해외여행을 할 날은 몇 년쯤 더 있어야 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카페 회원 중 한 사람이 "만나면 행복한 카페 회원들과 꼭 함께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 환율을 고려하고 장애인 편의시설을 고려해 최종 목적지는 홍콩으로 정해졌다. 후텁지근한 홍콩 날씨 때문에 막판에 여행신청을 취소한 사람도 나왔지만 전동휠체어 셋, 수동휠체어 하나를 더해 동행자들까지 총 7명이 4박 5일 일정으로 떠나게 됐다.
"제가 은근히 짠돌이에요. 1년에 한 번 정도 가족여행을 가곤 하는데요. 계획 짜는 건 제 담당이에요. 한 달 이상 비행기표 제일 싼 데 알아보고 숙박지 가격도 이메일이랑 전화로 조율하고 그래요. 인터넷 뒤져 관광지 할인쿠폰 같은 것도 다 출력해 가죠."
뉴질랜드나 아랍 두바이, 미국과 미국령인 괌과 사이판까지 주로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을 여행했다. "뉴질랜드는 사람보다 양이 더 많을 정도로 농장 지대가 많지만 리프트 차량을 빌릴 수 있어서 부모님과 동생 가족들까지 여덟 명이 다 타고 다녔어요. 말레이시아 휴양지 코타키나발루에서는 편의시설이 안 돼 있어 공항에서부터 업히고 야단이었죠. 그런데 사람들이 순박해서 어딜 가면 휠체어 들어주겠다고 서너 명이 달려와요. 고생스럽지만 그런 여행도 괜찮았어요. 앞으로는 새로운 도전이 있는 여행을 더 하려고 해요. 낙하산을 타고 하늘을 나는 패러세일링이나 바다 속에 들어가는 스노클링도 도전해 볼만 해요. "
그러나 여행 경험이 풍부한 일세 씨지만 휠체어 부대를 끌고 간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비행시간만 3시간 반, 전동휠체어가 한두 대라야 리프트 차량을 이용해 볼 텐데 아예 홍콩 지하철을 섭렵하기로 했다. 이메일로 확인한 것과 달리 휠체어 관람객은 입장할 수 없는 관광지도 있었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호텔방에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애인 여행객들이 나선 길이니만큼 변수가 많았다. 하지만 너나없이 그 마음, 그 상황을 잘 알기에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이틀이나 빗속의 홍콩거리를 휠체어로 달려야 했지만 고생담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IFC빌딩에 있는 쇼핑몰을 가는데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해 놨더라고요. 얼마나 사용을 안 했든지 열쇠를 꽂아도 작동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 일행이 휠체어 넉 대니까 이동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렸겠어요.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신기한지 사진을 찍고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가 됐었죠."
일세 씨는 '휠체어로 세계로' 인터넷 카페에 시시콜콜하게 사진과 장문의 글로 여행기를 남김없이 공개하고 있다. "미국이라고 편의시설이 잘돼 있는 곳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장애인 객실이라고 해도 시골 모텔은 오래된 건물은 새로 증축, 개축을 할 때까지는 그대로 써도 된다는 법 조항이 있어서 완벽하지 않은 곳도 많아요. 세면대 아랫부분이 막혀 있다든지 이런 경우 휠체어로는 불편하죠. 이게 무슨 장애인 객실이냐고 항의했더니 방값을 반으로 깎아주기도 했고, 조식 뷔페를 서비스해 주면서 굉장히 미안하기도 했어요. 우리나라도 새로 짓는 숙박지나 관광지는 잘돼 있는데 특급호텔이라고 해도 불편한 곳들이 많은 게 문제죠."
휠체어 여행객들이 떠나는 여행의 묘미는 그들이 지나갔던 자리에 편의시설이 개선되고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세 씨가 전동휠체어 네 바퀴로 지나가는 곳마다 휠체어를 가로막는 턱이 사라지고 있다.
디딤돌 2010년 11월
첫댓글 작년에 인터뷰한 기사인데 지금에야 올려요. 이후 라디오 인터뷰도 하시고, 쬐끔 바쁘셨더랬죠. ^^
데니 샘 인터뷰도 했는데, 그것도 또 언젠가 올려 볼게요.
우리 휠세~ 회원들은 열심히 사셔서 어느 한 분 빠지지 않고 취재할 만한 스토리를 가진 분들인데,
혹시 제가 인터뷰 요청하면 흔쾌히 응해 주셔야 해요^^; 네?! 그냥 즐겁게 수다떨기하면 되니까요^^
취재 승낙해주신 루벨님 감사해요^^
어휴,,, 벌써 한참 전 얘기네요. 근데 사고 후 12년 만에 공부 다시 시작한건 아니구요. 9년만이었지요... 사고는 1984년, 유학은 1993년에 유학 떠났어요. 96년에 대학 졸업했어요~ ^^
숫자에 약한 저... ㅠㅠ 죄송해요.. 수정했어요.. ㅠㅠ
지기님의 감동 스토리를 폴짝님의 명문장으로 풀어내니 기사가 한결 빛이 납니다.
아우우... 부끄러운 칭찬이세요 @@;;
폴짝님이 최소한 나보다는 글을 훨씬 더 잘 쓰는것 같아요... ^^*
난 얼마전부터 올 연말 출간을 목표로 여행기를 책으로 내볼까 하고 정리하고 있는데 정말 머리 터져요. 받아줄 출판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시작을 했어요...
책으로 낸다니 축하합니다. 애독자 1호 에요 ~~
아직 축하받을 일이 아니예요. 희망사항이라구요... 이런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줄 출판사가 있을지도 의문이구요... 괜히 시작했다 걱정도 되구요. 그냥 당분간 잊으세요... ㅎㅎㅎㅎㅎ
저도 가다리고 있을께요 ㅎㅎㅎㅎㅎ
제 책에 꼭 싸인해주셔야해요 ㅎㅎㅎㅎ
싸인뿐이겠어요? 뭐 더한 것이라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읽었읍니다
요크님. 요크님. 보고싶은 요크님...
우와와 ~ 멋져요~~ㅋㅋ
쑥쓰, 쑥쓰... ㅎㅎㅎㅎㅎㅎㅎㅎ
엇ㄱ 이제서야 봤어요.
새삼 느끼지만 홍콩에서 리더로서 7명 인솔하느라 심적 육체적으로 힘드셨을텐데...
ㅋ수고많으셨어요.
아직도 햄 그때 얼굴 생각남 ㅜㅜ
전 죽었다 깨나도 못할 일 ㅋ
불쌍한 얼굴? ㅎㅎㅎ
고흐처럼은 아마 훨씬 더 잘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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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