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En attendant Godot
사뮈엘 베케트
[제1막]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저녁.
에스트라공이 돌 위에 앉아서 구두를 벗으려고 한다. 기를 쓰며 두 손으로 한쪽 구두를 잡아당긴다. 끙끙거린다. 힘이 빠져 그만둔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다. 같은 동작이 되풀이 된다.
블라디미르 등장.
에스트라공 (다시 단념하며) 안 되겠는데!
블라디미르 (두 다리를 벌리고 종종 걸음으로 다가서며) 그럴지도 모르지. (걸음을 멈추고)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오랫동안 속으로 타일러왔지. (블라디미르. 정신 차려, 아직 다 해본 건 아니잖아) 하면서 말야. 그래서 싸움을 다시 계속해 왔단 말이야.
블라디미르 아니, 또 너로구나!
에스트라공 그래서?
블라디미르 다시 만나니 반갑다. 아주 떠나버린 줄 알았는데.
블라디미르 우리가 다시 만난 걸 어떻게 축하한다? (잠시 생각하더니) 일어나, 껴안아줄게.
에스트라공 뭐랄까.... 넌 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거지.
블라디미르 (꿈꾸듯이) 마지막 순간이라...(생각에 잠긴다) 그건 멀지만, 좋은 걸 거다.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
에스트라공 나 좀 안 거들어줄래?
블라디미르 그래도 그건 오고야 말거라고 가끔 생각해 보지. 그런 생각이 들면 기분이 묘해지거든. (모자를 벗는다. 모자 속을 들여다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흔들어보고 다시 쓴다) 뭐라고 할까?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동시에.....(적당한 말을 찾는다).... 섬뜩해 오거든. (힘을 주어) 섬 - 뜩 - 해 - 진단 말이다. (다시 모자를 벗고 속을 들여다본다) 이럴 수가! (무엇을 떨어뜨리려는 듯 모자 꼭대기를 툭툭 친 다음 다시 안을 들여다보고 다시 쓴다)결국은....
에스트라공은 힘을 다해서 마침내 구두를 잡아 뺀다. 구도 속을 들여다보고 손으로 더듬어보고, 뒤집어보고, 흔들어보고, 혹시 땅바닥에 떨어진 게 없나 살펴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멍청한 눈으로 구두 속에 손을 넣어 본다.
블라디미르 어떻게 됐어?
에스트라공 아무것도 없다.
블라디미르 어디 봐
에스트라공 볼 게 아무것도 없다니까.
블라디미르 그럼 다시 신어 봐
에스트라공 (발을 살펴보고 나서) 발에 바람을 좀 쐬야겠다
블라디미르 제 발이 잘못됐는데도 구두 탓만 하니.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블라디미르 넌 시인이 될 걸 그랬구나.
에스트라공 응 사실 난 시인이었다 .(누더기옷을 가리키며) 그렇게 안 보이니?
침묵.
블라디미르 내가 무슨 얘길 했더라.... 발은 좀 어떠냐?
에스트라공 부어오르는데.
블라디미르 참 그렇지. 도둑놈들 얘기를 했더랬지. 너두 생각나지?
에스트라공 아니.
블라디미르 얘기해 줄까?
에스트라공 싫다
블라디미르 심심풀이가 될 거야. (사이) 구세주하고 같이 십자가에 못박힌 두 도둑놈 얘기였지. 그런데....
에스트라공 누구하고라고?
블라디미르 구세주라니까. 도둑놈 둘하고. 그런데 그중 한 놈은 구원을 받았는데 또 한 놈은....(구원의 반대말을 찾으려고 애쓴다) 저주를 받았지.
에스트라공 무엇에서 구우너을 받았다는 거야?
블라디미르 지옥에서
에스트라공 난 가겠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블라디미르 그런데 말야....(사이) 도대체 어떻게 됐길래... 내 얘기가 듣기 싫으냐?
에스트라공 듣기 싫다.
블라디미르 도대체 어떻게 됐길래 복음서를 쓴 내 사람 중 단 하나만이 그때의 상황을 그런 식으로 전하게 됐는지 모르겠단 말야. 네 사람이 다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어쨌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을 텐데 말야. 그런데 그중 한 사람만이 구원받은 도둑놈 얘기를 써놓았거든. (사이) 이봐, 고고. 가끔씩은 맞장구를 쳐줘야 할 것 아냐?
에스트라공 얘기나 계속해 보시지.
블라디미르 넷 중에 하나만이 그렇게 말했거든. 나머지 셋 중에서 둘은 숫제 언급도 없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 두 도둑놈이 욕설을 퍼부었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누구 말이야?
블라디미르 뭐라고?
에스트라공 나 원,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먼.... (사이) 누구한테 욕설을 퍼부었다는 거야?
블라디미르 구세주에게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자기네를 구해 주려 하지 않았으니까.
에스트라공 지옥에서?
블라디미르 아니지. 이런 바보가 있나! 죽음에서 말야.
에스트라공 그래서?
블라디미르 그러니 두 놈이 다 저주를 받았을 거거든.
에스트라공 그런데?
블라디미르 그런데, 복음서를 쓴 친구 중 하나만은 그자들 중의 하나가 구원을 받았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그래? 그렇다면 그 친구들 견해가 서로 다른 거지 뭐. 얘긴 단지 그것뿐이지 뭐야?
블라디미르 넷이 다 거기 한자리에 있었다니까. 그런데 그중 한 사람만이 구원받은 도둑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 나머지 세 사람 얘기는 제처 놓고 그 사람 말만 믿는지 모르겠다니까
에스트라공 누가 믿는다는 거야?
블라디미르 누구나 다 그렇게 믿고 있잖아? 그 사람의 해석 밖에 모르고 있다니까.
에스트라공 사람들이 다 바보니까 그렇지.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절뚝거리며 무대 왼쪽 끝까지 가서 선다. 손을 두 눈에 대고 먼 곳을 바라 본다. 다시 돌아서서 노른쪽 끝으로 가 역시 먼 곳을 바라 본다. 블라디미르가 그를 따르다가 구두를 주으러 간다. 구두 속을 들여다보더니 별안간 내팽개친다.
블라디미르 푸우!
바닥에 침을 밷는다. 에스트라공이 무대 한가운데로 돌아와서 배경 쪽을 바라본다.
에스트라공 기막힌 곳이로군!
그는 돌아서서 무대 전면 끝까지 나와 관객 쪽을 바라본다.
에스트라공 멋진 경치로군. (블라디미르를 돌아보며) 자,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순 없어.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사이) 여기가 확실하냐?
블라디미르 뭐가?
에스트라공 기다려야 하는 게 여기냔 말야?
블라디미르 나무 앞이라고 하던데. (둘은 나무를 바라본다) 다른 나무들이 보이냐?
에스트라공 이건 무슨 나무지?
블라디미르 버드나무 같은데.
~~~~
블라디미르 이젠 어떡하지?
에스트라공 기다리는 거지.
블라디미르 그야 그렇지만 기다리는 동안 뭘 하느냐고?
에스트라공 목이나 매고 말까?
블라디미르 그러면 그게 일어서겠지
에스트라공 (호기심이 생겨) 그게 일어 선다고?
블라디미르 그래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거기서 떨어진 물에서 만드라고르 풀이 자라난다더라. 그래서 그걸 뽑으면 삑 하는 소리가 나는 거야. 너 그건 몰랐지?
에스트라공 그렇다면 당장에 목을 매자
~~~
블라디미르 그자가 뭐라고 할지 어디 기다려보자
에스트라공 누가?
블라디미르 고도 말이야.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블라디미르 우리의 결심이 설 때까지는 우선 기다려보는 거야
~~
블라디미르 그자가 오는 줄 알았지
에스트라공 누구?
블라디미르 고도 말이야
~~
무시무시한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려온다. 에스트라공, 당근을 떨어뜨린다. 둘이 얼어붙은 듯 서 있다가 무대 옆으로 도망친다. ~~~~포조와 럭키, 등장한다. 포조가 럭키의 목에 맨 끈으로 럭키를 몰고 들어온다. ~~~~
포조 (무대 뒤에서) 좀더 빨리!
채찍 소리, 포조 나타난다. 그들은 무대를 가로지른다. ~~~
포조 뒤로!
쓰러지는 소리. 럭키가 잠을 든 채 넘어진 것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그를 바라본다. 한편으로 도와주러 가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상관없는 일에 말려들기가 두려운 듯, 블라디미르가 럭키 쪽으로 한 걸음 내딛자 에스트라공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긴다.
블라디미르 놔!
에스트라공 가만있어!
포조 조심하시오! 사나운 놈이니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그를 본다) 낯선 사람들에겐....
에스트라공 (낮은 소리로) 저 작자냐?
블라디미르 누가?
에스트라공 저 .....
블라디미르 고도 말야?
에스트라공 그래.
포조 내 이름은 포조라고 하오
블라디미르 아니야
에스트라공 고도라고 했잖아?
블라디미르 아니라니까
에스트라공 (포조에게) 선생님께선 고도 씨가 아니십니까?
포조 (무서운 목소리로) 내 이름은 포조요! (침묵) 그래도 모르겠소? (침묵) 내 이름을 듣고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단 말이오?
~~~
포조 (단호하게) 고도는 누구요?
에스트라공 고도랴뇨?
포조 날 고도로 잘못 보지 않았소?
블라디미르 천만에요. 선생님, 그런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일 없습니다.
포조 그게 누구냐니까?
블라디미르 그건 .... 저 .... 그냥 아는 사람이죠.
에스트라공 알긴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랍니다.
블라디미르 그러믄요 ....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
에스트라공 저 같으면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요.
포조 그런데 당신들은 나를 그 사람인 줄 알았단 말이오.
에스트라공 그건...... 그러니까..... 날이 어두워진 데다가..... 피곤하고...... 기운 없고..... 기다리느라고 지쳐서.....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그만 잠깐 그런 생각이.....
블라디미르 이 친구 말은 듣지도 마십시오. 선생님, 들을 것도 없습죠.
포조 기다렸다니? 당신들이 그를 기다렸다는 거요?
블라디미르 그러니까 저어....
포조 여기서? 내 땅에서?
~~~
(럭키가 다가와 바구니를 주고 물러선다) 서.....(럭키 멈춰선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그래서 두 분만 좋다면, 길을 다시 떠나기 전에 잠시 두 양반 곁에 머물고 싶은데..... 괜찮겠소? (럭키에게) 바구니..... (럭키가 다가와 바구니를 주고 물서선다) 바깥 바람을 쐬면 배가 고파진단 말야. (그는 바구니를 열고 닭고기와 빵 한 조각과 포도주 한 병을 꺼낸다. 럭키에게) 바구니! (럭키가 앞으로 나와 바구니를 들고 물러서서 부동 자세) 더 멀리! (럭키 더 물러선다) 됐어! (럭키, 멈춘다) 저놈한테서 고약한 냄새가 나거든. (그는 한 컵이나 되는 술을 병째로 마신다) 건강을 위하여! (병을 놓고 먹기 시작한다)
침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차츰 대담해져 럭키의 주위를 돌며 이모저모 살펴본다. 포조, 닭고기를 맹렬하게 뜯고는 뼈다귀까지 빨아먹은 다음 던져버린다. 럭키는 트렁크가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이 기울어지다가는 얼른 허리를 편다. 또다시 허리가 구부러지기 시작. 그것은 선 채로 잠이 든 사람의 리듬이다.
에스트라공 왜 저러지?
블라디미르 피곤한가 봐
에스트라공 왜 짐을 내려놓지 않을까?
블라디미르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둘은 좀 더 가까이 가본다) 조심해!
에스트라공 말을 걸어볼까?
~~~
둘은 다시 살피다가 얼굴을 들여다본다
블라디미르 웬만큼 생겼는데.
에스트라공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입을 비쯕 내밀며) 네 눈엔 그렇게 뵈니?
블라디미르 약간 계집애 같다.
~~~
에스트라공 (쭈뼛거리며) 여보세요....
블라디미르 더 크게
에스트라공 (더 큰 소리로) 여보세요...
블라디미르 더 크게
에스트라공 (더 큰 소리로) 여보세요....
포조 가만 내버려둬요! (둘은 포조 쪽으로 돌아선다. 포조는 식사를 마치고 손등으로 입을 닦는다) 그놈이 쉬고 싶어하는 걸 모르시겠소? (그는 파이프를 꺼내 담배를 담기 시작한다.) 바구니! (럭키가 움직이지 않자, 포조는 성냥을 획 던지고 끈을 잡아당긴다) 바구니! (럭키가 넘어질 뻔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나와 술병을 바구니에 넣고 제자리로 돌아가 먼저 자세로 되돌아 간다. ~~~)
에스트라공 (조심스럽게) 선생님...
포조 왜 그러시오?
에스트라공 저.... 선생님께선 .... 저.... 안 잡수시겠죠? .....이젠 필요 없으시겠죠..... 뼈다귀는.....?
블라디미르 (화를 내며) 좀 더 기다리지 못해?
포조 아니, 아니, 괜찮아요.... 뼈다귀가 필요없냐고? (채찍 끝으로 뼈다귀를 굴리며) 아니, 난 이제 필요 없소. ~~~~~하지만, 저 뼈다귀는 qshfo 저 짐꾼 몫이오. 그러니 저놈에게 달래보시구려.
~~~
에스트라공 여보세요.... 실례합니다. 여보세요 ....
럭키, 아무 반응이 없다.
포조가 채찍 소리를 내자 럭키 고개를 든다.
포조 아, 이 더러운 놈아, 너한테 하는 소리야. 어서 대답해. (에스트라공에게)말해 보시오.
에스트라공 실례합니다. 저 뼈다귀가 필요하신가요?
럭키는 한참 동안 에스트라공을 바라본다.
포조 (혼자말로) 여보세요라니! (럭키가 고개를떨군다) 대답해! 필요한 거야? 아닌 거야? (럭키의 침묵. 에스트라공에게) 당신이나 가지시구려. (에스트라공, 뼈다귀에 달려들어 그것을 주워 뜯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한데, 뼈다귀가 싫다기는 처음 있는 일이란 말야. (그는 걱정스런 얼굴로 럭키를 바라 본다) 설마하니 저놈이 병이 난 건 아니겠지. 그는 파이프를 빤다.
블라디미르 (고함치며) 더럽다!
침묵. 에스트라공, 어리둥절해서 닭다리 뜯기를 멈추고 블라디미르와 포조를 qsjrkf아 바라본다. 포조는 태연하다. 블라디미르는 점점 난감한 표정.
포조 (블라디미르에게) 뭘 두고 하는 소리신지?
블라디미르 (단호하게 그러나 더듬거리며) ... 인간을 (럭키를 가리키며) 저런 식으로 다루다니..... 그건.... 한 인간을 ..... 정말..... 창피하다!
에스트라공 (자기도 거들어야겠다는 듯) 파렴치하다!
그는 다시 뼈다귀를 뜯기 시작한다.
포조 까다로운 양반들이구려. (블라디미르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몇 살이시오? (침묵) 예순? 일흔? (에스트라공에게) 몇 살이나 됐소?
에스트라공 직접 물어보시죠.
포조 내가 실례를 했나보오. ........
~~~~
블라디미르 그만 가자.
에스트라공 벌써?
~~~~
블라디미르 가자.
포조 나 때문에 가자는 건 아니시겠지? 좀더 있어 봐요. 후회는 안 하게 될 테니.
에스트라공 (혹시 뭐라도 주는 게 아닐 까 해서) 저희야 뭐 바쁘진 않습니다.
~~~
블라디미르 난 가겠다
포조 나하고 더 이상 있기가 싫은 모양이구먼. 내게서 인간미를 별로 못 느끼는 모양이지. 하지만 그게 이유가 될까? (블라디미르에게) 잘 생각해 보시지. 경솔한 행동을 하기 전에. 아직 날도 저물기 전인데 지금 떠난다고 합시다. 어쨌든 아직은 날이 저물기 전인데 말야. ~~~~
~~~~
에스트라공 저 사람은 왜 짐을 땅바닥에 내려놓지 않죠?
포조 하지만 그렇진 않을 거야
블라디미르 질문을 못 들으셨나요?
포조 (기분이 좋아져서) 질문을 했다고? 누가 어떤 질문을? (침묵) 조금 전만 해도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선생님) 소리를 하더니 이젠 질문까지 해오다니. 이러다간 재미없겠는데.
~~~~
에스트라공 뭘 물어보라는 거야?
블라디미르 저자가 왜 짐을 땅바닥에 내려놓지 않는냐는 거 말야.
에스트라공 글쎄 왜 그럴까?
블라디미르 그걸 물어보라니까.
~~~~
둘은 마주선 채 꼼짝 않고 기다린다.
포조 좋아. 다들 준비된 거지? 다들 보고 있고? (그는 럭키를 쳐다보고는 끈을 잡아당긴다. 럭키, 고개를 든다) 날 봐, 이 망할 놈아! (럭키, 그를 쳐다본다) 됐어! (그는 파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조그만 스프레이를 꺼내 목에 뿌린 다음 스프레이를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에스트라공 난 가겠다
포조 당신이 알고 싶은 게 뭐였더라?
블라디미르 왜 저사람은.....
포조 (화를 내며) 내 말을 가로막지 말아요! (사이. 더 조용하게) 모두 한꺼번에 말을 하면 아무것도 안되지. (사이)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사이. 더 크게)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블라디미르가 무거운 짐 든 사람의 시늉을 한다. 포조는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바라만 본다.
에스트라공 (큰 소리로)..... 짐! (그는 손가락으로 럭키를 가리켜 보인다) 왜 그렇죠? 계속 듣고 있으니, (그는 헐떡이면서 짐에 짓눌린 사람의 시늉을 한다) 절대로 땅바닥에 놓는 일이 없으니. (두 손을 펴고 거뜬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다) 왜 그러냐고요?
포조 알겠소. 진작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왜 저놈이 제 몸을 편하게 하지 않는냐 이 말이지? 어디 그 까닭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
블라디미르 어디 좀 들어보자!
포조 그건 내게 감동을 주려는 거요. 버림받지 않으려고.
에스트라공 뭐라고요?
포조 내 설명이 서툴렀던 모양이군. 저놈은 내 동정을 사려는 거라고. 내가 자기와 헤어지지 못하게 말이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블라디미르 그렇다고 쫓아버릴 생각이신가요?
포조 저놈은 내 마음을 끌려고 그러지만, 내가 제 꾀에 넘어갈 사람인가?
블라디미르 그렇다면 쫓아버릴 생각이신가요?
포조 저놈은 제가 훌륭한 짐꾼이라는 걸 내게 보여주면 내가 저를 앞으로도 계속 짐꾼으로 쓸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에스트라공 하지만 이제 저자가 싫어졌단 말씀이신가요?
포조 사실 저놈은 꼭 돼지처럼 짐을 다룬다오. 직업을 잘못 택한 거지.
블라디미르 그래 쫓아버릴 생각이신가요?
포조 저놈은 저렇게 지칠 줄 모르고 짐을 들고 섰는꼴을 보면 내가 내린 결정을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졸렬한 계산을 하고 있는 거요. 짐꾼이 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오. ~~~~~~
블라디미르 그러니까 쫓아버린 생각이신가요?
포조 하긴 운명의 장난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저놈과 내 처지가 바뀌지 말란 법도 없지. 다 팔자소관이라오.
~~~~
포조 사실은 그렇소. 하긴 궁둥이를 한 대 걷어차서 문 밖으로 쫓아낼 수도 있었지만, 생 소뵈르 시장까지 데리고 가서 좋은 값으로 팔아버릴 생각이오. 그건 내 선의지. 솔직히 말해서 이런 녀석은 쫓아버릴 것도 없이 그대로 죽여 버려야 하는 건데.
럭키, 운다
에스트라공 운다
포조 늙은 개라도 이놈보다는 위신을 세울 줄 알거요. (그는 손수건을 에스트라공에게 내준다) 불쌍히 여기는 모양이니. 위로해 주시지. ~~~그럼 저 녀석도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좀 덜 들겠지.
~~~~
블라디미르 이리 줘. 내가 할 테니
에스트라공, 손수건을 내주려하지 않ㄴ느다. 어린애 같은 제스처.
포조 자 어서요. 곧 울음을 그칠지도 모르니까. (에스트라공, 럭키에게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려는 자세를 취한다. 럭키가 정강이를 냅다 걷어찬다. 절뚝거리며 신음소리를 지르면서 무대를 한 바퀴 돈다) 손수건!
~~~~
에스트라공 망할 자식! 개새끼 (그는 바지를 추켜올린다) 저놈 때문에 병신이 됐다.
포조 그래 내 뭐랍디까? 저놈은 낯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니까.
~~~
에스트라공 (다친 다리를 추켜들고) 난 이제 걸을 수도 없게 됐다!
블라디미르 (다정하게) ..... 내가 업고 가지. (사이) 정 그렇다면.
포조 이젠 울음을 그쳤군. (에스트라공에게) 그러니까 당신이 저놈을 대신하게 된 거구려. (생각에 잠긴 듯)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아오. 웃음도 마찬가지요. (웃는다)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침묵)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침묵) 그런 얘긴 아예 할 것도 없어요. (침묵) 인구가 는 건 사실이지만.
블라디미르 좀 걸어봐.
~~~~
포조 그런 훌륭한 걸 다 누가 나한테 가르쳐줬는지 아시오? (사이. 손가락으로 럭키를 가리키며) 럭키 저놈이오!
블라디미르 (하늘을 쳐다보며) 왜 이렇게 밤이 안 오지?
포조 저 녀석이 아니었더라면 난 천한 것들밖엔 생각 하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을 거요. 내 직업이란 게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만.... 최상의 아름다움이라든가 멋이나 진리 같은 것과는 무관한 것이라서 WSJGU 알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크누크를 두기로 했지.
블라디미르 (하늘을 살피다가 자기도 모르게) 크누크라니요?
포조 그런 지가 벌써 근 육십 년이나 되었지...(속으로 계산해 본다)..... 그래, 근 육십 년이 됐소. (거만하게 몸을 일으키며) 내 나이가 그렇게는 안 들어 보이지 않소? (블라디미르, 럭키를 져다본다) 저놈에 비하면 난 청년으로 보일 테지? 안 그렇소? (사이. 럭키에게) 모자! (럭키가 바구니를 놓고 모자를 벗는다. 숱이 많은 백발이 얼굴 위로 쏟아진다. 그는 모자를 겨드랑이에 끼고 바구니를 다시 든다) 이번엔 내 머리를 보구려. (포조가 모자를 벗는다. 여기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중절모를 쓰고 있다. 포조의 머리는 완전한 대머리다. 모자를 다시 쓴다) 다들 보셨지?
블라디미르 크누크가 뭐죠?
포조 당신은 이 고장 사람이 아니군. 그렇다고 해서 다른 시대 사람은 아니겠지? 옛날엔 어릿광대들을 두었지만 요즘엔 크누크를 둔다오. 물론 그럴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 얘기지만.
~~~~
블라디미르 단물은 다 빨아먹고 나서 ESJWUQJFLRPt다는 거지..... (말을 찾는다) 바나나 껍질 버리듯이 말야. 솔직히....
포조 (신음하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서) 더 이상은 못 참겠소.... 못 참겠다고.... 이놈이 하는 짓이라니....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끔찍하다고 ..... 제발 이놈 좀 없어졌으면 좋겠소.... (두 팔을 내젓는다) 내가 미칠 것 같다고... ~~~~
~~~~
블라디미르 못 견디겠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차마 못 보겠는데
~~~~
포조 (흐느끼며) 전엔 .... 착했었지.... 날 도와주고.... 위로도 해주고..... 날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해 주었는데.... 지금은 날 못살게 군단 말이오....
이스트라공 (블라디미르에게) 다른 사람을 두겠다는 걸까?
~~~
에스트라공 그럼 물어봐야겠다.
~~~~~
블라디미르 (발을 멈추며) 밤은 영영 오지 않는 걸까?
세 사람 모두 하늘을 쳐답노다.
포조 이젠 먼저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소?
에스트라공 실은..... 아시다시피
포조 암, 당연하지 ~~~~고도인지.... 하여큰 그자하고 만날 약속을 했다면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려보고 나서야 단념을 하든 말든 하겠소. (의자를 바라본다) 다시 앉고 싶은 데 어떻게 하면 앉을 수가 있다?
~~~~
에스트라공 (포조에게) 이 친구는 오늘 모든 걸 비관적으로 보고 있답니다.
포조 하늘은 빼놓고겠지.
~~~~
블라디미르 가자.
에스트라공 그렇게 서 계시지 말라두요. 그러다간 병나시겠습니다.
포조 참 그렇지. (다시 앉아서 에스트라공에게)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
에스트라공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까뛸.
포조 (다답은 듣지도 않고) 참 그렇지, 밤에 관한 얘기였지.
~~~~~~하늘을 쳐다보라니까, 이 돼지 같은 놈아! (럭키가 고개를 젖힌다) 좋아요. 그만하면 됐소! (모두들 다시 고개를 바로잡는다) 뭐 그렇게 이상할 것 있겠소? 그저 하늘일 뿐이지? 빛이 희미하게 밝긴 하지만 어느 하늘이든 이 시간엔 그런 거 아니오? (사이) 이 지방에선 (사이) 날씨가 좋을 때 얘기지만.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한 시간쯤 됐을까. (산문적인 어조로 시계를 보면서) 하늘에서 이런 빛이 쏟아진 것이 (다시 서정적인 어조) 아침 열시부터라고 칩시다. (어조가 높아진다) 붉고 하얀 빛을 줄기차게 쏟아내리던 하늘이 그 빛을 잃고, 엷어지더니 ( 두 손을 조금씩 내리는 동작) 조금씩 조금씩 엷어져서 결국은..... (극적인 중단. 두 손을 수평으로 넓게 내젓는 동작) 딱 그치고는 움직이질 않게 된단 말이오. (침묵) 하지만 (설교하듯 한 손을 들고) 하지만 부드럽고 고요한 이 베일 뒤에서, (하늘을 쳐다본다. 럭키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그를 따라 하늘을 쳐다본다) 밤이 밀려와 (목소리가 더욱 떨린다) 우리에게 달려든단 말이오. (손가락을 소리내어 꺽으며) 이렇게 와락! (영감이 사라진다) 우리가 전혀 예상 못한 순간에 말이오. (침묵. 침통한 목소리로) 이 빌어먹을 땅덩어리 위에선 모든 게 이렇게 되고 마는 거지.
오랜 침묵
에스트라공 하지만 우린 약속을 받았으니까.
블라디미르 참을 수가 있지.
에스트라공 지키기만 하면 된다.
블라디미르 걱정할 것 없지.
에스트라공 지키기만 하면 되는 거야.
블라디미르 기다리는 거야 버릇이 돼 있으니까.
~~~~
블라디미르 그럼 춤추는 걸 보죠.
포조 (럭키에게) 들었지?
이스트라공 거절하는 법은 없나요?
포조 그건 이따 설명하기로 하고. (럭키에게) 춤춰. 이 망할 놈아!
럭키는 바구니를 트렁크에 내려놓고 무대 전면으로 조금 걸어나와 포조를 향해 돌아선다. 에스트라공인 더 잘 보려고 일어선다. 럭키가 춤을 춘다. 곧 멈춘다.
에스트라공 그게 다 춘 겁니까?
포조 더 춰!
럭키, 같은 동작을 되풀이 한 후 멈춘다.
에스트라공 어이! 그게 춤이야? ~~~~
~~~
포조 ~~~~~지금 저놈이 춘 춤을 뭐라고 하는지 아시오?
에스트라공 램프 상인의 죽음.
블라디미르 노인의 암.
포조 노끈 춤이라고 한다오. 제가 노끈에 친친 감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
에스트라공 거절하는 법은 없나요?
포조 설명해 드리지. (주머니를 뒤진다) 가만있자! (또 뒤진다) 내가 스프레이를 어쨌더라? (또 뒤진다) 이럴 수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죽어가는 소리로) 스프레이를 잃어버렸는데!
~~~~
럭키 (단조로운 어조로) 프왕송과 와트만의 최근의 공동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까까 흰 수염이 달린 까까까까 인격신은 공간의 시간 밖에 존재 하고 있어 하늘의 무감각과 무공포와 침묵 위 높은 곳에서 몇몇을 제외하고는 우리를 사랑하는데 그 까닭은 모르지만 곧 알게 될 터이고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처음으로 수군거리기 시작. 포조는 더욱 괴로운 표정) 왜 그런지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 (블라드미르와 에스트라공의 감탄의 소리. 포조는 벌떡 일어나서 끈을 잡아당기고 휘청거리며 으르렁거린다. 모두들 럭키에게 달려든다. 그래도 럭키는 몸부림을 치며 대사를 외쳐댄다) 스타인베그와 페터만이 포기한 실험에 비추어볼 때 들에서 산에서 바닷가에서 물가에서 물가에서 불가에서 공기는 똑같고 땅도 같고.~~~~~
포조 이놈의 모자를
블라드미르가 럭키의 모자를 잡아챈다.
럭키는 입을 다물고 쓰러진다
무거운 침묵. 승리자들은 헐떡인다.
에스트라공 이제야 원수를 갚았다.
~~~~
포조 잘 붙ㅈ바고 있어요!
그는 트렁크를 럭키의 손에 쥐어주지만 럭키는 곧 놓치고 만다.
포조 놓지 말래도!
그는 다시 시작한다.
럭키는 손에 트렁크가 닿자 차츰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여 마침 내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꽉 쥔다.
~~~
포조 앞으로!
럭키, 앞으로 나온다
포조 뒤로!
럭키 물러선다.
~~~
포조 잘들 계쇼.
블라드미르 안녕히 가십쇼
에스트라공 안녕히 가십쇼.
~~~
포조 그런데.... (망설인다) .... 어째 떠날 마음이 안나는데.
에스트라공 그게 인생이죠.
~~~~
포조 앞으로! 잘들 계쇼! 더 빨리! 돼지 같은 놈아! 이랴! 잘들 계쇼!
침묵
블라디미르 덕분에 시간은 잘 보냈다.
에스트라공 시간이야 안 그래도 지나갔을 텐데 뭐.
~~~~
에스트라공 이젠 뭘 하지? 블라디미르 글쎄 말이다
에스트라공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순 없다....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사이.
~~~~
소년 아저씨!
에스트라공, 멈춘다.
둘 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본다.
에스트라공 또 시작이구나.
블라디미르 이리 오너라, 얘야.
어린 소년이 겁먹은 표정으로 나타난다. 걸음을 멈춘다.
소년 알베르 아저씨는요?
블라디미르 나다
에스트라공 왜 그러냐?
블라드미르 이리 와
소년. 움직이지 않는다.
~~~~에스트라공 왜 이렇게 늦게 왔냐?
블라드미르 너 고도 씨의 부탁을 받고 온 거지?
소년 네, 아저씨.
블라드미르 그럼 어서 말해 보라
에스트라공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왔냐?
~~~~
소년 무서웠어요, 아저씨
에스트라공 무섭다니 뭐가? 우리가? (사이) 어서 대답을 해 봐!
~~~~
소년 고도 씨가....
블라드미르 (말을 가로막으며) 너를 전에 본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소년 글쎄요....
블라드미르 넌 나를 모르겠니?
소년 모르겠는데요.
블라드미르 너 어제도 오지 않았냐?
소년 아뇨.
블라드미르 그럼 처음 온 거야?
소년 네.
침묵
블라드미르 그렇게 말하겠지. (사이) 그래, 얘기해 봐라.
소년 (단숨에) 고도 씨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랬어요.
블라드미르 그게 다냐?
소년 네
블라드미르 넌 고도 씨 밑에서 일하고 있냐?
소년 네
블라드미르 그래. 무슨 일을 하지?
소년 염소를 지켜요.
블라드미르 고도씨는 노한테 잘해주냐?
소년 네.
~~~블라드미르 그래 네 형은 뭘 하냐?
소년 양떼를 지켜요.
~~~
소년 고도 씨한테 가서 뭐라고 할까요?
블라드미르 가서 ....(망설인다) 가서.... 그냥 우리를 만났다고만 하려무나. (사이) 네가 우릴 만난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소년 네
소년은 물러섰다가 망설이더니 뒤돌아보고는 뛰어나간다. 빛이 별안간 약해지며 순식간에 밤이 된다. 달이 떠올라 하늘 저쪽 끝에 머문다. 무대 전체가 은빛으로 싸여 있다.
블라드미르 이제야 밤이 됐구나.
~~~~
블라드미르 그럼 넌 맨발로 다니겠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예수도 그랬는 걸
~~~~
에스트라공 그럼 여기서 기다려야겠구나.
블라드미르 미쳤냐? 우선 잠자리를 찾아야지. (에스트라공읜 팔을 잡는다) 이리 와.
그는 에스트라공을 끈다. 에스트라공이 처음에는 끌려가다가 버틴다. 둘 다 그 자리에 멈춘다.
에스트라공 (나무를 보며) 제기랄. 끈이라도 한 오라기 있었으면.
블라드미르 어서 와. 추워진다.
다시 에스트라공을 끈다. 같은 동작.
에스트라공 내일은 끈을 가져오도록 내게 일깨워다오.
블라드미르 알았어. 가자.
에스트라공을 끈다. 같은 동작
에스트라공 우리가 이렇게 같이 붙어 있은 지가 얼마나 될까?
블라드미르 모르겠다. 한 오십 년?
에스트라공 내가 뒤랑스 강에 뛰어들던 날, 너 생각나니?
블라드미르 그래 포도를 거둬들이고 있었지
에스트라공 네가 나를 건져주었지
블라드미르 다 지나간 얘기다.
에스트라공 내 옷이 햇볕에 말랐었지.
블라드미르 그 따위 생각은 이제 하지도 말아. 자, 가자.
같은 동작.
~~~~
블라드미르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되거들랑 언제라도 헤어질 수야 있지
에스트라공 이젠 그럴 필요도 없다.
침묵
블라드미르 하긴 그래. 이제 와서 그럴 필요는 없지.
침묵.
에스트라공 그만 갈까?
블라드미르 가자.
두 사람 다 움직이지 않는다.
[제2막]
다음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
푸트라이트 가까이 에스트라공의 구두 두 짝이 놓여 있다. 뒤꿈치는 모아져 있고 앞축은 벌려져 있다. 럭키의 모자도 같은 자리에 있다.
나무에는 잎이 조금 달려 있다.
블라디미르가 활기있게 등장한다. 발을 멈추고 한참 동안 나무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부산스럽게 무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는 다시 구두 앞에서 멈추더니 허리를 굽혀 구두 한 짝을 집어 이리저리 살피고 냄새를 맡은 다음 조심스럽게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그러고 나서 다시 허둥대며 왔다갔다한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고개를 뒤로 젖힌 자세로 목청을 높여 노래부르기 시작한다.
블라디미르 개 한 마리가 들어왔네....
~~~~~
그는 노래를 멈추고 잠시 움직이지 않더니 다시 열에 들뜬 사람처럼 무대를 이리저리 왔다갔다한다. 다시 나무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가 왔다갔다하고 ~~~~그때 왼쪽 무대 입구에서 에스트라공 등장. 맨발에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무대를 가로질러 간다. 블라디미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본다.
블라드미르 또 너로구나!
에스트라공, 발을 멈춘다. 그러나 고개는 들지 않는다. 블라드미르가 그에게 다가간다.
블라드미르 이리 와, 껴안아줄게!
에스트라공 건드리지 마!
블라드미르 내가 가버렸으면 좋겠니? (사이) 고고! (사이. 블라드미르, 그를 유심히 본다) 너 매를 맞았구나? (사이) 고고! (에스트라공,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어젯밤은 어디서 보냈지?
침묵, 블라드미르 다가간다.
에스트라공 건드리지 말라니까! 묻지도 말고! 아무 말도 말고 그냥 옆에 있어만 줘!
블라드미르 내가 언제 네 곁을 떠난 적이 있었니?
에스트라공 나를 혼자 가게 내버려뒀잖아?
~~~~
에스트라공 일수가 나빴어!
블라드미르 누구한테 맞았는데? 얘기나 해봐
에스트라공 또 긴 하루가 지나갔구나.
블라드미르 아직 멀었는걸
에스트라공 나한텐 하루가 지나간 거야. 무슨 일이 또 있을진 모르지만. (침묵) 참 아까 들으니까 너 노래를 부르던데?
블라드미르 맞아. 생각난다.
에스트라공 노래 소릴 들으니 슬퍼지더나. 저 친구 외로운 모양이구나. 내가 아주 떠나버린 줄 알고 노래를 부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
블라드미르 기분이란 건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없는 건가 보다. 낮에는 종일 기분이 아주 좋았거든. (사이) 간밤엔 한 번도 깨지 않았으니까.
~~~~
블라드미르 네가 없으니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좋기도 하더라. 이상하지 않니?
에스트라공 (기분이 상해서) 좋았다고?
블라드미르 (생각한 끝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
에스트라공 아무래도 넌 내가 있어서 기분이 전보다 못한 것 같구나. 나도 혼자 잇을 때가 낫다.
블라드미르 (발끈해서) 그런데 왜 내게 붙어다니는 거지?
에스트라공 모르겠다.
~~~
블라드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침묵.
블라드미르 어제하곤 달라진 게 있다.
에스트라공 만약 안 온다면 어떡하지?
블라드미르 (w마시 알아듣지 못하다가)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어제하곤 달라진게 있다니까.
에스트라공 사방에서 고름이 흘러나오는데.
블라드미르 이 나무를 좀 봐
에스트라공 같은 고름이 두 번 흘러내리지야 않지
블라드미르 이 나무를 좀 봐라!
에스트라공 , 나무를 본다.
에스트라공 어젠 이 나무가 없었던가?
블라드미르 있었지, 너 생각 안 나냐? 하마터면 목을 맬 뻔 했잖아? (생각해 본다) 그래 맞아.~~~
~~~~
블라드미르 그럼 포조와 럭키도 잊어버렸냐!
에스트라공 포조와 럭키라니?
블라디미르 다 잊어버렸군!
에스트라공 어떤 미친놈이 내게 발길질한 건 생각난다. 그러다가 그놈이 또 이상한 짓거리를 했지.
블라드미르 그게 바로 럭키야.
~~~~
블라드미르 고고, 너하고 같이 사는 건 힘이 드는구나.
에스트라공 그럼 헤어지는 게 낫겠구나.
블라드미르 넌 밤낮 말로만 그러고는 다시 나타나잖아.
~~~~
블라드미르 맞아. 끊임없이 지껄여대는 거야.
에스트라공 그래야 생각을 안하지.
~~~~
블라드미르 무슨 말이고 좀 해봐라.
에스트라공 지금 찾고 있는 중이다.
긴 침묵
블라드미르 (괴로운 표정) 무슨 말이든 해보라니까!
에스트라공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블라드미르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
에스트라공 난 피곤하다. (사이) 가자.
블라드미르 가선 안 되지
에스트라공 왜?
블라드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
블라드미르 (의기양양하게) 고도다! 이제야 오는구나! (그는 에스트라공을 정신없이 껴안는다) 고고! 고도다 고도다! 우린 이제 살았다! 어서 마중이나 나가자! 어서 와! (그는 무대 입구를 향해 에스트라공을 끌고 간다. 에스트라공은 버티다가 뿌리치고 무대 맞은편 입구로 뛰어나간다) 고고! 돌아와! (침묵. 블라드미르는 에스트라공이 사라진 출입구로 달려가서 먼 곳을 바라본다. 에스트라공이 또다시 황급히 돌아와 블라드미르에게로 달려간다. 블라드미르가 돌아보며) 너 다시 왔구나!
에스트라공 난 망했다.
블라드미르 멀리까지 갔었니?
에스트라공 언덕 끝에까지.
블라드미르 하긴 우리가 있는 곳이 언덕 위니까 우린 결국 쟁반 위에 올려진 꼴이지.
에스트라공 저쪽에서도 온다.
블라드미르 그럼 포위당한 거야! (에스트라공은 겁에 질려 무대 안쪽 휘장을 향해 달려가다가 막에 휘말려 넘어진다) 이 바보야 그쪽으로는 빠져나갈 데가 없어! (블라드미르가 가서 그를 일으켜 무대 전면으로 끌어낸다. 관객을 향해) 여긴 아무도 없다. 그러니 이쪽으로 달아나라! 자, 어서! (그는 에스트라공을 오케스트라 박스 쪽으로 밀어낸다. 에스트라공, 질겁을 해 뒤로 물러난다) 왜 싫으냐? 아 알겠다. 그럼 (생각한다)숨는 수밖에 없겠구나.
에스트라공 어디에?
블라드미르 나무 뒤에 (에스트라공, 망설인다) 빨리빨리 나무 뒤로 가라니까. (에스트라공 나무 뒤로 뛰어가 숨는다. 그러나 제대로 가려지지 않는다.)이젠 꼼짝 말아! (에스트라공이 나무 뒤에서 나온다) 이 나무는 아무짝에도 못쓰겠구나. (에스트라공에게) 너 혹시 미친 거 아니냐?
에스트라공 (점 진정되어) 머리가 돌았었다. ~~~~
~~~~
블라드미르 내가 잘못 봤나보다.
에스트라공 (돌아보며) 뭐라고?
블라드미르 (더 큰 소리로) 네가 잘못 봤나보다고.
에스트라공 소리지르지 마!
~~~
블라디미르 운동이나 해볼까?
에스트라공 체조 말이지?
~~~
포조와 럭키 등장.
포조는 장님이 되어 있고 럭키는 1막에서처럼 짐을 잔뜩 들고 있다. ~~~~
포조 (럭키에게 매달린다. 럭키는 이 더해진 무게에 짓눌려 휘청거린다) 무슨 일이야? 누가 소리를 질렀지?
~~~
에스트라공 고도냐?
블라드미르 마침 잘 왔다. (그는 그들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간다. 에스트라공이 뒤따른다) 드디어 원군이 온거다!
포조 (질린 소리로) 사람 살려!
에스트라공 고도냐?
블라드미르 맥이 빠지려는 판에 잘됐다. 이제 오늘 밤은 잘 넘기게 됐구나.
포조 이쪽이오!
에스트라공 살려달라고 하잖아?
블라디미르 이젠 우리만이 아니다. 밤을 기다리고 고도를 기다리고.... 또.... 어쨌든 기다리는 게 말이다. 저녁 내내 우리 둘이서만 갖은 수를 다 써가며 애를 써왔는데. 하지만, 이젠 끝났다. 벌써 내일이 된 거나 진배없으니까.
포조 이쪽이오!
블라디미르 벌써 시간이 흐르는 게 다르지 않냔 말이다. 이제 곧 해가 지면 달이 뜰 테고, 그러면 우리도 떠날 수 있다. 여기서 말이야.
포조 살려줘요!
블라디미르 포조가 딱하게 됐구나!
에스트라공 난 또 그 자인 줄 알았지.
블라디미르 누구?
에스트라공 고도 말이다.
블라디미르 고도가 아니야.
에스트라공 고도가 아니라고?
블라디미르 고도는 아니다.
에스트라공 그럼 누구냐?
블라디미르 포조다.
포조 나요. 나! 날 좀 일으켜줘요!
블라디미르 일어나지도 못하는구나.
에스트라공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수는 없다.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
포조는 몸을 뒤틀며 신음한다. 주먹으로 땅을 친다.
에스트라공 뼈다귀를 먼저 달래볼까? 만일 안 주겠다면 그냥 내버려두지 뭐.
블라디미르 네 말은 저자를 우리 마음대로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이거냐?
에스트라공 그렇지.
블라디미르 그럼 조건을 내세워서 살려주기로 하면 어떨까?
에스트라공 그러자.
~~~
블라디미르 저길 보라고. (몸짓) 지금은 저렇게 가만있지만 언제 날뛸지 알게 뭐냐?
에스트라공 저자들 둘을 본때 있게 손을 봐주는 게 어때?
블라디미르 자고 있는 틈을 타서 덮치자 이거야?
에스트라공 그래.
블라디미르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 저자가 진짜로 자는 걸까? (사이) 제일 좋은 방법은 포조가 살려달랄 때 살려줘서 그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거지.
에스트라공 하지만 지금은 살려달라지도 않잖아?...
블라디미르 공연한 얘기로 시간만 허비하겠다. ~~~~~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에스트라공 그건 그렇지.
블리디미르 아니면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사이) 우린 약속을 지키러 나온 거야. 그러면 된 거다. 물론 우린 성인군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키러 나온 거란 말이다. 이 정도라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포조 사람 살려!
블라디미르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온갖 짓거리를 다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뭐랄까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버릇이 되어버린 거동을 하면서 말이다. 넌 그게 이성이 잠드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지. 그 말은 나도 알겠다. 하지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성은 이미 한없는 깊은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야. 너 내 말 알아듣겠냐?
에스트라공 인간은 모두 미치광이로 태어나는 거다. 그중에는 끝내 미치광이로 끝나는 자들도 있고.
포조 사람 살려! 돈을 줄께!
에스트라공 얼마 주겠소?
포조 100프랑.
에스트라공 너무 적어.
블라디미르 난 그렇게까진 생각지 않아!
에스트라공 그럼 넌 적지 않단 말이냐?
블라디미르 아니, 그게 아니라 난 내가 태어날 때 미치광이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단 말이다.
포조 200프랑
블라디미르 우린 기다리고 있다. 우린 지루하다. (한 손을 치켜 든다) 아니, 반대하지 말아! 지독하게 지루하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으니까. 그런데 심심풀이를 할 일이 코앞에 나타났는데 우린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냥 썩히고 있잖느냔 말이다. 자, 시작하는 거다. (포조를 향해 가다가 멈춘다) 조금 있으면 모두들 사라지고 우린 다시 외톨이가 되겠지. 이 허허벌판 한가운데서.
그는 생각에 잠긴다.
포조 200프랑!
블라디미르 가요, 가!
그는 포조를 들어올리려 하지만 실패한다. 다시 시도해 보다가 짐에 걸려 넘어진다. 일어나려고 하는데 안 된다.
에스트라공 다들 왜 이 지경이야?
블라디미르 사람 살려!
에스트라공 난 가겠다.
블라디미르 날 버리고 가지 말아! 이놈들이 날 죽일 거다!
포조 여기가 어디요?
블라디미르 고고!
포조 이쪽이오!
블라디미르 날 거들어다오!
에스트라공 난 가겠다.
블라디미르 우선 날 거들어주고 나서 같이 가자.
에스트라공 약속하지?
블라디미르 그래 맹세한다.
에스트라공 그리고 다신 안 오는 거다.
블라디미르 그래 다신 안 온다!
에스트라공 아리에쥬로 가자.
블리디미르 어디라도 좋다.
포조 300프랑! 400프랑!
에스트라공 전부터 늘 아리에쥬 지방을 돌아다니고 싶었거든.
블라디미르 마음대로 돌아다니려무나.
~~~~
포조 나요 나! 살려주오!
에스트라공 구역질이 난다.
블라디미르 빨리빨리! 손을 줘!
에스트라공 난 가겠다. (사이 더 큰 소리로) 난 가겠다니R!
블라디미르 좋아! 혼자 못 일어설 줄 알고? (일어서려고 하다가 다시 쓰러지며) 언젠가는 일어서게 되겠지.
에스트라공 왜 그러냐?
블라디미르 꺼져버려! 에스트라공 혼자 여기 있으려고?
~~~
에스트라공 이봐, 디디. 버틸 것 없잖아? (그는 블라디미르에게 손을 내민다. 블라디미르가 얼른 그 손을 잡는다) 자, 일어서!
블라디미르 끌어!
에스트라공이 끌다가 비틀거리며 넘어진다. 긴 침묵
포조 이쪽이오!
블라디미르 여기 있어요.
포조 당신들은 누구요?
블라디미르 우린 사람이오.
침묵
에스트라공 땅바닥에 누우니 기분 좋은데!
블라디미르 너 일어날 수 있겠니?
에스트라공 글쎄.
블라디미르 한번 일어나 봐.
에스트라공 조금 있다가. 조금 있다가.
침묵
~~~~
에스트라공 다른 이름으로 불러보면 어떨까?
블라디미르 아주 뻗은 건 아닐까?
에스트라공 그럼 재미있을 거다.
블라디미르 뭐가 재미있어?
~~~~
에스트라공 이제 두고 보면 알 게 아냐? 자.... (생각한다) 아벨! 아벨!
포조 이쪽이오!
에스트라공 그것 봐
블라디미르 이런 짓거리에는 이제 넌더리가 난다.
에스트라공 또 한 놈의 이름은 카인일 거다. (부른다) 카인! 카인!
포조 이쪽이오!
에스트라공 그러면 인류 전체다. (침묵) 저길 봐라. 그름 한 조각이 있구나.
블라디미르 (눈을 들며) 어디?
에스트라공 저기 하늘 한가운데.
블라디미르 그래서? (사이) 그게 뭐 어떻다는 거야?
침묵
에스트라공 이젠 다른 걸로 넘어가자. 어때?
~~~~
포조 사람 살려!
에스트라공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순 없다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
에스트라공 좋아. 그럼 거들어주자. 망설일 거 없다.
그들은 포조가 일어나도록 거들어준다. 두 사람이 몸을 빼자 포조가 다시 쓰러진다.
블라디미르 붙ㅈ바고 있어야 해.~~~~
포조 당신들은 누구요?
블라디미르 우릴 모르시겠소?
포조 눈이 멀어서.
에스트라공 그럼 미래의 일은 잘 볼지도 모른다.
블라디미르 (포조에게) 언제부터요?
포조 전에는 눈이 아주 좋았다오. 헌데 당신들은 친구요?
에스트라공 (큰 소리로 웃으며) 우리더러 친구냐고 묻는 거야!
블라디미르 그게 아니라 우리가 자기 친구냐는 거지.
에스트라공 그건 어떨까?
블라디미르 우리가 절 도와줬으니 친구라고 봐야지.
~~~
포조 당신들 강도는 아니오?
에스트라공 강도라고? 그래 우리가 강도로 보이나?
블라디미르 그만해 둬. 장님이니까.
~~~
포조 어느 날 깨어보니 캄캄하더란 말이오. 마치 운명처럼. (사이) 그래서 지금도 혹시 내가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가 있다오.
블라디미르 그게 언제였소?
포조 모르겠소.
블라디미르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포조 묻지 마시오. 장님에겐 시간관념이 없는 법이오 (사이) 그리고 시간과 관계되는 건 다 모른다오.
~~~~
포조 내 하인은 어디 있소?
블라디미르 여기 있소.
포조 그런대 왜 내가 부르는데 대답도 안할까?
블라디미르 내가 알게 뭐요? 아나 자나 보오. 죽었는지도 모르고.
포조 그럼 일이 있었던 거요?
에스트라공 무슨 일이 있었냐니, 원!
~~~
에스트라공 (럭키를 굽어보고) 숨은 쉬는데.
블라디미르 그럼 한 대 쳐봐.
~~~
럭키가 일어나서 짐을 든다.
포조 이젠 됐어.
블라디미르 이제 어디로 가시오?
포조 그런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소.
~~~
블라디미르 그 트렁크 속엔 뭐가 들어 있소?
포조 모래요. (그는 끈을 잡아당긴다) 앞으로!
럭키가 움직이기 시작. 포조는 그 뒤를 따른다.
블라디미르 아직은 가지 마시오.
포조 (발을 멈추며) 난 가겠소.
~~~블라디미르 떠나기 전에 저자한테 노래나 한 곡 부르게 하쇼.
포조 누구에게 말이오.
블라디미르 럭키 말이오.
포조 럭키에게 노래를?
블라디미르 그렇소. 아니면 생각을 하게 하든가. 낭독을 시켜도 좋고.
포조 저놈은 벙어리인걸.
블라디미르 벙어리라니?
포조 그렇다니까. 신음소리 한 마디 못 낸다오.
블라디미르 벙어리라! 언제부터요?
포조 (버럭 화를 내며) 그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이니야?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날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그는 끈을 잡아당긴다) 앞으로!
두 사람은 퇴장한다. ~~~~~
에스트라공 (질겁을 한 동작으로 횡ㅅ러수설 중얼거리다가 마침내) 넌 왜 잠도 못 자게 하는 거야?
블라디미르 외로워서
에스트라공 행복하게 된 꿈을 꾸고 있었는데.
~~~
에스트라공 포조가 눈이 멀었대?
블라디미르 제 입으로 그렇다고 했잖아?
에스트라공 그런데?
블라디미르 내 보기엔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았어.
에스트라공 너 꿈을 꾼 모양이구나. (사이) 그만 가자. 이젠 안 되겠다. 안 되고말고. (사이) 그 작자가 아닌게 확실하냐?
블리디미르 누구?
에스트라공 고도 말야.
블라디미르 누가 고도라는 거야?
에스트라공 포조 말이다.
블라디미르 아냐. 그건 아니다. (사이) 아니고말고.
에스트라공 어쨌든 이젠 일어나야지. (힘겹게 일어선다) 아야!
블라디미르 이젠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에스트라공 내 발이! (다시 앉아서 구두를 벗으려 한다) 좀 거들어줘!
블라디미르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자고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말하게 될지? 내0 친구 에스트라공과 함께 이 자리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렸다고 말하게 될까? 포조가 그의 짐꾼을 데리고 지나가다가 우리에게 얘기를 했다고 말하게 될까?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게 어느 정도나 사실일까? (에스트라공은 구두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벗겨지지 않ㄴ느다. 그는 다시 잠들어버린다. 블라디미르가 그를 바라본다) 저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다시 얻어맞은 얘기나 할 테고 내게서 당근이나 얻어먹겠지.... (사이) 여자들은 무덤 위게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에스트라공을 바라본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말하겠지. 저 친구는 잠들어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 자게 내버려두자고. (사이) 이 이상은 버틸 수가 없구나. (사이) 내가 무슨 말을 지껄였지?
그는 부산스럽게 왔다갔다하더니 마침내 왼쪽 무대 출입구 가까이 가서는 먼 곳을 바라본다. 오른쪽에서 어제 왔던 소년이 들어온다. 걸음을 멈춘다. 침묵.
소년 아저씨.... (블라디미르가 돌아선다) 알베르 아저씨는....
블라디미르 다시 시작이로구나. (사이, 소년에게) 너 나 모르겠니?
소년 모르겠어요.
블라디미르 어 어제도 왔지?
소년 아니요.
블라디미르 그럼 처음 오는 거니?
소년 네.
침묵
블라디미르 고도 씨가 보낸 거지?
소년 네
블라디미르 오늘 밤에도 못 오겠다는 얘기겠지?
소년 네
블라디미르 하지만 내일은 온다는 거고?
소년 네
블라디미르 내일은 틀림없겠지?
소년 네.
침묵
블라디미르 오다가 누굴 만나지 않았니?
소년 아뇨
블라디미르 두.... (망설이다가) 사람 말이다.
소년 아무도 못 봤어요.
침묵
블라디미르 그래, 고도 씨는 뭘하고 있냐? (사이)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소년 네
블라디미르 그럼?
소년 아무것도 안 해요.
침묵
블라디미르 너의 형은 잘 있냐?
소년 아파요.
블라디미르 그럼 어제 온 건 형이었나 보구나
소년 모르겠어요.
블라디미르 수염이 있냐, 고도 씨는?
소년 네
블라디미르 노란 수염이냐, 아니면.... (망설이다가) 까만 수염이냐?
소년 (망설인다) .... 흰 수염 같아요.
침묵
블라디미르 하나님 맙소사!
소년 고도 씨에게 가서 뭐라고 할까요?
블라디미르 가서 이렇게 말하라. (말을 중단) ....나를 만났다고 말해라. (생각한다) 그냥 나를 만났다고만 해. (사이. 블라디미르가 앞으로 나오자 소년은 물러선다. 블라디미르가 멈추니 소년도 멈춰 선다) 틀림없이 넌 나를 만난 거다. 내일이 되면 또 나를 만난 일이 없다는 소리는 안하겠지?
침묵. 블라디미르가 별안간 앞으로 달려들려 하자 소년은 쏜살같이 달아난다. 침묵.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른다. 블라디미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에스트라공이 잠에서 깨어나 구두를 벗고 일어선다. 손에 든 구두를 무대 전면에 갖다놓고 블라디미르쪽으로 가며 그를 바라본다.
에스트라공 무슨 일이 있었니?
블라디미르 아무 일도 아니다.
에스트라공 난 가겠다.
블라디미르 나도 가야지
침묵
에스트라공 내가 오래 잤니?
블라디미르 모르겠다.
침묵
에스트라공 어디로 갈까?
블라디미르 멀리 갈 순 없지.
에스트라공 아냐, 아냐, 여기서 멀리 가버리자.
블라디미르 그럴 순 없다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내일 다시 와야 할 테니까
에스트라공 뭣하러 또 와?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리러.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사이) 안 왔냐?
블라디미르 안 왔다.
에스트라공 지금은 너무 늦었다.
블라디미르 그래 밤이 됐구나.
에스트라공 바람은 맞혀버릴까? (사이) 이쪽에서 바람을 맞혀 버리는 게 어떻겠냐고?
블라디미르 우릴 벌할 걸. (침묵. 나무를 바라본다) 나무만이 살아 있구나.
에스트라공 (나무를 바라보며) 저게 뭐냐
블라디미르 나무다
에스트라공 아니, 무슨 나무냔 말이야.
블라디미르 모르겠다. 버드나무인 것 같다.
에스트라공 가까이 가보자. (블라디미르를 끌고 나무 가까이로 간다. 나무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침묵) 목이나 맬까?
블라디미르 무얼로?
에스트라공 너 끈오라기라도 없냐?
블라디미르 없다
에스트라공 그럼 할 수 없군
블라디미르 가자
에스트라공 잠깐만. 내 허리띠가 있다.
블라디미르 그건 너무 짧다.
에스트라공 네가 내 다리를 잡아당겨 주면 되잖아.
블라디미르 그럼 내 다리는 누가 잡아당겨 주게?
에스트라공 참 그렇구나.
브라디미르 어쨌든 어떻게 되는지 모기나 하자. (에스트라공이 바지에 매어 있던 끈을 푼다. 바지통이 너무 커서 발목까지 흘러내린다. 둘은 끈을 살펴본다) 이걸로도 안 될 건 없겠다. 하지만 튼튼할까?
에스트라공 어디보자. 잡아
두 사람은 작기 한쪽 끝을 잡아당긴다.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그들은 넘어질 뻔한다.
블라디미르 아무짝에도 못쓰겠구나.
침묵
에스트라공 정말 내일 또 와야 하니?
블라디미르 그래
에스트라공 그럼 내일은 튼튼한 끈을 가지고 오자.
블라디미르 그래
에스트라공 디디.
블라디미르 왜?
에스트라공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
블라디미르 다들 하는 소리지.
에스트라공 우리 헤어지는 게 어떨까?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블라디미르 내일 목이나 매자. (사이) 고도가 안 온다면 말야.
에스트라공 만일 온다면?
블라디미르 그럼 살게 되는 거지.
블라디미르가 모자를 벗는다. 럭키의 모자다. 그는 모자 안을 들여다보고 손을 넣어보고 흔들어본 다음 다시 쓴다.
에스트라공 그럼 갈까?
블라디미르 바지나 추켜 올려
에스트라공 뭐라고?
블라디미르 바지나 추켜올리라고.
에스트라공 바지를 벗으라고?
블라디미르 추-켜-올리라니까.
에스트라공 참 그렇구나
그는 바지를 추켜올린다. 침묵
블라디미르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가자
둘은 움직이지 않는다. ■
[Review]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한 두 사람의 인간상. 에스트라공은 자꾸 떠나자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블라디미르는 기다려야 할 이유로 서로의 발목을 잡는다.
에스트라공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순 없다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다섯 명으로 위 두 사람 외에 ‘포조’와 ‘럭키’ 그리고 ‘소년’이 등장한다. 포조는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노예 ‘럭키’라는 인물을 통해서 그들도 역시 서로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 책에서 조역일 뿐 주역은 단연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이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치고 낙심하려는 순간에 ‘소년’은 ‘고도’의 소식을 전해주는 희망으로 두 사람의 기다림을 지속된다.
해럴드 슈와이저는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책에서 우리의 삶에서 기다림이 없다면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기다림은 곧 우리의 삶 자체이며 시간의 연속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에서 기다림이 무의미한 시간 그리고 낭비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은 현상학적으로 기다림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지만 독자에게는 너무나 지루하게 비슷한 상황이 반복 나타나고, 또 논리에 맞지 않은 주제와 결말 없는 대화에 독자를 지치게 한다. 한편 그러면서도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그만큼 기다림이라는 주제가 우리 삶에서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인 사무엘 베게트는 이 책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든 내용은 본문에 암시되어 있다면서, 글을 쓸 때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다는 모호한 말로 즉답을 피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며 이 책에 대한 독자의 비약이 증폭되었고 특히 도대체 ‘고도‘의 존재가 무엇이냐는 것으로 어떤 이들은 Godot가 신을 의미한다는데 까지 이르자 사무엘 베게트는 그건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이야기를 책 안에 넣었을 것이라면서 강력히 반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왜 사람들은 내가 알아낼 수 없을 만큼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는가?"라고 말하면서 혹시 책 안에 그런 의도가 표현되었다면 그건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것이라고 일축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책으로 저자는 유명 작가의 명성을 얻었고 그 이듬해 꼭 이 책 때문은 아니더라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포조와 럭키 사이가 육체적 고통의 관계라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정신적 고통의 관계이다. 포조와 럭키 사이에는 노예와 주인이라는 확실한 구분이 있지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사이에는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와 조바심으로 기다리는 사이에 불안감이 있다.
에스트라공 무슨 일이 있었니?
블라디미르 아무 일도 아니다.
에스트라공 난 가겠다.
블라디미르 나도 가야지
대화는 이런 식으로 반복된다. 결국 극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도는 오지 않았다. 극의 마지막에 이를 때 두 사람은 죽음을 생각한다.
에스트라공 (나무를 바라보며) 저게 뭐냐
블라디미르 나무다
에스트라공 아니, 무슨 나무냔 말이야.
블라디미르 모르겠다. 버드나무인 것 같다.
에스트라공 가까이 가보자. (블라디미르를 끌고 나무 가까이 간다. 나무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침묵) 목이나 맬까?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마지막 대사는 이렇게 끝났다.
블라디미르 그러면 갈까?
에스트라공 가자
수많은 문학평론에서 이 고도를 기다리며 책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연극으로나 영화로도 제작되어 일반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책이지만 정작 그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도중에 읽기를 포기한 책이다. 젊은 날 심심풀이로 읽던 책을 다시 읽게 되면서 그때와는 다른 느낌, 딱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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