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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정보 스크랩 한국의 왕족 성씨 일람표
족보나라 추천 0 조회 210 09.03.12 06: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조선시대

단군조선 : 성씨 없다.  

기자조선 : 청주한씨, 태원선우씨, 행주기씨 

                        

삼한시대 

부여 : 해씨 (소멸) (고씨, 부여씨로 이어짐)

마한 : 청주한씨

진한 : (육촌)

알평 : 경주이씨, 합천이씨, 가평이씨, 평창이씨, 원주이씨, 아산이씨, 재령이씨,우봉이씨, 우계이씨, 성주이씨, 금구이씨, 차성이씨, 진주이씨,덕은이씨, 흥양이씨, 영천이씨, 진위이씨

소벌도리 : (경주, 개성, 삭녕, 동주, 전주, 함양, 청주, 충주, 영흥, 용강, 수원, 부안, 강릉, 강화, 화순, 통천, 양천, 원주, 해주, 진주, 탐진)최씨, 진주소씨, 정씨(?)

구례마 : 일직손씨를 제외한 모든 손씨

지백호 : 낭야정씨, 서산정씨를 제외한 모든 정씨, 최씨(?)

지타 : 분성 배씨, 성산 배씨, 달성 배씨, 흥해 배씨, 협계 배씨, 화순 배씨, 함흥 배씨 등 모든 배씨

호진 : 순창설씨

변한 : (6가야에서 자세히)

 

삼국시대

고구려 : 고씨 (소멸) - 현재 남아있는 고씨는 제주도 3성 중 하나. 발해, 고려의 왕실이 고구려 왕실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음.

백제 : 부여서씨(불확실)

신라 : 박혁거세의 박씨(아래 추가설명), 신라석씨, 경주김씨. * 참고 : 분파성씨

금관가야 : 김해김씨, 김해허씨, 하양허씨, 양천허씨 (등 모든 허씨), 인천이씨, 진주김씨, 영동김씨, 무장김씨, 함창김씨

고령가야 : 함창김씨

소가야 : 고성김씨

* 6가야(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 or 비화가야)의 왕족들은 신라 진골로 많이 편입되었다.

 

후삼국시대 

태봉 : 순천김씨, 광산이씨

후백제 : 황간견씨, 상주견씨

 

고려시대 : 개성왕씨, 개성내씨

*해주왕씨같은 하사받은 사성도 있다.

*고려 멸망 이후 살아남은 왕씨들이 전씨, 옥씨, 용씨 등으로 성을 바꿨다고 하는데, 불명확하다.

 

조선시대 : 전주이씨 

 

*참고 : 신라 왕실에서 분적된 성씨들

광산김씨, 강릉김씨, 수원김씨, 의성김씨, 청도김씨, 상산김씨, 언양김씨, 서흥김씨, 울산김씨, 나주김씨, 원주김씨, 부안김씨, 안산김씨, 영광김씨, 도강김씨, 개성김씨, 청주김씨, 삼척김씨, 희천김씨, 영천김씨, 금산김씨, 수안김씨, 우봉김씨, 광주김씨, 강화김씨, 진천김씨, 안로김씨, 교하김씨, 밀양김씨, 월성김씨, 함안김씨 등등....

 

삼국시대 박씨 추가

김·이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에 속한다. 신라의 초대 임금이라 전하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시조로 하는 박씨는 문헌상으로 300여 본이 전하나 시조나 중시조가 알려진 것은 70여 본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박혁거세의 탄생에 대한 전설이 전하며, BC 57년 그가 신라 초대 왕으로 즉위한 뒤 박씨로 2대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3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5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6대 지마이사금(祉摩尼師今), 7대 일성이사금(逸聖尼師今), 8대 아달라이사금(阿達羅尼師今), 53대 신덕왕(神德王), 54대 경명왕(景明王), 55대 경애왕(景哀王) 등 10명이 왕위에 올랐다.

 

박씨의 세계(世系)는 박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이사금과 일성이사금 대에서 크게 갈라졌다. 파사이사금계는 뒤에 면천(沔川)·영해(寧海)·강릉(江陵)·해주(海州)·비안(比安)·우봉(牛峰)·구진(邱津)·계림(鷄林)·노성(魯城) 등으로 분적되었고, 일성이사금계는 경명왕과 경애왕 대에 이르러 다시 나누어졌다.

 

경명왕의 9형제 중 언침(彦?)의 밀성대군파(密城大君派)는 밀양(密陽)·반남(潘南)·진원(珍原)·문의(文義)·봉산(鳳山)·영암(靈岩)·창원(昌原)·구산(龜山)·태안(泰安)·의흥(義興)·진주(晉州)·나주(羅州)·선산(善山)·여주(驪州)·문주(文州)·인제(麟蹄)·언양(彦陽)·운봉(雲峰)·강진(康津)·은풍(殷豊), 언성(彦成)의 고양대군파(高陽大君派)는 고령(高靈), 언신(彦信)의 속함대군파(速咸大君派)는 함양(咸陽)·삼척(三陟)·군위(軍威), 언립(彦立)의 죽성대군파(竹城大君派)는 죽산(竹山)·음성(陰城)·고성(固城), 언창(彦昌)의 사벌대군파(沙伐大君派)는 상산(商山)·상주(尙州)·충주(忠州)·평택(平澤)·남원(南原), 언화(彦華)의 완산대군파(完山大君派)는 전주(全州)·무안(務安)·순창(淳昌)·언지(彦智)의 강남대군파(江南大君派)는 순천(順川)·춘천(春川)·여수(麗水), 언의(彦儀)의 월성대군파(月城大君派)는 월성(月城) 등으로 각각 분파되었다.

 

밀양박씨는 시조로 경명왕의 맏아들인 밀성대군 언침을 내세우는데 박씨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밀양박씨의 대표적인 12개 파는 다음과 같이 분파되었다. 8세조인 언부(彦孚)의 후손인 밀성부원군파(密城府院君派)는 다시 10세조인 원(元)의 후손이 사문진사공파(四門進士公派), 13세조인 척(陟)의 후손이 충헌공파(忠憲公派), 15세조 중미(中美)의 후손이 밀직부원군파(密直府院君派), 16세조 현(鉉)의 후손이 규정공파(糾正公派)로 나누어졌다. 언상(彦祥)의 후손이 도평의사공파(都評議事公派), 언인(彦仁)의 후손이 밀성군파(密城君派), 양언(良彦)의 후손이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이며 또한 그의 후손인 13세조 원광(元光)의 후손이 영동정공파(令同正公派), 천익(天翊)의 후손이 판도판각공파(版圖判閣公派), 을재(乙材)의 후손이 좌윤공파(左尹公派)이며 그뒤 15세조인 위(?)의 후손이 정국공파(靖國公派)로 각각 나누어졌다. 이중에서 규정공파의 후손이 가장 번성했다.

 

반남박씨는 박혁거세와의 세계가 확실하지 않아 고려 고종 때 반남현(지금의 전남 나주군 반남면)의 호장(戶長)을 지낸 응주(應珠)를 시조로 삼고 있다. 6세손 은(?)이 조선초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우고 추충공신(推忠功臣)에 책록되고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에 봉해진 뒤 반남을 관향으로 삼았고, 그의 아들인 규(葵)의 후손이 참판공파(參判公派), 강(薑)의 후손이 세양공파(世襄公派), 훤(萱)의 후손이 경주부윤공파(慶州府尹公派)로 나누어지는 등 11개로 분파되었다.

 

순천박씨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벽상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에 오른 영규(英規)를 시조로 삼고 있다.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여섯째 아들인 강남대군 언지의 후손이라고 하며 또한 신라 유리왕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를 확증할 만한 증거가 없고, 그 이후의 계대(系代)도 확실하지 않아 고려 때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낸 숙정(淑貞)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고령박씨의 시조는 경명왕의 둘째 아들인 고양대군 언성으로, 7세인 섬(暹)의 후손이 어사공파(御史公派), 환(還)의 후손이 부창정공파(副倉正公派), 연(連)의 후손이 주부공파(主簿公派)로 나뉘어 이들을 각각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함양박씨는 경명왕의 셋째 아들인 속함대군 언신을 시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중간에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중엽 예부상서를 지낸 선(善)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죽산박씨의 시조는 경명왕의 넷째 아들인 죽성대군 언립의 아들인 기오(奇悟)이다. 그는 고려 태조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올라 죽산을 식읍(食邑)으로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죽산을 관향으로 삼았다. 그뒤 문열공파(文烈公派)·철성백파(鐵城伯派)·찬성공파(贊成公派)·문광공파(文匡公派)·대복경파(大僕卿派) 등 5개파로 분파되었다.

 

무안박씨의 시조는 경명왕의 여섯째 아들 언화의 5세손인 진승(進昇)으로 고려초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지내고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그뒤 후손들이 무안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충주박씨는 경명왕의 아들인 사벌대군 언창의 후손이라고 하나 이를 확인할 만한 자료가 없어 고려 중엽때 부정(副正)을 지낸 영(英)을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강릉박씨의 시조는 고려 명종 때 문과에 합격한 후 1198년(신종 1)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내고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진 순(純)이다. 한편 파사이사금에서 갈라져나온 5세손인 제상(堤上)을 중조로 삼고 있으니 그뒤 900여 년 동안 세계가 실전되어 순을 기세조로 삼았다고도 한다.

 

구산박씨의 시조는 경명왕의 아들인 밀성대군 언침의 15세손인 천(?)이다. 그는 조선 초기 대마도 정벌에 공을 세워 구산군에 봉해진 뒤 후손들이 구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삼척박씨는 경명왕의 아들인 속함대군 언신의 후손으로, 고려 공민왕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내고 삼척부원군에 봉해진 원경(元慶)이다. 그뒤 후손들이 삼척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상주박씨의 시조는 경명왕의 둘째 아들인 사벌대군 언창이다. 그는 918년(경명왕 2) 견훤의 침입을 받자 사벌주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 사벌국왕이라 칭하고 항전했으나 전사했다.
영해박씨의 시조는 눌지왕 때의 충신인 제상(堤上)이다. 그뒤 그의 26세손으로 고려 때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에 올라 예원군(禮原君)에 봉해진 명천(命天)을 사관중조(賜貫中祖)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영암박씨의 시조는 경명왕의 맏아들 밀성대군 언침의 10세손인 항(恒)으로 고려 인종 때 좌정승(左政丞)을 지내고 영암군에 봉해진 뒤 후손들이 영암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울산박씨의 시조인 윤웅(允雄)은 박혁거세의 36세손으로 왕건이 삼국을 통일할 때 공을 세워 벽상공신(壁上功臣)에 오르고 흥려백(興麗伯)에 봉해졌다. 그뒤 후손들이 흥려(지금의 울산)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음성박씨의 시조는 경명왕의 11세손인 서(犀)이다. 그는 고려 고종 때 서북병마사로 몽골의 침입을 막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오르고 음성백에 봉해졌다. 그뒤 후손들이 음성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진원박씨의 시조는 경명왕의 맏아들인 밀성대군 언침의 13세손인 진문(進文)이다. 그는 고려 때 대장군을 지냈으며, 그의 8세손인 희중(熙中)이 조선 태종때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지내고 진원군(進原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진원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춘천박씨의 시조는 경명왕의 일곱째 아들인 강남대군 언지의 10세손인 항(恒)이다. 그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내고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온 뒤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춘천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성씨 및 본관 집계결과에 따르면, 가구수 121만 5,918호와 인구수 389만 5,121명으로 성씨 중에서 인구순위 3위이다.

 

  지금의 시대에서 왕족의 성씨는 그 수가 갑자기 증가하고 반상의 구별도 없어졌지만 순수 혈통을 유지 하였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

조선초 양반은 10%미만이었는데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DNA 검사라도 한다면 알수 있겠지만 대 혼란이 올 것이므로 누구든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고 봅니다.

 

조선후기 족보를 위조하거나 1909년 민적법 시행시 성씨 없던 돌쇠, 개똥이들이 원하는 성씨를 마음껏 신청해 가졌는데  그때 이왕이면 왕족의 성씨였던 전주이씨, 안동김씨, 밀양박씨, 김해김씨 등 당시 유명하면서 흔한 성씨가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성씨 자체로 다른 집안의 귀천을 구분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부를 쌓고 학문을 수양하고, 정치인이 되는 것이 최고의 집안을 이루는 것이고, 이에 따라 똑똑한 인재를 수하에 두게 되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만, 꼭 그러한 것만이 인생을 사는 목적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한, 우리주위에 천방지축마골피가 상놈성씨이다 라는 것은 일제시대 흔한 성씨로 위장한 성씨없던 종놈(표현상 죄송)들이 퍼트린 유언비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성씨 千方池秋馬高皮는 고려때부터 있던 귀한 성씨로 알고 있습니다.

 

일례로 연못지(池)자를 쓰는 충주지씨는 고려때부터 역사서에 기록된 명문가로써  문화평장사, 예의판서 지용수장군, 지용기장군, 조선조는 병조참판 지여해 도승지 지덕해, 광복군총사령관 지청천장군 등 천년을 이어온 무인 명문가로 유명하고,  태조대왕의 첫째사돈(진안대군 장인)은 문화찬성사 지윤, 인조대왕의 사돈(여동생 남편)은 한성판윤 지계최 로 충주지씨 입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처가 방씨이고요. 장인은 방진으로 당시의 현감이며, 천씨의 시조는 천만리 장군으로 화산군 책봉까지 받았습니다.

출근 관계로 더이상 적을 수가 없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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